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MZ세대가 ‘코리빙 하우스’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에서 느슨하게 연대하고 있다. 혼자인 듯, 함께 있는 듯한 코리빙 하우스는 셰어하우스와 구분되는 색다른 공간을 뜻한다. 공유 주거 스타트업 우주프로퍼티매니지먼트를 이끄는 김정현 대표와 함께 공유 주거 시장의 미래를 내다봤다.
▎김정현 우주 대표는 지난 2014년 ‘셀립’이란 코리빙 하우스 브랜드를 구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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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 수가 1000만 명을 넘었다. 지난 6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 1인가구(세대)는 1007만2151명으로, 전체 가구의 42%다. 이 중 2030세대는 3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어 60대 19%, 50대 16%, 40대 13% 순이다. MZ세대 1인가구 증가 추세는 갈수록 더 거세질 전망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MZ세대는 ‘나 혼자’ 살지 않는다. 혼자인 듯, 함께 있는 듯 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공유 주거시설은 한 주택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코리빙 하우스로 나뉜다. 외로운 이들은 셰어하우스보다 코리빙(co-living) 하우스를 선호하는 추세다. 코리빙 하우스는 함께(Cooperative)와 살다(Living)의 합성어로, 침실과 화장실을 비롯한 개인 공간은 분리돼 있으면서 세탁실, 주방·식당, 응접실 등은 함께 사용하는 공유 주거시설이다.2020년 무렵 SK D&D와 KT에스테이트 등 대기업 계열사가 코리빙 하우스 시장에 뛰어들기에 앞서, 공유 주거 스타트업 우주프로퍼티매니지먼트(이하 우주)는 이미 2014년 셀립이란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고 2017년부터 착공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코리빙 하우스 브랜드 이름은 셀립(Célib)으로 정했다. 김정현(38) 우주 대표는 “셀립은 프랑스어로 주체적으로 혼자서 즐겁고 재밌게 사는 사람을 뜻한다”며 “2018년 12월 24일 셀립 은평점의 첫 삽을 떴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 우주는 2020년 서울 종로에서 셀립 순라점(30실)을 오픈한 뒤 은평점(228실), 여의점(133실), 가산디지털단지점(391실) 등을 차례로 열었다.셀립 기획의도에 대해 묻자 김 대표는 “주거로서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1인가구의 자율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녹아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며 “다 같이 모여 소통하기에도 좋지만 거주자가 홀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내부 구조와 동선을 세심하게 구성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셀립의 주 거주자는 2030세대 직장인, 대학생, 프리랜서 등이며 여성이 66%를 차지한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46%)가 가장 많고 이어 30대(33%), 40대(11%), 50대 이상(5%) 순이다. 이른바 MZ세대의 ‘느슨한 연대’가 반영된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지난 7월 19일 서울 강남에 있는 우주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우주 창업 스토리와 공유 주거 시장 전망을 물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소비문화셀립의 객실 타입은 스튜디오 타입(원룸형)이 대부분이며 면적은 21~27.4㎡(약 6~8평)다. 객실 이외에 공유 공간은 영화감상실과 헬스장, 주방·식당, 응접실(라운지), 세탁실, 루프톱 테라스 등으로 구성된다. 청소 서비스도 제공된다. 또 스토리지와 홈퍼니싱을 포함한 구독 서비스도 있어 거주자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우주에 따르면 현재 지점 4곳의 평균 가동률은 약 95%다. 공실률이 약 5%인 셈이다. 김 대표는 “셀립 투어 후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약 60%에 달한다”고 덧붙였다.셀립 거주 비용은 1인가구의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다. 스튜디오 타입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5~70만원, 관리비 12~15만원, 커뮤니티 시설 사용비 5만원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최소 82~9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1인가구 다수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다. “1인가구 소득에 비해 주거 비용이 높게 책정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대표는 “일반 원룸에 비해 주거 비용이 다소 높은 건 인정한다”면서도 “동종 업계에서는 중하위권에 속하는 비용이다”라고 설명했다.이 같은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셀립을 찾는 이유는 뭘까. 셀립은 재계약률도 높은 편이다. 우주에 따르면 셀립 4곳의 평균 재계약률은 60~70%이다. 김 대표는 셀립의 수요가 높은 이유로 MZ세대의 소비관을 꼽았다. 그는 “코리빙 하우스는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거주자들이 선택하는 곳”이라며 “그들은 소비의 가치와 일상의 질적 측면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하지 않는 MZ세대의 성향이 반영됐다 볼 수 있다.