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실탄에도 친환경보다는 석유화학 사업 강화만” 지적도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 BU장(가운데)이 ‘그린 프로미스 2030’을 선언하는 모습. / 사진:롯데케미칼 |
|
롯데그룹의 뿌리인 소매·유통 사업이 코로나19 등 각종 악재로 수년째 실적 악화에 허덕이면서,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 사업이 그룹 내 주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재계와 시장에선 이미 “롯데그룹의 주력은 석유화학”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허수영 전 롯데그룹 화학 BU장의 뒤를 이어 그룹 내 화학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현 화학 BU장)이 위기의 불씨를 잡는 소방수가 될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적 개선 기대감 속 실종된 신사업재계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석유화학을 그룹 내 주력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롯데가 과감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유통 사업의 비용 절감을 꾀하고 있는 것과 달리, 화학 사업에선 대규모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신 회장은 지난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 에틸렌 공장에 1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고, 일본 화학기업 인수를 검토한다고 언급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일본에서 귀국해 첫 공식 일정으로 울산 롯데정밀화학 공장을 방문했으며,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회동하기도 했다.올해 김교현 사장의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할 것이란 평가다. 1984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해 줄곧 롯데케미칼에서 근무해온 김 사장은 롯데그룹 내 대표적인 ‘화학통’이다. 허수영 전 BU장과 함께 롯데그룹의 석유화학 사업 확대를 주도해온 인물로 꼽힌다.김 사장은 지난해 대산공장 사고로 실적 악화를 겪었지만 신동빈 회장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김 사장이 롯데그룹의 인사 태풍에도 유임된 것은 그만큼 신동빈 회장의 신뢰도가 높다는 뜻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올해도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이어진다면 이후의 상황은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석유화학업계에선 올해 롯데케미칼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해 3월 발생한 대산공장 사고로 약 10개월간 공장을 가동하지 못했다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가동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대산공장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이다. 여기에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사고에 대한 피해보상도 대부분 완료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종극 대산읍 독곶2리 이장은 “대산공장 사고와 관련해 주민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마무리된 상황”이라면서도 “피해 주민들이 여전히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서산시와 롯데케미칼 측에 주민들의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문제는 신(新)성장 동력이다. 롯데케미칼이 LG화학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한화솔루션의 태양광처럼 친환경과 연관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인 롯데그룹 특성상 석유화학 기초소재 등 기존 사업과 거리가 있는 친환경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석유화학과 관련이 있는 사업에 대한 투자가 집행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라고 전했다. 롯데그룹과 롯데케미칼 측도 “기존 사업과 연관된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실제 롯데케미칼의 주요 투자 계획을 보면, 이른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기초소재인 에틸렌 등에 집중돼 있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투자 계획으로 현대오일뱅크와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의 정유 부산물 기반 석유화학 공장에 2960억원, GS에너지와의 석유화학 합작사에 1632억원 투자 등이 거론됐다. 이 외에도 미국과 인도네시아의 에틸렌 공장 증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도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현대케미칼이 하반기 상업 생산에 돌입한다”며 “인도네시아 등 해외 공장에 대한 투자의 경우 코로나19로 각 나라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올해 대규모 인수합병 발표 나올까롯데그룹 화학 BU가 최근 발표한 친환경 전략도 다소 추상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롯데그룹 화학BU는 지난 2월 2일 2030년까지 친환경 사업 매출 6조원 달성 등의 내용이 담긴 ‘그린 프로미스 2030’을 내놨다. 주요 내용은 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롯데알미늄·롯데비피화학 등이 친환경 사업을 강화하고 자원 선순환 확대, 기후위기 대응, 그린 생태계 조성 등 4대 핵심 과제에 5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또한 친환경협의체를 구성해 각 회사별 전문 분야와 연관된 친환경 사업을 발굴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구체적으로 재활용 소재 사업 강화, 그린 에너지 소재 사업 전개, 소비자 사용 후 재활용(PCR) 소재 사용 확대, 폐 플라스틱 재활용 방안 연구개발 등이다. 이에 대해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롯데의 친환경 전략 내용은 결국 친환경 소재 개발로 압축되는데, 이는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롯데케미칼과의 사업 연관성은 명확하지만, 다소 먼 미래에 대한 구상”이라며 “현재 국내 기업을 포함해 다수의 회사들이 친환경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에 대한 인수에 혈안이 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환경 소재를 자체 개발한다는 전략은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본다”고 말했다.실제 그동안 롯데케미칼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보다는 현금 확충을 통한 재무 건전성 확보에 주력해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롯데케미칼의 누적 연구개발비는 590억원으로, 3분기 누적 매출액(9조33억원)의 0.66%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해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현금예금은 무려 3조8046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41.3%로, 부채비율이 100%를 넘은 LG화학, 한화솔루션 등과 비교해 재무 건전성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현금 창출 능력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기존에 계획된 투자와 대규모 인수합병을 병행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롯데가 2015년 3조원을 들여 삼성SDI의 케미칼사업 부문과 삼성정밀화학을 인수한 것처럼 올해에 대규모 인수합병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석유화학업계와 재계에선 롯데케미칼이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