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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진보 거두(巨頭)’ 한상진 교수가 본 文 정부 3년 功過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자멸 부를 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학습효과 있는지 의문”
■“지리멸렬 야당, 집권세력 자만심 커지는 데 한몫”
■“차기 범보수 대선후보 중도까지 성찰할 수 있어야”
■“정부, 현재 K방역 고집한다면 그 효과는 단명할 것”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여권이 처한 상황만은 매우 불확실하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한상진(75)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중민사회이론 연구재단 이사장)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 이데올로그(ideologues)이자 거두(巨頭)로 꼽힌다. 그가 주창한 중민(中民)이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중산층에 속하지만, 민중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진보적 성향의 사회집단을 가리킨다.

한 교수는 공적(公的) 지식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정책 수립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는 ‘광복 6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어 2013년에는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 자격으로 대선 패배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을 벌였고, 2016년에는 국민의당의 ‘창당준비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한 교수가 출범 3년을 넘긴 문재인 정부를 향해 고언(苦言)을 쏟아냈다. 그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현 집권세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영논리에 의존한 탓에 불확실성을 키웠다”면서 “여기에 야당의 지리멸렬도 현 집권세력의 자만심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고 꼬집었다.

지난 5월로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이 지났다. 3년을 평가한다면.

“나름대로 목적의식은 뚜렷했고,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헌신도 컸다고 본다. 또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잡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슬로건을 포착하는 데도 꽤 솜씨가 있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출발은 좋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니 성과가 너무 없고, 자기 확신은 강한 반면 국민을 설득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2004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어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굉장히 들뜬 분위기였고, ‘앞으로 10년, 20년 집권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총선 이후 (주요 선거에서) 여당은 무참히 깨졌고,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됐다. 현재의 여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전철을 밟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권이 처한) 상황만은 매우 불확실하다고 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세 번째 진보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진보의 가치를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나?

“개인적으로 문재인 성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학습한 걸 제대로 체화(體化)시켜서 잘 활용하고 있느냐는 관점에 보면 그렇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 정부는 방향·목표·기준을 제시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치는 학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성과를 내려면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 로드맵에 따라 성과를 내고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 세력을 모으는, 이른바 정치력을 발휘했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 약했던 것 같다. 이 정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은 매우 강하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겪었던 진보 가치 실현의 어려움을 자기반성적인 태도로 살펴봤느냐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부족함이 많다. 다시 말해 목적지향성 면에서는 옳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 구현해내는 방법론은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적과 동지로 구별해서, 동지를 규합하는 진영논리에 의존하다 보니 자신들이 매우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불확실한 상황을 맞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586, 윤리적 무장 느슨… 실패했다는 역설의 과정”


▎7월 1일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서 자유연대 관계자들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기억연대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재 진보 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 정부는 촛불혁명의 산물이다. 촛불혁명은 근래 역사에서 보기 어려운 시민들의 자기 참여와 열망의 결과다. 그 열기 속에서 이 정부가 태어났기에 지지도가 높고, 정당성도 확고했다. 이런 상황인 만큼 국민과 여당을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였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노무현 신드롬’에 갇혀 있다 보니 적폐청산 드라이브에만 치중했다. 그 드라이브라는 건 결국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게 결국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7년 대선과 올해 총선에서 현 여권은 승리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력을 유연하게 발휘했다면 훨씬 더 멋있게 나라를 끌고 갈 토대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악몽이 강하게 남아 있다 보니 적폐 드라이브를 이어간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적폐청산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정부를 밀어가는 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되레 어렵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회학의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 정부의 가장 큰 단점은 유연성 부족이다. 시대는 많이 변했다. 그 변화는 코로나19로 인해 더 가속했다. 나는 그걸 탈바꿈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탈바꿈이 가속하면서 사회는 불투명·모호성·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이런 때일수록 유연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 주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대부분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이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자기 확신이 굳어져 있다 보니, 또 그런 눈으로 세상을 꾸려나가려 하다 보니 부작용이 커지는 것이다. 통치집단의 이념이나 세계관과 급격히 변하는 사회구조나 현실 사이의 괴리가 심각하다. 이게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 하나, 야당의 지리멸렬, 여기에 보수의 멘탈리티(mentality)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집권 세력 스스로 오류 가능성을 점검하고 고쳐나가려는 노력을 저해한다고 본다. 지리멸렬한 야당이 집권세력의 자만심을 키워준 게 아닌가 싶다.”

