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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리더 32인의 신년 에세이] 약속(8) 

 

장진원 기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다. 누군가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는 사회적 정의와 신뢰의 보루다. 포브스코리아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약속의 의미를 물었다. 기업 리더 32인이 저마다의 약속을 풀어냈다. 기업가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자아를 찾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약속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가 새해 희망에 앞서 우려와 긴장을 먼저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는 물론이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얼어붙은 투자 환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덮친 높은 파고가 매섭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결국은 희망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희망과 의지는 그렇게 새로운 약속으로 이어졌다. 기업을 이루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행복한 한 해를 만들자는 꿋꿋한 약속들이다. 계묘년 새해, 지혜로움으로 가득한 약속에 귀 기울여본다.
백만용 INF컨설팅·FNF 대표 - 세상에 없는 한국형 컨설팅


몇 년째 나 자신과 지키고 있는 약속이 하나 있다. 몇 시에 귀가했든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반신욕을 하고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먹는 것이다. 20년 넘게 경영 컨설팅과 IT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잦은 음주와 야근 등으로 건강이 나도 모르게 많이 나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시작한 약속이었다. 몇 년째 이 약속을 지키다 보니 체중도 줄고 허리치수도 2인치나 줄어서 많이 건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초 내 평생을 좌우할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2021년 초 코로나 팬데믹이 한참이던 때 다니던 글로벌 메이저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티센그룹의 후원으로 컨설팅 회사인 INF컨설팅과 금융권 솔루션 회사 FNF를 설립했다.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나온 결과로 플랫폼과 솔루션까지 만들어서 고객사에 제공하는 B2B 사업 모델을 만들어서 IPO까지 해보겠다고 나를 따르는 임직원들과 겁없이 약속하고 시작했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일단 신설 회사이고 인지도가 없다 보니 고객사로부터 제안 요청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우리 인력들의 경험은 풍부했지만 회사로서 과거 실적이 전무하다 보니 제안서를 잘 쓰고 제안발표를 잘하고도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우리 임직원들에겐 다행히 처음에 시작할 때 함께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신뢰와 믿음이 있었고 이를 통해 지난해 1년간 잘 버티면서 조금씩 시장을 개척하고 솔루션을 만들어서 한국형 컨설팅과 플랫폼 사업을 해나갈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22년 INF컨설팅은 이전에 없는 컨설팅 사업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즉, 한국이 가장 잘하고 한국에 특화되어 있는 산업환경에 집중하는 컨설팅을 통해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이기는 한국형 컨설팅 회사로 포지셔닝을 시작했다. 금융/통신, 제조/유통, 물류/서비스에 걸쳐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고, 한국만의 독특한 규제나 환경 이슈가 있는 웹3.0 토크노믹스, 커머스 플랫폼, 게임, 금융규제 대응, 물류/유통 분야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컨설팅 업체들을 이길 수 있는 한국형 컨설팅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하면서 한국형 컨설팅, 솔루션/플랫폼 사업을 통해서 흑자전환을 하고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초 불안한 마음으로 직원들과 함께했던 약속을 지키고 이제 역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한국형 컨설팅/플랫폼 솔루션 회사로 자리매김해서 높은 가치로 상장하겠다는 나와의 새로운 약속을 2023년 신년에 해본다.

이도경 마크비전코리아 대표 - 기회의 샘


GPT-3의 능력을 둘러싼 이야기가 연일 들려온다. 나도 ‘도대체 얼마나 뛰어나고 대단하길래’라는 궁금증을 품고 인공지능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글로벌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창업자는 어떤 선택과 노력을 해야 될까?”

질문을 입력한 뒤 5초가량 지났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인공지능은 창업 경력이 적어도 몇 번은 되고 글로벌 환경에서 직접 여러 차례 경영을 이끌어본 연쇄 창업가라도 된 듯 꽤 훌륭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얼마 전인 12월 11일에는 미국 NASA 아르테미스 계획의 1호 우주선 ‘오리온’이 달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2025년까지 달에 유인 착륙을 성공시켜 기지를 구축하고 더 넓은 우주로 향해 나아갈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아르테미스 계획은 미국 NASA를 포함해 세계 강대국들의 우주 기구와 민간 기구까지 합세한 거대한 국제 프로젝트다. 인류의 우주 정복을 위한 위대한 진보의 순간들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많은 것을 멈추고 얼려버린 코로나 기간에도 산업 각 분야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혁신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위기 이면에 있는 기회를 발판 삼아 더 폭발적으로 혁신을 꾀하고 괄목한 만한 성장을 경험했던 기업의 사례도 꽤 많았다. 그러자 문득, 우리 인류는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더 도약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의 샘’을 약속받은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코로나를 졸업하고 기지개를 펴볼까 하고 있는데 연준은 보란 듯이 4차례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며 스타트업을 포함한 여러 기업에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주는 듯 보인다. 실제로 불과 1년 전만 해도 ‘묻지 마 투자’ 격의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던 국내외 VC 펀드들은 쥐 죽은 듯 자취를 감췄고, 말라붙은 투자 환경과 여러 거시적 악재가 이어져 나처럼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기업인에게는 분명 사업하기 만만한 시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 시기에도 누군가는 새로운 차원의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개발해냈고 누군가는 인류의 우주 도약을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코로나든, 금융위기든, 그 외 어떤 종류의 위기 상황에서도 인류에게는 버티고 버티면 다시 한번 도약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샘’이 약속되어 있다. 부디 나를 포함한 많은 기업인이 더 치열하고 당당하게 2023년과 씨름해보길 응원하며,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혁신과 성장의 달콤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안선영 바로스코퍼레이션 대표 - 지키기 vs 정하기


지난 22년 동안 연예인으로 살아오면서 무조건 즐거운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마치 대중과의 ‘약속’이라고 착각했다.

