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조지선 심리학 공간]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당신에게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습관적으로 미뤄… 현재편향이 자기통제력 떨어뜨려

▎ 사진:© gettyimagesbank
세상에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를 개학 전날 몰아서 하고, 대학에 다닐 땐 벼락치기 공부로 기말 고사를 치르고, 회사원이 되어서도 보고서 작성을 미룬다.

‘올해는 일을 미루지 말자!’ ‘미리미리 시작하자!’ 새해가 될 때마다 이렇게 결심하면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소망하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는 내 모습이 아쉽다. 혹시 버킷리스트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가? 1달에 1권 이상 책 읽기, 토익 900점 넘기, 책 출간하기, 악기 배우기, 하프 마라톤 도전하기 등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다. 그리고 늘 ‘언젠가’는 꼭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음 주 일요일엔 반드시 책상 한 구석에 쌓아둔 서류 더미를 정리할 거야!’

이렇게 결심하는 순간,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계획한 대로 일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상당히 커 보인다. 그렇다면 다음 주 일요일이 되었을 때, 실제로 서류 정리를 마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결과는 늘 처음 결심보다 초라하다. 깨끗해진 책상을 머릿속에 정리를 다짐하지만 막상 그날이 왔을 땐 딴 짓을 하게 된다. 왜 습관적으로 일을 미루는 것일까?

미래 행복은 현재 행복 앞에서 힘 쓰지 못해

우리가 이렇게 일 미루기 달인이 된 배후에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이 존재한다. 현재 편향은 즉각적인 보상에 과도하게 가치를 두는 경향성을 말한다. 미래에 받을 수 있는 보상보다 당장 받을 수 있는 보상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편향이 강하면 자기통제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이 현상은 행동경제학자들이 ‘시간 비일관성(timeinconsistency)’이라고 부르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제학 모델에서는 시간 시점에 따라 어떤 경험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즉, 개인의 선호는 시간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Preferences are timeconsistent). 예를 들어, 혼자 커피를 마시며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 이 시간은 늘 중요하다. 어느 시점에 경험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들은 같은 경험이 가지는 가치가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 조용하게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선호하는 정도가 시간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Preferences are time-inconsistent). ‘고즈넉 커피타임’은 한 달 후보다 오늘 더 많은 가치를 가진다. 이유는 우리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테드 오도나휴와 매튜 라빈은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재미도 없고 괴롭기 만한 어떤 일(과제 T)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늘은 2월 1일이고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옵션 A- 4월 1일에 7시간 동안 과제 T를 수행한다. 옵션 B- 4월 15일에 8시간 동안 과제 T를 수행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옵션 A를 택한다. 한 시간이나 적게 일하니까 당연하다. 그러나 4월 1일 당일 아침에 이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진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옵션 B를 고르며 “아~ 오늘은 좀 그렇고 4월 15일에 그 일을 할게요.”라고 말한다.

만약 시간에 따라 경험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질문을 2월 1일에 받든 4월 1일에 받든 동일한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시점이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에 누리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2주 후의 행복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은 현재의 행복 앞에서 힘을 못 쓴다. “아 오늘은 너무 피곤해. 다음에 하자!” 당장 그 일을 하는 것은 지금 내게 너무 큰 형벌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일을 끊임없이 미루는 이유는 바로 이 현재 편향적 선호(present-biased preference) 때문이다. 책상을 정리하는 사소한 일이야 미루면 어떤가. 정신 사나운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 참으면 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언제 사소한 일만 미루었던가!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을 잘 구분하지 않고 공평하게 미룬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는 것,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것 등 스스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미룬다. 우리가 꼬박꼬박 잘 해내는 것은 ‘급한 일’이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언제나 ‘내일’로 미뤄진다. 수많은 실험 연구를 통해 밝혀진 이 강력한 경향성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만족감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선택을 반복하곤 한다.

‘내일’이란 말에 딴죽 걸기 해보자

엄밀히 말해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는 현재 편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기통제력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자신이 이런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편향과 무지가 결합하면 일 미루기가 탄생한다.

우리 안에는 두 종류의 자아가 있다. ‘장기적 자아(longrun self)’와 ‘단기적 자아(short-run self)’다. 그래서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원하는 마음’은 열망을 품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장기적 자아이고, ‘따라주지 않는 몸’은 눈앞의 만족을 추구하며 현재 편향을 드러내는 단기적 자아다. 이 둘 간의 줄다리기는 삶이 지속되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일은 꼭 할 거야’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속아온 세월이 길다. 아프지만 사실이다. 지난해도, 그 전 해도 우리는 ‘내일’을 다짐하는 스스로를 믿었지만 ‘내일’의 나는 믿을만한 자가 아니었다.

일을 덜 미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내일은 꼭 할 거야’라고 말하는 단기적 자아에게 딴죽을 거는 것이다. ‘내일’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정말 그럴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해버리는 거다. 하고자 했던 그 일이 무엇이든 말이다.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인가? 딱 5분만 하고 그만 하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캄캄한가? 아무 말 대잔치라도 좋으니 딱 한 줄만 써보자. 그리고 현재 편향을 극복한 나에게 ‘5분이 어디야, 한 줄이면 어때! 잘했어!’라고 칭찬해주면 어떨까?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데 나는 언제까지 ‘내일’을 외치는 단기적 자아에 속을 것인가.

※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1572호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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