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을 좌우한다단순한 뷰티 디바이스 업체가 아닌 것 같다. 룰루랩의 비전은 전 세계인의 피부 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병·질환 발생을 조기에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누구나 기분이 좋으면 ‘룰루’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건강해야 ‘룰루’라는 말이 나오지, 아플 때는 통증을 낮추기에 바쁘다. 룰루랩이란 사명은 발병 전에 질환을 예측해 행복한 삶을 누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룰루랩이 현재까지 모은 피부 데이터는 200만 건이 넘는다. 데이터 수집·축적을 위한 도구가 뷰티 디바이스였고 최종 지향점은 메디컬 시장에 있다.업계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인가. 창업 초반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20여 개국에서 다인종 피부 데이터를 모았다. 이후 피부 데이터를 분석하는 AI 엔진 고도화에 집중했으며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CRM 솔루션을 마련했다. 이러한 두 가지 코어 솔루션을 갖췄기에 타사와 비교해 글로벌 시장 진입 속도가 빨랐다. 시류에 휩쓸려 뷰티 디바이스로 매출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면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룰루랩은 전 세계 어떤 기업이든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도록 SDK를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사업 목적의 명확성 덕분인가. 그렇다. 16년 전 ‘의사소통의 제한 없이, 많은 사람의 삶의 질이 나아질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현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이후 이미 질병이 나타난 상태에서 고통을 경감하는 쪽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쪽으로 갈 것인지 둘 중에서 고민했다. 후자를 택해 코넬대 생명공학과 졸업 후 유전자분석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유전자분석은 극소수의 사람만 의뢰하는 연구 분야다. 누구나 손쉽게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얼굴의 피부 데이터가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얼굴 피부는 인체 다른 부위보다 데이터를 확보하기 수월하고 시장의 거부감도 덜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센터에 가기는 번거롭지만 얼굴 영상 촬영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사업 로드맵을 구체화한 시점은 언제인가. 창업 전에 이미 완성됐다. 스타트업도 대기업, 중견·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사업 로드맵을 미리 상세하게 마련해야 탄탄하게 성장한다. 1단계는 AI 알고리즘 기반 피부 분석 솔루션 개발, 2단계는 모바일 피부 데이터 플랫폼 개발, 3단계는 피부 질환·질병 예측 기술 개발이다. 이 같은 단계를 거쳐 메디컬 시장에 도전하는 로드맵을 구상했다. AI 메디컬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할 방침이다.
“비즈니스 이전에 인생을 먼저 살펴라” 명확한 비전 설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지 거듭 고민했다. ‘내 인생에서 최우선 가치는 무엇이고, 현재 그 가치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주 되돌아보는 편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는 비전이 확고해지자 사업의 목적과 방향성이 명확해졌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 단계별 세부 목표를 설정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하지 못했더라면 회사는 금세 흔들렸을 것이다. 창업 준비생에게도 비즈니스 이전에 자신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탐구하라고 권하고 싶다.오늘날 많은 K-스타트업이 힘겨워한다. 룰루랩은 잠재고객과 시장분석을 끊임없이 해왔다. 사업의 본질은 ‘예쁜 디자인’에 있지 않다. 기술의 활용성과 고객이 느끼는 편의성에 달려 있다. 창의적인 기술과 제품을 막연하게 고도화할 게 아니라 고객 니즈를 계속 트래킹해 고객가치 창출에 부합하는 기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물론 피부 분석 기술의 정확도는 중요하다. 룰루랩은 이 같은 기술을 고객이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연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글로벌 진출에 걸림돌은 없었나. 국가별로 적합한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는 일이 고됐다. 현지 정보가 전혀 없는 데다가 국가별·섹터별 특화된 파트너에 대한 레퍼런스 자료가 부족해서 찾는 기간이 오래 걸렸다. 뷰티 총판, 유통 등 분야별 정보를 얻는 데 3년 정도 걸렸다. 게다가 스타트업은 파트너 선별 안목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잦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부나 기관이 이런 측면을 도와줬더라면 실수와 낭비가 줄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스타트업 종사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누구나 어려움을 느낀다. 다만 어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결국 어려움이 닥쳐도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현 상황을 너무 쉽게 위기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 국내 스타트업은 자사 역량을 스스로 저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글로벌 무대에 나가 보니 해외 스타트업 대표들은 그릇을 크게 잡는다. 본인 능력치보다 높은 목표 수준을 잡는데, 그래야 그 근처라도 간다. 국내 스타트업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이를 드러내 조언을 구하고 빠르게 보완하길 바란다. 내 경험상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데 주효했다. 모르는 건 민망한 게 아니다. 소극적인 마인드셋을 버리면 좋겠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