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김동철 서브원 사장 - 시작과 끝이라는 약속

2023년 새해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한 해가 예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고물가·고환율·고금리라는 3대 악재 속에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경영환경이다. 우리 기업과 경제가 자칫 헤어나오기 힘든 블랙홀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암울한 전망도 많다. 그러나 모두가 위기라 말할 때 준비된 자는 기회를 맞는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이 완전히 암흑인 것도, 일종의 영원한 감옥도 아니라고 했다. 블랙홀에는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는 출구가 있다고도 했다. ‘강철왕’으로 불린 앤드루 카네기는 가난한 청년 시절,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하나가 놓여 있는 그림을 우연히 보았고, 그림 밑에 적힌 글귀 하나를 평생 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밀물 때는 반드시 온다. 바로 그 날,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숱한 어려움과 문제들에 부딪히고 극복해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위기와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과 기업은 더욱 단단해진다. 지금 닥친 험한 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여 낙담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고 출구도 있다는 진리다. 그러니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믿음과 희망이 중요하다. 황량하고 두려움이 밀려오는 현실이라도 밀물을 기다리면서 힘차게 노를 젓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이런 자세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나부터 해보면 어떨까. 약속이란 기업, 나아가 모든 사회 구성원 간에 굳건한 상호 신뢰가 기반이 돼야 지켜질 수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반드시 해낼 거라는 강한 믿음을 서로에게 약속하듯 가져보자. 서브원도 업계 선도 기업이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개척하기 위해 디지털 혁신에 투자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존 구매 대행 서비스를 넘어 글로벌 구매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업(業)의 본질을 스스로 바꿔보자는 결의와 약속을 모든 임직원이 지켜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브원은 굳건한 약속의 힘으로 1300여 개 고객사, 2만8000여 개 협력사와 함께 더욱 단단한 도약과 성장을 이뤄나가며,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토끼는 온순해 보이지만 여러 개 굴을 파놓는 습성을 가진 영리한 동물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다. 그 지혜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다양한 전략과 대비책을 마련하고 구성원 모두가 지향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긍정의 약속으로 희망찬 새해를 맞길 바란다.

박용진 오토닉스 대표 - 반드시 지켜야 할 나와의 약속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오토닉스는 아버지이자 창업자이신 고(故) 박환기 회장이 1977년 부산 국제시장에서 26살 약관의 나이로 시작하신 기업이다. 보증금 200만원을 들고 3평 남짓한 공간에 작업용 책상 1개를 두고 직원 1명과 함께 시작한 지 45년이 지났다. 현재 오토닉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자동화 기업이자 매출 2000억원이 넘는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당연히 성장과정 속에서 수많은 시련도 있었다. 창업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주요 납품처였던 섬유기계 제조업체가 부도나면서 물품 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최종 부도 처리되었고 연이어 다른 거래처들도 부도나기 시작했다. 회사와 집에 압류가 들어오고 직원들도 줄줄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직접 채권자들을 한 사람씩 만나 믿고 도와준다면 반드시 일어서겠다고 약속하셨다. 실제로 채권자들도 아버지의 근면 성실함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오히려 격려해주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때 한 약속들을 잘 지켜낸 것이 지금의 오토닉스를 있게 했다.

CEO는 경영을 하면서 많은 약속을 할 수밖에 없다. 직원들과의 약속, 고객과의 약속, 협력사와의 약속, 지역사회와의 약속 등 지켜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하나 지켜낸 약속들이 모여 신뢰를 만들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은 분명하다.

오토닉스는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창립 이래 최대 매출을 경신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제조업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상당한 위기가 올 거라 예상된다. 성장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벌써 많은 기업이 위기를 예감하고 불황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고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위한 CEO의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오토닉스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할 나와의 약속이다.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 - 약속은 삶을 이끌어주는 등대와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약속들을 한다. 비록 작은 약속이라도 우리 기업인들에게는 ‘약속’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때로는 무겁고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얻을 수도, 반대로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용은 기업의 생명과도 같다. 그래서 ‘사업이라는 멀고 험난한 항해’에서 신용을 의미하는 약속이 기업가들에게는 ‘기업을 올바르게 경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대’라고 생각한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처럼 약속은 올바르고 정확한 방향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부친인 선대 회장님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행동 규범을 바탕으로 평생 노루그룹을 경영하셨다. 임직원, 지인, 가족들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작은 약속 하나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신뢰를 생명처럼 여기셨다. 6·25전쟁 당시에도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난도 뒤로 미루고 일일이 거래처를 찾아다닐 정도로 신용을 중시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이 경영자인 나뿐만 아니라 우리 임직원들의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1996년 7월 안양공장에 불의의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를 진압하면서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임직원들을 대피시켰는데, 생산공장에서 페인트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정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확인해보니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거래처의 긴급 주문 건을 생산·납품했던 것이다. 직원의 안전이 우려되는 한편,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임직원들과 함께 화재 복구를 하면서도 그 기억이 잊히지 않았다.

