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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정신이 담긴 위스키 

 

폰 위버는 위스키 브랜드 잭 다니엘스의 원조 양조자인 노예 출신 니어리스트 그린을 기리고자 미국 위스키 브랜드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을 설립하고 10억 달러 규모의 제국을 일궜다. 그의 원대하면서도 남다른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 사진:PHOTOGRAPH BY JAMEL TOPPIN FOR FORBES
위스키가 유흥과 종교 사이의 무언가에 해당하는 테네시주 남부에서 폰 위버(47)는 약 1.85㎢ 면적의 양조장 겸 놀이공원을 둘러봤다. 위버가 7년 된 자신의 브랜드 엉클 니어리스트를 지원하기 위해 셸비빌에 지은 시설이다. 역사 탐방 걷기 코스, 시음 영역 4곳, 세계에서 가장 긴 바(158m), 야외 음악 공연장, 한때 마구간이었던 낡은 헛간, 바비큐 음식점, 마운틴듀와 구구 크러스터 등 테네시주 대표 간식을 파는 매점이 있다. 이는 모두 연간 30만 명이 위스키를 맛보러 방문하는 인근 잭 다니엘스와 경쟁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는 역사적인 우아함이 느껴진다. 설립자이자 CEO인 위버는 노예 출신으로 잭 다니엘스의 첫 양조장인이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니어리스트 그린을 기리기 위해 엉클 니어리스트를 설립했다. 위버는 그린과 그 이후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온전히 활용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세웠다.

위버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면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토지 소유는 흑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라며 역사적으로 우리는 임대를 많이 했지만 소유는 별로 하지 못했다. 남의 것을 만들고 홍보하는 일은 많이 했지만 우리의 것을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버는 자신의 것을 만들고 있다. 2017년 설립된 엉클 니어리스트는 2021년 이후 매출이 3배 증가했으며, 올해 매출은 1억 달러로 예상된다. 순이익률은 20%로 추정된다. 주류 조사 업체 IWSR 데이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엉클 니어리스트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미국 위스키 브랜드다. 이를 바탕으로 포브스는 이 회사의 가치를 낮게 잡아 11억 달러로 추산한다. 위버는 부동산을 포함해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자산 4억8000만 달러로 포브스 자수성가 여성 부자 순위에서 67위를 기록했다. 또 역사상 가장 매출이 높은 흑인 소유 기업이자 흑인 소유 주류 브랜드라는 영예도 차지했다.

이보다 인상적인 것은 위버가 엉글 니어리스트를 설립한 방식이다. 소유권에 대한 집념 때문에 위버는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를 피하고 수많은 개인투자자(정확히 163명, 1인 평균 50만 달러)에게 돈을 빌려 회사 운영권과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도록 거래를 구성했다. 지분을 2.3% 넘게 보유한 외부 투자자는 한 명도 없으며 직원(일부는 니어리스트 그린의 후손)은 3% 미만을 소유하고 있다. 이 탈중앙화된 모델 덕분에 위버가 통제를 유지할 수 있다. 위버는 엉클 니어리스트의 지분 40%를 보유하지만 남편 키스와 합쳐 의결권의 80%를 유지하고 있다. 또 회사는 은행 부채 1억6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위버가 기관투자자의 투자를 차단했지만,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굴하지 않았다. BDT & MST 상업은행을 소유한 억만장자 바이런 트로트는 개인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폰은 지속적으로 뛰어난 리더십, 장기적인 비전과 끈기를 보였다. 이는 모두 설립자의 성공에서 중요한 능력”이라고 트로트는 말했다.

위버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거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투자 은행가들은 계속해서 접촉해왔다. 저명한 식음료 부문 은행가인 골드만삭스의 제이슨 코퍼스미스는 많은 주류 브랜드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확장은 하지만 “서서히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위버의 브랜드는 오래 지속되고 있다. 위버는 테네시의 주요 대규모 토지 소유자 중 한 명이 됐다. 엉클 니어리스트 부지 외에도 위버는 키스와 함께 인근 1.47㎢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셸비빌에서 위버는 미국 은행 지점과 신문사 본사가 위치한 조지안 양식의 건물 등 도심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위버는 포브스 기자와 함께 곧 매물로 나올 3만5000㎡ 면적의 구 면직 공장을 둘러봤다. 이 공장은 인근에서 흑인이 노예해방선언 이후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다. 공장을 둘러보며 위버는 이곳에서 숙성 중인 술통, 병입 작업 라인, 영업 사무실 공간을 그려보았다. 위버는 매물로 오르기도 전에 부동산중개인 앞에서 이 공장을 230만 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위버는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음반 회사 모타운 소속 인기 음악인이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뒤 아버지는 성직자가 되었고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위버가 15살일 때 부모는 위버에게 보수적으로 옷을 입고 살도록 강요하며 자신들의 말을 따르거나 집을 나가라고 선언했다. 위버는 배낭과 도시락 하나만 들고 집을 나왔다.