약속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는 행위다. 내가 지난 22년간 해온 약속은 ‘다른 사람’과 ‘미리’라는 부분에서 충족되지 않는다.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정해놓고 ‘미리’라는 사전 준비 없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전달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인 직업이기에 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약속’이라는 개념으로 돌아봤을 때 상호작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때로는 그 약속을 지켜내는 일이 버거웠고, 서러울 때도 많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큰 사고가 난 상황에서도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야 했고, 누군가의 평가나 구설에 늘 신경 쓰면서 말을 뱉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만약 이런 일들이나 자신, 혹은 상대와 시간 합의하에 진행되었다면 버겁거나 서러웠을까? ‘약속’은 반드시 ‘미리’ 신중하게 결정해야 가치가 있고, 책임도 있고, 보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5년 전, 방송인 안선영 외에 또 다른 타이틀이 생겼다. ‘CEO 안선영’이다. 그때 다짐했다.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직업은 신중하게 ‘약속’을 정하기로. 첫째, 나와 내 아이가 먹고 바를 수 있는 제품만 만들고 판매한다. 둘째, 경단녀(경력단절여성)에게 재취업 기회를 우선으로 제공한다. 셋째, 장애인을 고용하고 장애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매년 지급한다. 이 세 가지 약속은 곧 ‘바로스코퍼레이션’의 경영 철학이 되었다. 나 자신과 미리, 신중하게 정한 이 약속들은 내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지켜나가는 힘을 주었고, 성장으로 이어졌다.

창업 당시 투입된 경단녀 3명이 함께 성장하고 있고, 장애인 휠체어가 루프톱까지 갈 수 있는 사옥을 짓겠다는 약속도 4년 차인 2022년에 이루었다. 이제 2023년 새해를 맞아 ‘바로스코퍼레이션’이 만든 제품으로 해외 수출과 다양한 온오프라인 유통을 추진하고, 자체 MCN 시스템 구축으로 더 많은 경단녀와 장애인까지 다양한 고용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기업 대표가 되고 나서 ‘약속’이 주는 기분 좋은 부담감과 성취감을 오롯이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의지가 나 자신과 기업, 나아가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기본 덕목인지를. 포브스코리아 신년호를 통해 다시 한번 스스로와의 ‘약속’을 다잡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더 발전하는 ‘바로스코퍼레이션’이 되길 기대해본다.

양정호 앳홈 대표 - 지키면 결국 성공하는, ‘강요되지 않은 약속’


“내일부터 7시 10분까지 출근해서 인증샷 남기겠습니다. 다시 창업 초기의 초심과 간절함으로 완전히 돌아가서 저부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사내 메신저 전체방에 남긴 글이다. 1분 1초가 귀한 때에 몇 분이라도 더 자려는 내 자신이 한심해 아예 구성원들에게 공지한 자발적 약속이다. 내게 7시 10분까지 출근하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해이해진 자신을 다시 정비해줄 배수진이 꼭 필요했다. 다행히 말을 뱉은 후로 한 번도 어긴 적 없이 매일 약속한 시간에 출근해 인증샷을 올렸다. 이 약속이 내려오는 눈꺼풀을 다시 끌어올리고, 게으름을 잠시 머물게 하려다가도 도망가게 만들었다.

창업을 하고 제품을 하나하나 출시할수록, 구성원이 하나둘 늘수록 이렇게 ‘강요되지 않은 약속’이 더 많아졌다. 그동안 줄기차게 이야기해온 “차별화된 제품으로 고객의 불편을 해결하겠다”, “구성원들이 행복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의 약속인 것 같다. 누구도 강요하거나 압박한 적은 없지만, 매 순간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면서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약속이다.

고객 불편을 해결하겠다면서 겉보기에 그럴듯한 제품으로 마케팅에만 집중해 매출을 올리거나, 구성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면서 실제로는 경직된 기업문화, 불합리한 평가와 보상, 인색한 복지로 그들을 지치게 한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고객과의 약속, 구성원과의 약속을 실제로 지키는 기업만이 지속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여러 사례에서 봐왔듯 자명하다. 강요되지 않은 약속이지만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고, 지킬수록 더 발전하고 결국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약속이다.

올해는 앳홈이 창업 5주년을 맞는 해다. 홀로 창업해 택배 하나하나 직접 포장하며 일했는데, 어느새 직원 70여 명, 매출 약 500억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감개무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떤 기업으로 성장해야 할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CEO로서 찾아낸 해답은 바로 앞서 말한 강요되지 않은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라 믿는다. 출근 시간처럼 인증샷을 찍어 확인받을 수는 없지만, 고객이, 구성원들이 약속을 잘 지켰다고 먼저 인정해줄 수 있도록 올해도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려 한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2301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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