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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집세 내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 

 

180년 전 美 환경보호가 소로… [월든]에서 땅과 집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 경고

▎입주를 앞두고 막바지 공사 중인 강남 재건축 아파트.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 근처의 월든호숫가.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1.6㎞나 떨어진 외딴 곳에 한 남자가 산다. 그는 제 손으로 오두막을 짓고 노동을 해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기행은 1845부터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2년2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의 이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미국 최초의 환경보호가로 불린다.

“월든호수는 같은 각도에서 바라봐도 어느 순간에는 파랗다가 다음 순간에는 초록으로 변한다. 어쩌면 하늘과 땅의 중간에 놓여있는 까닭에 그 둘의 색을 다 닮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월든 호수에 매료된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호수면을 수상집 [월든(Walden)]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금을 찾아, 땅을 찾아 서부로 몰려가던 19세기 중반 미국인들은 자원이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더 빨리, 더 많이 움직인 자들은 주인 없는 자원들의 주인이 됐다. 이런 시대에 절제와 무심을 강조하는 [월든]에 귀 기울일 미국인은 많지 않았다.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출간에만 7년이 걸렸다. 1854년에 [월든]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봤지만, 출판사는 “책이 전혀 팔리지 않는다”고 낙담했다. 하지만 소로의 진가는 서서히 드러났다. 미국 전역에 엄청난 개발 바람이 불고 미국인들이 물질에 과도하게 매몰되기 시작하면서 [월든]의 가치는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집 한 채 가지려면 평생 절반 바쳐야” 한탄

월든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은 1845년 3월말이다. 소로는 ‘필수적인 요건만 충족한 채 살아도 삶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가 키 큰 백송나무 한그루를 내려쳤다. 촘촘히 널빤지를 대고 석회를 발라 세운 집은 폭 3미터, 길이 45미터, 기둥 높이 2.4미터의 오두막이었다. 벽을 치고 지붕을 올린 7월4일부터 소로는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소로가 짓고 싶었던 집은 ‘소박한 집’이었다. 판자는 기존의 판잣집에서 걷어낸 것을 썼고, 헌 창문과 중고 벽돌을 썼다. 목재와 돌, 모래는 숲이나 강가에서 가져다 썼다. 이런 원재료를 직접 나르고 지었으니 배송비와 인건비는 들지 않았다. 집을 만드는데 든 돈은 모두 합쳐 28달러12.5센트.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이 학생들에게 빌려주면서 받는 방세가 30달러였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기숙사비보다도 적은 돈으로 그는 평생 살집을 지었다.

소로는 이 ‘소박하고 소박한 집’에서 간소한 삶을 추구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명상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농사일을 마친 뒤에는 나무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읽었다. 오후에는 월든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야생의 주인들을 만났다. 밤에는 등잔불을 밝히고 일기를 썼다. 그날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글들은 수상집 [월든]이 됐다.

이런 식으로 살아보니 소로는 1년에 6주 정도만 일하면 생계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소로는 그 이유를 ‘더 좋은 옷과 먹을 것과 집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소로는 이런 욕망을 혐오했다. 사람들이 ‘일만하는 기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질없는 근심과 쓸데없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며 삶이 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보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노동에 찌든 사람은 인간의 참다운 고결함을 유지해 나갈 여유가 없다.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가치가 현격히 하락할까 두려워하느라 다른 사람과 인간다운 관계를 이어나갈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로가 특히 혐오했던 것은 땅과 집, 즉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었다. 많은 이가 크고 사치스러운 상자에 살면서 ‘집세를 내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고 봤다. 게다가 그런 형편은 세월이 지나도 딱히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평균적인 집값은 800달러 정도. 노동자 한사람의 하루 수입이 평균 1달러였던 때였다. 먹여 살릴 가족이 없는 노동자라도 이런 돈을 마련하려면 10년에서 15년은 족히 걸린다는 것이 소로의 결론이었다. 즉 PIR가 10~15배라는 얘기다. PIR란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rice to Income Ratio)로, 주택가격을 연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PIR이 10배라는 얘기는 10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소득을 모아쓸 때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소로는 “노동자가 자기 집 한 채를 가지려면 그는 평생의 절반을 바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탄했다.

‘그런 형편은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소로의 예언은 맞았다. 도시통계사이트인 넘베오 자료를 보면 2020년 중반기준으로 서울의 PIR은 24.6배에 달한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24년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도 다를 바 없다. 같은 기준으로 베이징은 41.6배다. 리우데자네이루는 20.8배, 프라하는 18.1배, 런던은 15.4배다. 뉴욕(10.6배)과 시드니(10.2배)도 10배가 넘는다. 180년 전에도, 지금도 도시 노동자들이 집사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는 얘기다. 노동자의 평균소득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집값도 그만큼 멀리 달아나버린 탓이다.

‘영끌대출’ 한국, GDP 대비 가계부채 세계 1위

월급을 따박따박 모아서 집을 사기 힘드니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그러고는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한다. 소로는 “콩코드 농부들도 평생 노동의 3분의 1정도를 빚 갚는데 쏟아 붓고 있지만 아직도 그 빚을 다 갚지 못한 상태”라고 통탄한다. 소로가 살던 인근 마을에서는 빚 없이 농장을 소유한 사람은 열두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소로는 이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했지만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제 돈으로 부동산 빚을 갚기란 매우 어렵다.

한국 가계의 상황은 더 나쁘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7.9%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이 빚을 갚으려면 얼마나 일을 해야 할까.

집값폭등에 놀란 사람들이 ‘영끌대출(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라는 뜻)’을 해서라도 집을 사고 있다. 이른바 ‘패닉바잉’이다. 소로는 180년 전에 이미 이런 심리를 꿰뚫어봤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웃이 집을 소유하고 있으니 나도 하나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집을 장만하고는 평생 쓸데없는 가난에 허덕이며 산다고. 집의 자산가치가 올라도 마음이 넉넉하지 않는 것은 빚은 그대로인데 세금부담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로는 “집을 마련하면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해질지 모른다”며 “실제로는 집이 그를 소유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로의 선견지명은 2020년 한국사회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아 놀라우면서도 섬뜩하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548호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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