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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중국 굴기에 휘청거리는 한국 반도체 

공급 과잉, 담합 의혹, 美中 무역전쟁 3각 파도가 밀려 온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9년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매출 20% 전후 하락 예상
비메모리 분야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확보가 관건


▎최근 들어 실적이 떨어진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강력한 추격에 직면해있다. / 사진:중앙포토·삼성전자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중국의 칭화유니그룹(중국명 쯔광집단, 紫光集團)의 자오웨이궈(趙偉國, 52) 회장이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최고 이공계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에서 세운 중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이다. 쯔광(보라색 빛이라는 의미)도 칭화대를 상징하는 보라색에서 따온 것이다. 자오 회장의 별명은 ‘어후’(餓虎, 굶주린 호랑이)다. 자오 회장은 별명에 걸맞게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과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쯔광그룹을 세계 3대 반도체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해왔다.

자오 회장은 학창 시절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촌에서 텔레비전 수리로 학비를 벌었다. 대학 졸업 후엔 칭화대 투자 부문에서 일하다 2000년 100만 위안을 들고 고향 신장으로 돌아갔다. 당시 부동산과 석탄 등에 투자해 몇 년 만에 45억 위안의 큰돈을 번 뒤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2005년 베이징에서 첸쿤(乾坤)투자그룹을 세운 뒤 2009년 첸쿤을 통해 칭화유니의 지분 49%를 사들였다. 칭화유니의 전신은 ‘칭화대 과학기술개발총공사’로 1988년 칭화대가 과학기술 성과를 상용화하고자 설립한 첫 산학 연계 종합 기업이다. 약제와 음료 등을 생산하는 평범한 국영기업이었던 칭화유니는 자오 회장의 뛰어난 경영 능력 덕분에 몸집을 키웠고, 반도체 분야에 진출했다. 자오 회장은 중국이 ‘경제 대국’에서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야심은 시 주석과 중국 정부의 의지와 맞아 떨어졌다.

시 주석은 지난해 4월 26일 집권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 공장 시찰에 나섰다. 시 주석이 방문한 곳은 후베이성 우한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중국명 창장메모리, 長江存儲)이다. YMTC는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다. 칭화유니그룹은 240억 달러를 들여 월 20만 장 수준의 32단(3세대) 3D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을 세웠다. 당시 시 주석은 방진복을 입고 생산라인을 살펴보면서 ‘반도체 심장론’을 내세우며 ‘중국몽’실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강하지 않으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 반도체 기술에서 중대 돌파구를 서둘러 마련해 세계 메모리반도체 기술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한다”고 밝혔다.

中,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15%→70% 계획


▎지난해 4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에 있는 YMTC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를 말한다. 주로 스마트폰, PC의 주 저장장치로 활용되며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의 개발과 함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저장 용량을 늘리기 위해 저장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 가는 3D 낸드플래시 기술을 개발했다.

YMTC는 지난해 10월, 32단 3D 낸드플래시 시제품을 내놨다. YMTC는 오는 2020년 64단과 92단을 건너뛰고 128단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3D 낸드플래시는 단수가 높을수록 고용량이다. 단수에 따라 ▷3세대(32단) ▷4세대(64/72단) ▷5세대(92/96단) ▷6세대(128단) 등으로 구분되는데, 통상 1세대를 건너뛰는 데 1년이 걸린다. 32단 낸드 플래시는 삼성전자가 2014년 만들었다. 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가 최소 4년인 셈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96단 낸드플래시 개발을 마치고 양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에 100단 낸드플래시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만약 YMTC가 내년 128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한다면 삼성전자와의 기술격차가 1년 정도로 급격히 줄어든다.

중국은 D램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램은 정보를 기록하고 기록해 둔 정보를 읽거나 수정할 수 있는 메모리로, 전원을 공급하는 한 데이터를 보존하는 S램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데이터가 소멸되는 D램이 있다. D램(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은 용량이 크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컴퓨터의 주력 메모리로 사용되는 램을 지칭한다. 모바일에 특화된 제품은 모바일 D램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의 D램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안휘성 허페이시에 있는 이노트론(중국명 허페이창신, 合肥長鑫)이다. 이노트론은 72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19나노미터 D램을 시험 생산했다. 이노트론은 올해 중 본격적으로 D램 양산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노트론은 첫 제품으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D램인 ‘LPDDR4 8Gb’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이미 삼성전자가 2014년 생산했었다.

이처럼 중국 업체들이 단시간에 기술력을 높여 메모리 양산 단계까지 도달한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첨단산업 육성 전략인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에 따라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제품의 40% 이상을 소비하는 세계 최대 시장인 반면 반도체 자급률은 15%에 그치고 있다. 반도체는 2013년부터 원유를 제치고 중국의 수입 1위 품목에 올랐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중국의 야심찬 ‘반도체 굴기’를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하락하며 세계 반도체 시장이 완연한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부품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가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1위 기업은 삼성전자, 2위는 SK하이닉스, 3위는 미국의 마이크론이다. 비(非)메모리 반도체는 저장 역할을 하지 않는 다른 종류를 통칭한다. PC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CPU(중앙처리장치)나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가 대표적이다.