공장 화재에서 비롯된 경영위기를 이겨내기 무섭게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기업의 존망이 걸린 일대의 경영 위기에 직면했고 위기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임직원 30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회사는 경영 상황이 호전되면 반드시 재고용하겠다고 눈물로 약속하며 그들을 떠나보냈다. 어려운 상황을 넘기자 경영 실적이 차츰 호전됐다. 1999년 1월, 퇴직 사원 중 90명이 먼저 재입사했다. 이후 2002년까지 남은 희망자 200여 명이 모두 재입사했다. 회사의 경영 상황이 호전되면 재고용하겠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이러한 약속 이행이 선친에게 배운 ‘약속의 실천을 통한 신뢰 구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약속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약속을 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하나의 언약과 같다. 나는 오늘도 자연인으로서 나 스스로와 한 약속, 그리고 내 가족과의 약속, 사회인이자 기업인으로서 사회와 회사 및 연계되어 있는 조직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팬데믹 3년과 함께 찾아온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영환경이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하지만 제조강국을 꿈꾸며 ‘事業報國’의 굳건한 경영이념으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약속을 하신 선친을 본받아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약속은 기업가들에게 근본이고 뿌리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념으로 모든 기업인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바란다.

마국성 아이지에이웍스 대표 - 데이터 자이언트가 되겠다는 약속

매년 새해가 되면 나 자신에게,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와 직원들에게 다양한 ‘약속’과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올해는 모든 이에게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하나의 약속이 생겼다. 바로 ‘데이터’가 우리가 그리는 미래에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최근 종종 강연 요청을 받는데, 현장에 가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NO DATA, NO GROWTH.’ 쉽게 말해 ‘데이터 없는 성장은 없다’는 의미다. 2023년은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세상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디지털전환에 집중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가 석유를 넘어 가장 가치 있는 자원으로 인정받고, 전 세계가 본격적인 데이터 시대에 돌입하면서 디지털전환은 기업의 미래 생존을 가름하는 필수조건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주변에서 디지털전환에 성공한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들이 여러 접점에서 자사와 외부 데이터 확보를 시도하고 있으나, 이를 통합된 환경에서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기업이 유행처럼 자체 데이터 플랫폼 인프라 구축에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시각각 쌓이는 고객 데이터를 신속하게 검증·분석하고, 도출된 결괏값을 기반으로 최적화된 전략 수립과 실행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한 기업 내부에서조차 활용하는 플랫폼이 제각각인 데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해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이를 속도감 있게 담아내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흩어진 데이터를 한데 모아 대고객 인사이트를 발굴한다는 디지털전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사 데이터(1st party data)뿐만 아니라 고객이 경쟁사에서는 어떤 활동성을 보이는지와 같은 외부 데이터(3rd party data)를 함께 볼 수 있는 데이터 환경이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디지털전환에서 성공의 핵심은 자사 데이터와 외부 데이터를 결합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갖추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SaaS형 마케팅 클라우드다.

SaaS형 마케팅 클라우드는 플랫폼을 직접 설계하고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해주는 동시에, 퍼스트파티(CDP)와 서드파티(DMP) 데이터를 통합 관리·분석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관련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해외 데이터 플랫폼 SaaS 기업들은 수십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광고, 마케팅 분야를 포함한 전 영역에서 이미 데이터 드리븐은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큰 흐름이다. 데이터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는 기업가로서 2023년에는 디지털전환을 바라보는 모든 기업에 우리의 기술과 데이터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와 나침반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 자이언트로 성장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임을 시장과 고객, 우리 임직원과 그 가족, 모든 주주에게 ‘약속’한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