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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밸리의 혁신가(12) 박혜윤 마플코퍼레이션 대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 개척자 

조득진 선임기자
2007년 창업 후 시장의 흐름보다 늘 반걸음 앞서갔다. 디지털전환과 기술 발전에 빠르게 반응하고 움직이면서 지식재산권(IP) 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마플코퍼레이션 이야기다.

▎박혜윤 마플코퍼레이션 대표는 “여러 차례 피벗(pivot, 사업모델 전환)을 했지만 본질은 주문 제작 상품을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티셔츠 한 장씩 팔아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래?”

박혜윤 대표가 2007년 ‘국내 최초 POD(Print-On-Demand, 주문 제작 프린팅) 기반 굿즈 제작 플랫폼’을 표방하고 협력사를 찾아 나섰을 때 봉제공장, 인쇄공장 사장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주인공 백설공주 말고 일곱 번째 난쟁이 캐릭터를 찾는 사람’을 위해 서브 컬처, 서브 캐릭터 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강고한 대량생산 시스템 속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 들어갈 틈새는 없어 보였다. ‘스타트업’이란 단어도 낯선 때였다.

수소문 끝에 해외에서 소량 제작 설비를 들여와 주문받은 이미지를 의류에 인쇄해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의류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명확해 추가 아이템이 필요했다. 2010년대 들어서 고가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핸드폰 케이스를 개성 있게 꾸미는 트렌드가 생겨났고, 소비자의 니즈에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온오프라인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상품을 다양하게 늘리고, 인쇄 기술도 발전하는 계기였다. 이렇게 홍대 앞 작은 매장에서 시작한 마플코퍼레이션은 현재 굿즈 제작 전문 플랫폼 ‘마플’과 크리에이터 커머스 ‘마플샵’을 운영한다. 2022년 186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41억원으로 폭풍 성장했고, 거래 건수 역시 같은 기간 32만 건에서 92만 건으로 180%나 늘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98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150% 상승했다.

마플코퍼레이션의 핵심 경쟁력은 바로 크리에이터다. 마플코퍼레이션은 제작 시스템, 마켓, 커뮤니티 등 3요소를 기반으로 크리에이터 콘텐트 지식재산권(IP) 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현재 7만 명이 넘는 크리에이터가 활동하고 있는데 누적 판매 상품이 140만 개에 달한다.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무한대의 진열장에 상품을 전시하고, 재고 우려가 없는 주문 제작으로 꾸준히 판매를 일으키며 이른바 ‘롱테일(long tail)’ 효과를 보이고 있다. 유튜브 쇼핑과 연계한 크리에이터 누적 거래액도 200억원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마플코퍼레이션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5월 8일 만난 박혜윤 마플코퍼레이션 대표는 “시장보다 조금 앞서가면서 여러 차례 피벗(pivot, 사업모델전환)을 했지만 본질은 주문 제작 상품을 파는 것이었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보고 고객이 뭘 원하는지 캐치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웹툰 작가, 유튜버 등이 늘고 2차 창작물 시장도 성장하고 있어 관련 굿즈의 주문 제작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주문 제작은 가장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티셔츠 한 장’ 주문 제작 솔루션 제공


▎마플, 마플샵 홈페이지. 마플과 마플샵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3000개가 넘는다. 티셔츠 한 장부터 주문 생산이 가능하다.
예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학 전공 후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가상현실학(Electronic Visualization) 석사과정을 걷던 박 대표는 스프레드셔츠나 카페프레스 등 POD 시장이 부상하는 걸 목격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2007년, 한 장의 옷도 주문 제작해주는 커스텀 프린팅 서비스 쇼핑몰 ‘마켓프레스’를 창업했다. 당초 목표는 아티스트(당시엔 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통용되지 않았다)와 실물 상품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지금의 ‘마플샵’ 버전이었다. 그러나 소량 제작이 가능한 설비도 없었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던 ‘얼리 스테이지’였다.

일단 2010년 홍대와 이태원에 매장을 내고 고객과 1:1 상담으로 소량의 제품을 맞춤 생산했다. 당시 대학 동아리, 소모임용 티셔츠를 제작하면 장사가 곧잘 됐지만 마음엔 아쉬움이 늘 존재했던 박 대표는 ‘단순 인쇄업’이 아닌 ‘창작자와 제품을 연결하는 플랫폼’에 재도전했다. 우선 봉제와 프린팅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원할 수 있는 IT시스템을 갖추어야 했다. 박 대표는 “해외에서 디지털 프린팅 설비를 들여와 자동화주문생산공정을 갖추고, 자체 개발한 웹·모바일 커스터마이즈 솔루션으로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을 완성했다”며 “매장을 운영하면서 파악한 고객 니즈, 기존 솔루션의 문제점이 디지털전환의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15년 온라인으로 사업을 전환하며 ‘마플’을 선보였다. 마플에서는 제품 한 개부터 주문 제작 생산이 가능한데, 디자인 툴을 모르는 사람도 원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만 업로드하면 쉽게 굿즈를 만들고 주문할 수 있다. 현재 의류, 머그컵, 포토카드, 노트북·스마트폰 케이스, 키링, 블루투스 이어폰, 타투스티커 등 취급 품목이 3000개가 넘는다. 일반적인 실크스크린(날염인쇄)부터 UV프린팅(자외선 이용 인쇄방식)·자수·전사·최첨단 디지털 프린팅까지 다양한 프린팅 설비를 갖추었다.

