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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친미(親美)·반미(反美)로 갈라지는 유럽 

독일·프랑스는 러시아에 기울고 동·북유럽은 미국 ‘안보 우산’ 속으로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사안마다 미국과 각 세우는 獨·佛, 외딴섬 전락 위기
‘하나의 유럽’ 통합정신 유지 난망, EU 결속 가시밭길


▎2018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요즘 발트해 해저에선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2’로 명명된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우스트루가에서부터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 북부 그라이프스발트까지 1225㎞에 달하는데, 올여름 완공될 예정이다.

이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러시아가 독일로 직송하는 천연가스 분량은 2배로 늘어난다. 2012년 먼저 완공돼 가동 중인 1222㎞ 길이의 ‘노르트 스트림 1’을 통해 연간 550억㎥의 천연가스를 운반 중인데, 노르트 스트림 2의 수송량도 연간 550억㎥이다. 독일은 지금도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노르트 스트림 2가 완공되면 독일은 천연가스 수요량의 7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게 된다.

미국과 독일은 최근 노르트 스트림 2 프로젝트를 놓고 공개적으로 정면충돌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2월 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55차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노르트 스트림 2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통해 동맹을 분열시키려는 노력에 강력하게 대응해왔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노르트 스트림 2 프로젝트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뮌헨안보회의는 1963년 창설된 범세계적·지역적 안보문제를 논의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연례 국제안보회의다. 일명 ‘안보 분야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린다.

미국우선주의 정책에 대서양 동맹 흔들


▎2017년 3월 백악관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외면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AP/연합뉴스
당시 회의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28개국 정상과 정부 수반 및 52개국 외교장관들이 참석했다. 메르켈 총리는 펜스 부통령이 자신의 면전에서 독일 정부의 핵심 정책을 비판하자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그는 “러시아가 신뢰할 수 없는 에너지 공급 국가라고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면서 “러시아와의 모든 관계를 배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17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대신 2030년까지 전력 소비의 6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50년까지 모두 재생에너지로 바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목표를 실현시키려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정부는 노르트 스트림 2가 완공되면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을 우려해왔다. 그 이유는 유럽이 에너지라는 ‘인질’ 때문에 미국 대신 러시아를 편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두 지도자가 이처럼 충돌한 것은 누적된 갈등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양국의 대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미국의 안보 능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면서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증액하라고 요구해왔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2024년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올리겠다는 합의를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국은 그동안 보호무역과 자유무역, 반(反)난민과 친(親)난민, 기후변화협약 반대와 찬성 등으로 대립해왔다. 게다가 양국은 이란 핵문제와 시리아 철군 문제에서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 미국과 유럽은 1949년 대서양 동맹을 맺고 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대서양 동맹은 그동안 소련과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서양 동맹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 우방을 경제적 라이벌로 보고 있기 때문에 대서양 동맹이 자칫하면 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수입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자동차가 미국에 안보 위협으로 간주된다면 우리는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홀대를 비판했다. 미국 상무부는 2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외국 자동차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비공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90일 안에 안보 위협을 이유로 수입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다. 두 지도자는 한때 ‘브로맨스’를 과시해왔으나 지난해 11월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 독자군 창설 제안을 기점으로 사이가 급격히 악화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안보를 강화하고 미국에 대한 군사 의존도를 낮추고자 유럽군을 창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려고 파리를 방문했었다.

에너지, 기후변화 놓고 미국과 서유럽 신경전


▎2018년 6월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서 악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유럽 독자군 창설 계획을 “매우 모욕적”(very insulting)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두 정상은 이견을 보여왔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 직후 열린 파리평화포럼에 불참을 선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주최한 파리평화포럼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 공동대응 모색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문제에 대해서도 마크롱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가 미국산 와인 판매를 어렵게 만들고 많은 관세를 매긴다는 것이 문제”라며 “미국은 프랑스 와인에 아주 작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매우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 프랑스는 미국의 동맹이지 속국은 아니며, 동맹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자 독일과 프랑스는 더욱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는 모습이다.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1월 22일 독일 서부 아헨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새 우호협정에 서명했다. 반세기 만에 양국이 새 우호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이 협정은 1963년 1월 22일 양국의 해묵은 갈등과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맺은 ‘엘리제협정’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외교와 국방 정책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범죄와 테러, 경제 통합, 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양국은 경제적으로는 공통의 규정을 가진 독일-프랑스 경제구역을 설정하고, 경제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경제 통합’을 심화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와 함께 공동의 국방·안보 위원회도 신설, 유럽군의 작전 능력을 키워 EU와 나토의 힘을 강화하는 데 협력하며, 공동 방위와 파병도 추진하기로 했다. 새 우호협정은 아헨의 이름을 따 ‘아헨협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EU의 ‘쌍두마차’인 양국이 손을 잡은 것은 미국 우선주의, 포퓰리즘 득세, 러시아의 위협 등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한 EU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반면 중·동유럽 국가들과 북유럽 국가들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폴란드가 대표적이다. 폴란드는 유럽 남서부와 북동부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데다가, 전 국토의 75%가 해발 200m 이하의 대평원이어서 역사적으로 볼 때 끊임없이 주변 열강의 침탈을 받아왔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자면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것처럼 자국 영토를 침략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러시아 반대에도 美 탄도미사일 방어시스템 도입


