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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수 로엔서지컬 대표 

세상에 없던 수술 로봇 

장진원 기자
미국의 거대 공룡 기업이 장악한 수술 로봇 시장에 한국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과 카이스트에서 세계적인 의공학자로 이름을 날린 권동수 대표가 창업한 로엔서지컬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콘셉트와 방식으로 로봇수술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술 로봇 자메닉스 앞에 선 권동수 로엔서지컬 대표. 로엔서지컬은 세계적인 의공학자인 권 대표와 카이스트 제자들이 함께 창업한 수술 로봇 스타트업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피부·점막 또는 그 밖의 조직을 절개해 시행하는 외과적 치료 행위. 수술(surgery)의 사전적 정의다. 수술의 역사는 놀랍게도 1만 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선사시대에도 뇌수술, 즉 외과적 수술을 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오늘날 같은 현대적 수술법은 1800년대 들어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법과 멸균법 등이 개발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대의학 수술은 외과적 치료가 닿지 않는 영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다.

외과수술은 1999년 들어 또 다른 기술적 전기를 맞았다.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Intuitive Surgical, 이하 인튜이티브)이 선보인 수술 로봇 ‘다빈치’의 등장이다. 다빈치는 로봇 팔 4개를 복강 내 작은 구멍에 넣어 수술한다. 수술하는 로봇의 등장은 메스와 절개라는 전통 방식을 과거의 유물로 만들고 있다. 크게 절개하지 않으니 상처 회복과 예후가 좋고, 더 정밀하고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졌다. 최근 로봇수술은 전통적인 절개수술의 비중을 뛰어넘을 정도로 보편화됐고, 수술 범위도 거의 모든 진료과 영역을 커버할 정도로 확대됐다.

직경 3㎜ 내시경이 부수는 신장결석

로봇 팔을 이용한 최소 침습 수술은 다빈치 이후 전 세계 로봇수술의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간단한 맹장수술이라도 최소 15㎝ 이상 절개해야 하는 전통적 수술법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적 진보가 이뤄졌다. 이후 글로벌 수술 로봇 시장은 다빈치 개발사인 인튜이티브의 독무대가 됐다. 지난해 인튜이티브의 매출액은 약 71억 달러에 달했고 시가총액은 1406억 달러, 우리 돈으로 190조원이 넘는다. 경쟁사들이 비슷한 수술 로봇을 개발해 내놓고 있지만, 다빈치의 아성을 뛰어넘기란 여전히 역부족이다. 성능과 운용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다빈치라는 원형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나 병원 입장에선 이미 들여놓은 기존 장비를 대신해 비슷한 경쟁사 로봇을 새로 들일 만한 유인도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수술 로봇을 선보여 화제다. 지난 2018년 설립한 로엔서지컬의 수술 로봇 ‘자메닉스(Zamenix)’다. 창업 CEO인 권동수 대표의 이력도 눈에 띈다. 권 대표는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이며, 세계적인 의공학자, 특히 수술 로봇 개발의 권위자다. 미국 조지아공대 재학 시절,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스페이스 셔틀암을 개발했고, 졸업 후에는 ‘맨해튼 프로젝트’로 유명한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합류해 텔레로보틱스 개발에 매진했다. 1995년 카이스트 교수 부임 후엔 국내 최초로 의료로봇 개발·연구를 국가 과제로 시작했고(1996), 이후 28년간 국내외에서 의료용 로봇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활동해왔다.

세계적인 의공학자와 그를 따르던 카이스트 제자들이 함께 만든 자메닉스는 기존 수술 로봇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외향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팔이 4개인 기존 로봇과 달리 자메닉스는 부드럽게 휘어지는 연성 내시경 하나뿐이다. 권 대표가 첫 타깃으로 잡은 질환은 신장결석이다. 직경 3㎜인 내시경이 요도관을 타고 들어가 콩팥에 생긴 결석을 레이저로 잘게 부수고, 바스켓에 담아 몸 밖으로 빼낸다. 체내에 이미 있는 관(요관)을 따라 내시경을 삽입하니 절개나 침습이 전혀 없다. 권 대표는 “신장결석은 인류의 10%가 일생에 한 번 겪을 만큼 흔한 질환”이라며 “연성 내시경을 이용한 관내 수술, 즉 엔도스코프(endoscope, 내시경) 서저리시대가 새로 열릴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뱀처럼 생긴 내시경이 체내에 있는 관에 맘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장결석을 치료하기 위해 요관으로 들어가듯이, 앞으로 위암은 식도, 대장암은 항문, 기타 복강 관련 질환은 배꼽으로 들어갈 수 있죠. 혈관, 요도, 식도, 담관, 췌관 등 적용할 수 있는 부위도 많습니다. 절개나 침습이 필요 없는, 전혀 다른 로봇수술법의 등장이죠.”

