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부정적” 응답자, 남성은 전 연령층에 분포, 여성은 사회생활 활발한 시기에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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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국에서 4년여 동안 일했다. 평균 연봉도 높지만 특히 초임이 국내 기업의 두 배 정도 수준인 곳이다. 30대 후반이던 A씨는 입사 직후 만난 동료들로부터 “이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못 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들어야 했다. A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4년 동안 꽤 많은 수의 ‘비미족(비혼·미혼족)’ 동료들이 들어왔지만 단 한 명도 결혼하지 않았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경쟁이 다소 적은 다른 회사로 옮기고서야 결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농담 같았던 불길한 예언이 실은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대~50대 직원까지 골고루 근무했던 지국의 전체 직원 중 기혼자 수는 10%가 안 됐다. “(비미족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 인재가 많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한국지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적어도 아시아 지역 내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서 한창 일을 열심히 하는 시기에 결혼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이처럼 경력 관리를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 비미족이 많다는 게 기존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미디어학과 로라 키프니스 교수가 [사랑에 반대한다]는 책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야심찬 사람들의 (안정된 관계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은 아주 명쾌했고,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그들은 자유로운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래학자인 대니얼 핑크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에서 “다양한 분야의 1인 기업가들은 자신을 일에 완전히 쏟아붓기 때문에 이들의 성공 여부는 대기업에서 주는 혜택이 아니라 각자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한 1인 기업가의 말은 미래를 살짝 보여주는 복선처럼 느껴진다. 1인 기업가는 “독립적으로 일할 때 가장 나쁜 점은 24시간 일해야 한다는 것이고, 가장 좋은 점은 어느 24시간을 쓸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런 주장은 적어도 서구권에서는 다소 낡은 이론이 됐다. 두 학자가 경력 관리로 바빠 결혼하지 않는 싱글에 대해 쓴 책은 각각 2002년, 2004년에 발간됐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2012년 [고잉 솔로]라는 책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30대 중후반이 되면 왜 나는 아직 결혼 상대를 찾지 못했는지, 찾았다면 더 행복했을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7년 동안 혼자 사는 1인 거주자 300명을 심층 인터뷰 했다. 이렇게 ‘일과 결혼했다’는 21세기 초 ‘노동의 환상’에는 금이 간 지 오래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스타트업에서 일하려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거나 ‘장인이 되려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심지어 ‘일본의 52시간 근무제도처럼 예외 사항을 더 많이 넣어야 한다’는 잘못된 정보를 주요 매체가 보도하기도 한다. 일본의 52시간 근무제는 예외 조항이 달려있긴 하지만 특정한 기간, 업종, 상황까지 모두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 오히려 한국보다 더 엄격하다.엘리트 노동계층이 결혼과 일을 맞바꾸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벌어졌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올해 2월 발표한 ‘미혼인구의 결혼 관련 태도’ 보고서의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결혼에 대한 인식 및 배우자의 조건에 대한 태도에서는 성별 차이가 확인되는 가운데, 청년이 처한 사회경제적 특성도 반영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사회의 미혼화는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사회 문제가 아닌 청년 삶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다만, 커리어와 결혼과의 상관관계가 옅어지는 현상을 담고 있진 않다. 이 보고서는 이를 사회경제적 특성이라고 포괄적으로 주장한다. 우리 사회 비미족의 등장 시점은 2000~2005년이다. 이 기간 20대 후반 여성의 미혼율은 20대 40.1%에서 59.1%로 무려 20%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사회에서 2000년 이전에는 60% 이상의 여성이 만 30세 전에 결혼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 비중이 반 토막 났다. 남성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30대 초반대 남성의 미혼율이 28.1%에서 41.3%로 역시 급증했지만, 증가폭은 13.2%포인트로 여성보다 낮았다. 다만 남성의 미혼율 증가세는 25~44세까지 전 연령층에서 비교적 고르게 진행됐다. “2000년대 초는 여성의 학력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고 산업구조의 변동 등에 의해 전문직 분야 등에서 여성, 특히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대졸 이상 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급격히 상승했다.”보고서는 남녀의 인식 차이의 이유를 자세히 밝혀내진 못했다. 2015년 조사 결과에서는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응답률이 남성은 60.8%, 여성은 39.7%였다. 이는 2018년과 비교 해 남녀 각각 10.3%포인트, 10.9%포인트 낮아진 수치다다. 여성은 특히 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인 30대 초반부터 결혼에 대한 유보나 부정적 태도가 크게 늘어났다. 보고서는 30대 초반 여성들의 이런 태도를 “결혼 적령기를 지나면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부정적 태도가 쌓어가는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이 보고서는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복지 실태조사’ 결과 중에서 비미족 남녀 부문을 보강조사 했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여성이 다른 연령대 여성들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일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2017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25~29세 여성 고용률은 69.6%로, 45~49세의 69.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30~34세 여성 고용률도 61%로 높았다. 특히 2007년과 비교해 보면 30대 초반 일하는 여성 비율은 52.2%에서 61%로 7.8%포인트나 늘어났다. 여성 취업자의 근속년수가 가장 긴 분야는 부동산 및 임대업, 숙박 및 음식점업, 보험업 순인데, 40대 후반의 높은 고용률의 원인으로 보인다.한국의 여성 노동참여율은 2000년 이후 크게 늘었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낮은 상태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최근 [21세기 한국의 불평등]이란 저서에서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2011년 기준 5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7%포인트 이상 낮고, 70%를 넘는 북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여성 경제활동참가는 가구주의 낮은 소득을 보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교육과 직업이 비슷한 이들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이 유교주의적 아시아국가들의 특징이고, 이 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이런 정도가 강하다”며 하지만 이런 경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결국, 미국의 예를 참조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2017년 현재 20, 30대 여성들의 취업이 어느 시대보다도 높은 이유를 교육에서 찾았다. 현재 20대 초중반에서 30대 중반에 이르는 밀레니얼 세대 여성의 4년제 대학 졸업 비율은 36%였지만, 이보다 50년 전의 이른바 ‘침묵세대’ 여성들이 이 연령대였던 당시 취업률은 9%에 불과했다.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의 고용률은 71%에 달한다. 경제적 자립을 거치면서 이들의 비미족 비중은 무려 57%에 달하는데, 이는 ‘침묵세대’ 여성들이 20~30대던 당시보다 무려 3배 높은 수준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도 이곳에서 MBA를 받은 모든 이들을 조사해 ‘야심찬 여성에 관해 당신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란 기사를 발표했다.
가정에서 행복 느끼며 의미 있는 일 원해이 기사의 핵심은 남녀 간 자신의 커리어를 중시하는 비율이 다르다는 데 있다. 여성 졸업생은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는 행복을 중시하고 있어 이 부분에서 남성 졸업생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대부분의 남성 하버드 MBA 졸업생들은 자신의 커리어 성공을 위해서 배우자(여성)가 도와줘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40대 여성 졸업생은 “20대에는 직장에서 성공하는 게 성공의 정의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낳고, 가족으로부터 행복을 얻으며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결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전 연령대에 걸쳐 있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한창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나이 때에 몰려있는 이유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배우자의 희생을 원하면서 자신의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남자들의 숫자와 직장 내 압박감은 줄여주고, 여성의 경제활동과 임금을 늘려(임금격차 해소) 가구 소득을 높이는 것이 어쩌면 저출산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