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뉴엘 마크롱은 철학과 정치학을 수학한 후 로칠드 은행의 경영 파트너가 되기에 이른다. 그후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 수석 비서관과 경제산업부 장관을 지낸 후 2017년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 마크롤처럼 정치와 경제라는 두 대양을 넘나들며 미술 시장에 경이로운 본보기를 만든 컬렉터가 있다. 울리 시그(Uli Sigg)다.
▎Uli Sigg_Painting Moon Rabbit by Shao Fan_© Karl-Heinz Hug, courtesy Sigg Coll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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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시그는 30여 년에 걸친 총 400여 작가의 2600여 점 컬렉션 중 2012년 홍콩에 350여 명의 중국 작가들의 1463여 점을 기증한 스위스 컬렉터다. 취리히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경제부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1977년 쉰들러(Schindler) 그룹에서 일했다. 쉰들러 그룹은 중국이 합작을 맺은 역사상 최초의 외국 기업이다. 스위스 본사에서 중국으로 파견된 그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신비의 나라에 첫발을 들이게 되었다.
▎Inside Uli Sigg’s residence, photographs by Gu Changwei, vases by Ai WeiWei, opium beds by Zhao Zhao -copyright the artists, courtesy Sigg Coll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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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까지 딱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늘 자신을 틀에 끼우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한 결과 미지의 나라를 향해 주저 없이 떠났다. 1979년 처음 도착한 중국은 그의 환상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 어디에도 산수에 젖어 난을 치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중국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은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억압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국 작가를 만나게 된다. 이 작가는 울리 시그에게 동료 작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은 또 다른 동료 작가들을 소개해 그는 자연스럽게 작가들과 넓고 깊은 교류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들과의 만남은 그의 컬렉션 과정에 본질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는다. 아직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 성향이 지극히 정치 선동적이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중국인의 사고를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충분히 기록적으로 남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소임을 실천할 주체가 아무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그 사명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도 10년이 넘는 기간을 연구의 시간으로 보낸다. 그러는 동안 중국 내부의 인플레이션과 소득 격차에서 오는 위화감 속에 새로운 정치 개혁을 절실히 원하는 중국인들의 갈망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작가들의 예술적 기술도 한층 발전한다. 이러한 과도기를 중국에서 몸소 체험한 그는 중국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며 10년이 넘는 충분한 연구의 시기를 거친 후에 비로소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내부에 쌓였던 불만들이 폭발된 톈안먼 사건(1989년 6월)이 터진다. 울리시그는 1990년 쉰들러 그룹을 떠났고 그 후 5년동안 그는 스위스 법인 이사회에서 회사 이사직을 맡았다. 그리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북한, 몽골의 스위스 대사로 역임했다. 그의 컬렉션 중에 몽골 작가와 북한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것은 대사로서의 삶을 기록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He Xiangyu , the tank project / Installation view of Exhibition Chinese Whispers in Bern, 2016. Copyright the artist, © Rolf Siegenthaler, courtesy Sigg Coll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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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시그는 스스로를 연구자라 부른다. 그가 컬렉션을 고려했을 때 중국의 미술 시장은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컬렉션의 초석이 될만한 갤러리도, 기관도, 박물관도 제대로 없었고 작가들은 지극히 아카데믹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었기에 그는 의무적으로 홀로 연구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단 50%의 성공 확률만 있어도 늘 위험을 감수했던 그에게 이런 시련은 불가능으로 보여질 리 없었다.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기 전에도 그는 이미 컬렉터였다. 실제로 그의 집에 가보니 서재가 온통 예술 관련 서적들로 꽉 차 있었다. 이러한 연구 과정 속에서 중국 역사를 예술 작품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되돌려 주려는 기증의 의지를 다져갔다. 지금까지 컬렉션을 기증한 컬렉터들은 전 세계에 걸쳐 길고 긴 명단을 자랑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작가들만을 고집하고 그 나라의 역사적 흐름을 기록의 형식으로 풀어낸 개인 컬렉터는 울리 시그가 유일하다. 게다가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 중국 현대 미술상 CCAA(Chinese Contemporary Art Awards)를 창립해 중국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음은 과히 눈여겨볼 만한 놀라운 일이다. 이 상은 영국의 터너프라이즈와 비교되는, 중국 작가들에게는 세계를 향한 또 다른 문이다. 물론 그는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첫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으로 21세기 큐레이터 분야의 신화적 인물)과 같은 저명한 큐레이터들을 동반한 지속적인 지원을 했다. 미술 시장에 파문을 충분히 일으키게 한 이러한 비범한 선택들은 그의 정치와 경제라는 두 배경 덕분이다. 그의 기증 이후에 중국 역사는 예술적으로 더욱 의미 있게 조명되고 있으며 울리 시그 컬렉션에 포함된 중국 작가들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치솟고 있다. 이렇게 그는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예술을 부가적 가치로 끌어들였다.
