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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틱톡 디자인 리더 

AI 시대의 디자인 

장진원 기자
‘이상인의 테넷’ 시리즈를 포브스코리아에 연재 중인 이상인 디자이너가 『AI는 일하고 인간은 성장한다』라는 제목의 신간을 펴냈다. 세계적인 쇼트폼 미디어 플랫폼 틱톡의 디자인 리더로 자리를 옮긴 그가 AI와 디자인, 일의 의미를 담담히 풀어냈다.

▎틱톡의 디자인 리더로 자리를 옮긴 이상인 디자이너. 미국의 테크업계와 디자인 신이 주목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다. / 사진:이상인
글로벌 테크 공룡들이 몰린 미국 시애틀이나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을 찾아보는 건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글 입사만으로 인플루언서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임원급으로 일하는 한국인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상인 틱톡 디자인 리더는 수년 전부터 미국 테크업계에서 주목받아온 디자이너다. 딜로이트컨설팅 뉴욕 스튜디오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그룹을 이끌었다. MS 클라우드+인공지능 부서에 속한 55개 서비스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며 커리어를 쌓은 이 리더는 이후 구글 본사로 옮겨 유튜브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Staff designer)했다.

이 리더는 디자인이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산업과 커리어, 기업을 바라보는 저술 활동에도 열심이다. 지난 2019년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를 시작으로 베스트셀러 세 권을 펴낸 작가다. 얼마 전 틱톡 디자인 리더로 자리를 옮기고 나선 [AI는 일하고 인간은 성장한다]는 제목의 책을 새로 펴냈다. 글로벌 테크업계에 불어닥친 AI발 판도 변화, 디자인의 본질, 이방인의 커리어와 일에 대한 본질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MS에서 구글, 다시 틱톡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름만으로도 화려하다.

구글과 MS 미국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지금은 틱톡(TikTok)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디자인 리더로 근무하고 있다. 그전에는 디지털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디지털(Deloitte Digital) 뉴욕 오피스의 창립멤버였고, 디지털 에이전시 R/GA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커리어를 전반적으로 돌아보면 인공지능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디자인 시스템 프로젝트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군 전역 후 더 큰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어느새 16년이 흘렀고, 뉴욕과 시애틀을 거쳐 현재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다.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간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궁금하다.

지금 일하고 있는 틱톡에서는 광고와 쇼핑을 담당하는 글로벌 머니타이제이션 그룹에 속해 있다. 프로덕트의 현대화와 디자인 시스템 구축을 리드하는 자리다. 바로 전 직장인 구글에서는 유튜브 광고 플랫폼의 디자인 현대화와 디자인 시스템 구축을 리드했다. MS에서는 클라우드+인공지능 그룹의 브랜딩과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했다. 딜로이트디지털에서는 뉴욕 오피스의 파운딩 멤버로서 디자인팀 구축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담당했고, R/GA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를 다수 리드하기도 했다.

『디자이너의 생각법』,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에 이어 이번 책은 AI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미국 디지털 신(scene)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지 꽤 됐는데, 최근 몇 년처럼 큰 변화를 겪은 적이 없었다.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의 등장과 클라우드 시대 개막을 거쳐 2010년대 들어선 미국의 거의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서 전개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바람을 개인으로서 또 직업인으로서 모두 체험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는 기업 DNA에 디지털을 심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성패도 봤다. 그러면서 이제는 1류와 2류 간 격차가 현격히 벌어지는 시대에 들어왔구나를 깨달았다. 하지만 인공지능,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은 초격차가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무한 격차의 시대라 생각한다. 예전에 AI 스피커가 보여준 한정적 성능에 실망한 나머지 생긴 AI에 대한 안일한 고정관념도 이젠 완벽히 깨졌다. 한 개인으로서 이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또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최근 몇 년간 깊이 고민해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한 디자이너의 성장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책에 담았다.

벌써 4번째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나라, 업종에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책을 쓰는 이유가 있나.

2019년 첫 책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와 2024년 [AI는 일하고 인간은 성장한다]를 출간한 근본적인 이유는 같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순수한 욕심이다. 다만 이번 책에는 한 가지가 더 들어가 있다. 이상인이라는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이다. 얼마 전 한 방송을 보니 중국 IT 업계에서는 35세면 정년 퇴임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더라. 아직 현장에서 왕성하게 뛰고 있지만 41살이라는 나이는 미국 IT 회사 기준에서도 적지 않은 상황이 됐다.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매일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감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거나, 그렇다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대책 없는 낙천주의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런 불안함을 나만의 시각으로 극복해보자는 뜻에서 이번 책을 작업하게 된 것 같다.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닦고 조여야 변화무쌍한 디지털 최전선에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디자인, 최근에는 순수미술 영역에서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또 글로벌 테크기업의 일원으로서 AI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나.


