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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7) | 박용준 삼진식품 대표 

100년을 이어갈 업(業)의 본질 

장진원 기자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박용준 삼진식품 대표가 다시 현장 경영에 복귀했다. 어묵 베이커리로 질적·양적 성장을 이끈 박 대표는 또 다른 혁신으로 100년 기업을 향한 무장에 나섰다.

모두가 유행을 좇는다. 유행은 다시 트렌드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기업과 소비자를 유혹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변화를 리드하지 못하면 낙오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본질이라는 말의 의미는 영원하다. 숨 가쁘게 유행에 뛰어들려고 하지만, 절대 그 자체가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삼진식품(부산을 대표하는 삼진어묵은 2020년 8월 기존 제조법인인 삼진식품과 합병해 삼진식품으로 새출발했다)은 모두가 사양산업이라 이야기하던 업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산업의 가치를 새로 발견한 기업이다. 1953년 박재덕 창업주가 6·25전쟁 당시 피난민을 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출발한 삼진어묵은 1986년 2대 박종수 회장 때 지금의 부산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 3대인 박용준 대표에 이르러 사업 규모를 크게 확장해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박 대표를 만나 젊은 기업가의 속 깊은 경영 이야기를 들었다.

2011년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어느덧 10년이 넘어간다.

내년이 삼진식품 설립 70주년이다. 할아버님이 30년, 아버지가 30년을 하셨다. 나까지 더하면 100년 되지 않을까. ‘100년 기업을 이어갔을 때 우리 회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가 내겐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 지금까지처럼 수익과 규모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100년 됐을 때는 지금보다 어묵이라는 식품을 더욱 다양하게 소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사명감인데, 초반 10년은 이런 생각을 못했다. 생존이 눈앞에 닥친 숙제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묵은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했다.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같은 빵집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도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문화 메카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서 베이커리라는 콘셉트를 잡았는데,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다가 잘되니 요즘은 경쟁사들도 다 따라한다.(웃음) 당시에는 사양산업이라는 얘기가 너무 많았다. 유일한 납품처가 시장, 즉 반찬가게였다. 매출 규모가 20억원 언저리였는데, 그래도 부산·경남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남포동 포장마차에 어머니랑 영업하러 갔는데, 가게 한 곳 뚫는 데 한 달 넘게 걸리더라. 어묵을 꼬치에 꽂고 국물도 붓고 하다가 ‘이렇게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B2B에서 B2C로 넘어간 거다.

우리도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가게를 열어보자 해서 처음 만든 게 ‘어묵1번가’였다. 기존에 납품하던 시장통에 열었는데, 거래처 분들에게 엄청 혼이 났다. “너희가 이렇게 장사하면 어떡하느냐”부터 “이런 버르장머리를 어디서 배웠느냐”까지 정말 혼쭐이 났다. 그렇게 B2C를 계속 고민하고 시도하며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자리 잡은 게 어묵베이커리다.

흔히 ‘1대는 제조, 2대는 금융, 3대는 예술’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돈다. 3대에 이르러 낙후된 제조업을 확장한 사례는 정말 흔치 않다.

부모님 대에선 먹고살 만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 어묵이라는 아이템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매출도 계속 떨어졌다. 모든 장부가 수기로 이뤄졌고, 거래처마저 사업자등록이 돼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우리뿐 아니라 웬만한 어묵회사들이 세무조사 한번 받으면 절반이 문을 닫을 만큼 영세했다. 회계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적당히 ‘인 마이 포켓’ 하던 관행이 뿌리 깊었다. 모든 걸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다.

3세라고 하지만, 기업 체질을 완전 탈바꿈해 재창업한 거나 마찬가지다. 혁신에 대한 반대도 컸을 것 같다.

