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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롱샴코리아 대표 

우아한 비상 

정소나 기자
200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롱샴이 귀환했다. 박성희 대표가 이끄는 롱샴코리아는 젊은 세대를 사로잡으며 우아한 날갯짓으로 비상 중이다.

▎한국 시장에서 롱샴의 성장을 이끌고, 젊고 힙한 패션 브랜드로 인식시킨 롱샴코리아 박성희 대표.
패션은 돌고 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이 시간이 지나 다시 주목받는 것은 더는 특별하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Y2K 패션이 다시 유행하면서, 2000년대 초반을 장악하던 브랜드가 요즘 대세인 Z세대의 선택을 받으며 다시금 인기 브랜드로 떠올랐다. 옷장 속 철 지난 ‘엄마 가방’ 이미지로 외면받던 유서 깊은 하우스의 상징적인 백이 덩달아 차례대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롱샴(LONGCHAMP)은 Y2K 트렌드에 힘입어 화려하게 귀환한 대표 브랜드다. 가벼운 나일론 소재에 접을 수 있는 실용적 디자인으로 2000년대 초 선풍적 인기를 끈 롱샴의 ‘르 플리아쥬 백’이 다시 한번 유행의 정점에 섰다. 국내에서도 블랙핑크 제니가 르 플리아쥬 백팩을 메고 등장해 Z세대를 매료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손바닥만 한 크기의 르 플리아쥬 핸들 파우치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유행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세대를 사로잡았다.

롱샴의 매출 또한 급성장했다. 2023 회계연도에는 글로벌 매출이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20% 성장해 최고 매출 기록을 경신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한국 시장에서도 롱샴은 빠르게 성장해 지난해에는 무려 93%의 매출 성장을 보이며 롱샴의 본격 부활을 실감케 했다.

토털 패션 브랜드로 비상하다


▎부드럽고 유연한 레더 소재에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컬러감을 더한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백인 르 로조. 뱀부 토글 장식은 연한 금빛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롱샴코리아는 최근 3년간 본격적인 성장으로 글로벌마켓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롱샴코리아의 약진을 이끌고 있는 박성희 대표는 지난 2014년 롱샴코리아 최초의 여성 지사장으로 부임하며 화제를 모았다.

숙명여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전공을 살려 수출·수입에 두루 관심을 갖다 면세점에서 머천다이징 바이어로 일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명품 업계에 발을 들였다.

“각기 다른 브랜드 역사와 제품 탄생에 대한 뒷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직접 제품을 바잉하면서 명품 브랜드들만의 성공 노하우나 경영 철학을 듣고 나니 명품 산업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 대표는 에스티로더 트래블 리테일링 아시아퍼시픽 디렉터를 비롯해 엘코 면세사업부·티티코 면세 향수사업부 총괄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를 거쳐 롱샴코리아에 합류했다.

박 대표가 취임 당시, 롱샴은 과거 수입 유통사에서 나일론백이나 캔버스백만 선별해 수입한 탓에 가방 브랜드나 잡화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는 한국 시장에서 롱샴이라는 브랜드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롱샴은 가죽 액세서리부터 시작해 토털 패션 브랜드로 발전해왔어요. 가죽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숙련된 가죽 공예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롱샴의 가죽공방에서는 가죽 장인을 육성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예요.”

가장 먼저 그는 롱샴을 토털 패션 브랜드로 인식할 수 있도록 고급화 전략에 집중했다. 함께 입점한 브랜드군(Neighbors)의 레벨을 향상하는 전략이 첫 번째였다. 과거에는 잡화 브랜드나 러기지 브랜드와 함께 입점했다면, 지금은 럭셔리 토털 패션의 입지에 맞춰 하이엔드,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네이버링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꿨다. 과감하면서도 차별화된 선택을 하면서 본사와 백화점 사이에서 꾸준히 브랜드 히스토리를 설명하는 등 한 단계씩 백화점 측의 브랜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두 번째로는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들이 파리지엔의 문화를 이해하고 오감으로 체험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로벌 RISE(Redesign in Store Experience) 프로젝트를 국내에도 접목했다. 고객들이 매장에 방문하면 파리지엔의 아파트먼트 응접실을 방문한 듯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끼도록 연출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고객 경험을 위해 새롭게 디자인했다. 그 결과 ‘콘셉트부터 상품 카테고리까지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보는 것 같다’고 할 정도의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매장에서 직접 보니 롱샴 브랜드와 제품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거나, 오래전부터 롱샴을 애용해왔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부티크 매장을 경험하게 되어 반갑다고 말해주는 로열 커스터머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큰 폭으로 성장한 MZ 세대 고객층을 공략했다. MZ 고객들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그들이 즐겨 찾는 지역에서 여러 차례 팝업스토어를 오픈해 고객 소통을 강화했고, 적극적인 셀럽 마케팅으로 MZ 고객들과 만나는 접점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레트로 트렌드와 맞물려 시너지효과를 냈다. Y2K 패션이 유행하면서 롱샴의 르 플리아쥬백이 또다시 주목받았다.