신장결석을 치료하는 기존 방식엔 몇 가지가 있다. 초기 경증에는 약물을 투여해 결석을 녹인다. 가장 쉽고 간단한 처치다. 결석이 조금 큰 경우에는 체외에서 초음파로 충격을 줘 돌을 부순다. 초음파 쇄석술이다. 환자는 고통스럽지만 의사에게는 쉬운 치료법이다. 깨진 돌이 신장에 박히거나 외부로 잘 배출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예후가 좋지 않고 치료 과정에 고통이 있어 해외에선 점점 감소하는 추세지만, 국내에선 아직도 80% 이상을 차지한다. 보험수가가 좋기 때문이다.

결석이 큰 경우에는 외과적 수술법이 동원된다. 콩팥을 절개하거나 구멍을 크게 뚫어 레이저로 돌을 부순다. 큰 수술인 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콩팥에는 동맥이 많이 몰려 있어 혈관이 훼손되기 쉽다. 이 방식도 선진국에선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국내외 비뇨기과에서 내시경을 이용한 연성요관내시경결석제거술(Retrograde Intra Renal Surgery: RIRS)이 각광받게 된 배경이다. 역행성 신장결석 수술이라고도 하는데, 내시경을 요관으로 집어넣어 레이저로 결석을 부순 후 바스켓에 담아 꺼낸다.

AI로 수술 정확도·안전도 확 높였다


▎자메닉스는 내시경을 이용해 레이저로 신장결석을 부수고 몸 밖으로 꺼낸다.
레이저와 바스켓이 달린 내시경으로 신장결석을 제거하는 RIRS 수술이 있음에도, 권 대표가 자메닉스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RIRS는 환자에겐 좋지만 의사에겐 최악의 수술법”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내시경을 손에 들고 매우 불안정한 자세로 수술해야 하니, 근육과 몸의 피로도가 너무 큽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방사능 피폭이에요. 엑스레이를 사용하기 때문이죠. 외국에선 심한 경우 의사의 손이 괴사된 사례도 있어요. 또 내시경과 바스켓을 조종하는 의사 2명의 협업이 필수입니다. 수술법에 숙련되지 않으면 레이저를 엉뚱한 곳에 쏴 콩팥이 상할 수도 있어요. 환자에겐 좋지만, 의사들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수술법이죠. 자메닉스를 개발한 이유입니다.”

자메닉스는 어떨까. 레이저와 바스켓을 장착한 내시경이 요관을 타고 들어가는 건 RIRS와 같다. 하지만 환자 옆에서 내시경을 들고 방사능을 온몸으로 맞는 의사 대신, 베드에서 떨어진 콘솔에서 모든 수술이 이뤄진다. 엑스레이를 사용하지 않으니 방사능 피폭은 제로(0)이고, 의사 1명이 편하게 자리에 앉아 수술을 진행한다. 최신 AI 기술도 적용했다. 소변(액체)과 호흡에 따라 결석도 움직이는데, 이를 AI로 학습해 내시경이 똑같이 따라 움직인다. 사실상 결석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것과 같다. 부순 돌의 크기가 꺼내기 적당한 수준인지도 AI가 판단해 알려준다. 기존 RIRS는 숙련도가 떨어질 경우, 돌을 꺼내다 요관이 긁히거나 파손되는 부작용도 종종 발생했다.

