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이보형의 비시장 전략 경영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제3의 눈 

기업이 인터넷에서 숨을 곳은 이제 없다. 비윤리적이거나 비사회적인 행위는 곧바로 폭로된다. 기업 스스로 이슈 해결을 위한 주도자로 나서는 게 더 현명하다.

▎영국 석유회사 BP의 스페인 정유시설. BP가 처음 시도한 탄소가격제는 국제 탄소배출권 제도 확립의 출발이 됐다. / 사진:중앙포토
앞서 두 번의 칼럼에서 기업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비시장 전략 경영을 제시했다. 특히 기업을 둘러싼 변화된 환경에 대처하려면 경영자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호에는 경영자가 왜 변화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주목할 점은 기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시장과 비시장 영역으로 나뉘는데, 두 영역 모두 기업이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나아가 두 영역이 서로 작용하는 범위와 깊이가 복잡해지고 역동적으로 변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기업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비시장 환경이 시장의 경쟁 조건과 비용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시장과 중층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다양한 기업 환경 변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첫째, 시장경쟁 격화로 인한 비시장 영역의 부상을 들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를 혁신할 수 있는 기술과 새로운 마케팅·영업 등 경영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지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생산·상품·서비스 등에서 경쟁적 우위를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시장전략에 관한 논의의 핵심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우위 유지와 확대다. 그러나 산업 내에서 시장전략은 우수 사례를 중심으로 수렴되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 경쟁우위는 단기적 효과에 그친다. 그 결과 거대 기업들에 대한 도전은 시장 내 경쟁자로부터 유발되기보다는 주로 외부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아졌다. 거대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는 있으나 비시장 영역인 외부 환경은 마음대로 지배하고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장 영역뿐만 아니라 비시장 영역을 성공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가에 경영진의 성과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비시장 외부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구화되는 과정에서 시장 실패와 그로 인한 외부불경제(어떤 경제행위가 타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주었으나 시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는 체제가 확대하는 만큼 비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효과적으로 치유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외부효과가 정보화에 따라 빠르게 확산되면서 비시장 외부 환경은 기업과 시장에 과거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국제화, 규제 증가, 사회의 정치화, 정보통신 기술 발달, 기업책임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기업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돌발 현상은 아마도 사회의 정치화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회 분야에서 NGO 등 민간단체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들은 사적인 경제주체인 기업의 행태를 정부 조치나 입법 등 공적인 정치를 통해 제어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사회적 압력과 기업에 대한 위협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일으킨다. 이를 사적 정치라고 한다.

사적 정치의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면, 나이키 신발을 생산하는 아시아 지역 공장의 열악한 근로조건, 열대우림 파괴를 수반하는 개발사업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시티그룹, 네슬레가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아동노동을 포함해 열악한 조건 아래 생산된 코코아를 원료로 사용한 사실 등이 있다. 민간단체들은 이런 현실을 공개하고 국제 운동을 전개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쳤다.

갈수록 힘 세지는 사적 정치

우리나라 기업을 대상으로 이러한 사적 정치 운동이 조직된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 그린피스는 국내 종합상사가 2014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야자기름을 생산하기 위한 농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의혹을 여론화했다. 국제환경단체인 마이티어스와 섬오브어스도 동일한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인도네시아 기업과 합작투자를 계획한 국내 대기업에 압박을 가했고, 이 기업은 결국 합작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그린피스는 우리나라 원양어선이 아프리카, 남미 어장에서 어로하면서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불법 어업을 했다는 점에 대해, 국내 원양어업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대신 국제사회에 이슈를 부각했다. 한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리나라에 제재를 가할 의사를 밝히자, 정부는 2015년 원양어업에 관한 법률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적 정치를 가능하게 한 밑바탕에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놓여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사회·정치적 문제의 확산과 네트워크 조직은 실제 여론과 정책 결정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인터넷과 SNS 등 정보유통 채널이 발전함에 따라 특정 주제에 관심 있는 적극적 시민과 NGO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기업은 이제 인터넷에서 숨을 곳이 없다. 비윤리적이거나 비사회적인 행위는 곧바로 폭로된다. 한마디로 기업은 대중 앞에서 거의 발가벗은 상태가 되었다. 우리 사회도 최근 카카오택시 관련 논의를 포함해 기업과 관련한 쟁점이 사회·정치적 수준으로 비화되는 여러 사례를 목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러한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필자가 제시한 비시장 전략 경영은 바로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해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기업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사회·정치적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을 점검하고 이에 관한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론 기업은 공공정책을 다루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민간기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정된 자원 범위 안에서 시장 전략과 비시장 전략을 결합해 통합된 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시장 전략을 보완하고 비시장 외부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다음은 선제적인 쟁점 관리다. 비시장 전략을 수행할 때 기업을 둘러싼 쟁점 형성이 예상되거나, 새로운 트렌드가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선제적으로 이를 관리해나가야 한다. 쟁점 관리의 대표적 두 방식은 예상 이슈에 대한 경감 활동과 예방접종 활동이다. 쟁점에 대한 경감 활동은 사회적 쟁점이 되기 전에 기업 스스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서 이슈의 주도자로 나서는 방법이다. 또는 이슈에 대비한 활동을 기획해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공고히 하는 활동 등이다. 영국 석유회사 BP가 탄소가격제를 도입해 결국 탄소배출권이 제도화된 케이스가 전자에 속한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에 나선 석유협회는 후자를 대표하는 케이스다. 쟁점에 대한 예방접종은 발생 가능한 이슈가 새로운 이슈가 되어 온전히 기업의 책임이 되지 않게 사전에 정보 프레임을 구성하는 활동이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기업도 비시장 외부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시장과 비시장의 중첩적 영향이 커진 만큼 비시장 환경 속에서 시장을 보는 제3의 눈을 가져야 한다.

※ 이보형 - 리스크 진단과 대응 전략 개발, 이슈 및 위기관리 컨설팅, 퍼블릭 어페어즈 분야 전문가이자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지난 22년 동안 공공과 민간 영역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문성을 쌓아왔다. 2002년 국내 최초로 퍼블릭 어페어즈 서비스를 론칭해 수백 건의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마콜과 옥스퍼드대학이 공동으로 개발한 비시장 전략 경영 컨설팅에 기반한 시스템스 퍼블릭 어페어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407호 (2024.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