“쇼트폼 트렌드에 힘입어 MZ 세대 고객들과 꾸준히 소통하게 된 것이 기회가 되었어요. 크리에이티브한 MZ 세대들이 다양한 매체에 파우치로 출시된 가방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들을 쇼트폼으로 공유하면서 붐이 일었어요. 다양하고 재미있게 액세서리를 활용하는 고객님들 덕분에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 효과를 얻었던 것 같아요.”

박 대표가 입사할 때만 해도 고령층의 애용품이라고 여겼던 롱샴의 대표적인 르 플리아쥬 제품들은 10대들도 다시 들고 싶어 하는 가방이 되었다. 덕분에 2024년 기준 MZ 고객 비중이 54%로 조사되며, 주요 고객층의 나이가 어려지는 효과를 얻었다.

77년의 전통은 현재진행형


▎프랑스 전원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모티프가 가득한 컬렉션을 선보인 롱샴의 2025 SS 컬렉션을 담은 광고 비주얼.
롱샴은 1948년 파리에서 탄생한 럭셔리 브랜드다. 70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박성희 대표는 “프랑스 장인의 기술력, 트렌드에 맞춘 변화,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을 현재의 롱샴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된 비결로 꼽았다.

롱샴은 프랑스 장인의 솜씨를 신선하고 고무적인 창의성을 통해 친근한 럭셔리로 고객들과 함께하고 있다. 2022년 앙드레 사라이바, 2023년 토일렛페이퍼 매거진 등 다양한 아티스트·디자이너와 협업해 광고 캠페인과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전개하며 세간의 이목을 이끌고 있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시즌마다 새로운 컬러와 패턴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반영하는데, 르 플리아쥬뿐만 아니라 레더백 라인인 르 로조(Le Roseau), 르 플로네(Le Foulonné) 등 롱샴 제품은 가볍고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갖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재활용 폴리에스터, 캔버스 등 지속가능한 소재를 활용하여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NGO Anaka와 협업해 마다가스카르의 여성들이 수작업한 제품을 출시하는 등 ‘기회의 평등’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전 세계에 확산된 다양한 분야의 한류 열풍으로 한국 시장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마켓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부상했다.

롱샴은 실용성과 접근 가능한 가격대를 매력으로 한국 시장에서도 꾸준히 이름을 알려왔다. 박 대표는 “면세점에서는 세계 각국 고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오랜 시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백화점 매출은 최근 3년간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APAC 지역 내 국가들의 경제, 인구, 마켓 크기와 럭셔리 브랜드 카테고리에서의 코리안 파워를 생각하면 롱샴은 국내에서 앞으로 더 큰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롱샴의 대표로 재직해온 박 대표는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을 조직 운영의 최우선순위로 생각한다.

“저는 직원들을 뽑을 때도, 면담을 할 때도 항상 본인이 원하는 커리어가 뭔지, 어떻게 그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직원 개개인의 경력을 어떻게 발전시켜가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함께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모교인 숙명여자대학교에서도 취업 경력 개발처에서 운영하는 멘토 자문 교수로 학생들과 여러 차례 수업을 진행했다. 그때 만나 미래를 고민하던 학생들이 같은 업계에서 또는 같은 회사에 자리 잡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 박 대표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개인과 회사가 같이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오픈컬처와 좋은 동료, 선후배가 되어주는 직장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어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더 나은 커리어로 성장해갈 수 있을까’를 같이 나누고 고민하다 보니 어느 덧 모두가 성장과 변화를 체감하고 있어요. 직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자극을 받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롱샴의 부활을 이끈 ‘르 플리아쥬’의 바통을 이어받을 아이템을 궁금해하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주저 없이 ‘르 로조’ 라인을 꼽았다.

“르 로조 컬렉션은 롱샴의 아이코닉한 레더 컬렉션이에요. 지난해 출시 30주년을 맞은 르 로조는 롱샴의 장인정신과 가죽 장인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라인으로, 더플코트에서 영감을 받은 시그니처 뱀부 클래스프가 반짝임과 세련미를 더해주는 타임리스 클래식 아이템이죠.”

박 대표가 추천한 르 로조는 1993년 출시된 이후 끊임없이 재탄생되어왔다. 로조(Roseau)가 뜻하는 갈대처럼, 여러 스타일 변형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도 패션트렌드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라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기록적인 매출 성장으로 글로벌 패션업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롱샴. 박성희 대표는 롱샴코리아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며 ‘롱샴 파워’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박 대표에게 또 다른 목표가 있을까.

“프랑스 럭셔리 패션하우스 롱샴의 전 카테고리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메종 롱샴 스토어(Maison Longchamp Store)를 서울에 오픈하고 싶어요.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과 내국인 고객들에게 한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은 물론 아직까지 소개하지 못한 롱샴의 모든 제품을 보여드리고 싶고요. 아울러 롱샴의 고유한 철학과 히스토리, 가죽 제작 기술을 널리 알리고 싶은 바람이에요.”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사진 _ 최영재 기자

202504호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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