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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린이 만난 경영 구루(2)] 송호근 YG-1 회장 

절삭공구 세계 제패, 37년 집념의 출처 

와이지원은 세계 절삭공구 시장의 강자다. 엔드밀에선 ‘넘버 원’이다. 지금까지 독일과 일본 기업의 아성이 워낙 공고했기 때문에 이변에 가깝다는 게 글로벌 시장의 평가다. 그렇지만 와이지원 창업주인 송호근 회장의 도전과 열정, 집념의 무게를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이 송 회장을 만나 창업 후 37년간 초심을 유지하며 끝없이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봤다.

▎인천 부평에 있는 와이지원 본사 공장에서 송호근 회장이 엔드밀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와이지원은 절삭공구 중 엔드밀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송호근 회장은 ‘벤처 1세대’를 상징하는 기업인이다. 『한국벤처산업발전사』에 따르면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창업한 벤처 1세대 기업인은 20여 명 정도다. 이 중 현재까지 현장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이는 송 회장을 포함해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김광태 퓨처시스템 대표 등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1981년 와이지원 (YG-1, 예전 양지원공구)을 창업해 40여 년 가까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벤처업계에서 무게감이 크다. 창업 당시 일본 제품이 휩쓸고 있던 절삭공구(기계·자동차·철강·조선·항공·전자 등의 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공구) 분야에 뛰어들었고, ‘엔드밀(홈 및 측면 절삭에 사용되고, 금형이나 공작기계부품, 각종 전자기기 부품 등의 정밀 형상 가공에 사용된다)’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절삭공구 분야는 100분의 1㎜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정밀성을 요구한다. 박 회장은 본지 기자에게 “절삭공구는 1㎜만 오차가 생겨도 완전히 다른 제품이 나오고, 항공기가 뜨지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100분의 1㎜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집념과 고집이 있었기에 와이지원의 매출 중 수출 비중이 77%를 넘어서는 것이다.

벤처 1세대를 대표하는 성공 기업인


▎송호근 회장은 오래전부터 와이지원의 공장 자동화에 막대한 투자를 계속하면서 성과를 높여나가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라는 시기에 송 회장의 행보와 성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송 회장과 박 회장의 인터뷰는 제조업 분야의 선후배 경영자가 겪는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송 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맞아요. 맞아”라는 박 회장의 화답이 나온 이유다.

송 회장과 박 회장의 인터뷰는 지난 11월 15일 오후 인천 부평에 있는 와이지원 본사에서 이뤄졌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박 회장, 미안해요. 지금 해외 바이어가 많이 와서 조금 늦었습니다.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오나 보죠?

아무래도 수출 위주의 기업이다 보니까 해외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옵니다.

해외 출장도 많이 다니시죠?

맞아요. 한 달에 15일 정도는 해외에 나갑니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다음 날 바로 유럽으로 출장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2013년 회장님을 처음 만났어요. 그때 몇 마디 나누면서 ‘같은 과’라고 느꼈습니다.(웃음) 우리는 기본 철학이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보통 비행기를 타면 비즈니스석이 아니라 이코노미석을 이용하시죠?

네.(웃음) 보통 비행시간이 5시간 이내면 이코노미석을 이용합니다. 누구에게 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세운 원칙입니다.

두 사람은 2013년 11월 2일부터 9일까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프랑스·영국·벨기에)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면서 처음 만났다. 당시 경제사절단 67명이 동행했고, 송 회장과 박 회장은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경영인 33인에 포함됐다. 두 사람은 이때 인연을 맺었다. 송 회장은 “비록 업종은 다르지만 비즈니스 철학과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계속 소통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관계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박 회장도 “송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기업경영 마인드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항공권을 결제할 때도 요금을 꼼꼼하게 비교하고, 5시간 미만 비행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근검절약 스타일이 비슷해 더 친해질 수 있었다고.

동감합니다. 저도 비행시간이 5시간 이내면 이코노석을 이용합니다. 세일하는 옷 브랜드를 사서 입고 굳이 비싼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제 생활인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세워놓은 원칙이 옳다는 것을 회장님을 만나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웃음) 회사 곳곳에 ‘Back to the Basics, Back to the YG spirit’이라는 게 걸려 있던데요.

말 그대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운이 좋아서 두세 계단씩 뛰어오른 게 아닙니다. 한 번에 한 계단씩 성장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경영자는 실패를 포함해 모든 것을 겪으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성공 후에도 경영자와 임직원은 자만하면 절대 안 됩니다. 처음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겸손해야 합니다. 창업 초기의 모습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 ‘Back to the Basics, Back to the YG spirit’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본사와 공장 곳곳에 걸어놓았습니다.

