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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INTERVIEW | 이성동 옴니아트 대표 

시각 IP로 꿈꾸는 지속가능성 

정소나 기자
제품을 통해 예술가와 대중의 간극을 줄이고, 업사이클링 디자인으로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며, 신진 작가 지원 플랫폼으로 재능 순환 가치를 실현하는 옴니아트의 이성동 대표. 그가 꿈꾸는 다음 목표는 IP 커머스 플랫폼 정복이다.

어깨를 드러내는 콜드 숄더 원피스, 아찔한 로라이즈 미니스커트, 몸에 꼭 맞는 크롭트 베스트….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 브롱니아르궁에서 열린 ‘2023 SS 파리패션위크’에서 중년 낚시꾼이 입다 버렸을 법한 빛바랜 낚시 조끼가 트렌디한 여성복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사용했던 코발트블루 컬러의 수직 보호망은 트렌디한 백으로 재탄생돼 모델의 룩에 트렌디한 방점을 찍었다.

자칫하면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낚시 조끼와 수직 보호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옴니아트의 대표이자 패션 브랜드 얼킨(ul:kin)의 수장 이성동 대표다. 그는 한국 패션을 대표하는 글로벌 무대에서 폐자원을 이용한 리사이클링 의류와 액세서리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옴니아트의 패션 브랜드 얼킨은 버려진 재료를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브랜드이자 예술 문화 기반의 사회적 이슈를 담는 소셜벤처다. 작가들의 작품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거기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직간접적으로 작가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예술과 패션의 상생을 도모하고 자원과 재능을 순환시키는 이 대표의 창의적인 사업 모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8년 참가한 IBK소셜벤처지원사업에서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어 사회연대기금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문화체육관광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소재 개발, 기부, 선순환 시스템을 통해 지속가능성 60~70% 상승을 목표로 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2019년과 2020년에는 서울산업진흥원(SBA)이 주관하는 도시제조업활성화 지원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패션계에서도 재생 소재를 활용하거나 가치소비를 전면에 내세운 옷들이 MZ 세대를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버려지는 예술 작품을 기증받거나 구매해 소비가 가능한 가치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 철학에 이 대표의 ‘힙한’ 디자인 감각이 어우러진 얼킨의 컬렉션은 소셜 임팩트를 만들어내며 또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옴니아트는 2017년 법인으로 몸집을 키우고 업사이클링 가방에서 시작한 얼킨 사업을 여성복과 남성복, 생활 잡화 등으로 확장하며 토털 패션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다. 지속가능성에 예술적 가치를 더한 컬렉션으로 어느새 서울패션위크 15시즌, 뉴욕패션위크 5시즌, 그리고 올 시즌에는 파리패션위크에도 참가할 만큼 내로라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건설 현장의 수직 보호망이 트렌디한 백으로 재탄생 됐다.
예술의 가치를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하는 소셜 패션 브랜드로 얼킨을 널리 알린 이 대표는 지난해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상생 방식을 도모하다 ‘얼킨 캔버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론칭한 것. 시각 IP를 활용해 패션 커스텀을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이미지를 프린팅이나 자수 등으로 아이템에 적용, 생산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2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6개월 만에 1만400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월 5만 명 이상이 웹사이트를 방문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하이트진로’와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협업해 진로 컬렉션을 출시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용산에 있는 옴니아트 사옥에서 파리 컬렉션을 마치고 돌아온 이성동 대표를 만났다.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 패션위크 준비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사업 얘기를 할 때면 유난히 눈빛이 반짝이던 그에게 얼킨과 얼킨 캔버스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봤다.


▎파리패션위크에서 낚시 조끼를 활용한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브랜드명에 담긴 뜻이 궁금하다.

‘얽히고설키다’라는 뜻 외에 영어로 ‘Ultimately, We are Kin(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얼킨의 디자인과 제품을 통해 예술과 패션이 뒤섞여 하나가 되고, 하나의 고리처럼 자원과 재능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 그래서 환경보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도 도움이 되자는 상생의 미학을 담고 있다.

재능 순환이라는 개념이 생소한데.

‘재능 순환’은 얼킨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자원을 순환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을 넘어서 작가들의 재능 역시 순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론칭 초기부터 지금까지 재능 순환을 위해 작가들의 습작을 제품으로 제작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직간접적으로 작가들에게 돌려준다. 작품을 기부한 작가에게 작품 활동에 필요한 캔버스를 제공하거나 판매 수익의 일부를 공유하고, 주기적으로 협업 전시를 열어 작품의 유통과 판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업사이클링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미술을 전공한 친구의 졸업작품 전시회에 갔다가 작가들의 습작이나 전시장에 전시된 그림들이 대부분 버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소중한 작품들이 쉽게 버려지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작품을 활용할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창업으로 이어졌다. 작업을 할수록 쓸모없이 버려지는 재료에 창작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리사이클링한 데님을 믹스매치한 무스탕은 유튜버 이사배가 입어 화제가 됐다. 지난 시즌에는 1년간 버려지는 웨딩드레스가 170만 벌이라는 말을 듣고, 폐기된 웨딩드레스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업사이클링을 통해 재탄생된 패션을 선보여 의미를 더하고 싶다.

