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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 ESSAY 2024] 다시, 초심(3) 송지오 송지오인터내셔널 회장 

프로메테우스 


▎송지오 송지오인터내셔널 회장
1993년 초봄, 압구정동에 작은 부티크를 열고 패션 디자이너로서 독립 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 30주년 기념 행사를 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다시 돌아보며, 이번 ‘포브스 코리아’에서 던진 ‘다시, 초심’이란 신년 화두에 지난날 겪은 많은 일을 떠올리니 감회가 깊어진다.

‘첫 출발’, 야망에 불타올라 당차게 시작한 사업은 현실의 모든 것과 어우러지지 못했다. 패션 비즈니스의 현실은 디자이너로서 너무 앞서간다는 위로로는 감당하기 힘들었으며, 무모함이 현실성을 앞질러,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곤경에 빠뜨렸다. ‘첫 패션쇼’, 그 당시에는 기발한 착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설픈 준비에 지금도 가끔 떠올리면 그 유치함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30년이라는 나름 긴 세월 동안, 갖가지 유형의 위험과 수없는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현재 생존해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모든 실패는 다시 시작을 불러오고, 초심을 다잡고 다시 시작점에 설 때마다 5년이면 이뤄낼 줄 알았던 계획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정하며 새 계획을 짜야 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일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는 일 년을 봄·여름과 가을·겨울, 크게 두 시즌으로 나누어 패션쇼를 정점으로 시즌의 콘셉트와 신제품을 발표하고, 제조와 마케팅, 영업으로 이어진다. 의상 디자인과 더불어 쇼를 구성하는 모델, 무대, 조명, 음악, 환경 등 여러 요소에 제각기 인상적인 이미지를 담고 조합하여 작품세계를 펼치는 표현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 어설펐던 ‘첫 패션쇼’에서부터 60여 차례의 컬렉션을 이어오면서, 매번 완성에 다다르지 못한 아쉬움에 새 컬렉션을 준비할 때마다 ‘다시 초심’을 가다듬는다.

어릴 때부터 패션 환경에서 전사로 키워온 아들과 가족과 같은 스태프들과 함께 이삿짐만큼의 짐을 싸 들고 파리 컬렉션을 위해 공항에 이르면 마치 출정하는 군사처럼 결연한 자세를 갖게 된다. 더욱이 장성한 아들이 아트 디렉터를 맡아 전위에서 컬렉션을 펼쳐가는데, 서포트해야 할 내게 30년은 너무도 짧았다. 완성해놓지 못한 많은 부분을 서둘러 준비하느라 마음이 늘 분주해진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대문에 들어서면 “우리 도령, 학교 잘 다녀오셨어?”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그립다. 시즌을 이어가며 프로그레스해나가는 송지오의 주된 콘셉트 ‘도령’. ‘도령’은 충효사상이 깊고, 문무에 출중하며, 뜻을 크게 세워 열심히 학문과 기량을 갈고닦으며 훌륭한 인품에 수려한 외모, 세련된 복장과 자태까지 갖췄다. 이 초인과 같은 캐릭터는 우리 조상과 부모님 세대가 전승해주신, 더없이 훌륭한 한국의 문화이자 한국 남성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나는 항상 품위 있고 세련된 ‘도령’의 이미지를 제품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들어, K-컬처의 다양한 부분에서 ‘한류’에 대한 호응이 뜨겁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활동해온 나는 ‘한국’에 대한 호감 어린 관심을 최근 들어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세계 주류 문화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다. 이제 자신감을 갖고 세계시장에 과감히 도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컨템퍼러리’ 시대에 매우 적합한 대한민국의 신세대 정서가 세계 문화를 주도할 것이라 확신한다. 젊은 신세대 패션인들에게 시간을 초월해서 진정성을 담아 작가 정신을 가지고 열정과 노력을 다하여 도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2024년, 나는 ‘다시 초심’의 각오로 신년 계획을 세웠다.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 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다. 젊은 시절 파리 유학 시절부터 줄곧 산책하고 카페에 가며 즐겨 걸었던 길인 패션가 마레 지구 ‘RUE CHARLOT(휘 샤를로)’ 거리에, 첫 출발점이었던 압구정동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킬 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나의 모든 인생 여정 동안 정성을 다해 키워온 나의 ‘도령’이 머지않아 세계 무대의 주역이 될 날을 기대하며.

202401호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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