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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리더 32인의 신년 에세이] 약속(4) 

 

장진원 기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박용준 삼진식품 대표 - 진정성으로 빚는 100년 약속


사양산업은 없다. 변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처음 어묵 산업에 합류했을 때, 많은 업계 어르신이 어묵은 이제 사양산업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어묵 업계는 성장하지 않는 시장과 늘어나는 제조업체들의 경쟁으로 인해 수요·공급 불균형이 가속되던, 흔히 말하는 레드오션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영업 경쟁을 위해 더 낮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어묵은 점점 얇아져만 갔다.

아마도 시장의 변화가 두려웠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소비되던 형태와 체제에서 감히 고객의 소비 형태를 바꾸려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단발성으로 진행돼 효과가 미미하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실패들이 업계에 변화의 두려움을 더 크게 안겨준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경쟁을 이겨낸 방법도 변화였다. 새로운 시도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누적돼 또 다른 변화를 이끌기 위한 원천이 되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실패가 있었고 어려움도 컸다. 하지만 한계에 갇히는 두려움보다 어렵더라도 나아갈 방도를 찾는 게 더욱 희망적이었기에 끊임없는 전진을 선택했다. 그러니 진정성이 생겼다.

진정성 있는 기업은 세상을 바꾸고 더 전진하기 위해 스스로의 각오를 비전으로 세운다. ‘우리 사업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고객에게 오랜 시간 전달된다면 단순한 세일즈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 이념과 비전은 고객과의 약속으로 이어진다.

올해는 삼진식품이 설립 7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로, 기업의 100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시대에 맞는, 그리고 미래 고객들이 원하는 니즈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산업 고유의 내재적 가치를 더 크게 키우고 변화시켜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려 노력할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나아가는 동안 계속 변화하기 위해 정진하는 ‘삼진(三進)’의 정신으로 시장의 변화를 만들어나가리라 약속한다.

이성동 옴니아트 대표· 패션 디자이너 - 시장경제 체제의 약속과 신뢰


브랜드 얼킨은 뉴욕패션위크, 파리패션위크, 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쇼를 진행하며 리오프닝을 맞았다. 패션 디자이너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들을 얻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값진 경험은 따로 있다.

패션산업에 몸담은 지 10년 가까이 되어서야 학창 시절에 수요와 공급 곡선을 왜 배웠는지, 보이지 않는 손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고객이 사고 싶은 가격대와 디자인, 신뢰가 올바른 역치 값을 가질 때 실제로 구매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제야 경험했고, 비로소 자본주의를 믿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사업이라는 개념도 잘 몰랐고, 그저 보이지 않는 꿈만 좇는 패기 넘치는 20대 중반이었다.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든다는 명목하에 3년을 투입했고, 다행히도 주변에 있는 좋은 분들이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을 알려주었다.

이후 법인을 설립하여 또 3~4년간 또 다른 영역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조금 놀라웠던 사실은 7년 차에 올해의 신인 패션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7년 차가 신인이라니 글로벌 패션 디자이너가 되려면 얼마나 긴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지 그때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고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2년 뒤 2022년 올해의 최우수 디자이너 상을 받는 영예를 차지해 감사하지만, 여전히 오랜 시간과 에셋이 투입되어야 하는 걸 알았고 이제는 경영적으로 타산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대표가 이렇게 자본주의를 믿는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우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정말 시장경제 체제를 믿는다.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산업을 보니 너무나 큰 시장에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으며, 고객의 구매 흐름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고객 한 명 한 명의 구매를 억지로 만들기 위해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고객을 가르치려 했고 그래야 트렌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연스럽게 고객의 선택과 소비가 흐를 수 있게 길을 만드는 것이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며 스케일 업의 본질이자 트렌드가 된다는 것을 업계 10년 차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시장경제 체제의 약속을 믿고 가자! 패션사업 부문과 함께 옴니아트의 라이선싱 비즈니스인 비주얼 IP 개인 간 거래 솔루션 ‘얼킨캔버스’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민규 쇼핑코디 대표 - 최초와 최고가 되겠다는 약속