2023 S/S 뉴욕과 파리패션위크에서 이수그룹과 컬래버레이션한 가방을 선보였다.

브랜드 론칭 초창기에는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2014년부터 꾸준히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린 덕분인지 친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기업들이 먼저 협업을 제안하는 사례도 늘었다. 이수그룹과 엄청난 건축폐기물의 일부라도 업사이클링해 보자는 뜻을 모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아파트를 지을 때 안전을 위해 사용했던 수직 보호망으로 호보백, 백팩, 토트백 등 다양한 가방을 제작했는데, 독특한 디자인에 사용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 뿌듯했다.

디자인과 경영은 전혀 다른 분야다. 어려움은 없었나.

대학교 때 ROTC 훈련을 받고 병사 36명을 이끌며 장교 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기업을 운영하는 데 기본이 되는 인사관리와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경험을 기본으로 책을 읽고, 선배 대표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경영 수업을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니 토대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패션 공모전이나 콘테스트에 참여할 때마다 늘 수상을 했다. 당시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쟁쟁한 형, 누나들을 제치고 상을 받으니 ‘정말 재능이 있구나’ 생각했다. 대학 4학년 때 한 콘테스트에서 수상 선물로 두타몰의 작은 매장을 받아 패션브랜드를 운영하게 됐다. 혼자 할 수는 없으니 동기 형들을 섭외해 셋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1년도 못 가서 망했다.(웃음) 물론 장교 교육과 병행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 시절의 경험에서 ‘사업이 결코 쉽지 않구나’라는 걸 호되게 배웠다. 그 후 디자이너 브랜드와 스타트업 회사를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는데, 소위 말하는 ‘자본력’이 있는 회사였는데도 결국 문을 닫게 되는 것을 지켜봤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사업은 실력이나 돈이 전부가 아니며, 일의 방향이 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리더십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런 경험들이 경영자가 되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버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가방.
얼킨 캔버스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처음에는 얼킨과 협업하는 작가들에게 캔버스를 사주고, 전시를 열어주는 등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작가들이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작가들의 작품을 IP화해서 옷이나 소품 등에 적용해 제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생각만큼 작가들에게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작가들과 다양한 협업을 해오면서 소통하고 고민한 결과, 문화예술 분야의 궁극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얼킨이라는 단일 브랜드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껴 새로운 플랫폼을 론칭했다. 작가의 작품이나 캐릭터 같은 시각 IP를 커스터마이징하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패션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에 결합하여 구매할 수 있다. 현재 550여 개 IP가 입점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성장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시각 IP를 직접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경쟁력이다. 시각 라이선스인 IP를 한 번만 등록하면 무한으로 제품에 적용할 수 있고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머프의 라이선스를 구입하면 내가 입고 싶은 티셔츠, 재킷, 스카프에 새겨 원하는 만큼 패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상장한 패션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 라이선스 브랜드로 상장할 정도로 라이선스에 대한 가치를 높이 인정한다. 또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K팝 아티스트들의 라이선스도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시각 IP를 소유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가 아닐까 한다.

IP 비즈니스 업계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이른바 대의명분이 필요한 직종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행히 다년간 아티스트와 진행해온 협업과 오랜 시간 패션 디자이너로 쌓아온 브랜드의 입지 덕분에 빠르게 자리 잡았고, 이제 시너지를 내기 시작하는 단계인 것 같다.

하이트진로와 협업한 ‘진로 컬렉션’의 반응이 궁금하다.

사실 오늘도 입고 올까 고민했을 만큼 요즘 즐겨 입는다.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 이벤트를 했을 때 판매 1위가 진로 컬렉션 제품이었을 정도로 웬만한 라이선스 브랜드보다 반응이 좋았다. 수많은 기업, 다양한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을 해온 덕분에 콘텐트와 트렌드를 패션에 녹여내는 내공이 쌓였다. 이번 컬렉션은 금두꺼비가 얼킨의 로고 위에 올라가 있는 귀여운 디자인으로 소비자 반응도 좋다.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리오더에 들어가는 등 만족스런 성과를 내고 있다.

얼킨 캔버스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메가 라이선스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IP를 발굴하고, 얼킨 캔버스 내의 IP를 각각 데이터화해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고 싶다. 예를 들면 의류, 잡화, 테크 액세서리 등 각 카테고리에서 반응이 좋은 라이선스 차트를 세분화하고 데이터화하는 거다. 계약을 하거나 상품 매칭을 할 때 논리적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라이선스 유통의 기준을 만들고 싶다.

옴니아트가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라나.

옴니아트라는 회사 안에 얼킨이라는 브랜드가 있고 또 그 안에서 내 이름을 건 컬렉션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한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거의 한국의 배우나 가수일 정도로 한류 열풍이 뜨겁다. 이에 힘입어 한국 문화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 이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얼킨을 글로벌하게 성장시키고 싶다. 얼킨 캔버스 역시 한국의 라이선스를 발굴해 일본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해보고 싶다. 또 데이터를 통해 나라별로 적합한 IP를 발굴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한국의 문화적인 힘을 발판 삼아 시각 IP 분야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하는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은 바람이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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