뭐 하나 하려 해도 “내가 널 어릴 때부터 봤는데”라는 말부터 들어야 했다. 기존 관행을 깨고 혁신에 집중한 동기는 크게 두 가지, 현장과 책임이다. 먼저 현장에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갔다. 기계에서 나온 어묵을 손으로 받다 보니 허리가 성한 분이 별로 없어 작업대를 모션데스크처럼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제품으로 교체했다. 공장 아주머니들이 “외국에서 공부한 놈이라 다르네” 하시더라. 공장에 아예 내 방을 만들어 매일 새벽에 나갔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배우라고 하셨지만, 현장부터 바꿔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이모님들의 허리통증을 해결했듯이 현장의 신뢰를 얻으려 엄청 노력했다. “사장 아들내미지만 열심히 한다, 도와주자”는 말씀이 비로소 들려오기 시작했다.

책임이란 건 뭘 뜻하나.

부모님은 무조건 현장에 있는 걸 좋아하셨다. 고민하고 기획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셨다. 가령 처음 디자이너를 고용했을 때만 해도 “위에서 뭐 하냐, 당장 공장으로 내려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불신이다. 부모님, 즉 기존 경영자에게 다음 세대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책임지는 모습이다. 결과와 성과로 보여드려야 했다.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 때도 아버지는 “홈페이지 많이 만들어봤는데 관리가 안 된다”며 반대하셨다. 새로운 사업 방식이 결과를 만들어내자 비로소 책임 있는 혁신이 가능해졌다.

2019년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업계와 부산지역을 놀라게 했다.

급격한 성장은 매니지먼트, 즉 관리체계의 부실을 여실히 드러낸 계기가 됐다. 나 역시 회사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CEO이다 보니 갈수록 자신감과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간 내가 잘해온 건 몸으로 해왔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에 비해 관리는 시행착오를 겪기엔 리스크가 큰 영역이었다. 당장 직원들이 감당해야 할 피해가 너무 컸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당시 황종현 동원F&B 부사장께 간절히 요청드린 끝에 모셔올 수 있었다.

급격한 성장이 불러온 관리체계 부실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에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 “가업을 이어야지, 남의 손에 게 맡기는 게 말이 되냐”며 걱정하셨다. 설득하는 수밖에 길이 없었다. ‘이분이 오면 결과적으로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드려야 했다. 결국은 책임 있는 결과였다. 황 대표님은 회사 출근 첫날부터 문을 걸어 잠그시고는 “나는 경영관리를 바로잡으려고 왔다. 방향성에 동의하지 못하면 당장 나가도 좋다.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같이 가보자”고 선언하셨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책을 그 자리에서 나눠주시면서 말이다. 그때 보고체계, 관리 포인트 등을 일일이 다 잡아주셨다. 나중에는 본인이 팀장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박 대표 역시 배운 점이 많았겠다.

2013~2015년은 영업이익률이 낮아졌지만 번 만큼 과감히 투자에 나섰다. 2017~2018년 들어선 수익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관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불필요한 프로젝트도 너무 많았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제안이란 제안은 다 해봤다. 돌이켜보니 ‘어묵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칭찬에 바람이 들었던 것 같다. 평소 긍정적인 성장의 에너지로 가자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성과 내고 허리띠 졸라매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더 전문가를 모셔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바로 영업이익이 흑자전환하더라. 연도별·분기별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거나 지금처럼 제조원가가 급등하는 시기에도 적절히 대응하는 관리체계를 갖추는 일은 나 혼자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2년간 전문경영인에게 배운 점이다.

기업문화 자체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진통은 없었나.

바뀐 회사의 기대와 목표에 괴리를 느낀 직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3.5 수준이었던 잡플래닛 평점이 하루아침에 1.7로 떨어졌다. “삼진어묵 괜찮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고, 심지어 삼진이 팔렸다는 소문까지 났다. 내부 직원들마저 왜 대표직을 내려놓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하다 하다 해명을 포기하는 수준까지 갔다. 싱가포르에 매장을 내러 갔더니 지분 다 팔고 이민 갔다는 소문이 나더라.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애매하게 머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대기업 수준의 관리감독이 당면 목표라면 100% 전문경영인에게 배워야 했다. 사실 이런 과정이 내게도 상처였다. 하지만 상처가 아물고 근육이 되는 것처럼 새로운 사람과 조직이 가미되면서 회사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프로페셔널함으로 채워졌다. 지금 삼진식품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직력이 강해졌다.