10년 전 태국에서 한국인 보석상을 만났다. 원양어선 선단의 선장이었던 분이 이제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 주얼러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오는 보석상이 되어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전업한 사연과 성장과정을 알게 되었다. 보석상으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평범한 돌이 몇백 배 가치를 지닌 보석으로 탄생할 수 있는 원석임을 알아보는 안목이라는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20년 동안 프랜차이즈 유통업계에서 성장을 책임지는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보았다. 하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만들어지는 내용이 경험과 직관, 기사들을 토대로 한 정보가 전부였다. 성공에 근접할 수 있다는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부족했고 그에 따라 논리도 부족했기에 진행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처럼 컨설팅을 받아 기획에 필요한 데이터와 조언을 얻기도 어려웠고 데이터 엔지니어와 사이언티스트 같은 전문 인력과 인프라를 유지할 만큼 여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또 책임자들과 실무자들은 현업에 집중하기에도 부족했으며, 데이터 활용을 위한 자기개발에도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내부에서 안 되면 외부에서라도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대형 유통 플랫폼들은 판매 데이터와 사용자 성향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판매한 상품의 사용자 리뷰도 얻기 어려웠고 상호 성장을 위한 밑거름인 데이터의 중요성과 활용성을 설명하고 요청했지만 특정 기업에만 제공할 수 없다는 피드백만 받았다.

데이터가 없는 기획과 의사결정은 실무자와 의사결정권자 모두가 자심감 결여와 판단 보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B2C 기업에 필요한 사용자의 취향과 판매 결과, 소비 예측 및 마케팅에 필요한 잠재적 고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등 판매와 마케팅,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주는 B2C 중소기업 맞춤형 데이터 분석 툴이 절실히 필요했다.

2019년부터 이러한 갈증이 B2C 분야에서 보석이 될 원석과 같은 데이터를 발굴하여 보석으로 만들어내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하게 했다.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인프라가 없는 중소기업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2020년 3월 금융 분야에서 시작된 마이데이터를 전 분야로 확대하겠다는 정책과 데이터 3법 개정으로 데이터 가공 및 판매에 대한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졌다. 이 소식을 듣고 때가 되었다 판단되어 대표직을 박차고 나와 창업에 나섰다.

유통·이커머스 분야의 마이데이터는 중소기업에도 데이터 비즈니스에 대한 길을 열어주기 충분해 보였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직접 사용자의 마이데이터를 모아 필요한 데이터와 결합한다면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 리포트와 DMP(Data Management Platform)를 통해 고객에 대한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2022년 3월 마이데이터 기반의 개인화 맞춤 쇼핑정보 서비스 ‘쇼핑코디’를 론칭했다. 사용자의 쇼핑정보와 포인트를 한군데서 편리하게 활용하고 내 구매 패턴과 원하는 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개인화된 정보를 직접 수집하여 관련된 데이터와 결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러한 데이터와 자체 DMP를 통해 데이터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고, 기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만들어 다양한 기업과 제휴 및 협업을 통해 검증하면서 B2C 분야에서 마이데이터로서는 최초와 최고의 기업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최지희 시스코코리아 대표 -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의 약속


돌아보면 2022년 8월, 115년 만의 폭우로 발생했던 강남과 서초의 침수 사건이 개인적으로 참 황당했다. 당시 나는 삼성동 시스코코리아 사무실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6시간 만에 극적으로 도착했지만, 경기권에 사는 직원들은 새벽에 귀가하거나 아예 귀가를 포기하기도 했다. 바로 직후인 9월에는 태풍 힌남노가 다시 한번 포항 지역을 강타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기록적인 호우가 쏟아졌고 유럽은 가뭄과 폭염에 시달렸다. 유례없는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한 한 해였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에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먼저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짧은 거리는 자동차 대신 걸어가기, 육식 섭취 줄이기 등을 생각해봤다. 육식 섭취와 환경보호가 어떤 관계인지 의문을 품는 이도 있겠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19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축 220억 마리가 전체 온실가스의 18%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13%)보다 많은 수치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4인 가족이 1주일에 하루만 소고기를 먹지 않아도 3개월 동안 자동차를 타지 않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소고기 섭취를 줄이면 그만큼의 온실가스가 줄어들어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보호에 동참할 수 있다. 시스코코리아는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을 구현했다. 전력과 온도 조절 시스템으로 에너지를 절감하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실시해 직원들의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더불어 플라스틱 사용을 제로화하는 노력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시스코가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끊임없이 펼쳐오고 있는 일련의 활동과도 맞닿아 있다. 시스코는 2040년까지 제품 사용, 운영 및 공급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화, 즉 네트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제품 설계 단계부터 공급 과정까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가속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구글 국내 검색어 1위가 ‘기후변화’라는 기사를 읽으며 환경보호에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체감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개인, 지속가능한 기업, 지속가능한 지구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시스코는 ‘Bridge to Possible’이란 슬로건 아래 IT 기술로 전 세계를 연결하고 기업과 기업,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새해에 육식을 줄이려고 한다. 나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건강한 지구,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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