또 김 대표는 셀립에서 거주하면 각종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헬스장과 카페 등 다양한 공유 공간을 이용하면 거주자는 건물 밖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며 “청소 서비스와 철저한 보안 시설도 셀립 거주의 이점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주는 셀립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24시간 상주하는 셀립 관리 매니저를 배치했다. 덕분에 거주자는 생활하면서 겪는 각종 불편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다. 셀립의 또 다른 장점을 묻자 김 대표는 영화감상실이나 게임룸 등 일부 공유 공간을 예약제로 운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공유공간이라고 해도 일부 공간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며 “예약제는 거주자가 원하는 시간에 쾌적하게 공유 공간을 이용하도록 돕는 필수적인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셀립 대부분은 코리빙 하우스이고 셰어하우스 타입(약 4.5%)은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셰어하우스 인기가 코리빙 하우스로 옮겨간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김 대표는 단호하게 “셰어하우스 수요는 2023년을 기점으로 반등하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셰어하우스를 찾는 발걸음이 줄었지만 최근 들어 국내 대학생과 외국인 유학생들이 다시 셰어하우스로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우주는 셀립 외에 셰어하우스 사업인 ‘우주’를 병행하고 있다.김 대표는 “셰어하우스는 아파트나 빌라 등 다(多)인 가구용 주거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모델로서 향후 시장은 커질 것”이라며 “서울·경기 지역으로 인구가 더욱 집중되면서 임대료가 상승할 경우, 셰어하우스 수요도 증가하리라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셰어하우스를 비롯한 공유 주거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우주는 시장의 붐이 일어나기에 앞서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 문제 해결하는 연쇄창업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셀립 은평점의 라운지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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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도였던 김 대표는 연이어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창업한 연쇄 창업가로 불린다. 그는 2010년부터 2013년 말까지 4년간 저소득 난청 노인을 위한 저가 보청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딜라이트를 운영했다. 김 대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을 막연히 구상하던 중 노인들의 보청기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며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 보청기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노인들을 돕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 대표는 대학 생활과 스타트업 운영을 병행할 수 없어 딜라이트를 매각했다.매각 후에도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발 벗고 나선 그의 도전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지난 2015년 김 대표는 슈바프재단의 ‘사회적기업가상 시상식(Social Entrepreneurship Award Ceremony)’에서 ‘올해의 공공부문 사회적기업가’로 선정됐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은 김 대표가 처음이다. 슈바프재단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다보스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와 배우자 힐데 슈바프가 사회적기업가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재단이다. 재단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사회적기업 성장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연쇄 창업가로서 예비 창업가와 초기 창업가를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사업에는 운이라는 영역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며 “운이 올 때까지, 시장이 열릴 때까지,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버티고 인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창업과 스타트업 운영, 사업 아이템 선정 등에 필요한 양질의 자료를 온라인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좋은 아티클과 콘텐트를 숙독해 창업 선배들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다.끝으로 셀립의 미래 전략을 물었다. 우주에 따르면 향후 코리빙 하우스에 다양한 콘텐트를 융합해 교육과 의료에 특화된 코리빙 상품을 내놓을 방침이다. 학생 기숙사와 시니어 하우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셀립이 한국에서 코리빙 하우스를 가장 잘 운영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셀립 성장세에 힘입어 내년까지 서울, 경기 남부 등에 4~5개 지점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