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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건 꿈비 대표 

365일 열리는 베이비페어 

장진원 기자
육아용품 제조기업 CEO인 박영건 꿈비 대표가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혁신 쇼핑몰을 세상에 내놓았다. 5조원 규모가 넘는 국내 육아용품 시장의 산업 생태계를 새로 쓰겠다는 각오다.

▎경기도 용인시 동백지구에 문을 연 육아용품 전문 쇼핑몰 링크맘. 글로벌 육아용품 플랫폼을 향한 박영건 대표의 꿈이 시작될 공간이다.
“‘고객이 왕’이란 말은 적어도 육아용품 시장에서만큼은 틀렸습니다.”

박영건 꿈비 대표는 인터뷰 초반부터 직설화법을 쏟아냈다. 꿈비는 침대와 매트, 범퍼 같은 가구와 오가닉화장품, 반려동물 용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육아용품 전문기업이다. 2023년 코스닥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후 관련 시장에서 카테고리킬러 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잘나가는 육아용품 제조·유통사가 시장 구조에 쓴소리를 뱉어낸 건 ‘베이비페어’로 대표되는 국내 오프라인 시장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1년에 베이비페어가 100회도 넘게 열립니다. 한번 가보셨나요? 비싼 주차비 내고 전시장에 들어가면, 행사장 안에선 이리저리 치이면서 두 손에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해요. 고객은 왕이 아니라 어중이떠중이가 되기 십상이죠. 핵심 소비층인 엄마들이 한 번도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게 한국의 베이비페어예요.”

박 대표는 “그 상황에서 돈 버는 건 베이베페어 운영사뿐”이라며 “판매자든 소비자든 누구도 불편함을 말하지 않는 이상한 시장이 바로 육아용품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 시장이 구조적 열악함만큼이나 영세한 규모도 아니다. 박 대표는 국내 육아용품 시장 규모만 5조2000억원, 중국 시장은 500조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600조~700조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중국이라는 단일 육아용품 시장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과 맞먹는 규모인 셈이다.

시장 규모도, 판매되는 용품 종류도, 탄탄한 소비층까지 다 갖춰진 시장인데 누구도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는 시장. 주요 오프라인 판매처인 베이비페어에 매년 수많은 인파가 몰리지만, 정작 90% 넘는 제품이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시장. 박 대표의 말을 따라가다 보니 국내 육아용품 시장이 너무 기이하면서도 불편한 구조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핵심 고객인 엄마들이 홀대받는 시장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용인 동백지구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에 ‘링크맘 쇼핑몰 용인점(이하 링크맘)’이 지난 6월 5일 문을 열었다. 개장 후 첫 공휴일이었던 6월 6일 현충일에는 오픈한 지 이틀째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만원 사례를 빚었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직접 찾은 날은 개장 3일 차였던 6월 7일. 오전 11시 오픈 시간이 다가오자 텅 비었던 주차장이 어느새 몰려든 차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주차비 정산도, 사람과 물건에 치일 필요도 없는 널찍한 쇼핑 공간, 백화점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편안한 쇼핑몰 안에서 카트를 미는 젊은 부부들이 여유롭게 움직였다.

링크맘은 박 대표가 꿈비와 별개로 세운 육아용품 전문 오프라인 쇼핑몰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약 9900㎡(3000평) 쇼핑몰 안에 230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베이비페어에 참여하는 업체 수가 보통 100~150개 수준임을 감안하면, 2배 넘는 다양한 육아용품을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편하게 만나볼 수 있다. 매장 안에 크게 걸어놓은 ‘365일 베이비페어’라는 문구가 과장이 아니다.

“입점한 업체 중 80~90%가 오프라인 유통을 하지 않는 브랜드입니다. 유모차, 카시트 등을 빼면 대부분의 육아용품이 온라인에서만 영업하죠. 최저가 쇼핑이 가능한 구조예요. 그러니 업체 입장에서 굳이 오프라인 판매에 나설 이유는 없었죠. 하지만 젖병 하나라도 직접 보고 사야 직성이 풀리는 제품이 또 육아용품이에요. 오프라인 니즈가 엄청 강한 시장이죠. 업체들을 하나하나 만나 설득했어요.”

