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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주의 사고: 외국에 비해 한국에서 유달리 비트코인 투자가 과열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한 돈의 몇 배 또는 몇 십 배를 번다니 너도나도 뛰어들려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에 우리는 부동산에서 이런 투자광풍을 체험했다.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져가는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비트코인이나 부동산 투자의 밑바탕에는 모두 한탕주의 사고가 깔려 있다. 속된말로 한탕 튀겨보려는 욕망이 가격을 올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액의 두 배 이상 되는 이익을 기대하는 심리가 과열을 낳고 있다. 만일 이런 아이템이 은행의 저금리 정도의 수익을 가져다 준다면 투자광풍이란 말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일확천금의 사고를 우리는 ‘한탕주의’라고 표현한다. 한탕주의는 영어로 ‘get-richquick fever’라고 표현한다. 한 번의 시도로 큰 재물을 얻거나 큰 성공을 기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 이런 한탕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신분 상승의 욕구가 강하고 그래서 한 방에 신데렐라처럼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외국인이라고 일확천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확천금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손에 쥐려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한 방에 크게 버는 것은 사실 도박 같은 데서나 가능할 것이다. 운이 좋을 때 들어간 돈의 몇 배 또는 몇 십 배를 벌 수도 있다. 하지만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도박으로 성공했다는 사람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망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바둑의 한탕주의: 집차지 경쟁인 바둑에도 한탕주의가 있다. 착실하게 수익을 올려 승리하려고 하기보다 한 방에 큰 소득을 올려 승리를 거두려고 한다. 그 방법은 바로 상대방의 대마(大馬)를 잡는 것이다. 적의 대마를 잡으면 전쟁에서 적군을 사로잡고 승리를 거둔 것처럼 수익이 크다. 포로가 생겨 몸값을 받는 데다가 정복한 지역이 자기 땅으로 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비트코인 투자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바둑 팬들은 틈만 나면 상대방의 대마를 잡으려고 한다. 대마를 잡고 통쾌한 승리를 거둘 때의 쾌감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전에서 대마를 잡고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쪽박을 차거나 공격하던 쪽이 잡혀 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성공을 하더라도 중간에 리스크가 있는 경우가 흔하다. 말하자면 위험한 다리를 건너야 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보자.
정수를 두고 기다려라: 바둑판의 한탕주의를 경계하라는 격언이 있다. ‘정수를 두고 기다려라’라는 말이다. 일본의 한국통기사였던 기타니 미노루 9단이 한 명언으로 과욕을 부리거나 무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기타니 9단은 정수(正手)를 두며 착실하게 두어가면 반드시 좋은 찬스가 온다는 철학을 가졌다. 실제로 기타니 9단은 착실하게 실리를 저축하며 집을 늘려나가는 전법을 썼다. [3도]는 기타니 9단이 백으로 둔 바둑의 포석이다. 백6으로 귀의 실리를 차지한 후 10에 다가서 집을 키워 나간다. 우하쪽에서도 백16과 18로 10집을 벌어들이며 착실하게 대응해 나간다.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실리, 즉 자산을 늘려 나간다. 기타니 9단의 바둑을 보면 재산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실리바둑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기력이 낮은 하수들의 눈에는 이런 바둑이 좀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벌어서 언제 부자가 되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고수들의 눈에는 이런 착실한 운영이 올바른 길로 보인다. 비트코인 과열 양상과 연관시켜 바둑에서의 사고방식을 알아보았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따라 블록체인이 향후의 대세라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방에 대마를 잡겠다는 한탕주의로 접근해서는 위험할 수 있다. 대마를 잡는 데는 이세돌 9단 같은 고수도 항상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점을 알아두자.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