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여행(48) 영월에서 그린 지속가능한 미래 

 

단종의 애사가 어린 강원도 영월을 찾았다. 푸른 숲이 무성한 영월한반도지형을 바라보며 우리 금수강산이 아름답게 보전되길, 또 한국의 힘이 더 크게 융성하기를 기원했다.

▎애환이 서린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의 장릉(莊陵). 이곳을 거닐며 역사와 권력의 함수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젊은 달! Young Moon? 달이 젊다니 그 느낌이 참 풋풋하다. 강원도 ‘영월’을 ‘Young月: 젊은 달’로 해석해 재미를 더한 것이다. 꼭 한번 찾아가서 보고 싶었던 장소. 이번에 여러 일행과 함께 강원도 영월 지방에서 소문난 ‘젊은달와이파크(Museum of Youngwol Y Park) 미술관’을 방문했다. 이어서 영월 10경 중 하나인 한반도지형(Korean Peninsula Terrain), 단종의 장릉, 별마로천문대도 찾았다. 예전에는 교통이 너무 불편해 찾아가기 어려운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고속도로가 쭉쭉 잘 뻗어 있어 짧은 시간에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먼저 ‘젊은달와이파크’를 관람했다. 이곳은 복합미술공간으로, 공간·대지 미술작품을 특성 있게 구성해 많은 이가 찾는 지역의 핫 플레이스다. 멀리서 보아도 눈에 확 띄는 입구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붉은색 대나무 숲을 연상하게 하는,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는 특이한 입구다. 강렬한 첫인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 [붉은 대나무]는 붉은색 금속 파이프를 이용해 만든 설치미술 작품이다. 야릇한 기분으로 [붉은 대나무]를 통과해 입구에 있는 카페를 지나면 감동을 주는 설치미술 작품들을 여럿 감상할 수 있다.

이어서 껍질이 두꺼운 강원도 소나무 장작을 엮어서 특이하게 쌓아 올린 공간에 들어섰다. 마치 우주에서 수많은 별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공간이다. 아주 특별한 우주 에너지의 느낌을 받은 [목성], 벽과 천장을 모두 짙은 색깔의 꽃으로 장식한 [사임당이 걷던 길], 벽돌벽에 말 세 마리의 궁둥이 반쪽만 튀어나오게 설치된 작품 등이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자연 바람이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길’을 지나서 금속 파이프로 만든 노출 가설물인 [붉은 파빌리온]을 만났다. 3층으로 구성된 파빌리온은 그물로 만든 거대한 거미줄 모양의 체험·놀이 공간인 ‘Spider Web 플레이 스페이스’가 특이했다. 공간에 설치된 많은 미술품을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각자 상상력을 동원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직접 한번 방문해 열린 공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영주 ‘젊은달 미술관’ 입구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치미술 작품 [붉은 대나무].
강렬한 설치미술 작품이 가득한 ‘젊은달와이파크’

‘젊은달와이파크’는 본래 2014년 설립된 술샘박물관이 전신이다. 수년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방치된 것을 창의적인 공간 디자이너가 도시재생,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위해 ‘재생과 순환’이라는 주제로 재구성했다. ‘창의’는 살아 움직이고 ‘복지부동의 무기력’은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는 대칭의 개념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음으로 한반도지형을 찾았다. 가끔 사진으로 영월 한반도지형을 볼 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하며 호기심이 발동했던 바로 그 장소다. ‘꼭 한번 찾아가리라’ 맘먹던 차에 드디어 걸음을 옮겼다. 버스가 주차장에 닿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주차장을 보니 이곳이 얼마나 유명한 관광지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산길을 한참 걸으니 태극기 문양의 바람개비가 방문객 양옆으로 도열해 일행을 반겨주었다. 더 내려가니 시야가 탁 트이며 삼면이 강물에 둘러싸인 한반도지형이 펼쳐졌다. 자연의 신비인가? 자연 지형이 어떻게 한반도와 이리도 닮게 형성됐을까? 푸른 숲이 무성한 한반도 지형을 강물이 둘러싸고 굽이굽이 흐르는 모습을 전망대에서 바라보며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아름답게 보전되고 국력도 힘차게 발전하기를 기원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충족해준 자연의 힘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자연의 신비일까. 자연 지형이 어찌 이리도 한반도와 닮게 형성됐을까.
발길을 돌려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端宗)의 장릉(莊陵)을 찾았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寧越郡) 영월읍(寧越邑) 단종로 190이 주소지다. 세계문화유산인 우리나라 조선왕릉을 시간될 때마다 모두 찾아보고 싶다는 게 평소부터 가져온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한양에서 100리 이상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성하는 것이 예법이다. 그러니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조성돼 있다. 하지만 단종의 장릉은 예외로,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조성된 왕릉이다.