그럼에도 입점을 망설이는 업체는 해외 진출이라는 사업 비전으로 승부했다. 박 대표는 향후 링크맘 모델을 그대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이식할 계획이다. 수출 니즈가 있지만 현지 유통과 판매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에는 링크맘이라는 쇼핑몰 플랫폼과 함께 자연스러운 해외 진출이 가능해지는 구조다. “이 쇼핑몰을 그대로 들고 나갈 테니 따라만 와달라”는 박 대표의 비전에 230개에 달하는 최고급 육아용품 브랜드가 화답했다.

판매자도 소비자도 만족할 수 없었던 오프라인 시장의 반응은 어땠을까. 꿈비를 운영하며 육아용품 영업·판매 전문가가 된 박 대표는 “성공의 선행지표는 매출보다 고객 반응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 때 초기 마케팅에 1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는 데 비해, 링크맘은 SNS와 아파트 엘리베이터 디지털 광고에 들인 600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5월 25일 첫 프리오픈 이후 “여기 진짜 대박”이라는 게시물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고객이 직접 촬영한 한 쇼트폼 영상은 10만 뷰를 넘기기도 했다. 백화점 수준의 고급 쇼핑몰을 육아용품으로만 꽉 채우고, 푸드코트와 각종 편의시설까지 갖춰놓으니 초보 부모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못지않은 육아용품 전문 쇼핑몰


링크맘은 쇼핑 시스템 혁신에도 힘을 쏟아 기존과는 전혀 다른 구매 모델을 도입했다. 상품 소개와 설명, 리뷰, 가격 확인, 구매 등 모든 과정이 링크맘 전용 애플리케이션에서 해결된다. 고객이 상품에 부착된 QR코드를 읽으면 가격과 제품 상세정보가 스마트폰 화면에 뜬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직원 호출 버튼을 터치한다. 결제를 마치면 직접 수령할지 택배로 받을지도 선택할 수 있다.

마트 계산대에서 보는 기다란 대기줄 같은 건 없다. 쇼핑을 마친 후 카트에 물건을 싣고 게이트를 통과하면 그만이다. 깜박 잊고 결제하지 못한 상품이 카트에 담겨 있으면 경고음이 울리고, 게이트에서 바로 결제가 가능하다. 범용 RFID 기술을 활용한 시스템이다. 박 대표는 “오프라인에서도 완전한 온라인쇼핑 경험을 구현해냈다”고 설명했다.

“요즘 엄마들은 별점이 낮은 순으로 리뷰를 봐요. 심지어 문의 글부터 확인하죠. ‘찐리뷰’를 확인하는 겁니다. 내 아이를 위한 물건인데 얼마나 깐깐하게 고르겠어요.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어가며 계산하던 엄마들이 ‘여기 정말 신세계’라며 신기해합니다. 선결제를 하면 게이트 통과에 5초가 걸리고, 안 해도 10~15초면 출구로 나갑니다. 더 중요한 건 데이터예요. 카드사가 독점했던 고객 데이터를 우리가 확보하게 됐죠. 감에 의존했던 오프라인 쇼핑몰의 한계가 깨지는 구조입니다.”

박 대표가 링크맘 같은 혁신적인 육아용품 쇼핑몰을 구상한 건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역시 침대와 매트, 범퍼를 들고 베이비페어를 찾아다닐 때마다 ‘이건 정말 아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고정비를 최소화한 수도권 외곽의 창고형 매장’이 초기 아이디어였다. 꿈비 사업이 자리를 잡고 상장까지 마치고 나서 지난해 10월 비로소 실행에 나섰다. 쇼핑몰 임대와 리모델링, 입점 업체 선정, 투자 유치가 7개월 안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박 대표는 “한번 꽂히면 잠도 안 자고 몰입하는 스타일”이라며 웃었다.

