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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밸리의 혁신가(13) 도상인 다이나톤 대표 

건반 위의 퍼스트 펭귄 

조득진 선임기자
디지털 악기 전문기업 다이나톤은 피아노에 다양한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하며 트렌드를 주도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도상인 대표가 ‘최초’, ‘유일’의 스토리를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쉼 없는 연구개발 덕분이다. 그는 AI 기술을 접목한 ‘대화하는 디지털피아노’를 연구 중이다.

▎도상인 다이나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조직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다이나톤 대표 혼자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창업 이래 열심히 달려온 우리 임직원들의 힘이 크다”고 말했다.
“악기와 전자공학은 서로 통합니다. 아날로그 피아노에서 한 옥타브는 12개 건반으로 이뤄지는데, 4옥타브의 ‘라’ 음에서 5옥타브의 ‘라’ 음으로 올라가면 주파수가 정확히 배로 상승합니다. 이웃하는 두 항 사이의 비가 일정한 ‘등비수열’이죠. 수학적으로 계산이 되면 디지털 프로그램 설계가 가능해요. 전자공학 전공자가 30년 넘도록 디지털피아노 기술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다이나톤은 강소기업이다. 삼익악기, 콜텍, HDC영창, 코스모스악기, 야마하뮤직코리아 등 ‘빅 5’가 장악한 국내 악기 시장에서 디지털피아노만큼은 다이나톤 제품을 으뜸으로 꼽는다. 합리적인 가격과 사용자 친화적인 사용법으로 디지털피아노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최초’, ‘유일’의 타이틀도 많이 달았다. 국내 최초 124POLY ‘RPS V3 사운드’ 개발, 국내 최초 세계 정상급 해머터치 ‘뉴-HWS’ 건반 개발, 국내 유일 자동연주피아노 양산 및 독자기술 개발 성공, 국내 최초 디지털피아노 전용 어린이 페달 개발, 국내 최초 256POLY ‘ROS V5 & V5 플러스 사운드’ 개발 등이다. 기업 부설 전자악기연구소를 설립한 것, 렌털 서비스를 진행한 것도 국내 최초였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다이나톤 본사에서 만난 도상인 대표는 “디지털피아노 기술의 최종 목표인 ‘어쿠스틱 그랜드피아노 소리의 재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해왔다”며 “앞으로 AI가 접목된 로봇 기술이 미래를 이끌 것으로 생각한다. AI 기술을 탑재해 손쉬운 교습은 물론이고 음악적 지식까지 나눌 수 있는 ‘대화하는 피아노’를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가격·음원·편리성 ‘기술력’으로 잡았다


▎경북 구미에 있는 다이나톤 스마트팩토리. / 사진:다이나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부른 기업 환경의 변화는 도상인 대표에겐 기회였다. 반도체 부품 제조가 주력인 KEC는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다이나톤’ 브랜드로 진행해온 악기 생산 부문을 분사하기로 했다. 전자악기부서에서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던 당시 도상인 책임연구원은 동료 연구원 3명, 영업 담당 4명과 뜻을 모아 2000년 다이나톤 브랜드를 들고 독립했다. 도 대표는 “디지털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모든 전자제품이 디지털 기술로 변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악기도 디지털 기술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독립하면서 가장 먼저 가격부터 조정했다. 2001년 당시 디지털피아노 가격이 주로 100만원대였는데 다이나톤은 60만원대 상품을 선보였다. 도 대표는 “지금이나 그때나 아이가 자라면 피아노학원에 보내는 게 코스였는데, 소비자의 가격 부담을 줄이고 구매로 연결하려면 저가형이 필요했다”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과 AS는 외주로 하고, 간접비를 최소화하니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출시했던 LH-2001 모델은 지금도 꾸준히 판매된다고.

삼익악기, HDC영창(당시 영창악기) 등 자본력 있는 악기업체 틈새에서 다이나톤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자·기계설계, 음악 전공자가 합작한 ‘기술력’에 있다. 도 대표는 어쿠스틱피아노의 음원을 재현하기 위해 사운드와 건반 개선에 공을 들였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어쿠스틱 건반을 누를 때 미묘한 차이에도 음색과 소리의 깊이가 다르잖아요. 디지털피아노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건반 터치감과 음원 샘플링 사이의 정교한 연결이 중요합니다. 많은 샘플과 데이터가 필요하죠. 마침 반도체 양산으로 가격이 낮아졌고 그에 따라 프로세서 기능도 향상되면서 디지털피아노의 고성능도 가능했죠.”

그렇게 음원 샘플링 기술, 건반 터치감 기술개발에 매달리다 보니 ‘최초’ 타이틀도 생기고, 특허도 늘었다. 다이나톤은 2003년 국내 최초로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 2007년에는 음악 파일이 담긴 USB를 디지털피아노에 연결하면 건반이 자동으로 연주되는 기술을 적용한 ‘자동연주 피아노’를 개발했다. 미국에서 열린 악기박람회 남쇼(NAMM show)에서 처음 본 기술이었는데, 기술이전 비용이 너무 비싸 2년 동안 독자 연구해 세계에서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2014년엔 관련 특허를 5종이나 보유한 지능형 전자피아노를 개발하기도 했다. 도 대표는 “초등학교 음악책을 피아노 프로그램에 다 넣고, 오른손 왼손 연습 기능 등을 탑재하는 등 소비자가 원하는 프로그래밍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며 “지금도 수익의 대부분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한다”고 말했다.

