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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리더 32인의 신년 에세이] 약속(7) 

 

장진원 기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정승우 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 이사장 - 하루하루의 최선과 문화보국


2023년 계묘년을 맞아 새 달력을 펼쳐 드니 2011년 신묘년 새해의 설렘과 다짐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2011년, 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 유중아트센터의 설립을 추진할 당시 주변의 우려가 매우 컸다. 사실 나는 문화예술 분야의 전공자가 아닌 법학 전공자였고, 30대 초반의 젊은 패기만으로 무작정 시작하기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손실과 엄청난 액수의 운영 자금 조달도 홀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수준이었다.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결심할 당시 나 자신과 한 약속이 있다.

“항상 최선을 다하자.”

특정 분야에 능숙하거나 경험이 풍부하면 오히려 자만감에 빠지거나 나태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초행길일 때 오히려 안전운행을 하듯이, 비전공자이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기 위해 매 순간 최선과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뛰어왔다.

순간순간의 최선, 하루하루의 최선이 12년간 모여 ‘유중’이라는 캔버스를 가득 채우게 되니 어느덧 선명한 사명감이 생겼다.

한국문화예술의 체계화·전문화·국제화를 통한 문화보국(文化保國)을 위해 다음 12년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나와의 약속과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희망차게 계묘년을 시작해본다. 아울러, 현재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경기침체로 인해 다소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최선이 모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새해를 꿈꾸어본다.

이재한 한라식품 대표 - 기업가의 약속에는 값이 있다


‘식품업체 대표는 1년 내내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없다’라는 업계 정설이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긴장 상태로 한 해를 무사히 보냈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한라식품은 ‘참치액’ 한 가지로 30여 년을 성장해왔고 지금은 ‘원조 기업’, ‘대기업이 따라 하는 기업’이라는 기분 좋은 별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동안의 시간과 현재, 앞으로도 계속될 24시간 내내 긴장을 이어가는 삶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기업 대표라면 특히, 식품업체 대표라면 누구나 공감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앞을 향해 정진한다. 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기업가의 약속은 하나하나마다 반드시 그 값이 매겨져 있다. 그걸 가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 값을 위해 긴장 속에 더 큰 긴장을 동반하며 위태롭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타협하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한라식품도 매년 새로운 약속을 하고 지키며 이 자리까지 왔다.

첫째, 모든 재료는 원재료에서 직접 추출할 것. 대부분의 액상 조미료가 여러 가지 액상 재료를 섞어 만들지만 우리는 30여 년 전 시작했을 때와 똑같이 원재료에서 직접 추출과 배합을 하겠다는 약속을 매년 지켜내고 있다. 둘째, 가격과 타협하지 않을 것. 기업의 기본 목표인 이윤추구를 위해 가격과 타협하게 되면 첫 번째 약속인 원재료에서부터 무너지게 된다. 중소기업이 고객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즉, 제품의 퀄리티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셋째, ‘원조’의 품위를 지킬 것. 참치액을 비롯한 액상 조미료 시장이 커지면서 우리의 노하우를 탐내는 대기업들의 달콤한 유혹이 참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액상 조미료인 참치액을 선보인 원조 기업의 품위를 지키는 일 또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기업가의 약속은 뱉는 순간 값이 매겨진다. 그걸 지키지 못했을 때 감수해야 할 값과 그걸 지켜냈을 때의 보상이 반드시 따른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이 따라 하는 기업’, ‘원조 기업’이라는 타이틀로 나름의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새로운 약속을 준비하고 있다. 30여 년 동안 액상 조미료 시장에서는 명실상부 ‘원조 기업’임을 인정받아왔지만, 올해는 한 발 더 나아가 조미료 시장으로 카테고리를 넓혀볼 계획이다. 재료의 다양화, 텍스처의 다양화는 물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용도의 다양화까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을 준비 중이다. 2023년은 그 값을 반드시 ‘보상의 값’으로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송재우 송지오옴므 대표 - 새롭고 아름다운 약속


송지오 인터내셔널은 매해 ‘새로움’을 약속한다. 새로운 사업을 통해 회사를 확장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고객과 팬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고자 하며, 새로운 비전과 기술로 더 아름다운 미래를 그린다. 매해 한결같이, 그리고 진실되게 모두에게 하는 이 새로움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갈망하며 노력한다. 특히 일반 경영인이 아닌 우리 하우스와 브랜드들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 올해도 어김없이 하는 이 새로움에 대한 약속은 창의성을 가장 중요하시는 디자이너라는 내 직업의 본분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서 단순히 한 시대의 흐름이나 트렌드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새로움’을 만들어 시대를 앞서가고자 고심하고 노력한다.

2023년 30주년을 맞이하는 송지오는 우리 회사와 브랜드가 새로운 도약을 하는 데 터닝 포인트가 될 새로운 도전들을 약속한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한국의 패션 문화를 대표해온 송지오라는 브랜드의 글로벌화를 목표로 하며, 남성들만의 브랜드로 인식되어 온 우리 브랜드를 남녀노소 모두에게 선사할 수 있도록 브랜드 다각화를 약속한다.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약속해야 하는 대상이 매해 늘어나지만, 그 약속을 한결같은 마음과 노력으로 지키는 것이 가장 보람되며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하우스가 30년간 지켜온 이 약속을 앞으로의 30년을 넘어 1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지키기 위해 나의 모든 순간을 바치려 한다.

이람 TBT 대표 - 기다리고 함께해야 할 약속의 시간들 앞에서


24절기에 비유하자면 스타트업계는 지금 동지에서 소한, 대한을 거쳐 입춘까지 이어지는 혹한기를 보내고 있다. 지속되는 추위는 스타트업에 아주 혹독한 시험을 요구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체력을 비축하며 추위를 견뎌내는 과정에서 그간의 실력과 체력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시련의 계절이기도 하다.

흔히 스타트업 투자를 자본의 논리로만 말하지만, 사실 스타트업 투자는 성장을 담보로 한 서로 간의 약속이며, 어쩌면 결혼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벤처캐피털은 투자한 포트폴리오 스타트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스타트업들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전력 질주를 한다. 하지만 아직 기업으로서의 시간과 경험이 덜 쌓였기 때문에 길을 잃을 때도 있고, 때로는 아주 뼈아픈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그들에게 등 돌리고 질책하기보다 무너지지 않고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투자자와 스타트업들이 함께하기로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계에 혹한의 계절이 닥치고 체력이 바닥나자 뜨겁게 응원하던 여론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표변하기도 한다. 수십 년 업력을 가진 대기업조차 야심 차게 내놓은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선택을 받지 못해 엎어지거나 사라지기도 하고, 수천억이 공중분해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스타트업들의 약진에 추월을 당하는 일마저 비일비재하다. 대규모 기업이라 해도 자본잠식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론은 대기업의 실수와 과오에는 비교적 관대하면서도 스타트업에는 더 큰 비판과 왜곡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아직 기업으로서의 축적과 내공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표변한 여론에 상처를 입어 용기를 잃고 무력해지기도 한다. 잘못에 대한 비판은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뼈를 깎는 연단의 시간을 보내는 시기에는 여론이 조금만 더 묵묵히 기다려주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함께해준다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데 큰 용기가 될 것이다. 이에 힘입어 스타트업들이 견디는 혹한은 그들이 단단해지기 위한 축적의 시간이 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함께해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이제 초목에서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함께해주기를 기도처럼 되뇌어본다. 그리고 그들이 겨울을 견디어 더욱 단단하고 내실 있는 기업으로 진화한다면 다시 꽃피는 봄이 올 것이라고 감히 약속하고 싶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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