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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 

‘시니어 패스트패션’으로 일본 상륙 

조득진 선임기자
시니어 패스트패션(SPA) 시장을 개척해온 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가 최근 일본 투자사와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일본에 상륙했다. 직접 현지 홈쇼핑 방송에 출연해 1시간 동안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K-패션 브랜드의 일본 시장 라이선스 진출 첫 사례로 꼽힌다.

▎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는 오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그는 “이번 일본 시장 라이선스 수출이 K-패션 해외 진출의 새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투자자들과 홈쇼핑 측에선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진행해달라고 했지만 우리 ‘몬테밀라노’ 이름이 걸린 방송인데 그럴 수 있나요? 열심히 했죠. 첫 번째 방송은 목표 대비 115% 달성, 두 번째 방송은 130%가 넘었어요. 홈쇼핑 방송 현장에 환호성이 터졌죠. K-패션이 일본 시장에 라이선스로 처음 진출했다는 의미가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 전역에 한국어가 1시간 동안 전파를 탔다는 것에 묘한 자부심을 느꼈어요.”

엊그제(6월 11일) 방송의 흥분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6월 중순 만난 오서희 몬테밀라노 대표는 살짝 들뜬 모습이었다. 몬테밀라노는 지난 2월 일본 투자사에 브랜드를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후 5월과 6월 오 대표는 직접 일본 QVC 홈쇼핑에 출연해 생방송으로 일본 현지 기업이 제작한 몬테밀라노 제품을 소개했다. 1·2차 방송에서 모두 13개 제품을 소개했는데 오 대표 본인도 옷 몇 벌을 갈아입으며 시청자에게 어필했다. QVC 홈쇼핑에 한국인이 출연해 한국어로 제품을 소개한 것은 2016년 배우 최지우가 참존 화장품 모델로 나온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몬테밀라노는 시니어를 포커스로 한 미시 캐주얼브랜드다. 주로 패스트패션(SPA)을 선보이는데 화려한 컬러와 패턴, 합리적인 가격, 시즌제를 파괴한 전략으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탑텐·유니클로·자라·H&M 등이 젊은 층에 인기인 것에 비유해 몬테밀라노는 ‘엄마들의 SPA’로 불린다. 미국에서 서양화 전공, 미스코리아 댈러스 진, 프랑스 브랜드 레오나드 MD를 거쳐 대형 고깃집 운영까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끝에 2001년 창업에 나선 오 대표의 히스토리는 패션계엔 잘 알려져 있다.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몬테밀라노 매장에서 만난 오 대표는 “몬테밀라노가 시니어 패션 시장에서 20년 넘도록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이 아닌 ‘행복’을 팔았기 때문”이라며 “합리적인 가격은 기본이고 우리는 시니어 골프대회, 시니어 패션쇼, 찾아가는 미술관 등 영감을 주고 감동을 공유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일본 시장 진출도 이런 브랜드파워를 토대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오 대표는 “화장품, 패션 액세서리 등 협업 범위를 넓혀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진출 준비 기업에 새 이정표 제시


▎오서희 대표는 직접 일본 QVC 홈쇼핑에 출연해 제품을 소개했다. 6월 11일에 진행된 2차 방송 장면. / 사진:몬테밀라노
몬테밀라노는 이탈리아어로, 산을 뜻하는 ‘몬테’와 이탈리아의 패션 도시 ‘밀라노’에서 따온 말이다. 전 세계 패션계가 주목하는 ‘패션의 산’과 같은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오서희 대표의 포부가 담겼다.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프린트와 컬러감의 상품을 매주 2회 신상품으로 입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비슷한 브랜드가 탄생하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콘셉트를 선보이며 시니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이번 일본 진출은 피앤피컴바인즈가 연결했다. 일본 QVC 홈쇼핑에서 한국의 시니어 패션 아이템을 찾자 몬테밀라노를 추천한 것. 그러나 최종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오 대표는 지난해 9월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곤 QVC 담당 본부장을 만나 트렁크에 가득 채워간 옷을 모두 펼쳐놓았다. 오 대표는 “인생과 사업 모두 타이밍이 중요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무대뽀 정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튿날 QVC에서 연락이 왔다. 방송 일정을 알려주며 오 대표의 출연 가능 여부를 물었다. 물론 ‘오케이’였다.

일본 홈쇼핑 QVC.JP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본사를 둔 QVC의 아시아 지사다. 2000년 6월 QVC UK홀딩스와 일본 미쓰이 상사가 조인트벤처를 통해 합작 설립했는데 2004년 5월 일본 최초로 365일 24시간 홈쇼핑 생방송을 개시했다. 연간 이용 고객 약 150만 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판매 중 95%가 재구매를 통해 이뤄질 정도로 충성도가 강하다. 사용 고객당 연간 평균 22개 상품을 구매하며, 지난해 매출은 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번 몬테밀라노의 일본 진출은 라이선스 계약으로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인정받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K-패션의 새로운 해외시장 진출 사례라는 평가다. 몬테밀라노와 일본 홈쇼핑 QVC의 계약 기간은 1년으로, 러닝개런티는 6%대다. 라이선스 범위는 몬테밀라노의 승인을 받아서 진행하며, 일본 시장 특성상 라이선스 계약은 이변이 없는 한 리뉴얼된다. 계약을 주선한 박문희 피앤피컴바인즈 대표는 지난 2월 사업설명회에서 “몬테밀라노와 QVC 간 라이선스 계약은 한국서 1000억원 이상 하는 브랜드로열티 수준이다. 아이돌을 좋아하고 4050연령대인 일본 여성에게 K-패션을 입히고자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K-팝, K-드라마, K-코스메틱이 각광받고 있지만 K-패션은 조용한 분위기. 이 때문에 패션업계에선 이번 몬테밀라노의 라이선스 수출을 눈여겨보고 있다. 오 대표는 “QVC 홈쇼핑에 한국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몬테밀라노 관이 생겼는데 덕분에 두 번째 방송을 앞두고 고객들의 선주문이 많았다”며 “일본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에 홈쇼핑과 연계한 이번 라이선스 수출이 새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방송은 9월에 진행한다.