▎해리 트루먼호는 ‘트라이던트 정처(Trident Juncture) 2018’ 군사훈련 참가를 위해 30년 만에 북극해에 진입했다. / 사진:연합뉴스
폴란드는 러시아의 전신인 구소련과 오랜 악연을 이어왔다. 폴란드는 1932년과 1934년 소련 및 나치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지만, 소련과 독일은 1939년 6월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폴란드와 발트 3국 등을 각각 분할해 통치한다는 비밀의정서(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를 맺었다. 이에 따라 나치 독일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서부지역 국경을 넘었고, 2주 후에는 소련이 폴란드 동부를 침략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쓰라린 과거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폴란드는 미국에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군이 폴란드에 영구 주둔하면 20억 달러(약 2조2500억원)를 부담하겠다고 제의했다.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에 미군기지가 건설되면 기지 이름을 ‘트럼프 요새’(Fort Trump)라고 붙이겠다는 약속도 했다.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들 중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방위비를 GDP 대비 2% 이상으로 부담하고 있다. 폴란드는 또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 독자군 창설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폴란드는 중국 통신장비 회사인 화웨이의 유럽 중·북부 판매 총괄 임원인 왕웨이징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는 등 미국과의 안보 협력에도 나서고 있다. 미국 정부는 유럽 각국에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 앞서고 있는 화웨이의 사용 금지를 적극적으로 요청해왔다. 중국 정부는 폴란드의 이런 조치에 격분해 “폴란드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폴란드는 그동안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포대를 철거하라는 러시아의 강력한 경고를 거부해왔다.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가 배치된 곳은 폴란드 북부에 있는 레드지코보 공군기지다. 이지스 어쇼어는 해상의 이지스 구축함에서 운용하는 미사일 요격 체계를 지상 배치형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 기지에 설치된 SM-3 블록(Block) 1B 요격미사일의 사거리는 700㎞이고, 요격고도는 500㎞이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요격미사일의 사거리(200㎞)와 요격고도(40~150㎞)에 비해 3배 이상이다. 특히 SM-3 Block 1B 요격미사일은 적의 탄도미사일을 직접 타격(hit-to-kill)하는 방식이어서 탄두 부분에 폭약이 없다.

그 때문에 공격용 무기가 아니라 방어용 무기라고 볼 수 있다. AN/SPY-1 위상배열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1000㎞에 달한다. 이지스 어쇼어 포대는 요격미사일 24기, MK41 수직 발사대, AN/SPY-1 위상배열 레이더, 지휘통제 장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폴란드는 또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에 배치한 단거리 전술 핵미사일인 이스칸데르-M에 대응하고자 미국으로부터 2025년까지 47억5000만 달러를 들여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최신형인 PAC-3 MSE 8개 포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는 폴란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구입이다.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역외 영토다.

루마니아도 친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루마니아도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 포대 배치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 경고를 거부해왔다. 미국은 루마니아 남부 올트주에 있는 데베셀루 공군기지에 이지스 어쇼어 포대를 배치해 운용하고 있다. 미국이 동유럽에서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가동한 것은 루마니아가 사상 처음이다. 루마니아 정치권은 여야의 구분 없이 이지스 어쇼어 포대가 자국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제2의 ‘크림반도 사태’ 우려하는 동유럽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배치된 탄도미사일 방어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의 레이더. / 사진: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캡처
실제로 루마니아 상원은 미국 정부와 자국 정부 간에 체결된 이지스 어쇼어 배치 협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하원에선 반대 2표, 기권 1표만 나왔다. 루마니아가 친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안보 위협 때문이다. 트라이안 바세스쿠 전 루마니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루마니아 동부 국경에까지 영토 야심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루마니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판단했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도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발트 3국도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의 다음 타깃이 자신들이 될까 우려해왔다. 발트해 동쪽 연안에 있는 세 나라는 국토 면적을 모두 합해도 러시아의 10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자그마하다. 리투아니아 340만 명, 라트비아 230만 명, 에스토니아 140만 명 내외인 인구 역시 러시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전체 인구 가운데 27%와 25%가 러시아계인데, 이들이 크림반도에서처럼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에스토니아와 러시아 접경 지역에 있는 나르바의 경우 주민 6만3000여 명의 80%가 러시아계다. 이들은 그간 시민권을 얻지 못해 붉은색 표지의 일반여권 대신 회색여권을 사용하고 차별도 받아왔다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리투아니아는 전체 인구의 5.8%만이 러시아계지만 에너지를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100%, 전력도 대부분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이 때문에 리투아니아는 그동안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이 중단될까 노심초사해 왔다.