자료를 살펴보면, 조선 제6대 왕(재위 기간 1452∼1455년)인 단종은 문종(文宗)의 아들로,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다. 아버지 문종은 할아버지인 세종의 장남이었다.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원손으로 시작해 세손과 세자를 거쳐서 왕이 된 조선 유일의 국왕이다. 그러나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당시 오지였던 영월 땅으로 유배돼 청령포에서 생활했다. 그 후 단종의 유배지는 영월 동헌 터에 지은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얼마 후 사약을 받고 짧고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다른 왕릉과 달리 장릉은 아래에서 정면이 보이지 않도록 꽤 높은 구릉 위에 조성돼 있다.
애환이 서린 장릉을 거닐며 역사와 권력의 함수는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다른 왕릉과 달리 장릉은 아래에서 정면이 보이지 않도록 꽤 높은 구릉 위에 조성돼 있다. 계단과 오솔길을 따라서 장릉에 올랐다. 숲길을 따라 도착한 장릉은 다른 왕릉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능 주변에 서 있는 무인상과 문인상이 비운의 왕을 늦게라도 잘 모시고 있는 듯 보였다. 완벽한 적통을 지니고 태어나 왕위에 오른 단종의 애사를 상기하며, 격랑을 헤치고 지금에 다다른 현대사를 우리는 어떻게 써내려가고 있는지 숙연히 생각해보았다. 짐짓 엄숙한 마음으로 오솔길을 걸어 내려왔다.

저녁이 돼 어둠이 깔리길 기다려 별마로천문대를 찾았다. 아주 오래전에 미국 요세미티산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별들이 떠올랐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손에 잡힐듯했던 추억이 되살아나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천문대에 올랐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회당 인원이 제한된 실내 천체투영실에 들어섰다. 별과 별자리 찾는 방법을 재미있게 들었다. 이윽고 계단을 따라 3층 천체관측실로 이동했다. 주의 사항을 듣고 나니 천장 슬라이딩 돔이 열렸다. 천문 망원경으로 관측을 준비했는데, 아뿔싸 하늘에 구름이 끼어 아쉽게도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기는 어려웠다. 안내자가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저쪽 방향의 구름 위에는 무슨 별, 이쪽 방향의 구름 위에는 어떤 별이 있다’는 설명만 해주었다. 아쉬운 맘에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별마로천문대’ 입구의 안내석.
글로벌 역량 강화 위한 외국어 교육