“링크맘이 개장과 동시에 순항하는 게 다행스러울 뿐이죠. 그동안 꿈비를 경영하면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 그걸 이겨낸 몰입의 과정들이 경영 자산으로 쌓인 것 같아요. 꿈비가 없었다면 링크맘 같은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못했겠죠.”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꿈비 침대와 매트는 꼭 들이고 싶은 ‘워너비’ 제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2013년 창업 초기부터 사업이 자리를 잡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비와 위기를 넘겨왔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꿈비의 시작은 2010년 무렵이다.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복수 전공한 박 대표의 아내, 지금의 최진희 부대표가 해외 잡지에서 본 인디언텐트를 만들어 판매한 게 첫 아이템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13년간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학창 시절 영화에 빠져 단편영화도 제작했다가 졸업 후 작은 프로덕션에서 프로듀서로 일했죠. 이후 유명 내비게이션 제조사에 피디로 이직했어요. 휴대폰에 처음 영상이 구현되던 시절이었고, 여러 모바일 콘텐트 제작을 맡았죠. 실력을 인정받으며 잘나갔어요. 2013년 들어 13년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아내가 하던 꿈비에 조인했어요.”

꿈비 사업이 잘돼 사업가로 나선 건 전혀 아니었다. “당신이 자금 대고 전략기획도 다 했다. 회사가 커졌으니 책임지라”는 아내 말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당시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아내를 보며 ‘망하려면 빨리 망하는 게 낫다’는 결심으로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4년 들어 법인으로 전환한 꿈비는 초기 몇 년간 100% 넘는 성장을 이뤄냈다. 첫 고비는 2016년 매출 30억원을 달성했을 때 찾아왔다. 이름이 알려질 만하니 경쟁사의 카피 제품이 30%나 싸게 나왔다. 음해성 악플, 포털 랭킹 조작, 맘카페 댓글 공격 같은 일들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이어졌다. 급기야 월급이 밀리며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까지 나왔다. 박 대표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될 때 귀인을 만났다”고 말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들어맞는 시점이었다.

“직장에서 일 잘했고, 사업도 잘됐으니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러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얻어맞은 거죠. 대기업 판매·유통 조직에서 임원으로 오래 일하다, ‘가인지경영’을 모토로 경영 컨설팅 사업에 나선 분을 만났습니다. 가치·인재·지식경영의 줄임말인데, 처음 1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는 제 모든 생각이 무너져 내렸어요.”

당시를 돌아보던 박 대표는 “중견기업 팀장 커리어로 중소기업을 경영했던 셈”이라고 말했다. 리더십, 사업전략, 경영 노하우가 모두 부족한데, 2종 보통면허로 버스 운전에 나섰다는 현실에 눈뜬 순간이었다. 내가 아는 방식대로만 하다가 회사가 부도 직전까지 왔다는 자책이 이어졌다.

“기업의 목표와 비전, 이를 받아들이는 임직원의 문화, 경영자의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어요. 당장 저부터 지독히 공부하고, 직원들에게도 독서를 독려해 동기부여에 나섰습니다. 중소기업이 살길은 CEO와 임직원 모두가 같은 비전을 공유해 똘똘 뭉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죠.”

글로벌 육아용품 플랫폼의 꿈

단단한 응집력으로 무장하자 당장 2016년 하반기부터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상형 범퍼침대 ‘럭키스타’가 히트를 기록하면서다. 제품 전략부터 기존 제품의 고정관념을 깬 유아 침대였다. ‘이거 아니면 우린 다 죽는다’는 결기가 성공으로 이어지자, 직원들부터 몰입과 보상이라는 효능감을 체감했다. 박 대표는 “2018년에 들어서면서 꿈비의 DNA가 완전히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접이식 매트인 클린롤매트, 틈이 없어 먼지가 끼지 않는 클린롤폴더매트 등 메가 히트 상품이 연이어 쏟아졌다. 2023년 코스닥 상장은 국내 육아용품 업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육아용품 제조사가 상장에 나선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시장 규모에도 자본과 기술이 없어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판단이었다.

“이 시장은 토끼가 왕인 곳이에요. 웬만한 제품이면 1등 하기 쉽죠. 그러니 산업화도 규모의 경제도 해외 진출에 대한 니즈도 없어요. 링크맘이 유통에서, 꿈비가 제조에서 혁신을 이뤄내는 게 시작이 될 겁니다.”

박 대표는 링크맘 용인점에 이어 내년 상반기 중 부산에 2호점을 열 계획이다. 다음으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타깃이다. 더 큰 비전은 이후부터다. 링크맘 앱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필수 앱이 되면,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강력한 글로벌 육아용품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이다. 박 대표는 이를 ‘글로벌 육아용품 생태계 구축’이라고 정의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김동하 객원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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