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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호 넥슨 민트로켓 본부장 

한국산 비주류 게임의 반란 

장진원 기자
한국은 대규모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대세인 나라다. 수만,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참여하는 전투와 경쟁에 익숙하다. 황재호 넥슨 민트로켓 본부장은 국내에서 비주류로 인식되는 싱글 패키지 장르 게임으로 글로벌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스타 기획자의 등장이다.

▎황재호 본부장이 제작한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는 비주류 싱글 패키지 장르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국산 게임이다.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게임 강국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게임산업의 국가별 점유율은 미국(22.8%), 중국(22.4%), 일본(9.6%)에 이어 한국(7.8%)이 4위다. 다만 이 같은 경쟁력이 특정 분야에 편중돼 있다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PC와 스마트폰을 주요 플랫폼을 이용하는 온라인·모바일 게임에 비해 패키지 게임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모바일 게임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무료게임이 대다수다. [메이플스토리], [리니지], [배틀그라운드] 같은 히트작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게임의 주 수익원은 유료 아이템 판매다. 게임 자체는 무료로 즐기되 추가 과금이 이뤄져야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패키지 게임은 주로 게임 유통 채널에서 건당 유료로 판매된다. 완결된 게임 한 편을 구입하면 추가 과금 없이 즐길 수 있다.

온라인·모바일 게임과 패키지 게임은 주요 시장도 확연히 구분된다. 미국(북미)과 유럽 등 서구에선 패키지 게임이 주류인 데 반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은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주류다. 국내 게임사들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개발과 영업에 치중하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의 게임 수출국은 중국이 30.1%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그 뒤를 홍콩, 대만, 일본, 동남아 등이 잇고 있다. 글로벌 게임 시장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북미와 유럽으로의 수출 비중은 각각 11.5%, 9.8%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국내외 게임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터졌다. 넥슨의 서브 브랜드인 ‘민트로켓’이 펴낸 싱글 패키지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Dave The Diver, 이하 데이브)]가 유례 없는 글로벌 메가히트를 기록하면서다. [데이브]는 국내 게임 개발사가 좀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싱글 패키지 게임이다. 완결된 게임 한 편을 유저 혼자 즐기는 방식을 말한다. 장르도 재미있다. 현란한 무기가 난무하는 전투 같은 장면은 없다. 대신 뚱보 다이버(데이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낮에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밤에는 잡은 물고기로 초밥집을 운영한다.

‘하이브리드 해양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장르의 패키지 게임에 전 세계 유저들의 찬사가 쏟아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3년 6월 28일, 세계 최대 온라인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 [데이브]가 출시된 첫날, 글로벌 유료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이어 닌텐도 스위치와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이 잇따라 출시되며 세계 주요 시장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올 6월 말 기준으론 한국 싱글 패키지 게임 최초로 전 세계 누적 판매 400만 장을 돌파했다. 이로써 [데이브]는 비주류 장르인 싱글 패키지 게임으로 세계 최대 게임시장인 서구권에서 성공을 거둔 유일무이한 국산 게임이 됐다.

개발 인력 5명으로 시작한 메가 히트작


[데이브]의 유례 없는 흥행을 이끌어낸 이는 황재호 민트로켓 본부장이다. 민트로켓은 넥슨이 지난 2022년 출범한 서브 브랜드다. 대규모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기존 MMORPG와 달리 참신한 아이디어로 오로지 재미있는 게임만 개발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아트 등 게임 개발과 제작에 필요한 소수의 인력이 투입돼 재미와 창의, 참신함을 잡겠다는 전략을 실행 중이다. 민트로켓은 이번 [데이브]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룹 내 본부로 격상됐다. 민트로켓 안에서 데이브팀을 이끌던 황 디렉터도 본부장을 맡아 민트로켓 전체를 책임지는 수장 자리에 올랐다.