지난해 다시 2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사명감이 들었던 거 같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매년 꼬박꼬박 이익 내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100년을 맞고 싶진 않았다. 생선 가공에 잠재된 가치를 끄집어내고 이를 공유할 새로운 고객을 계속 만드는 일, 그게 우리의 사명 아닐까. 거기에 오롯이 집중했을 때 그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1등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명확히 섰을 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한 발 떨어져서 보니 좀 더 큰 그림, 또 내가 진짜 하고자 하는 게 보이더라. 사실 그동안 공황장애도 겪었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고 목표를 물어볼 때마다 목소리가 떨렸다. 2년간 멀찍이서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30년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구체적으로 달라진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새로운 어묵 문화, 즉 ‘비욘드 어묵’이 우리의 모토다. 이를 위한 조직을 새로 정비하려 한다. 기존 부서와 새로운 부서를 통합해서 ‘어메이징 스튜디오’를 따로 조직하기로 했다. KPI(핵심성과지표)에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 누구나 주도적으로 나서는 문화, 그때그때 찾아온 찬스와 아이디어에 기반해서 일을 수행하는 새 조직이다. 관리와 성장을 다 잡는 게 목표다.

회사 평점이 또 떨어지지 않겠나.(웃음)

경영자로서 또 창업자로서 항상 고민하는 문제다. 사업이란 게 편안한고 안정적이면 오히려 안 굴러가더라. 끊임없는 자극과 시도가 필요하다. 전문경영인 체제도 기존 삼진어묵에는 어마어마한 자극과 스트레스였다. 이번에도 통합·신설 조직을 만드니 난리가 난 분위기다. NCX(New Customer Experience)본부와 CX(Customer Experience)본부를 신설했다. 하나는 고객경험, 하나는 완전히 새로운 고객경험을 위한 조직이다.

기존 고객과 새 고객이 조직을 달리해야 할 만큼 다른가.

지금까지 우리 소비자를 분석하면 그렇다. 의도와 달리 기존 제품을 원하는 고객과 새 고객이 있더라. 앞으로 삼진식품은 이 고객군을 정확히 50대50으로 유지하려 한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어묵이라는 아이템을 좀 더 짜임새 있게 갖추고 유통구조 혁신과 마케팅 등에 집중했다. 어묵 간식과 베이커리 개념인데, 이를 뛰어넘어 지속가능한 개념이 필요해졌다. 조직상으로도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존 고객만 바라보는 관성을 뛰어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에 포커스를 맞춘 조직을 기존 조직만큼 강화하려 한다. 기획팀 등 옛 조직을 완전 재배치해서 나누고 이름도 바꾸었다. 물론 구성원들이 이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굉장한 스트레스다.

‘비욘드 어묵’은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나.

명확히는 어묵이라는 수산 단백질로 내재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어묵은 생선을 가장 섹시하게 가공하는 기술이다. 환경오염, 가격경쟁력에서 가장 앞서 있고 다양한 맛과 성형도 가능하다. 수산가공의 가장 완벽한 플랫폼이 어묵이다. 동남아에선 필수 단백질로, 유럽과 미국에선 고급 수산가공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전 세계 식품박람회에 가보면 각종 수산가공물 경쟁이 치열하다. “다 비켜라! 우리가 제일 많이, 오래 잘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에서 1등 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단순히 어묵이라는 제품군뿐만 아니라 산업을 대하는 구성원의 마인드와 회사 목표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

해외시장, 특히 동남아 시장을 오랫동안 관찰해왔다.