2020년 4월에 오픈한 ‘마플샵’은 크리에이터들의 굿즈 판매를 위한 커머스 플랫폼이다. 크리에이터가 일러스트, 사진 등 자신의 IP로 굿즈를 디자인하면 상품제작, 주문접수, 결제, 배송, 재고관리는 물론이고 상품문의와 상담업무, 반품과 교환안내 등 쇼핑몰 운영에 필수적인 CS 업무까지 모두 해결해준다. 현재 유명 뮤지션과 이모티콘 작가, 웹툰 작가, 게임사, 유튜버 등 7만 명 넘는 크리에이터가 입점해 있다. 같은 해 11월에는 숍 여러 개를 동시에 오픈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업 전용 크리에이터 커머스 ‘마플샵 플러스’도 오픈했다.

두 차례 투자유치는 마플코퍼레이션의 기술력과 시스템 개선, 사업 확장에 큰 도움이 됐다. 2020년 시리즈A로 120억원을 투자받은 박 대표는 서울시 가산디지털단지 공장을 3967㎡ 규모의 스마트팩토리로 바꾸었다. 제조 공정 단계별 자동화로 리드타임(고객의 주문에서 납품까지의 소요시간)이 줄고, 인력과 비용이 절감되면서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2022년 넥슨코리아의 전략적투자(SI)는 넥슨이 보유한 게임 50여 종의 IP를 활용해 의류·휴대폰케이스·모자·쿠션·가방 등 1000여 종의 상품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박 대표는 “게이머는 게임 IP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초개인화 현상이 강한 편”이라며 “게임을 하다가 자신의 IP 캐릭터 상품을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올해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경쟁력인 크리에이터 지원에 진심”


업계에서 손꼽는 마플코퍼레이션의 핵심 경쟁력은 크리에이터에 있다. 지난 2월 초 마플코퍼레이션이 발표한 ‘2023년 크리에이터 IP 활용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2023년 마플샵 매출액 상위 50위 크리에이터는 일러스트레이터 32%(16명), 유튜버 20%, 버추얼 크리에이터 12% 순이었고 웹툰, 아티스트, 스트리머 등이 뒤를 이었다. 굿즈 종류별로는 티셔츠가 11.3%로 가장 많이 제작됐고 스티커(10.9%), 키링(10.9%), 폰케이스(10.5%) 순이었다.

박 대표는 “우리는 크리에이터 지원에 진심”이라며 “마플샵의 콘텐트를 채워주는 사람들은 모두 크리에이터와 그들의 IP이다. 크리에이터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이고, 그것이 마플코퍼레이션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2022년 7월 예술·음악·NFT(대체불가능토큰)· 웹3.0·가상현실 등 모든 영역의 크리에이터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CCC(Creators Community Club)’를 오픈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 성수동에 마련한 CCC 라운지에서는 크리에이터가 자유롭게 전시, 세미나, 소모임 등을 주최하거나 참여한다. 지난 4월엔 배우 겸 작가 박신양, 청소광 브라이언 등 크리에이터 31인과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마플샵이 올해 1월 유튜브 쇼핑 제휴사에서 쇼핑 플랫폼 파트너사로 전환한 것도 크리에이터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간단하게 굿즈를 개설하고, 자신의 영상 콘텐트 하단에 굿즈 판매숍을 소개할 수 있다. 구독자 입장에서는 유튜브 콘텐트를 보다가 바로 구매 가능한 마플샵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튜브의 ‘플랫폼 파트너’로 지정된 곳은 마플샵과 카페24 두 곳뿐이다. 박 대표는 “유튜브 내에서 마플샵을 통한 IP 상품 판매의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마플샵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색다른 콘텐트 커머스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튜브에서 마플샵 쇼핑 기능을 이용하는 크리에이터는 4300명 정도로, 굿즈 판매로 일으킨 누적 거래액은 200억원이 넘는다는 설명이다.

“콘텐트 생산·소비는 본능, 굿즈 시장 커질 것”

마플코퍼레이션은 창업 이후 기술 고도화를 거듭하며 스케일 업에 성공했다. 탄탄한 크리에이터 인프라를 기반으로 B2C, B2B, C2C 등 다양한 유통 경로도 구축했고 최근엔 NFT와 블록체인의 부상에 맞춰 디지털 굿즈 판매까지 나서는 등 시장과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크리에이터 개인은 물론이고 대기업, 스타트업, 학교, 방송사, 엔터사 등 IP를 이용한 수익 창출을 원하는 곳에서 마플코퍼레이션을 찾는 이유다.

박 대표는 “SNS, 유튜브 등이 활성화돼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창작자인 시대가 온 데다, 특별한 소유 경험을 원하는 소비도 늘고 있어 향후 굿즈 시장의 확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콘텐트를 만들고 소비하는 것은 본성”이라며 “생산 자동화 등으로 사람들의 여가가 늘수록 창작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고,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량생산되는 공산품보다 개성이 담긴 특별한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도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5월 선보인 올인원 커뮤니티 소셜 플랫폼 ‘사이어티’는 마플코퍼레이션의 비전을 보여준다. 게시물 작성, 라이브 채팅, 비디오 스트리밍 등 다양한 기능이 있는 커뮤니케이션 툴에 블록체인 기술을 더한 웹3.0 특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크리에이터는 사이어티를 활용해 팬들과 소통하고, NFT 굿즈를 판매하거나 토큰 전송 등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크리에이터가 웹3.0을 기반으로 소통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며 “마플샵이 피지컬한 상품을 만드는 쪽이라면 사이어티는 디지털 콘텐트를 다루는 곳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크리에이터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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