몬테밀라노 브랜드의 일본 진출은 계속된다. 8월 30일부터 사흘 동안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열리는 드럭스토어 쇼에 한솔생명과학이 몬테밀라노 뷰티 라인 27종을 들고 참가하는 것. 한솔생명과학은 올리브영 매장에 많은 제품을 선보인 화장품 전문기업이다. 행사장에서는 QVC 홈쇼핑 방송분을 틀어 몬테밀라노 브랜드 효과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오 대표는 “우리는 다양한 협업으로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데 더욱 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차례 큰 시련 후 사업 콘셉트를 잡다


▎오서희 대표는 몬테밀라노 브랜드를 앞세워 시니어 패션쇼, 시니어 골프대회, 찾아가는 미술관 등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사진:몬테밀라노
오 대표의 이력은 몬테밀라노 제품만큼이나 컬러풀하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199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해 ‘댈러스 진’에 뽑히기도 했다. 졸업 후 한국으로 와서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브랜드 ‘아이스버그’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레오나드’에서 상품기획(MD)팀장을 맡았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는 그의 말처럼 진로는 삽시간에 바뀌어 친언니가 경영하던 서울 강북 최대 규모의 고깃집 운영을 맡기도 했다.

오 대표는 2001년 창업에 나섰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이지만 다양한 경험은 그대로 창업 인프라가 됐다. 미술을 전공하며 컬러를 익혔고, 명품 회사에서 브랜드 가치를 배웠다. 고깃집 운영에서는 손님 응대와 직원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으로 ‘쇼’의 효능도 보았다. 오 대표는 “사업을 하는데 이것저것 다 떼면 내 돈은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몬테밀라노의 주요 타깃은 4050 여성이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실용성에 더 무게 중심을 둔 옷을 제작해 판매한다. 엄마 세대가 선택하기 쉽도록 세탁이 간편한 원단으로 만든다. 오 대표는 “MD로 일했던 레오나드는 독창적인 플라워 프린팅이 아름다운 세계적 브랜드지만 명품이라 세탁이 까다로웠다. 그 컬러감을 살리면서도 물빨래할 수 있는 프린팅 옷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로 창업했다”고 말했다.

한 차례 큰 시련은 지금의 몬테밀라노 콘셉트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2003년 불경기로 사업 2년 만에 6개 매장을 모두 정리하면서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임시매장을 얻어 ‘눈물의 고별전’에 나선 것. 기존 가격 대비 최대 90%까지 할인해 팔았더니 순식간에 제품이 동났다. 닷새 동안 3500만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오 대표는 “그때 ‘가격은 손님이 정하는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후 몬테밀라노는 백화점 유통을 하면서도 전체 아이템의 평균 가격이 5만원을 넘지 않도록 전략을 수정했다. SS와 FW로 구분했던 전통적인 시즌 기획도 파격적인 주 단위 회전으로 전환했다. 화려한 색감과 프린팅이 눈길을 사로잡고, 가격 부담이 덜어지자 고객들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시니어 전문 SPA 브랜드에 집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현재 몬테밀라노 제품의 기획과 디자인은 본사와 에이전트들의 협력으로 진행한다. 제작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문을 닫은 중국 공장 대신 국내 에이전트에 맡겼다. 판매는 몬테밀라노 역할이다. 브랜드를 앞세워 많은 디자인업체와 협업하는 것이다.

몬테밀라노는 전국 유명 백화점 등 50여 개 매장에서 200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지만 최근 몇 해 동안 매장이 절반 규모로 줄었고 매출 역시 좋지 않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으로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오프라인 매장 위주라 코로나 팬데믹 영향을 크게 받은 탓이다. 온라인 채널 확장은 오 대표의 오랜 숙제다.

브랜드는 곧 신앙, 영감과 감동 줘야

오 대표와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파워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몬테밀라노의 오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외에도 화가, 패션칼럼니스트, 시니어 패션쇼 기획자, 대학원생 등 하는 일이 다양하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시민 참여형 시니어 패션쇼의 시작에는 오 대표가 있다. 2018 강남패션페스티벌에서 국내 최초로 시니어 모델 패션쇼를 진행한 그는 이후 해마다 다양한 지역, 행사장에서 시니어 모델을 무대에 세우고 있다. 시니어 골프대회, 찾아가는 미술관, 찾아가는 패션쇼도 진행 중이다. 항상 ‘몬테밀라노’ 브랜드를 앞세우는 것은 물론이다.

뒤늦게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엔 창작과 전시에도 적극적이다. 꽃과 나무, 과일, 숲, 연못 등을 원색에 가까운 색채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한다. 오 대표는 “아티스트란 눈에 보이는 작품으로 돈을 버는 일을 넘어, 꿈을 팔고 창조적인 시각을 제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림을 사는 게 아니라 꿈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브랜드는 하나의 신앙과 같다. 신앙이 되게끔 계속 선보이고 강조해야 브랜드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업다각화도 결국 브랜드파워에서 나오죠. 그렇다고 장사치가 되면 안 돼요. 브랜드는 궁극적으로 상품을 넘어서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공유해야 합니다.” 몬테밀라노가 다양한 협업으로 시장을 넓혀갈 수 있는 이유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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