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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규제 강화, 비상 걸린 화학업계] 재활용 원료 써야 하는데 폐플라스틱 수입 막혔다 

 

롯데·SK·LG 등 재활용체계 직접 구축… “재활용 쉬운 플라스틱 만들어야” 지적

국내 화학업계가 플라스틱 재활용 체계를 직접 구축하고 나섰다. 100년 넘게 썩지 않는 폐플라스틱이 바다에 섬을 이루는 등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피해가 심각해지자 국내·외 플라스틱 규제가 생산 단계로까지 확대하고 있어서다.

특히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플라스틱 제품에 재활용 플라스틱이 원료로 들어가야만 제품을 납품받겠다는 내부 방침까지 정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원유 등을 원료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줄만 알았던 국내 화학업계가 재활용 플라스틱을 써야 하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이나 SK종합화학 등 국내 주요 화학업체가 먼저 재활용 체계 구축 방침을 내놓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플라스틱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발표하고 폐페트병을 수거해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 루프(Project LOOP)’를 시작했다. 자원순환 벤처기업 수퍼빈이 개발한 ‘네프론’을 롯데월드몰과 롯데월드 등 6곳에 도입하기도 했다. 네프론은 폐페트병 등을 자동 분류해 압축한 뒤 내부에 저장하는 인공지능 재활용품 수거기로 롯데케미칼은 네프론을 이용해 오는 7월까지 총 10톤 규모의 폐페트병을 수거한다는 계획이다.

SK종합화학은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 등을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생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현재 20% 수준인 친환경 제품 비중을 2025년까지 7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사업 목표도 제시했다.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은 “환경 문제에 직면한 화학산업은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폐플라스틱을 완전히 재활용하는 자원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지난 5월 ‘뉴 비전’을 선포하면서 석유화학부문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의무’ 강화되는 생산 규제


국내외에서 번지고 있는 플라스틱 생산 규제가 국내 화학업계의 이 같은 재활용 체계 구축을 이끌었다. 현재 국내 화학업계는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5월 ‘특정 플라스틱 제품의 환경 부하 저감에 관한 지침’을 채택, 2025년부터 재활용 플라스틱 함량이 25% 이하인 플라스틱 용기는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글로벌기업들은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홍수열 소장은 “의류업체 자라, 화장품 업체 로레알 등은 재활용 플라스틱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은 받지 않기로 이미 정했다”면서 “재활용 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으면 플라스틱을 팔 수 없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시스템은 폐플라스틱을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사용 후 버려진 플라스틱은 세척, 파쇄 등을 거쳐 작은 플라스틱 조각인 플레이크로 만들어지고, 플레이크가 플라스틱 원료가 되는 펠릿으로 가공돼 플라스틱 제품이 된다. 그러나 국내 폐플라스틱 플레이크는 이물질 등 오염이 심해 플라스틱 용기 등 제품의 원료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생산 폐플라스틱 플레이크가 대부분 솜이나 폴리염화비닐(PVC) 배관 등 산업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이유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화학업계가 추진하는 재활용 체계 자가 구축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다. 실제 효성의 섬유 부문 회사인 효성티앤씨는 제주도개발공사와 재활용 관련 업무협약을 했다. 제주도개발공사가 확보한 삼다수 병만으로 재활용 체계를 구축해보기 위해서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학업체들이 직접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결국 질 좋은 플레이크를 확보해보려는 노력”이라면서 “롯데케미칼의 프로젝트 루프에도 네프론을 통해 확보한 페폐트병을 금호섬유공업이 재활용 원료로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국내 화학업계의 재활용 체계 구축은 앞으로 더 빨라질 전망이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한 플라스틱 생산 논의가 불붙으면서 질 좋은 플레이크 생산이 용이한 해외 폐플라스틱이 대거 국내로 몰려들자 환경부가 폐플라스틱 수입 금지를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5월 20일 ‘국내 폐기물 재활용 촉진을 위해 수입이 제한되는 폐기물 품목 고시’ 제정안을 행정 예고하고 의견 수렴까지 마쳤다. 환경부 관계자는 “규제 심의를 거쳐 여름께에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등 폐플라스틱 수입을 막을 것”이라면서 “국내에서 배출되는 폐플라스틱을 재생원료로 사용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관건은 국내 폐플라스틱의 품질이다. 국내 폐플라스틱은 이물질이 섞이고 오염물질이 많이 묻어 재활용 자체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은 폐플라스틱 순수입국이 됐다.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관세청의 ‘폐플라스틱 수출입 동향 ’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폐플라스틱은 16만2957톤으로 같은 기간 수출량(3만4739톤)의 4배 가까운 물량이었다. 2017년까지 수출이 수입보다 약 3배 수준으로 많았지만, 2018년부터 달라졌다. 이른바 ‘폐플라스틱 무역수지’는 2018년 4868만2000달러 적자에서 지난해 5393만1000달러 적자로 더 커졌다.

“플라스틱 재활용보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 만들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화학업계의 재활용 체계 구축이 재활용 업계 전반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럽발 생산 규제에 국내의 수입 규제가 기업의 변화를 이끌고는 있지만,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이 변할 여지는 작기 때문이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국내 화학업체들이 유럽의 규제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활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원료 수급 고민이 크지는 않다”면서 “가령 폐플라스틱은 폐기물로 취급돼 바젤 협약에 따라 수입을 막을 수 있지만, 플레이크는 소재로 분류돼 수입을 막을 수 없는 만큼 하다 안 되면 수입을 통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플라스틱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플라스틱 제품 대부분이 생산단계에서 재활용의 용이성보다 소비자의 선호도 등 판매 전략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재활용 비용이 증가하고 재활용 제품의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우 전북대 교수(환경공학과)는 “재활용 플라스틱이 포함된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재활용이 용이한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40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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