투자↓, 반도체 재고↑, 가격은 4개월 연속 하락세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올 2월 세계 반도체 매출은 328억6000만 달러(약 37조3450억원)로 집계됐다. 1월 대비 7.3% 줄었으며 전년 동기보다는 10.6% 감소한 수준이다. 전 세계 월간 반도체 매출은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2017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탔다. 그러다가 2018년 하반기부터 IT업계의 성장 정체 및 수요 둔화로 D램 및 낸드플래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부터는 글로벌 월간 반도체 매출이 전 월 대비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413억7000만 달러, -1.1%)이후 ▷12월(382억2000만 달러, -7.0%) ▷2019년 1월(354억 7000만 달러, -7.2%) ▷2019년 2월(328억6000만 달러, -7.3%) 등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존 뉴퍼 SIA 회장은 “지난 2월의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은 주요 상품 카테고리의 전반적인 가격 하락으로 전년 대비, 전월 대비 모두 감소했다”면서 “지난 3년간 기록적인 수익을 냈던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더딘 성장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미국의 감소세가 가장 크다. 미국의 2월 반도체 매출액은 64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로는 22.9%, 전월과 비교해선 12.9% 줄었다. 중국도 2월 107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 감소했다. 지난 1월과 비교해도 7.8% 줄어든 수치다.

반도체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의 2월 평균 고정가격은 5.13달러를 기록했다. 1월 6달러보다 14.5% 하락한 것이다. 1월 6달러도 지난해 12월보다 17.2% 내린 가격이다. 낸드플래시 가격도 마찬가지다. 낸드플래시(128Gb MLC)의 2월 평균 고정가격은 4.22달러로 1월 4.52달러보다 6.6% 내렸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하락 요인은 재고 때문이다. 서버와 스마트폰 제조사가 지난해 대량으로 구매한 반도체를 아직 소진하지 못하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는 “재고가 줄지 않으면서 반도체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주요 서버·스마트폰 제조사의 재고 수준은 6주치가 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D램익스체인지는 “PC와 서버 D램 제조사는 7주치의 재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 구축과 클라우드 서비스 강화로 메모리반도체를 대거 사들였던 페이스북·아마존·구글 등의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지난해부터 투자를 줄이면서 재고 소진 속도가 급속히 떨어졌다. 스마트폰과 PC 수요도 줄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는 올해 1분기 출하량이 전분기보다 15% 이상 감소했다. 스마트폰은 이미 포화상태로,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공급은 늘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이 올해 반도체 설비 가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새로 가동하는 300㎜ 웨이퍼 팹(반도체 생산라인) 수는 모두 9곳이다. 2007년 12곳 이후 12년 만에 최대 규모인데, 9곳 중 5곳이 중국에 있다. 내년에도 6곳이 가동 예정이기 때문에 지난해 112곳이었던 세계 300㎜ 웨이퍼 팹 수는 내년 말까지 모두 127곳으로 13.4%나 증가한다. IC인사이츠는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가면 공급이 더욱 늘어나 가격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1/4분기, 韓 반도체 양대산맥 실적 반 토막


▎SK하이닉스가 지난해 개발한 ‘96단 512Gb TLC(트리플 레벨 셀) 4D 낸드플래시’. / 사진 : SK하이닉스
IC인사이츠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매출)가 4689억 달러(약 529조6000억원)로 지난해(5041억 달러)보다 7%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IC인사이츠는 메모리 분야가 크게 부진할 것으로 예측했다. IC인사이츠는 올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분야를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도시바 등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의 매출액이 모두 20% 전후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IC인사이츠는 2019년에는 악명 높은 반도체 시장의 불안한 사이클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업체 매출 순위는 1위 삼성전자(785억 달러), 2위 인텔(699억 달러), 3위 SK하이닉스(368억 달러), 4위 TSMC(342억 달러), 5위 마이크론(310억 달러) 순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동향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지난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냈던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분야에서만 각각 44조5700억원과 20조84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두 기업의 영업이익은 대부분 수출에서 나온 것이다. 두 기업의 수출액은 지난해 한국 전체 수출의 20.9%에 달하는 1267억 달러를 차지했다.