어느새 2023년 연말이 다가왔다. 세상은 여전히 요동친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이 전쟁 양상으로 격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와중에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도 열렸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분쟁을 넘어서 패권 경쟁을 더한다. 그 여파가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상 많은 나라의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중동 산유국을 중심으로 석유 감산이 어어지는 와중에 전쟁까지 발발해 유가 흐름도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따라서 고금리와 고환율이라는 장벽을 돌파해야만 한다. 학자들은 이미 우리나라가 장기 저성장기에 들어섰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전 세계적인 기후 상황도 악화되어가는 징후가 뚜렷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선 모바일 시대에서 AI와 로봇 시대를 넘어 우주 개척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별마로천문대’ 천체투영실에서 촬영한 우주의 모습.
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라는 말로 상징되던 냉전이 오래 지속됐다. 그 후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소련 붕괴 등으로 평화 무드가 조성됐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다시 국제 정치 상황의 변화로 보호무역 정책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혼란과 어려움이 산재한 글로벌 환경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상황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더 큰일은 인구 문제야, 바보야!’라고 하늘에서 소리치는 것 같다. 약 30년 전 맥킨지컨설팅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이 한국의 인구 문제를 지적하며 대안을 세우라고 열강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는 맥킨지 한국 책임자가 “한국 경제는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반쯤 익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크고 어려운 난제의 파고를 과연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안으로 전 국민의 글로벌화, 특히 리딩그룹의 글로벌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국어 능력 함양이다. 이미 세계 공통어가 된 영어, 또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제2외국어를 체화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동향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분석해 글로벌 향방을 미리 조감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적확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구한말 우리 리더들이나 국민이 세계열강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대안을 준비했더라면 식민지라는 비극을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맥킨지에서 동아시아지역 총괄 디렉터를 맡았던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는 그의 저서 『The Next Global Stage』에서 “30년 동안 업무 또는 휴가 목적으로 60개국을 방문했으며, 미국은 400번 이상, 한국과 타이완은 각각 200번, 말레이시아는 100번, 중국은 1년에 여섯 번씩 방문했다”고 밝혔다. 와세다대학교 학사, 도쿄공업대학 석사, MIT 박사 학력을 갖고 있는 그는 미국 UCLA 러스킨스쿨(UCLA Luskin School of Public Affairs) 학장과 교수를 맡았다. 이 외에도 호주 본드대 교수, 이화여대와 고려대 명예 객원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전문대학원 와튼스쿨의 SEI센터 이사회 멤버 등으로 활약했다.

그는 또 다른 저서 『내 생애 최고의 여행: Luxury Journey』에서 대학생 시절 여행 안내원으로 일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여러 나라에서 일본으로 여행 오는 다양한 유형의 외국인들을 안내하면서 각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좋은 인간관계도 맺었다. 이 과정에서 영어와 또 다른 외국어 능력도 얻었다. 전 세계가 움직이는 동향을 직접 해당 국가를 찾아 교류하면서 체험으로 파악해온 것이다.


▎천문 관측을 위해 설치된 여러 종류의 망원경.
우리는 글로벌 무대에서 이런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대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오마에 겐이치 정도의 여행 경험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되도록 많은 나라를 직접 찾아 그들의 특징을 비교 분석해내는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더욱이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관점을 갖추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잘사는 나라는 물론 그렇지 못한 나라와 우리 주변국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깊고도 현실적인 전략과 대안을 창출해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리더들은 아직 세계지도를 놓고 조감도를 그려내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니 반대급부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직접 방문해서 경험해보는 것과 막연한 상상으로 책상 위에서 피상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손자병법』‘모공 편’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승과 패를 각각 주고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라고 했다. 수없이 곱씹어 소화하고 실행해야 할 경구다.

왜 어떤 나라는 부강하며 어떤 나라는 빈곤한가? 세계의 인구·이민 정책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처우하는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의 민도는 국가의 빈부와 강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0년 후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은 어떨까?

세계 무대의 현실과 역사가 바로 살아 있는 교과서다. 글로벌 무대에서 세계의 흐름을 보고 듣고 토론하며 협상력과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지금까지 땀 흘려 이뤄낸 한강의 기적이, 또 우리의 삶이 더욱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다.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반쯤 익은 상태’라는 비판을 뛰어넘어 다시 도약해야 한다. 또다시 새해를 맞으며 10년 후 나아가 50년 후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연말을 맞이 하자. 끝으로 독자들께 연말 안부를 전한다.

“또 연말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포브스코리아와 함께 ‘이강호의 생각여행’ 집필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됐습니다. 인류를 위협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기 직전에 펜을 들어 4년이 지난 현재 팬데믹은 완전히 막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네 번째 연말을 맞으니 감회가 더 새롭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맞으시고 건강과 행복이 항상 충만한 새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312호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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