“방사능 피폭 없이, 편안한 자세로, 의사 1명이 훨씬 정밀하고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숙련된 고참급 의사가 주도했던 RIRS에 비해, 자메닉스는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라도 간단한 조작법만 익히면 쉽게 적용할 수 있어요. 자메닉스를 이용하면 웬만한 의사라도 숙련의가 되는 셈이죠. 수술 시간, 합병증, 재발률도 확 떨어집니다. 세계 최초의 ‘풀로보틱 솔루션’이라 자부합니다.”

지난 2022년 자메닉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혁신의료기기,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됐다.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되면 동물실험(전임상)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상시험 허가가 나온다. 2022년 4월 임상 허가, 그해 10월 의료기기 제조 허가를 받은 자메닉스는 지난 3월 양산부산대병원과 첫 공동연구협약을 맺고 자메닉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어 경북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영남대병원에서 차례로 6월부터 임상에 들어간다. 이들 병원에서 쌓인 임상 수술·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험수가 적용 등이 확정될 예정이다.

웬만한 외과수술에 대부분 적용 가능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노교수의 창업은 그 자체로 국내외 의공학·로봇공학계에 큰 화제였다. 권 대표는 “나이 60에 평생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본 게 삶의 물줄기를 틀게 했다”며 창업 계기를 들려줬다.

“해외에 수없이 다녔지만 전부 세미나와 학회뿐이었요. 순수한 관광 여행이라곤 가본 적이 없었죠. 스스로를 위한 은퇴 선물로 2017년 남미 안데스산맥 트레킹을 떠났습니다. 난생처음 아무 목적 없이 편한 맘으로 떠났지만, 여행 내내 일생의 연구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라는 고심이 끊이질 않더군요.”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은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됐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된 절경을 기대했건만, 오전에는 구름이 오후엔 눈바람이 몰아쳤다. ‘어떤 일이든 때와 타이밍이 있다. 그걸 놓치면 끝나고 만다. 지금이 내 인생의 타이밍이다’는 생각이 꼬리를 이었다. 권 대표는 “내 생의 보스는 바로 나 자신”이라며 “남은 일생,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돌이켜보니 가장 아쉬운 게 ‘나는 뭘 했나’더군요. 제자들에겐 항상 ‘우리는 엔지니어지 사이언티스트가 아니다’라고 가르쳤어요. 법칙과 물질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건, 사회에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라고 강조한 거였죠. 하지만 정작 저 자신은 연구에만 매달렸던 겁니다.”

귀국 후 당장 카이스트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앞장설 테니, 우리가 연구해왔던 걸 상업화해보자, 사회에 공헌해보자”고 말했다. 뜻을 모은 제자 8명과 손을 잡았다. 이들이 현재 로엔서지컬의 핵심 멤버들이다. 함께하기로 한 8명 모두 박사논문 테마를 수술 로봇으로 잡았다. 이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로엔서지컬을 설립했고 자메닉스를 개발했다. 자메닉스 자체가 세상에 없던 기기인 것처럼, 논문과 창업, 개발이 거의 동시에 이뤄진 경우도 유례를 찾기 힘든 과정이었다.

2018년 창업 후 지금까지 로엔서지컬의 누적 투자금은 약 400억원에 이른다. 산업은행과 인바디 등 14개 기관·기업이 투자자로 나섰다. 권 대표는 임상 결과가 본격적으로 확인된 후 2024년 미국 FDA 인증이 목표라고 밝혔다. 2025년에 매출액 100억원, 2028년 1000억원을 목표로 잡았고, 2025년 코스닥 상장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공격적인 비전은 자메닉스의 뛰어난 활용도에서 비롯된다.

“지금은 신장결석에 특화됐지만, 관내 수술이 가능한 영역에는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담관·췌관까지 가는 소화기내과, 폐 등 호흡기내과, 심장 등 혈관내과, 부인과 등에서 개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요관은 내시경 직경 3㎜, 식도는 15㎜, 항문은 25㎜가 가능해 다양한 내시경과 수술 도구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진료과별 프로토타입들이 완성됐죠. 지난 30여년간 쌓아온 세계적인 연구개발 성과들을 하나씩 사업화하는 게 우리의 계획입니다. 다빈치도 긴장해야 할 겁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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