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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투자용 계좌와 투기용 계좌를 분리하자! 

 

레버리지 ETF의 위험성… 현명한 ‘동학개미운동’ 되어야

만일 인류가 지렛대의 원리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는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병따개, 젓가락, 가위, 손톱깎이, 수도꼭지 등은 모두 지렛대 원리를 활용해 만든 제품들이다. 지렛대는 힘점, 받침점, 작용점의 거리에 따라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 지렛대 원리를 응용한 놀이기구인 시소를 생각해 보자. 같은 몸무게의 사람이라 해도 중심에서 멀리 앉아 있는 사람 쪽으로 시소는 기울어진다. 시소처럼 받침점과 작용점의 거리보다 받침점과 힘점의 거리가 멀수록 적은 힘으로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일상용품들 외에 지렛대(레버리지) 원리가 작동하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금융에서 말하는 지렛대 효과는 타인 자본을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가들의 모험정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주식회사의 탄생도 레버리지 효과로 설명이 가능하다. 주식회사는 자신의 지분만큼만 책임지는 제도이다. 사업가는 100% 지분을 갖고 있지 않고서도 남의 자본(출자금)을 지렛대 삼아 리스크를 감수하고 사업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다.

레버리지는 양날의 칼

차입금, 즉 대출을 통해서도 레버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전세를 끼고 다수의 주택을 매입하는 갭(Gap) 투자는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투자자들의 행위이다. 갭 투자가 가능한 것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 때문이다. 전세는 주택의 이용가치를 뜻한다.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자산가치가 상승해도) 전세 세입자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 집주인의 입장에서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만 있으면 전세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레버리지 역할을 한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 외에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는 성공한 이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실패자들에게 파괴적이고 악마적이다. 양날의 칼이다. 칼의 날카로움은 받침점과 힘점의 거리가 멀수록, 다시 말해 타인의 돈이 자신의 돈보다 많을수록 더 깊어진다. 흔히 하는 말로 투자자들은 레버리지로 흥하고 레버리지로 망한다. 레버리지가 선한 천사에서 악마로 돌변하는 때는 호황에서 불황으로 바뀌거나 금융위기나 이번 코로나 사태처럼 대형 이벤트가 등장할 때이다. 이때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레버리지 효과에 취해 있던 투자자들이 흘린 피가 낭자해진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레버리지가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뀌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레버리지 ETF와 인버스2X ETF 그리고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이다. 이들 상품의 공통점은 모두 레버리지, 즉 변동성을 두 배로 높인 상품들이라는 점이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지수 가격 변동 폭의 2배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상장지수펀드다. 개인투자자들이 간과하는 대목은 변동성을 계산하는 기준이 하루 단위라는 점이다. 직관적으로 기초지수 1000포인트에 투자했는데 다음 날 800포인트로 하락하고, 3일째 다시 1000포인트를 회복하면 원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투자 시점과 3일째 평가시점이 1000포인트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일째 수익률은 -10%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왜 그럴까. 둘째 날의 경우 기초지수는 -20% 빠졌으니 레버리지 ETF의 가격은 그 두 배인 -40%가 하락해 600포인트를 기록하게 된다. 셋째 날에 기초지수는 25% 상승해 800포인트가 1000포인트가 됐다. 레버리지 ETF의 가격은 600포인트에서 50% 오른 900포인트가 된다.

레버리지의 ‘음(-)의 복리 효과’ 때문이다. 지수가 회복되더라도 보유기간 동안 가격이 하락하는 구간이 등장하면, 손실 폭이 배가 된다. 매입 시점과 평가 시점의 지수가 같더라도 최종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다.

레버리지 투자는 본질적으로 방향성 투자이다. 주가나 원유 가격의 방향성을 예측해서 베팅하는 것이다. 워런 버핏의 스승이자 현대증권 분석방법론을 개척한 벤자민 그레이엄은 이런 행태를 투자가 아닌 투기로 구분했다. 그는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투기자와 투자자를 나누었다. 그레이엄의 말이다. “투기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장 변동을 예측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데 있다. 반면 투자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적정한 가격의 적정한 증권을 찾아 보유하는데 있다.”

또한 그는 투기자는 투자자에 비해 심리적인 측면도 중요하다고 봤다. 그 둘의 ‘시간 지평(time horizon)’이 다르기 때문이다. “투기자들은 서둘러서 이익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주가가 상승하기를 1년 동안 기다린다는 것은 투기자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에게 그 정도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레이엄은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용으로 거래하는 모든 비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사실상 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래도 투기를 하고 싶다면? 투기의 묘미를 느끼고 돈을 벌고 싶다면? 그레이엄의 조언은 이렇다.

“투기는 항상 매혹적이고 그 투기게임에서 유리할 때는 정말로 재미있을 수 있다. 만약 투기에 운을 걸어보고 싶다면, 이러한 목적으로 별도의 계좌를 마련해서 따로 일정비율의 자금(적으면 적을수록 좋다)을 관리하라. 시장이 상승하고 이익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 계좌에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지 말아야 한다(오히려 투기성 계좌로부터 자금을 인출할 것을 고려할 시점이다). 절대로 한 계좌에 투기성 자금과 투자용 자금을 섞어서 관리해서는 안 되며, 생각 자체도 분리해서 하여야 한다.”

보기 드문 개미들의 투기적 ETF 베팅

그레이엄은 매우 실용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바로 단기간에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욕망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知的)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투기와 투자를 철저히 구분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도 돈뿐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말이다.

최근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늘 외국인들에게 휘둘렸던 개인투자자들이 주가 급락을 활용해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 한국 증시 역사상 주가 하락기에 단기간에 개인들이 주식을 사들이고 투기적 ETF에 베팅을 한 적은 매우 드문 풍경이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투자를 하는지 투기를 하는지 스스로 잘 진단하고 있어야 한다. “월스트리트나 다른 어떤 곳에도 부자가 되는 쉽고 빠른 방법은 없다”는 그레이엄의 지혜처럼 투기로 빨리 부자가 되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관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투기를 하고자 한다면, 투기의 묘미를 짜릿하게 즐기고 싶다면 그레이엄의 조언에 따라 투기 계좌를 따로 만들어 두는 게 어떨까.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32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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