▎올 3월, 삼성전자가 개발한 ‘3세대 10나노급(1z) 8Gb(기가비트) DDR4 (Double Data Rate 4) D램’ 반도체. / 사진 : 삼성전자
두 기업의 올해 영업이익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4월 5일 올해 1분기(1∼3월) 잠정실적으로 매출 52조원과 영업이익 6조2000억원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 분기(59조2700억원) 대비 12.3%, 지난해 동기(60조5600억원) 대비 14.1% 각각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반 토막’났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10조8000억원)보다 42.6%, 전년 동기(15조6400억원)에 비해서는 60.4% 줄었다. 이는 2016년 3분기(5조2000억원) 이후 10분기 만에 최저치다. 특히 잠정 실적 발표에서 사업 부문별 성적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이 4조원으로 추정된다.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3분기(13조6500억원)보다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전 분기(7조77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상당기간 고전하리라는 점이다. IC인사이츠는 메모리 분야 최강자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이 올해 631억 달러에 그쳐 지난해에 비해 19.7%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중국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상황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굴기’를 야심차게 추진해온 중국 정부는 천문학적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대 1조 위안(약 165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투자 펀드를 민관이 공동으로 조성해 반도체 산업과 기업들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무기로 저가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로 인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중저가 제품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오브젝티브 애널리시스의 짐 핸디 애널리스트는 “중국 경쟁사들이 양산을 하면 공급 과잉 심화로 세계 1~3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중 1곳은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견제도 거세다. 중국 반독점 당국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반도체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선책은 초격차 유지 전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가 충북 청주시에 준공한 ‘M15’ 반도체 공장에서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또 하나의 변수는 미·중 무역 전쟁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앞으로 6년간 300억 달러 어치의 반도체를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당초 2000억 달러보다 줄어들었지만 상당한 규모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2017년 2601억 달러였고 2018년 2990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인위적으로 수입 물량을 미국 기업에 배정하면 그만큼 한국 기업들의 반도체 수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 반도체 업계는 반대하고 있다. 중국의 수입 확대가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 반도체 생산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자국의 생산단가가 너무 높기 때문에 의무적인 수입 할당은 결국 미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 생산 공장 개설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이럴 경우 중국 경쟁업체에 이득이 되고, 자국 업체들은 중국에 더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미·중 무역 협상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한국 반도체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악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미칠 영향이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한국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 사태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장비 세정에 쓰이는 불화수소(불산플루오르화수소)의 수출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산 불화수소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불화수소 시장은 일본 업체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도쿄일렉트론이나 화낙 등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비 및 산업용 로봇업체로부터 핵심 장비를 공급받고 있다. 일본은 또 한국산 반도체 주요 수입국 중 하나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산업이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한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맹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최선책은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3월 생산성을 20% 향상시킨 3세대 10나노급 D램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2세대 10나노급 D램을 양산한 지 16개월 만에 다시 한 번 역대 최고 미세 공정의 한계를 극복했다. 처리 속도 향상으로 전력 효율도 개선됐다. SK하이닉스가 올 2분기 2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에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2위 업체와도 기술 격차를 1년 넘게 벌린 셈이다. 마이크론도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직 D램 양산 첫 걸음도 못 뗀 중국 반도체 기업들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초격차라고 볼 수 있다.

초격차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다. 한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R&D에 대한 투자로 전년(16조8100억원)보다 11% 증가한 18조6600억원을 투입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전년(2조4870억 원)보다 16.4%나 늘어난 2조8950억원을 R&D 비용으로 지출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R&D 투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중국이 최근 반도체 분야 R&D에 적극 나서면서 특허 출원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최근 5년(2013~2017년) 동안 69개 반도체 기술 분야 중 21개 분야에서 특허 출원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대만 8개 분야, 영국과 스위스 7개 분야, 스웨덴은 6개 분야 등의 순이었다. 한국은 단 1개 분야에서 그쳤다.

中 반도체 특허 출원 증가율 압도적


▎올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왼쪽)은 화성 공장을 찾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돌파구는 비메모리 분야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다. 비메모리 분야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비메모리 분야에서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다. 시스템 반도체는 전자기기의 두뇌 역할을 한다. 시스템 반도체는 사람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기계에 내장돼 최적의 운영 조건을 유지하고 관리해 준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미국 인텔과 퀄컴을 비롯해 대만 TSMC, 일본 소니와 같은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점유율 63%로 가장 앞섰고 한국은 3.4%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도 4%를 차지하면서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

한국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중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의 매출 규모는 2017년 세계 4위에서 지난해 2위까지 올랐으나,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부문은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중국의 경우 정부의 육성정책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 업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에 따라 선전·난징·우시·톈진 등 주요 13개 도시들이 각각 지역별로 특화된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IC인사이츠는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2010년 5%에서 2018년 13%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전 세계 상위 50위 팹리스 기업 중 10개 기업이 중국 업체다. 한국 기업은 LG그룹 계열 실리콘 웍스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 기술 및 장비를 공급받는 미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인공지능(AI)·5세대(5G) 이동통신·사물인터넷(IoT)·로봇 산업 등의 발전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산업에서 중요한 부품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21세기 패권은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어느 국가가 거머쥐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만큼 앞으로 각국이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은 자명하다.

201905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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