위버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LA 남부에 있는 공사장에서 살면서 노숙자가 됐다. 두 곳의 보호시설에서 잠시 살았던 위버는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위버는 두 번째 자살 시도 때 자신이 먹은 술과 알약을 제거하려고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던 활성탄(중독 치료에 사용된다)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 순간 위버는 삶의 목적을 찾기로 결심했다.

적합하지 않은 돈을 거부


▎기업가정신 테네시주 셸비빌에 있는 엉클 니어리스트 본사에서 포즈를 취한 폰 위버. 곧 버번과 라이 위스키에서 보드카, 코냑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 사진:JAMEL TOPPIN FOR FORBES
위버는 홍보 회사에서 일하면서 특수 이벤트 업체를 운영했고, 이후에는 직접 홍보 회사를 차렸으나 과도한 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캘리포니아 정계에서 일하고 소니에서 정부 담당으로 20년 동안 근무한 키스와 결혼한 뒤, 위버는 남편과 함께 남부 캘리포니아 인근의 주거용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4년 결혼에 대한 위버의 책 [해피 와이브즈 클럽]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로부터 2년 뒤 위버는 뉴욕타임스에서 자신의 삶을 바꿔놓을 니어리스트 그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린은 1865년까지 테네시주의 한 농장에서 노예로 일했다. 젊은 잭 다니엘이 소유하고 운영하던 농장이다. 아프리카에서 하던 방식대로 탄 나무로 만든 숯을 사용하여 술을 부드럽게 만드는 비법 덕분에 그린이 만든 위스키가 지역에서 유명해졌다. 그린이 만든 술이 굉장히 인기가 많아지면서 숯 필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테네시 위스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옥수수로 만든 켄터키산 버번과 구분되는 핵심 차별화 요소가 됐다. 출간 예정인 위버의 책 [러브 앤드 위스키]에 따르면 그린이 이 방식을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읽거나 쓸 줄도 모르는 채 이 방식을 완벽하게 다듬었다.

위버는 잭 다니엘스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린처럼 역사에서 잊힌 노예가 무수히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린은 모회사 브라운-포먼의 공식 잭 다니엘스 역사에 남아 있지 않았는데, 위버는 이를 바로잡고 싶었다.

40세 생일을 맞아 위버는 그린에 대한 책을 쓰려고 키스와 함께 테네시주 린치버그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소비를 했다. 매물로 나와 있는 줄도 몰랐던 1.2㎢ 크기 농장을 90만 달러에 매입한 것이다. 그린이 다니엘에게 위스키 제조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바로 그 농장이다. 운명의 인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버는 마침내 그 농장이 다니엘의 첫 양조장임을 입증하는 다큐멘터리를 찾아냈다.

위버는 1866년 당시 20세였던 다니엘이 자신의 이름을 딴 양조장을 설립하고 그린을 첫 양조 장인으로 채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린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의 족보에도 관심을 갖게 된 위버는 서로 모르고 살았던 친척들도 연결해줬다. 아직도 브라운-포먼에서 일하고 있던 후손 3명은 그린과 관련된 내용이 왜 투어에서 제외됐는지 알고 싶어 했다(두 브랜드는 이제 흑인 소유 기업을 홍보하는 행사를 함께 개최한다). 위버는 잭 다니엘스 측에서 아직도 상표권을 취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상표권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후손 중 한 명에게서 ‘그린의 이름을 딴 위스키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듣고 할 일을 분명하게 정했다.

