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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체계적 리스크에 위협 받는 일자리 

 

기업들은 인력 늘리지 않는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3월 구직급여 지급액이 8982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상담 창구. / 사진:연합뉴스
‘3월 실업급여 사상최대’ ‘고용쇼크 현실화’ ‘1주일 660만 실업자 쏟아진 美’ ‘미국 실업률 15% 이상 될 수도’ 최근 실업에 관한 언론의 헤드라인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악의 경우, 실업률 15%가 넘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등장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1929년 대공황 당시 실업률은 25%였다. 1929년과 현재의 경제 규모를 비교할 때, 만일 실업률 15%가 넘어선다면 대공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한 파장을 낳을 것은 분명하다. 감히 전망하자면,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면 실업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기간 경제를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

체계적 리스크와 일자리


코로나19 사태는 금융의 리스크 구분법에 따르면 ‘체계적 리스크(systematic risk)’에 해당된다. 체계적 리스크란 2008년 금융위기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주식시장과 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험을 뜻한다. 체계적 리스크는 파장도 크고 관리도 어렵고 주가 하락뿐 아니라 일자리마저 빼앗을 수 있다. 체계적 리스크와 구분되는 것이 고유 리스크(idiosyncratic risk)이다. 예를 들어 A라는 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크게 실패해 실적이 나빠지는 것을 들 수 있다. 고유 리스크는 해당 기업에만 영향을 미칠 뿐 다른 주식이나 주식시장 그리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체계적 리스크는 인생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대운(時代運)’과도 연결된다. 만일 2020년에 일자리를 찾는 취업 준비자들 입장에서 코로나19는 횡액(橫厄) 중의 횡액일 것이다. 기업들, 특히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체들은 신규 채용 인력을 줄이거나 당분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본인의 능력 보다는 시대운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부(富)의 창출도 마찬가지이다. 큰 부자들은 어느 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 보면, 한국 전쟁 이후 경제 개발 시대,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 인터넷 혁명기가 대표적이다. 앞의 시대에는 삼성, 현대, LG 등 오늘날의 재벌기업들이 등장했고, 외환위기와 인터넷 혁명 시대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의 새로운 기업들이 태동했다. 기존 질서가 파괴되거나(한국전쟁), 새로운 패러다임(인터넷, 모바일)이 등장할 때 큰 부자들이 등장한다.

체계적 리스크는 기존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1950년 대 이후 호황기와 불황기를 거치면서 소득이 어떻게 변동했는지에 대한 미국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앨리슨 슈레거의 책[리스크의 과학]을 인용하자면, 체계적 리스크는 소득이 아주 낮은 근로자와 아주 높은 근로자들에게는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소득이 중간 수준인 사람들에게는 덜 심각하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는 직관적으로도 맞는 듯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주로 비정규직, 계약직 일자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반대로 체계적 리스크가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자리가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경제 상황에 거의 상관없이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자주 간과되지만 리스크의 관점에서 일자리를 바라보는 것은 자산운용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 퇴직 후 평생 동안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매년 단위로 근로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사람, 또는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거리를 수주해야 하는 프리랜서의 자산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산업이나 분야도 중요하다. 미국의 퇴락한 산업 지역을 뜻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대표하는 지역이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이다. 1950년대 이후 미국 자동차가 세계를 휩쓸 때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이 때 근로자들의 소득은 크게 늘었다. 소득이 늘면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소득이 증가하면 내수도 살고 자영업 경기도 좋아진다. 산업의 성장이 선순환을 낳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그 힘이 반대로 작동하면, 소득과 일자리가 줄고, 지역 경기는 나빠지며 주택 가격도 떨어진다. 만일 이런 시기에 자신의 자산을 자동차 회사 주식과 디트로이트 부동산에 올인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과적으로 모두 가치가 하락하는 자산에 투자한 셈이 된다. 노동력의 가치도, 주식의 가치도, 부동산 가치도 떨어졌으니 말이다.

산업 구조의 변화와 리스크 관리

개별 기업이나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체계적 리스크가 일자리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재택근무, 원격 화상 회의 등 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고용 구조에 대한 고민도 많아질 것이다. 특히 고용 구조가 유연하지 못한 기업들의 경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다시 직원들을 뽑지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체계적 리스크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져도 고용 부담을 모두 끌어야 한다면, 기업들은 향후 인력을 늘리지 않는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개인들이 일자리나 자산운용 관점에서 체계적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때문에 사후 치료가 아닌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재정 소방 훈련’을 하는 것이다.

재정 소방 훈련이란 개념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제시한 것이다. 정치 입문 전 파산법 교수였던 그는 미국 맞벌이 부부들이 파산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분석한 [맞벌이 부부의 함정]이란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왜 소득 수준도 높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미국 맞벌이 부부들의 파산 신청 건수가 증가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두 부부의 수입에 맞추어 주택 구입과 자녀 교육비에 큰 지출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부 중 한 명이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주택 대출금과 자녀 교육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진다. 파산한 맞벌이 부부는 부부 모두가 일한다는 전제에 맞추어 지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재정 소방 훈련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일자리를 잃는다면 우리 가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급여가 줄어들거나 무급 휴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몇 개월 정도 버틸 수 있을까?’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어느 정도인가?’ ‘소득이 줄어든다면 현재 대출금을 감당할 수 있을까?’ 등이다. 무엇이든 줄이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보여주는 차가운 현실 중 하나는 체계적 리스크로 우리의 일자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의 특성에 고려한 재정 소방 훈련과 자산 운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31호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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