의무적으로 독학한 예술 ‘연구자’
▎Inside Uli Sigg’s residence on the right: Kwon Young-Woo, Untitled 1987 Courtesy Sigg Collection on the left: Park Seobo, Ecriture no. 201-86, 1986 Courtesy Sigg Collection © Eunju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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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홍콩의 Chinese Whispers 전시에는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장샤오강(Zhang Xiaogang), 뤼웨이(Liu Wei) , 슈첸(Madein Company/Xu Zhen), 딩이(Ding Yi), 팡리준(Fang Lijun), 샤오판(Shao Fan), 니유유(Ni Youyu), 헤시앙유(He Xiangyu), 슌유엔&펑유(Sun Yuan&Peng Yu)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었고 각각의 작품들은 중국 역사의 파편들이었다. 이들의 작품들을 보고 수 십 년 동안 컬렉션을 해온 컬렉터들은 왜 난 그와 같은 탁월한 콘셉트를 생각 못했지? 하는 숙고를 했고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역사적인 컬렉션을 하는 자국의 컬렉터가 없을까 ? 하고 부러움과 한탄을 낳았다. 울리 시그가 기증을 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원하는 작품을 마음껏 구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기증 이후엔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컬렉션을 하고 있는데 그는 한국 작가들에 매우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가 이미 소장한 한국 작가들은 박서보, 권영우, 정상화, 함경아, 허은경, 전준호, 정연두, 김인배, 김용익, 권영우, 이지현, 이이남, 이세현, 신미경, 이수경이고 울리 시그의 한국 작가들의 발굴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그에게 훌륭한 컬렉션이란 “Good collecting is no doubt a skill. It forces you to examine things in more depth. But for me, art is simply vacationing in my head"이다. 그는 Vacationing in my head 의 의미를 [사고와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미 소유하고 있는 내부 엔진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라고 풀어주었다.
예술 통한 중국 현대사 상기
▎Office Uli Sigg by Ai Weiwei, copyright the art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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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하드 피비셔(Bernhard Fibicher) 와 아이웨이웨이 (AiWeiWei)가 공동 기획한 2005년 6월 베른 쿤스트 뮤지엄의 [Mahjong, Contemporary Chinese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전시는 모든 컬렉터들에게 컬렉션의 기준이 되는 성경과도 같은 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홍콩 정부에 기증한 작품들은 2019년에 개관될 M + Museum에 소개되어 전 세계의 컬렉터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게다가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좀 더 의미 있는 아트 컬렉션의 방향을 제시하는 컬렉션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은 예술을 통한 중국 현대사를 상기시키고 있다.2009년부터 미디어 회사 Ringier의 부회장이며 중국개발은행(China Development Bank)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40여년에 걸친 컬렉션을 예술 애호가들에게 공개하며 기증 이후 더욱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본인의 기증 작품으로 큐레이터로서의 자질까지 드러내고 있으며 프로급의 스키와 달리기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또한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아트 컬렉션에서의 탁월한 감각, 열렬함은 스포츠에서도 단연코 필요한 감성이다.21세기에는 단 한 생애 동안 여러 직업을 다양하게 소화한 인물들의 예가 수없이 많다. 경제부 기자, 경제인, 대사, international editor, 다시 경제인으로 돌아온 후 전문 스포츠맨이 되고자 하는 울리 시그는 여러 직업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게으름뱅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면서 그때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며 도전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갖고 늘 그가 속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였지만 그를 훌륭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트 컬렉션이다. 이러한 유별난 경력을 소유한 울리 시그는 “기업가로서 컬렉션의 시작은 본인이 관심이 가는 전시에 몰두하는 단 한 시간만으로 족하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 짧은 시간들이 쌓여 컬렉터의 높은 안목을 만든다”라는 조언을 남겼다.
▎Sculpture Wang by Wang J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igg Colle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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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시그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예술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삶이 [Sigg + Museum]을 통해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게 된다. 전 세계의 컬렉터들이 헤르조그 앤 드 뫼론 Herzog & de Meuron이 건축 중인 Sigg + Museum 박물관의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 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