발트 3국은 13세기 초부터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받다가 18세기 말 제정 러시아 영토로 편입됐다. 이후 세 나라는 1차 대전 종전과 함께 1918년 독립했지만, 1939년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에 따라 1940년 소련으로 다시 합병된다. 발트 3국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독립했다. 발트 3국이 2004년 3월 구소련에서 독립한 공화국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토에 가입한 것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발트 3국, GDP 2% 방위비 분담


▎2018년 10월, 루크 미 공군기지에서 F-35 조종석에 탑승한 조종사와 대화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AP/연합
발트 3국 대통령들은 지난해 4월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 강화와 무역, 경제, 에너지, 대테러 공동대응, 문화 등 분야에서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발트 3국 대통령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위협을 견제하고자 미군 추가 파병과 MD 체계 강화를 요청했다. 나토는 폴란드와 발트 3국에 병력 4개 대대, 4천500명을 배치했으며, 미국은 리투아니아에 패트리어트-3 요격미사일 1개 포대를 배치하고, 라트비아에 육군 제1기병사단 일부를 주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트 3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GDP의 2% 이상 지출하고 있는 데 만족한다면서 안보 협력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 중립을 표방해온 핀란드도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핀란드는 그동안 나토에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결성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는 등 외교·안보적으로 중립국을 표방했으나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소련의 영향권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과 1300㎞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핀란드가 1948년 소련과 맺은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는 핀란드가 침공 받을 경우 소련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으며, 소련을 위협하는 어느 국가에도 핀란드 영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는 이를 배경으로 생성된 국제정치학 용어로 강대국과 인접한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자국의 국익을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핀란드는 소련의 심기를 거스르는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소련이 붕괴한 1989년 이후에도 핀란드는 러시아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상정해 왔다.

그랬던 핀란드가 정책을 바꾼 이유는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때문이었다. 과거 두 차례나 구소련과 전쟁을 벌였던 핀란드는 러시아의 영토 팽창 야욕에서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과 나토와의 군사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핀란드는 미국과 나토와의 안보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북유럽, 일제히 美와 군사협력 강화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실전 배치할 F-35의 비행 모습. / 사진:미 국방부 캡처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냉전 이후 군사적 중립을 유지해온 스웨덴도 미국, 나토와 안보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하면서 발트해 지역의 안보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스웨덴은 러시아제국과 18세기부터 3차례나 전쟁을 벌였던 악연이 있기 때문에 안보 위협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지난해 10월 25일부터 올 3월 7일까지 발트해에서 나토가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로 실시했던 ‘트라이던트 정처(Trident Juncture) 2018’ 군사훈련에 나토 회원국이 아닌데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당시 미국은 항공모함 해리 트루먼호를 발트해를 넘어 북극해 지역까지 전개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북극해에 진입한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새롭게 친구가 된 핀란드와 스웨덴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미국의 의도였다.

핀란드,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 3개국은 모두 나토 회원국들이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국가들 가운데 미국과 군사협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국가다. 미국은 러시아와 핀란드 접경지역인 노르웨이 핀마르크주에 2020년까지 레이더 기지를 설치할 예정이다. 노르웨이 북부 지역인 핀마르크는 러시아 무르만스크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노르웨이에 설치될 레이더는 미국의 MD 체계의 일부로,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북부 함대 활동도 감시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48대를 구입해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특히 외국 군대 주둔을 거부해왔던 노르웨이는 330명 규모의 미국 해병대원을 주둔시키기로 결정했다. 미 해병대가 나토군의 일원으로 노르웨이에서 훈련을 실시한 적은 있지만 주둔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다. 또한 노르웨이는 나토 회원국으로는 처음으로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덴마크도 미국으로부터 F-35 27대를 도입해 실전 배치한다. 덴마크는 그동안 나토가 실시하는 군사 훈련에 빠짐없이 병력을 파견했으며, 노르웨이와 함께 미국과 합동 군사 훈련도 실시해왔다. 아이슬란드는 소규모 해안경비대만 있고 군대가 없는 유일한 나토 회원국이다. 미국은 냉전 시절 전략 요충지인 아이슬란드에서 운용하다가 2006년 폐쇄했던 공군기지를 재건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기지를 이용해 러시아의 전략 핵잠수함을 감시할 수 있는 항공기를 운용할 방침이다.

유럽이 이처럼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있다. 게다가 유럽에선 극우 정당이 집권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들과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아무튼 유럽 각국이 앞으로 ‘하나의 유럽’이라는 통합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904호 (201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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