황 본부장은 대학 재학 시절인 2006년에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넥슨에 입사했다. 마침 중국 시장을 탐방할 기회가 생겼는데, 중국어 전공을 살린 덕에 정식 입사 제안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슈퍼마리오]를 즐기던 덕후에게 더없이 반가운 제안이었다.

“당시 중국에선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엄청난 인기였어요. 어릴 적 일본에 살아서 한국 게임에 대해 잘 몰랐는데, 해외에서 한국 게임이 잘되는 걸 보곤 큰 감명을 받았죠. 넥슨에 합류한 결정적 이유예요.”

황 본부장은 정식 입사 후 중국과 대만, 베트남, 미국(넥슨아메리카) 등에서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했다. 한국에서 개발돼 출시한 게임을 현지에 맞게 미세 조정하는 작업이다. 지금은 언어만 다를 뿐 전반적인 게임 환경이 모두 동일하지만, 당시만 해도 서비스 내용, 아이템, 결제수단 등이 나라마다 제각각이어서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 등이 꼭 필요했다. 넥슨아메리카에서 [마비노기 영웅전] PM으로 일하던 황 본부장은 SNS 회사를 창업해 2~3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수익모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다가 2016년 재입사를 결심했다.

“그때도 회사의 배려가 있었어요. 넥슨에서 ‘다시 게임을 만들 기회를 주고 싶다’며 단, 5명이라는 최소 인원이면 좋겠다는 제안이었죠. 당시 만든 첫 작품이 [이블팩토리]였어요. 제주도에 있는 자회사 네오플에서 작업했는데, 한 달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죠.”

기획자로 나선 황 본부장, 프로그래머 2명, 아트 2명으로 구성된 초소형 팀은 이전까지 넥슨의 개발 환경에선 분명 낯선 구조였다. 모바일게임의 대표적 수익모델인 과금이 없어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유저와 업계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블팩토리]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회사는 ‘스튜디오42’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개발팀을 새로 꾸렸다. 팀장이자 기획자로 나선 황 본부장은 ‘고질라’ IP를 활용한 두 번째 게임에 이어 [데이브]를 연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넥슨 그룹 차원의 조직구조 변경이 이어졌고, [데이브] 프로젝트도 중단됐다.

“사실 한번 접힌 게임은 그걸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데이브]는 1년 뒤 PC용 싱글 패키지 게임으로 부활했어요. 무엇보다 첫 사내 테스트 당시 평가가 너무 좋았어요. 넥슨은 원래부터 대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성장한 회사예요. 이제까지 보지 못한 방식, 기존 유행과는 완전히 다른 문법, 시장성보다는 철저히 재미에 포커싱한 덕에 살아남았던 것 같아요.”

서구권서 유일한 비주류 장르 싱글 패키지 성공작

자칫 사장될 뻔했던 게임이 극적으로 부활해 써낸 성공스토리는 화려하다 못해 한국 게임사를 다시 쓰는 수준이 됐다. 6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400만 장 중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특히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 지역 매출이 전체의 약 48%를 차지한다. 비주류 장르의 한국산 싱글 패키지 게임이 서구권에서 거둔 유일한 성공 사례다.

해외 유저들의 평가도 한국 게임 중 역대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대 게임 리뷰 사이트인 메타크리틱(Metacritic)과 북미 지역 콘솔·PC게임 전문 리뷰 사이트 오픈크리틱(OpenCritic)에서 모두 90점 이상을 기록했다. 한국 게임 중 역대 최고 점수다. 특히 메타크리틱에서는 지난해 ‘머스트 플레이(반드시 해봐야 하는 게임)’ 배지를 획득하기도 했다. 역시 한국 게임으론 처음이다. 스팀에서는 올 6월 기준 9만8000여 명이 리뷰를 남겼고 최고 리뷰 평가(압도적 긍정)는 97%에 이른다.