다이나톤의 연구소와 공장은 모두 구미에 있다. 연구 부서와 영업부서가 늘 소통하기 위한 결정이다. 몇 해 전에는 기존 공장보다 3배나 큰 신공장을 완공하면서 스마트팩토리도 구축했다. 도 대표는 “현장에서 파악한 소비자 니즈와 AS 주문 등이 데이터로 쌓이면 이것이 곧 제품 개발 기획안이 된다”며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해놓으니 데이터 구축과 기획, 연구개발과 제작까지 이르는 속도가 빨라졌고 시행착오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라인 ‘아트컬렉션’ 시리즈 인기


▎도상인 다이나톤 대표는 “전자공학과 악기의 옥타브는 등비수열 등 수학적 맥을 같이한다”며 “여기에 감성 코드를 입히는 것이 우리의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 사진:다이나톤
앞선 기술력은 ‘행운’도 불러왔다. 2002년 TV 홈쇼핑이 호황이던 시절, LG홈쇼핑(현 GS홈쇼핑)에서 다이나톤을 찾았고 두 회사는 기획 상품을 준비해 어린이날에 1시간 동안 방송하며 1700대를 팔았다. 도 대표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한 달에 300대를 팔면 손익분기점이었다. 이후 다이나톤은 온라인마케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G마켓, 11번가, 쿠팡, 신세계 등 대형 플랫폼에 입점했고 최근에는 자사몰도 론칭했다.

2012년 업계 최초로 진행한 렌털 서비스는 매출 상승과 함께 다이나톤의 브랜드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론칭 초기부터 높은 대여율을 달성하는 등 고객들의 수많은 호응을 얻은 것. 당시 36개월 동안 월 3만원 수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구입에 가격 부담이 있었던 부모,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려는 성인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도 대표는 “온라인 판매의 단점으로 소통의 부재가 꼽히는데, 우리는 실시간 모바일 라이브 Q&A를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즉시 해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수출 루트 확보에 적극적이다. 다이나톤은 독일 악기박람회 뮤직메쎄(Musik Messe), 미국 남쇼(NAMM show), 중국 상하이쇼(Music China) 등 세계 3대 악기박람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2003년 독일로 첫 선적을 한 이후 현재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외부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수출국 다양화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악기박람회가 멈추면서 신제품을 선보일 기회가 많이 줄었고, 이란을 통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수출해왔는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탓에 주춤한 상태예요. 당분간은 판매 법인이 있는 미국과 최근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다이나톤의 스테디셀러는 창업 초기 선보인 DCP-5 시리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임에도 디지털피아노가 갖추어야 할 기본기에 충실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계속 변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추어 제품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현재 DCP-580까지 출시했다. 도 대표는 “여전히 60만원대 가격을 고수하고 있어 가성비 제품으로 꼽힌다. 최적화한 회로만 사용해서 알뜰하게 만든 제품”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디지털피아노의 단조로운 디자인을 혁신한 프리미엄 라인 ‘아트컬렉션’ 시리즈 DPR4160, DPR5160 모델을 찾는 소비자가 많다. 다이나톤의 상위 브랜드로,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의 관계 격이다. 디지털피아노의 구조적인 특징 때문에 하단에 설치했던 스피커를 전면부에 배치해 마치 콘서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다. 또 ‘3센서 해머 건반’을 적용해 그랜드피아노의 터치감과 표현력도 재현했다. 도 대표는 “건반과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북유럽 스타일의 디자인 덕에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도 했다”며 “현대 가구, 현대식 건물 디자인에 어울리는 내추럴 오크 색상이 가장 인기”라고 말했다.

기술은 충분, 브랜드 살려 ‘제값’ 받을 것

다이나톤의 매출은 2021년 238억원을 기록할 때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다가 2022년에는 154억원으로 고꾸라졌다. 공장 증설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도 대표는 다이나톤의 브랜드가치를 높여 이를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성능은 거의 비슷한데 가격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해외 경쟁사로 야마하, 카시오가 있는데 기술력에서 우리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역사와 브랜드가 약한 거죠. 지금까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술개발, 소재개발에 에너지를 쏟았는데 이제 우리 회사와 브랜드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홈페이지 리뉴얼과 브랜딩 사업을 전문회사에 의뢰한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품질에 맞는 ‘제값’을 받겠다는 말이다.

도 대표는 향후 디지털 악기 시장도 AI 기술 접목이 대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피아노에 AI 기능을 탑재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교습 프로그램뿐 아니라 연주자와 악기가 서로 소통하는 세계 최초의 ‘대화형 디지털피아노’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 비혼 등으로 1인가구가 늘고 있어서 여가에 음악적 대화가 가능한 디지털피아노의 기능이 각광받을 것”이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칩이 곧 개발되어 양산될 전망이고, 우리는 이를 활용할 알고리즘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5년 전 분사에 이은 독립 과정에 함께했던 동료들은 여전히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지금도 서울지사와 구미공장에서 각자의 분야를 맡아 다이나톤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는 것. 도 대표는 “지금까지 다이나톤이 걸어온 길을 보면 대표 혼자 한 일은 하나도 없다. 창업 이래 열심히 달려온 우리 임직원들의 덕이 크다”며 “잘 만든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직원들의 힘, 조직의 힘이 하모니가 되어 회사 성장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_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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