위버는 양조장 비용을 충당하려고 부부가 꿈의 집으로 여기던 캘리포니아 올드 아고라의 자택을 포함해 서부 해안에 소유하고 있었던 부동산 전부와 미니 쿠퍼 2대를 매각했다. 한때 빚이 100만 달러에 이르러 신용점수가 요동쳤지만 첫 시드 라운드에서 키스의 전 직장 상사로부터 50만 달러를 투자받은 뒤 위버도 5명에게서 투자를 유치했다. 처음부터 위버는 흑인 투자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위버는 “적합하지 않은 돈을 거부하면 적합한 돈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린이 숯 필터 기법을 완성했다고 여겨지는 1856년에서 이름을 딴 엉클 니어리스트의 첫 위스키는 2017년 출시되었으며, 이 브랜드는 지금까지 1000개가 넘는 상을 수상했다. 위버는 처음에 오리건주에 초점을 맞췄다. 주류 도매·소매를 통제하는 주들 가운데 하나인 오리건주에서는 소규모 브랜드가 마케팅을 하기에 유리하다. 잭 다니엘스 같은 대형 브랜드를 판매하는 대규모 유통업체의 힘이 비교적 약하기 때문이다. 위버는 첫해에 마케팅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엉클 니어리스트는 총 7가지 버번과 라이 위스키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모두 그린의 고손녀인 빅토리아 이디 버틀러의 감독하에 생산된다. 버틀러는 “할 일이 아직 많지만 니어리스트의 이름이 이제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환상적인 역사 투어 잭 다니엘(콧수염이 있고 흰 셔츠를 입은 남성)이 잭 다니엘스의 첫 양조 장인이었던 니어리스트 그린의 아들 조지 그린이라고 여겨지는 남자 옆에 앉아 있는 1904년 사진. 이 사진은 폰 위버에게 니어리스트 그린을 기리는 위스키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 사진:JACK DANIEL DISTILLERY
정석대로라면 이제 위버가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시기다. 최근 유명 인사를 전면에 내세운 주류 브랜드들이 영업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거품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독과점이 심한 주류 업계에서는 신규 브랜드를 인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디아지오는 2017년 조지 클루니의 카사미고스 데킬라를 10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2020년에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애비에이션 진을 6억1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최근 다수의 주류 인수 가격은 대단히 높다. 예를 들어 애비에이션은 매출의 24배로 추정되는 가격에 매각됐다. 2021년 코너 맥그리거의 아일랜드 위스키 프로퍼 넘버 트웰브는 매출의 12배에 달하는 6억 달러에 인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위버는 팔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다들 내가 인수 제의를 받았을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자리를 지켜왔다”며 “지금까지 들어온 인수 제의는 모두 거절했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위버는 매각하는 대신 보드카와 코냑 등을 인수하여 출시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산 브랜디로 인기가 많은 코냑은 매년 90% 이상이 수출되는데 그중 절반이 미국으로 들어오며, 4분의 3은 흑인이 구매한다. 위버는 “흑인은 자신과 같은 인종이 설립하고 소유한 업체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마셔본 적이 없다”며 “로켓을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엉클 니어리스트는 1669년 코냑 영주에 의해 조성된 40만㎡ 규모 프랑스 산지인 도맹 생 마탱을 600만 달러로 추정되는 금액에 인수했다. 여기에는 양조장, 넓은 저장소와 술통이 만들어지는 제조 시설까지 포함된다. 이 모든 시설이 엉클 니어리스트의 주도하에 바뀔 것이다.

위버는 흑인 기업가나 여성이 소유한 다른 소규모 주류 브랜드도 인수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위버는 이퀴아노 럼과 브루클린에 있는 주류업체 소렐 등 흑인 소유 브랜드 4개를 인수했다.

아직까지는 셸비빌에 있는 엉클 니어리스트 양조장이 갈수록 성장하는 위버의 제국에서 가장 핵심적이다. 지난해에 23만 명을 맞이한 엉클 니어리스트는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방문자가 많은 양조장이 되어 잭 다니엘스조차 위협하고 있다. 관광 수익은 대단히 높다. 150달러짜리 한 병을 방문자에게 직접 팔면 유통업자를 거쳐 판매하는 것보다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위버의 야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스몰배치 위스키(소량 생산되는 고급 위스키)를 만들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40만㎡ 부지를 확보해뒀다. 위스키 일부가 만들어질 양조장은 현재 건설 중인데, 이곳에서 연간 1만8000배럴을 생산할 전망이다. 또 인근에 호텔을 짓고 지역 행사도 더 많이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1900년대 초 잭 다니엘이 개최한 이후 처음으로 열기구 페스티벌이 열렸다.

위버의 목표도 만만치 않게 원대하다. 투자자들의 지분을 전부 사들여 100% 지분을 확보하려고 한다. 위버와 키스는 자녀가 없는데, 위버는 그동안 혼자 생각해왔던 꿈을 털어놓았다. 사업을 니어리스트 그린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앞으로 양조장의 다음 세대를 만들어나갈 니어리스트의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위버는 “회사를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서 100억 달러 정도가 아니라 500억 달러짜리 회사를 물려주고 싶다”며 “엉클 니어리스트로 수익을 챙기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니어리스트의 가족을 부양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다”고 말했다.

- Chloe Sorvino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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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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