▎이상인 리더는 AI라는 기술이 어떻게 사람과 만나야 하는지 제시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사진:북스톤
AI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았다. 한정된 상황에서 한정된 기능만 제공했던 AI에서 이제는 인간과 거의 맞먹는 인공일반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는 인류가 관계하는 모든 영역에 AI의 역할이 등장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 역사에도 큰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는 그 지점을 향해가는 과정의 초창기다. 인프라스트럭처가 깔리기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승자 혹은 완벽한 형태의 인간과 AI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상태는 아니다. 먼 옛날 캄브리아기처럼 생물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AI의 기능과 역할이 더 발전하며, 인간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거라 본다. 국가나 거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혹은 소규모 비즈니스에도 다양한 기회가 열리는 시점이 올 거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술, 기술과 기술을 연결하는 게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디자인은 결국 연결의 속성을 지닌 선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지점들을 연결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단순하게 AI로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이를 넘어서 AI라는 기술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가를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역할이다. 당연히 기술과 이를 활용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가령 얼마 전 틱톡이 공개한 ‘Symphony Creative Studio’가 대표적이다. 이 툴을 활용하는 마케터들이 AI의 힘으로 영상을 빠르고 쉽게 만들고, 기존 영상의 퀄리티도 높일 수 있게 됐다. 또 영상에 필요한 자막도 생성할 수 있다.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연결한 아주 좋은 디자인의 예시라 하겠다.

책 부제가 ‘어느 디자이너의 가장 개인적인 생존법’이다. 지난 16년간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온 기간을 ‘생존’이라 표현했다.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렇다. 타향살이는 언제나 힘들다. 한국 지인들 중에 지나가는 말로 “미국에 사니까 편하겠다”거나 “좋아하는 일만 하니까 힘들지 않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미국 땅은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던 정글 같은 공간이었다. 정리해고가 일상인 기업문화에서 경제가 어려울 때면 어제까지 옆에서 함께한 동료들이 짐 싸서 나가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욱이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언제든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떠나 고국으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존재했다. 경쟁이 매우 심한 분야 중 하나인 디지털 영역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분명 노력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또 발전하기 위해 했던 모든 일이 결국에는 생존이라는 단어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얼마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하나?

성장이라는 건 개인마다 또 겪은 커리어에 따라 모두 다르다. 찾아오는 시기나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쳐온 회사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R/GA에서는 창의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내는 방법을 배웠다. 딜로이트디지털에서는 디자인과 비즈니스 전략을 결합하는 법을 배웠다. MS에선 디자인과 기술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인프라스트럭처에 잘 융화되게 하는 법을 배웠고, 구글에서는 사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고찰했다. 지금 틱톡에서는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 어떻게 혁신을 일궈내는가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 환경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글로벌에서 성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 혹은 자기 이름으로 디자인 역량을 풀어볼 생각은 없나.

미국에서 16년을 살다 보니 지금 내가 있는 미국이 바로 내 집이다. 그러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굳이 집을 떠나 한국으로 갈 생각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글로벌 톱 수준의 마켓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도 여럿이다. 그런 만큼 굳이 고려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앞날을 알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해선 한국행을 조금 더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책 안에 ‘개인과 일’이라는 챕터를 따로 둘 만큼 이번에는 일과 커리어, 개인의 성장 등에도 집중했다.

세상의 변화를 읽고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스스로 발전적인 커리어를 갖는 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아무리 AI가 등장하고 세상이 변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나’라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또 이 책이 AI 전문서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가진 AI에 대한 지식은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리서치하며 얻은 것이라 학계에서 인정하는 AI 거장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그러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처럼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공유하고 싶었다. 또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법과 접근법을 담고 싶었다. 책을 읽는 독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위안과 해소를 느끼면 좋겠다.

16년 차 한국계 미국 회사 디자이너로서의 현재, 또 미래가 궁금하다.

솔직히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다. 그저 지금처럼 계속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고 싶을 뿐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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