진출하려는 나라와 지역마다 유통 채널이 모두 다르다. 단순 판매 확대가 아니라 수산가공품이라는 식문화를 세워야 영속성 있는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어묵은 훌륭한 저가형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엄청나게 큰 어장을 갖고 있지만, 안 먹고 안 팔려 버리는 생선이 많다. 그렇게 원물이 많이 나오는 시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가공한 제품을 선보이려 한다. 1순위가 동남아인데, 우리와 식문화가 유사하다. 한국에서 어묵산업을 키웠듯이 벤치마킹이 가능하다. 저렴한 스트리트푸드로 시작해 시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중고급 시장으로 확대하려 한다. 시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묵은 가장 섹시한 수산단백가공식품


미국·유럽 같은 선진 시장은 어떤가.

동남아와는 베이스가 완전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미국에서는 생선가공식품을 잘 먹지 않는다. 기껏해야 참치와 연어 수준이다. 수산 단백질을 가장 빠르고 편리하고 다양하게, 또 맛까지 갖춰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어묵이라 부르게 하고 싶다. 유럽에서는 예부터 맛살이 유명한데, 생선을 으깨 만드는 어묵과 제작 과정이 100% 똑같다. 형태만 다를 뿐 원료도 거의 같다. 전 세계 맛살 시장이 엄청나게 큰 반면 미국에서는 이미테이션 크랩이라 해서 인기가 없다. 유럽과 미국에 동남아에서처럼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 콘셉트를 가져갈 순 없다. 기존의 패티를 대체하는 고급 단백질 솔루션으로 메이킹하려 한다.

프리미엄 수산 단백질 브랜드 콘셉트로 선보인 어메이징팩토리도 이런 작업의 일환인가.

그렇다. 비욘드 어묵을 위해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어묵은 대부분 냉장 유통과 보관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프리미엄 생선 가공은 실온 보관이 필수라 생각했다. 이를 위한 제조 자회사가 어메이징팩토리다. 제조 부문의 혁신 못지않게 시장과 커뮤니케이션하고 마케팅을 선도하는 조직도 필요했다. 어메이징스튜디오가 출범한 배경이다. 비 오는 날이나 연인과 헤어진 날에 와인과 먹는 어묵은 어떨까. 포장과 콘셉트다. 감성음악을 스트리밍하는 기업과 협업해 감성떡볶이도 내놓았다. ‘쁘아송 마르셰(poission marché)’라는 브랜드도 선보인다. 수산시장이라는 뜻인데, 담백한 고급 생선과 최고급 소금 등을 가미한 와인 전용 어묵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우리의 새로운 고객되는 거다. 이렇게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첨병 역할을 어메이징스튜디오가 맡는다.

투자 유치와 IPO에 적극적인 것도 이를 위함인가.

굳이 왜 기업을 공개하느냐, 왜 외부 투자를 받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박씨 가문이 3대, 4대 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수산가공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으면 좋겠다. 더 과감한 시도에 나서면서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당연히 투자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사람과 조직은 어디나 관성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외부 조직을 들여오면 억지로라도 원대한 꿈을 꿀 수밖에 없다. 기업 비전이 확고히 자리 잡으면, 나 아닌 누가 오더라도 바꾸기 어렵다. 자극제이자 원동력이다.

‘어묵계의 잡스’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한가.(웃음)

앞서도 말했지만, 그 말이 나를 정말 위험에 빠뜨렸음을 고백한다. 바람이 잔뜩 들었었다. 내재된 가치와 업의 본질을 찾기 전에 눈에 보이는 혁신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검은 어묵, 무지개 어묵 같은 자극적인 이슈와 소비자의 도파민만 생각했다. 어묵의 본질은 무지개가 아닌데 말이다. 2년간 한 발 물러나 있으면서 다음 30년을 고민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보여주기에 급급했구나, 그건 혁신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 어묵을 뛰어넘은 글로벌 수산단백가공품 기업, 그게 100년을 바라보는 삼진의 진짜 목표다.

※ 최영찬 대표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정리=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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