전 세계 언론과 평단도 호평 일색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영국 가디언(The Guardian)과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등이 모두 [데이브]를 ‘2023년 올해 최고의 베스트 게임’으로 꼽았다. 이 밖에도 지난 4월에는 영국의 ‘BAFTA 게임 어워즈 2024’에서 ‘게임 디자인’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영국 영화·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BAFTA)에서 매년 주최하는 게임 분야 시상식으로, 한국 게임이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데이브]의 성공 요인을 기존에 볼 수 없던 참신함과 독창성에서 찾는다. 게임의 전체적인 내용과 주제, 장르, 캐릭터, 스토리, 구조 등을 총괄한 황 본부장의 역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싱글 패키지 게임은 한 캐릭터, 즉 주인공의 완결된 이야기가 중요해요. 영화 같은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장르죠. 제목부터 데이브라는 다이버의 이야기임을 드러내죠. 개인적으로 이런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대규모 온라인게임에서는 자기 캐릭터를 구축하기 어렵죠. 게임을 하면서도 유저들이 영화를 보듯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라 생각했어요.”

화려하고 정교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요즘 게임과 달리 2D 도트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픽셀아트도 인기를 끌었다. 황 본부장은 이를 “투박함에서 오는 상상력과 몰입감”이라 해석했다. 실제로 팬들이 그린 [데이브] 아트 작품들을 보면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기술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썼던 픽셀아트가 최근 들어선 특유의 매력으로 각광받게 됐다. 황 본부장은 “[데이브]가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다가가길 원했다”며 “우리의 의도가 정확히 들어맞은 것” 같다며 웃었다.

[데이브]는 민트로켓이라는 독립적 조직의 강점과 넥슨이라는 공룡의 장점이 합쳐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싱글 패키지 게임으로는 드물게 유저 친화적 개발·운영 방식을 택한 것이 대표적이다. 매년 10만 개가 넘는 신규 싱글 패키지 게임이 올라오는 스팀에선 오랫동안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데이브]는 개발 초기부터 체험판(얼리 액세스) 전략을 폈다.

“사실 경험이 없잖아요. 우리가 닌텐도도 아닌데 사람들이 원하는 걸 예측한 다음 완벽한 게임을 내놓을 수 있나?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얼리 액세스였어요. 보통 온라인게임이 많이 하는데, 미세한 밸런스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반면 싱글 게임은 신선함 때문에 잘 안 해요. 우린 이걸 8개월 동안 매일 다듬었습니다. 스토리를 추가하기보다는 게임 편의성을 높여달라는 유저들의 요청을 신속하게 반영하는 식이었어요. 유저 입장에선 ‘내가 말한 게 반영되네!’라며 충성도가 깊어지고, 게임의 완성도도 올라가는 거죠. 얼리 액세스가 끝난 후엔 이분들이 자발적인 홍보대사가 돼주셨어요.”

이런 전략은 정식 출시 전부터 유저는 물론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북미 지역에서 가장 큰 게임 전문매체인 IGN은 정식 출시 1주일 전에 평점 10점 만점에 9점을 줬다. 당시를 설명하던 황 본부장은 “정말 팀이 뒤집어진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디스코드’ 등 해외 유명 게임 커뮤니티에는 지금도 매일 들어가 답글을 남긴다. 황 본부장을 비롯한 모든 팀원이 노력한 결과다.

[데이브]의 성공을 민트로켓 전체의 성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황 본부장이 이제 막 맞닥뜨린 숙제다. 황 본부장을 이를 풀 키워드로 ‘체계화’를 꼽았다.

“우연한 성과도 분명 있고, 팀만의 고유한 능력치도 있을 거예요. 이걸 한 줄기로 체계화하는 게 본부의 역할이죠. 좋은 유산이 쌓인 경험들을 시스템으로 녹이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아야 해요. 해외 게임사들의 선진적인 개발 방식도 도입해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데이브]가 ‘원히트 원더(one-hit wonder)’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오래 살아남는 넥슨의 자랑스러운 IP로 확장하는 게 개인적인 희망이죠.”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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