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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마지막 회) ㅣ 에필로그] 은퇴하고 나면 후회하는 것들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노후준비 생각은 굴뚝, 그러나 실천 못해 … 대박 꿈 좇다 재산 허공에 날려

▎사진:ⓒgetty images bank
어느 덧 인생 2막을 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 시간부터 죽을 때까지가 생의 마지막 구간이다. 기간으로 따지면 30년 가깝다. 이 마지막 구간은 일이 없거나, 있어도 현역 때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그 전 구간에서 부지런히 준비해 놓아야 완주가 가능하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1막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노후준비를 하려는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후회가 밀려온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남긴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란 묘비명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젊을 때는 후회해도 얼마든지 만회하거나 복원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나 늙어서 후회하면 이미 때는 늦다. 은퇴한 노년기에 돈을 모으는 것, 잃은 건강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평소 연금 재원을 많이 만들어놓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준비가 덜 됐다면 적어도 은퇴 5년 전부터 체계적이고 밀도 있는 노후설계도를 그리고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당장 눈 앞이 급하고 먼 훗날은 그렇게 절박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탓이다. 노후준비처럼 목표 달성에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이슈에서 그런 인간의 본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2015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연금저축과 연금보험 등 개인연금에 가입한 고소득자인 4분위(상위 25%) 가구는 28.79%만 가입했다. 정부에서 세액공제나 비과세 혜택을 주며 노후를 준비하라고 독려하는 상황인데도 여유가 있는 계층조차도 개인연금 가입 실태가 이 모양이다.

사람들이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미래의 기대수익(연금)보다 먼저 나가는 비용(불입금)을 상당히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나이 들어 노후자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구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대개 단기간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장기적으론 하지 않은 행동을 더 후회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와서 후회하는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니 열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그중에서 가장 뼈아프게 느낀 것 5가지만 추려 정리해 본다.

노후준비가 부족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 ‘노후준비 5년 만에 끝내기’는 노후준비를 손 놓고 있다가 은퇴 5년 전부터 시작하라는 뜻이 아니다. 30년 노후를 보낼 자금을 단 5년 만에 마련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마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횡재를 한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의 월급쟁이는 원하는 노후자금을 준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필자부터 그랬다. 사실 40대를 넘어설 때부터 노후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고령화가 화두가 아니었다. 직장마다 연공서열이 무너지고 능력주의가 도입되면서 직장 동료들 사이에 조기 퇴직에 대한 불안심리가 번져 나갔던 시기였다. 명예퇴직이란 이름 아래 선배들이 옷을 벗었고, 동료들은 엉뚱한 근무 부서로 쫓겨 갔다. 필자가 노후 준비랍시고 했던 건 개인연금을 하나 달랑 든 것이었다. 지금 와서 계산해 보니 국민연금을 합쳐도 노후자금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개인연금 불입금을 증액하든가 아니면 갯수를 더 늘렸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노후준비에 눈은 일찍 뜬 편이었지만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결과 노후빈곤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헛된 대박의 꿈을 좇았다: 2000년대 초 한국 사회에는 벤처 붐이란 투기 광풍이 몰아쳤다. 다들 투기 대열에 끼지 못해 안달하던 시절이었다. 필자도 그중 하나였다. 장외주식 브로커 역할을 하는 지인들에게 술까지 사주며 한 주라도 더 얻어 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주위의 많은 동료가 돈 다발을 싸들고 불나방처럼 투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외주식을 잘 만 사면 상장 후 수 십 배, 심지어 수 백 배의 수익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IT란 꼬리표가 달린 주식은 묻지마 투자의 집중 공략 대상이었다. 분석이니 전망이니 하는 건 뒷전이었고 일단 사고 보자는 심리가 앞섰다. 나도 쌈지돈까지 동원해 가며 6개 비상장 주식을 사들였다. 어떤 것은 주권 발행조차도 안 돼 주식보관증만 받아들고 헛된 대박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투기의 끝은 참담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는 한순간에 거품이 터지면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수 십 만원 하다가 액면가 이하로 떨어진 주식이 부지기수였다. 어떤 주식은 부도로 휴지조각 신세가 됐다. 필자가 보유한 벤처 주식 6개 중 2개는 행방조차 알 길이 없고, 나머지 4개는 장외시장서 거래가 안 되는 껍떼기뿐인 주식이다.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정으로 통하는 사회다. 친구와의 관계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돈이 없어도 친구가 많으면 마음 만큼은 부자다. 친구는 자아가치를 재확인하거나 자아검증에도 기여해 사람들은 걱정이 있거나 고독할 때 가족보다 친구를 찾는다. 그러나 필자는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다. 있는 친구마저도 나이 들면서 하나 둘씩 멀어져 갔다. 아마 자기 중심적이고 비판적인 성격 탓이지 싶다. 노후에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젊을 때엔 쉽게 화해했을 일도 여간 해서 타협점을 찾기 어려워진다. 매사에 소심해지면서 사소한 것 가지고 언쟁을 벌이다 원수같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쓸쓸하고 외로운 은퇴생활일수록 같이 어울릴 친구가 있으면 좋다. 만약 주위에 서먹서먹해진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해 보자. 친구를 사귀는 데 자존심은 내팽개쳐야 한다.

아내에게 소홀했다: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은퇴 후 가정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둘만의 시간이 많아질 텐데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앞선다. 남과 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사고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화성인’과 ‘금성인’의 동거는 애당초 갈등이 내재돼 있다. 갈등은 남편이 가정으로 귀환해 아내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면서 표면화한다. 서로 함께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늘게 돼 있다. 남편에게 가정은 어디까지나 쉬는 곳이다. 30년 가까이 힘들게 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이젠 집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은퇴를 계기로 가사에서 해방돼 자기계발과 여가를 즐기며 살기를 원한다. 남편은 위로와 대접을 원하지만, 아내는 역할과 자유를 요구한다. 이렇게 부부가 엇박자로 나가면 둘 사이엔 위기가 싹트고, 심하면 이혼 이야기가 오고 간다. 회사형 인간에서 가정인으로 돌아가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주말엔 시간을 내 가사를 거들고 둘만의 시간을 많이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취미 준비를 못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4년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은퇴 후 후회하는 것’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일과 인간관계’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평생 즐길 취미가 없는 것’(9.5%)으로 나타났다. 은퇴 준비가 재무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취미활동같은 비재무적인 준비가 소홀한 편이다. 그러다 은퇴하고 나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라 어쩔줄 모른다. 기껏 소파에 누워 TV를 시청하거나 등산을 하는 정도다. 필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취미활동을 위한 기술과 지식은 은퇴 이전부터 길러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 취미를 개발하겠다고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나이가 들면 학습속도가 느려지고 새운 것을 배우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취미 개발이 물거품될 가능성이 크다.

※ ‘서명수의 노후준비 5년 만에 끝내기’는 이번 호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지난 1년 가까이 연재하는 동안 성원하고 격려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은퇴기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고령화 시대에 그 간의 연재물이 여러분의 노후준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분간 쉬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 다음 번엔 좀 더 유익한 주제, 알찬 내용으로 찾아 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1414호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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