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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성장의 힘 

 

최근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TSMC가 거론됐다. 세계 1위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는 대만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창업자 모리스 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TSMC 공장 전경(위), 8나노 공정 팹 내부. / 사진:TSMC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는 대만에 소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로, 대만 시가총액 1위 기업이다. TSMC의 2021년 매출액은 568억2000만 달러(약 70조5000억원)이며 순이익은 213억5000만 달러로, 매출액 순이익률은 무려 37.6%에 이른다. 종업원은 6만5152명이다. 2021년 기준 메모리를 제외한 반도체 제품 전 세계 생산의 26%를 TSMC가 담당하고 있으며, 반도체 위탁 생산만 놓고 보면 TSMC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53%에 이른다. 2021년 TSMC는 팹리스(AMD, 브로드컴, 미디어텍 등 반도체 설계 회사)와 애플, 퀄컴과 같은 IT 기업 등 고객사 535개를 위해서 반도체 제품 1만2303개를 생산했다.

최근 빅데이터, AI,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 초연결 디지털 대전환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단순 반도체 위탁 생산이 아닌 최고의 공정기술과 함께 주요 분야별 파운드리 플랫폼을 갖춘 TSMC의 성장세 및 잠재력이 돋보인다. 2022년 3월 말 기준 시가총액 평가에서 TSMC는 5410억 달러(약 692조5000억원)로 세계 10위를 차지했고, TSMC의 최대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는 3420억 달러(약 437조8000억원)로 22위이다. 둘 사이 격차는 255조원에 이른다.

TSMC는 어떻게 이런 괄목할 만한 성장(잠재력)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TSMC 창업주 ‘모리스 창(Morris Chang, 張忠謀, 1931∼)’에게서 찾을 수 있다. TSMC는 ‘반도체칩 대부’라고도 불리는 모리스 창이 56세였던 1987년에 설립했다. 1931년 닝보에서 태어난 모리스 창은 부친이 지방정부 공무원을 거쳐 은행에서 일한 덕분에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 여러 도시에서 살았으며, 초등학교는 주로 홍콩에서 다녔다. 1948년 국공내전을 피해 다시 홍콩으로 이사하고, 이듬해인 1949년 하버드대학에 문학 전공으로 입학하며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버드대학에서 1년을 보낸 이후 그는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술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는 판단에 MIT에 편입하여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1952년 학사, 1953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과정도 이수했지만 학위는 따지 못하고 구직에 나서 1955년 ‘실베이나 반도체’ 회사에 들어갔다. 3년간 이곳에서 일한 이후 1958년 미국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TI(Taxas Instrument)’로 자리를 옮겼다. TI에서 그는 주요 생산공정관리자로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고, 회사의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TI는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스탠퍼드대학교로 보내 반도체 분야 박사학위를 받게 했다. 복귀 후 다시 큰 성과를 내고 반도체 공정 분야 최고책임자로 TI의 제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 25년간 TI에서 일한 모리스 창은 1983년 TI를 떠나, 1984년에 TI의 경쟁사였던 미국 반도체 기업 제네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에서 회장 겸 COO로 옮겨 1년간 일하다 퇴임했다.

1955년부터 1985년까지 30년간 미국 반도체산업에서 엔지니어 겸 경영자로서 활동하다 은퇴한 모리스 창을 이번에는 대만 정부가 영입했다. 대만은 1975년 미국 RCA로부터 반도체 기술을 이전받아 10년 넘게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절치부심하던 차에 모리스 창을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 ITRI) 원장으로 초빙하여 반도체산업 육성을 추진했다.

모리스 창은 ITRI 원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만 총리로부터 자금은 얼마든지 제공할 테니 대만이 할 수 있는 반도체사업계획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고민 끝에 총리의 제안을 수락했다. TI에 있을 때 읽은, “반도체 설계가 제조기술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칼텍(Caltech) 카버 미드(Carver Mead) 교수의 글을 회상하며, 반도체 설계와 제조가 나누어질 수 있고 대만이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한다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시장이 없다는 것이다. 위탁 생산을 발주할 팹리스 업체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자신이 미국 반도체 업계에 있을 때 많은 미국 반도체 설계 기술자가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설계 회사를 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위탁생산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리스 창은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대만 정부가 대규모 투자만 해준다면 대만은 반도체 위탁 생산을 세계 최초로 사업화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계획을 대만 정부가 승인하며 ITRI 내부에서 세계 최초 파운드리 사업이 시작됐고, 1987년 ITRI에서 분사해 TSMC가 됐다. TSMC는 설립 이후 2년만 적자를 기록했을 뿐 지금까지 연평균 15% 이상 매출이 성장하며 대만에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가 됐다.

모리스 창은 2018년 TSMC의 회장직을 내려놓기까지 31년간 TSMC의 성장을 위해서 헌신했다. 그는 2012년 내부에서 발탁한 마크 리우(Mark Liu, 현재 회장)와 웨이(C.C. Wei, 현재 CEO)를 공동경영 후계자로 지명하고 경영승계를 진행했다. 모리스 창은 무엇보다 반도체 위탁 생산을 의뢰하는 고객사와 철저한 협력을 이뤄내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현재 TSMC와 고객사가 참여하는 여러 연합체(IP, EDA, 디자인, 클라우드 얼라이언스 등) 구축으로 연결되었고, 이 연합체는 후발 업체에 난공불락의 요새가 됐다.

모리스 창은 TSMC를 설립하고 첫 주문을 따낼 때 TSMC의 네 가지 핵심 가치를 담은 브로셔만 제시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TSMC의 핵심 가치는 신실함(Integrity), 헌신(Commitment), 혁신(Innovation), 고객 신뢰(Customer Trust)이다. 고객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신실한 자세로 혁신을 추진하는 TSMC는 미래 최첨단 제조업 플랫폼 기업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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