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데이터 산업 후진국”이민화 이사장(이하 이민화):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혁명이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데이터를 이용한 예측과 맞춤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 인프라로 불리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역시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온라인 가상 세계를 만든 3차 산업혁명에서 벤처를 중심으로 약진, 일본과 유럽을 앞서 글로벌 선도 국가로 부상한 바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은 글로벌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구태언 부문장(이하 구태언): 우리나라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제한하고 있다. 세계 IT 시장을 주도하는 있는 애플·구글·아마존의 성공 뒤에 데이터 활용이 있는 것과 대조된다. 우리는 글로벌 주요 기업이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데이터를 쌓고 개인화 효율화를 주도하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데이터 상당 부분이 생산되는 즉시 해외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유출되고 있다. 그동안 네이버와 다음이 데이터 유출을 막는 일종의 댐 역할을 해왔지만, 점차 네이버와 다음이 글로벌 회사의 데이터 활용 전략을 막지 못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유튜브만 해도 이용자가 검색하고 자주 본 영상을 데이터로 분석해 새로운 영상을 추천하는 데이터 활용으로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약 90% 점령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정보, 시민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한 해외 기업의 데이터 활용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정보를 조정하는 시대에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국내 기업의 서비스는 경쟁력을 잃고 한국은 ‘데이터 진공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문용식 원장(이하 문용식): 지난해 8월 정부가 나서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현행법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구매 이용 내역 등 사용자 정보 데이터를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으로 막아 활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통해 사업화하려는 기업들이 국회만 바라보고 있지만, 국회는 법 개정안의 상정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가 나서 데이터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고 데이터 활용 방안을 내놨지만, 데이터 절대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민감 정보 또는 개인정보 영향 평가 대상인 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하고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거의 없어서다.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사업을 하면 정보통신망법이, 금융 관련 서비스에는 신용정보보호법이 동일하게 적용돼 데이터를 축적·분석·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 명목으로 ‘정보’ 규제
개별법에 막혀 허울뿐인 클라우드 발전법이민화: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데이터 서버의 클라우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물리적 서버에 각각 저장됐던 데이터가 클라우드에서는 데이터가 가상의 서버에 통합되는 만큼 클라우드가 이른바 ‘데이터 플랫폼’으로써 데이터 분석을 유리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터 경제를 강조하며 클라우드를 ‘데이터 고속도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를 클라우드에 올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데이터 활용을 통한 개인화 서비스 제공은 불가능하다.문용식: 클라우드 산업 발전법이 이미 도입돼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데이터의 민간 클라우드 활용 등이 권고 수준으로 강제성이 없어 데이터 활용을 위해 쓸 만한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다. 여기에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 등 개별법에서 정보 활용을 못 하게 막고 있다. 의료 분야는 의료법 등이 일정한 정보의 외부 이탈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스타트업 헬스베리티가 3억 명의 의료데이터를 클라우드를 통해 중개하는 비즈니스로 각광받고 있지만, 우리는 불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합의 수준은 굉장히 높이 올라가 있는데 반해 클라우드 진흥법은 아직 합의 수준이 낮은데 따라 발생한 문제다. 익명화 조치, 가명화 조치 등 비식별화 조치에 대한 인증제도 등을 도입해 클라우드 산업 발전법에 대한 해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무사안일주의 관행도 작용했다.안건준: 무사안일주의 문제가 크다. 한국은 자꾸만 오프라인 시대를 생각한다. 기술 격차가 발생해도 문을 닫고 우리끼리 기술을 개발해 추격에 나설 수 있을 때 문호를 개방했던 과거 말이다. 이제는 전 세계가 망으로 연결돼 과거의 방식이 불가능한데도 엄중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군대를 보내서 한 나라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기업을 보내서 데이터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이우일: 공공정보는 민간 클라우드에 올라가야 제대로 활용된다. 글로벌 인터넷 트래픽의 90% 이상이 이미 클라우드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국내 10인 이상 민간 기업의 클라우드 활용률은 2016년 12.9%에 불과하다. 다행인 점은 지난해 초 과학기술총연합회·벤처기업협회·KCERN 등이 나서 데이터 활용 관련 규제 개선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클라우드 활성화를 위해 공공 부문의 민간 클라우드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 특화 플랫폼 구축을 통한 시장경쟁력 강화 및 해외 진출 추진,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추진 계획을 냈다.이민화: 종합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 데이터 활용이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법에 막혀 인력과 인프라 모든 면에서 뒤처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국회에 상정된 개인정보보호법과 클라우드 특별법 개정안이 하루 빨리 통과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