맞습니다. 송 회장님 모습은 5년 전에 봤을 때나 지금이나 같아 보입니다.(웃음) 그래도 회장님의 경영 철학을 모든 임직원에게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요.

그래요. 임직원 교육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끊임없이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기업의 문제는 경영자의 목소리가 밑으로 전달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영자와 임직원이 함께 노력해야죠. 제가 조회 때 하는 이야기는 녹음해서 각 공장에 보냅니다. 모든 임직원이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서죠.

그래도 기업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경영자가 아닐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경영자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이 왜 회사에 나와 일을 하는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끔 회사 일은 제가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임직원을 보는데, 전혀 아닙니다. 제 역할은 임직원 모두 잘 살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저는 회장님께 소통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와이지원의 현재도 회장님의 실행력 덕분인 것 같은데요.

경영자는 실행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선을 보고 하루 만에 결혼을 결정했습니다.(웃음)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로 바로 실행해야 합니다. 실수를 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실수에서도 배울 게 있습니다.

유학 대신 선택한 절삭공구 제조


송 회장의 실행력은 창업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해외에서 경영을 겸한 산업공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해외 유학을 준비하던 20대 청년 송호근은 우연히 절삭공구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던 태화그룹 회장을 만나게 됐다. 송 회장은 “당시 아버지가 그룹 부사장으로 일하고 계셨다”고 이야기했다. 태화그룹 회장은 20대 청년에게 뉴욕 지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1년 9개월 동안 뉴욕 지사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는 해외 수출 업무를 맡았고, 10만여 달러의 절삭공구 첫 오더를 따내게 됐다. 절삭공구 중에서도 엔드밀에 집중했다. 원자재가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회사가 해외 주문의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고 포기한 것. 그는 회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후 1981년 양지원공구를 창업했다. 송 회장은 “회사가 왜 만들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양지원’은 ‘뜻을 기르는 동산’이라는 의미다. 송 회장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영문 상호로 ‘Y(양)G(지)-1(글로벌 넘버원)’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1999년 회사 이름을 양지원에서 와이지원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1982년 4월 인천 부평에 있는 공장을 인수했다. 서울에 있는 집을 처분하고 인천으로 옮겼다. 부모의 반대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다시 서울로 집을 옮기겠다’는 약속으로 무마했다. 이 약속은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다. 송 회장은 여전히 인천에 산다. “현장이 있는 곳을 떠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1982년 10월 첫 제품을 론칭하고 창립 기념식을 열었다. 곧바로 송 회장은 짐을 꾸렸다.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해서다. 수출 기업이 되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당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은 신입 월급 4~5개월 치를 모아야 할 정도로 비쌌다”며 웃었다. 노스웨스트항공의 가장 싼 350달러짜리 티켓을 구매하고 샘플이 들어 있어 45㎏이나 되는 가방을 들고 10월 16일 비행기에 올랐다. 43일 동안 23개 도시를 도는 일정이었다. 송 회장은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를 알리는 게 쉽지 않았다”면서 “그때 누군가 500달러 수표를 주면서 샘플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나의 진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고 회고했다. 1983년 25만 달러의 첫 수출을 기록하면서 와이지원의 엔드밀은 점점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직접 투자를 제안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유명했다. 결론적으로 “직접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송 회장은 설명했다. 2017년 와이지원은 매출 3865억원을 올렸다. 이 중 수출 비중이 77%다. 올해 매출은 4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회장님은 언론이나 행사에 잘 나오지 않는 분으로 유명합니다. 집과 회사만 오가고 일만 반복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는 매너리즘은 없습니까?

한 우물만 파는 것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다른 곳을 쳐다볼 시간이 없어요. 골프나 술, 담배를 안 합니다. 항상 긴장하고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을 느낄 여유가 없어요.(웃음)

인천에 있는 중견기업인데, 인재 유치가 어렵지는 않나요?

예전에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안에 있는 사람을 세계 1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사람의 잠재성은 무한합니다. 학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임직원을 고용해서 육성하고 있습니다.

생산 담당으로 공장에 복귀하셨다고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인가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로 인해 생산성을 높여야 할 시기입니다. 와이지원은 24시간 내내 공장이 도는데도 최저임금 인상 폭과 주 52시간 근무에 대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임직원과 직접 몸을 부대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공장에 복귀했습니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대응하고 계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브랜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의 제조업은 글로벌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망할 것입니다. 앞으로 공장은 스마트팩토리가 필수입니다. 우리 공장도 자동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는 인건비가 싼 나라였지만 이제는 그 위치를 중국과 동남아에 넘겨줬습니다. 이제 한국 기업이 생존하는 방법은 글로벌 진출밖에 없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회장님처럼 저도 제조업 베이스 기업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존의 것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 R&D로 어떻게 효율성을 높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회장님도 새로움 대신 공장 효율화나 자동화 등으로 이 시대에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고맙습니다.(웃음)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남을 이길 수 있습니다.

2035년 ‘세계 절삭공구 1위’ 목표


▎송호근 회장과 박혜린 회장이 엔드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회장님, 저는 요즘 임직원과 저와의 신뢰감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커나가면서 시스템을 만들라는 조언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저는 시스템과 신뢰감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지 고민합니다. 요즘 회장님의 고민이 궁금합니다.

기업가는 다 똑같습니다. 저도 똑같이 박 회장과 같은 고민을 합니다.(웃음) 다만 요즘 임직원에게 ‘백 투 더 베이식’ 정신을 강조합니다. 일하는 것을 보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이 많습니다. 일이나 제품이 잘못됐으면 바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지적하기 전에는 그냥 넘어가려는 게 많습니다.

제가 그동안 여쭤보지 못한 게 있습니다. 요즘 ‘내 삶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기업가로 살면 포기해야 할 것이 있지만, 이제 저는 없고 기업가 박혜린만 남은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는 여전히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제 아내는 ‘자기는 다섯 번째 와이프’라고 합니다. 첫 번째가 와이지원, 두 번째가 컴퓨터, 세 번째가 아이패드, 네 번째가 스마트폰이고 그다음이 자기랍니다. 저도 직장과 가정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어요. 송시한 부사장(송 회장의 장남)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회사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면서 놀라더군요. 그만큼 자식과도 이야기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기업가로서 뭔가를 이뤄내려면 가족과 가정을 돌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저는 대신 모든 임직원이 가정과 일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회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위안이 됩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기업을 하는 게 제 행복입니다.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일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이 회사와 임직원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저는 와이지원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삶의 목적과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과 똑같습니다.(웃음)

기업인은 긍정 마인드를 갖춰야 합니다. 긍정이라는 마인드는 무척 힘이 큽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에 가치를 둬야만 버틸 수 있습니다. 워커홀릭이라고 하지만 저는 일할 때 행복합니다.

장남인 송시한 부사장이 와이지원을 승계하게 될 텐데, 회장님은 무엇을 강조합니까?

기본적으로 꿈을 크게 가지고 경영에 임하고, 인간존중이라는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경영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 현재의 60% 정도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시스템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외부적으로 앞으로 닥칠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회사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와이지원의 현재를 만든 회장님의 리더십은 뭘까요?

졸업 후 동종업계 경력까지 합하면 42년 동안 절삭공구라는 한 우물을 팠습니다. 처음부터 ‘글로벌 No. 1’이라는 꿈을 가지고 달려왔기에 지금의 와이지원을 만들었습니다. 기업을 경영할 때 ‘인간존중’을 강조합니다.

회장님의 비전과 목표도 궁금합니다.

2035년에 엔드밀을 포함해 ‘세계 절삭공구 1위’를 하는 게 제 비전입니다. 글로벌기업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점차 ‘사회적 자본’ 개념을 적용해야 합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기업이 사회와 동반 성장할 수 있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기업은 일자리 창출과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긴 시간 동안 말씀 고맙습니다. 그동안 여쭤보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궁금증을 풀게 됐습니다. 지금처럼 건강을 지키면서 자리에 계신다면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제조업의 맏형으로서 역할을 튼튼히 잘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박 회장도 건강 조심하고, 또 봅시다.(웃음)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선 후배의 대화 같았다. 후배 기업인은 선배 기업인의 경영 철학을 배우고 싶어 했고, 선배 경영인은 후배에게 진심을 다해 답변을 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2시간을 훌쩍 넘겼다.

※ 박혜린은… 신용카드· 전자화폐시스템 업체 바이오스마트, 스마트전력계량플랫폼 기업 옴니시스템, 라미화장품 등 10개 회사의 매출 총합은 지난해 3000억원을 넘었다. 지난 5월에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영업이익의 10%를 무조건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 정리=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812호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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