“이념적인 진보는 이제 설 땅 없어”


▎2013년 1월 당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왼쪽 둘째)과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왼쪽 셋째).
대표적인 진보 세력으로 평가되던 586의 기득권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개인적으로 586세대들에 많은 기대를 가졌다. 80년대 당시 (시위 현장에서) 전투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이 세대에 의해 형성될 거란 확신을 얻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들은 탈인습적(脫因襲的)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관이 한국 사회를 변동시킬 거란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이 집단이 기득권 향유 세력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586세대는 김대중 정부 때 제도권으로 일부 유입됐는데, 학창시절 자신들이 가졌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라 결국 정당 내 패권세력의 수단이 되고 말았다. 권력지향성은 강했던 반면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윤리적 무장은 느슨한 탓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윤리적 무장이 강해야 권력 기회가 왔을 때 자중할 수 있는데 (그게 약했기 때문에) 되레 권력에 편입된 것이다. 586은 권력은 장악했지만 되레 실패했다는 역설의 과정을 밟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련의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금태섭 징계’ 등의 과정에서 여당의 균형감 상실도 지적됐는데.

“앞서 말했듯이 근본적으로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게 병이다. 자기 확신이라는 건 용기와 저력이 될 수 있다. 독재와 싸울 때 강한 용기가 없었다면 돌파할 수 있었겠나. 하지만 민주화 이행기 이후 권력을 향유하는 상황에서 자기 확신에 빠지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면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동반자가 아닌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흑백논리가 작동한다. 이런 멘탈리티로 권력을 잡고 정부나 정당을 운영한다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 이 시대는 불확실·불투명이 강한 시대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들이 생각하는 게 옳은 건지 효과적인 건지, 늘 오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검증해야 한다. 시대가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도 ‘이건 옳고 이건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직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해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개연성의 관점에서 추구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점검하고 교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실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적인 진보는 이제 설 땅이 없다. 그런데도 요즘 우리는 반대로 간다. 현 집권세력은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했다. 야당은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는 국민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면에서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만에 빠지다 보면 자멸을 부를 수도 있다. 자기 확신은 강한데(야당 등) 외부로부터 압력은 약하니 철저히 자기검증을 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속히 사과하고 문제점을 해결했다면 됐을 텐데, 자꾸 회피하다 보니 일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어떻게 보는가?

“정부기관 대 정부기관의 싸움이니 한마디로 자중지란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헌정사를 되돌아볼 때 검찰이 1990년대까지는 권력의 수족이었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검찰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검찰 권력이 비대하니 민주적 균형 원칙에 의한 검찰 권력의 조정 필요성에 관해서는 일찌감치 공감대가 형성됐다.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도 그래서 만들려는 것 아닌가. 사실 지난해 임명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도 엄정하게 임해 달라’는 주문에 따라 윤석열 검찰총장이 권력집단의 비리를 수사하는 데 많은 국민은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윤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2018년 지방선거 관련자 등을 수사하려 하니까 이에 대해 여권 일각에서 우려와 반발이 나온 것 아닌가. 일을 더 꼬이게 한 건 미래통합당의 태도다. 지난 총선 때 통합당 일각에서 ‘우리가 1당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머리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야당에서 이런 말을 하니 여당에서 윤 총장의 수사에 대한 더욱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추미애 장관이 윤 총장을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밀어내려 한다면 그건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도 엄정하게 임해 달라’는 대통령의 특명에 반하는 행위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정치 위에 군림하는 걸 막으면서도 권력의 비리를 수사하도록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만족하게 하는 게 오늘날 우리에겐 절체절명의 과제다.”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다 보니 결과적으로 검찰 중심의 사법 기능을 과도하게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적폐청산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흑백논리에 따라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다 보면 진실규명을 넘어 인적 처벌로 이어진다. 그렇게 가면 불가피하게 공권력에 의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공권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적폐청산의 올가미가 상대방만이 아닌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정부가 (국가)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도 훗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있다. 유연성 없이 과거 패러다임에 집착하다가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는 전적으로 잘못”


▎2016년 1월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오른쪽)과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폐청산을 진행했어야 옳았을까?

“다시 말하지만 적폐청산은 민주주의 기강 확립에 필요하다. 다만 적폐청산이 정치의 목적이 될 순 없다. 상대방을 감옥에 넣기 위한 적폐청산은 심리적 만족감은 줄지 몰라도 정치의 길은 아니다. 정치는 더불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은 과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실상을 밝힘으로써 국민 의지를 모아 전철을 밟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감정에 의존해서 상대 응징의 차원으로 해석하다 보면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한다.”

1년 전 윤석열 총장 취임 당시, 여당은 “우리 윤석열”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야당은 “권력에 충실하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여야의 평가가 뒤바뀌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측면은 잘 모른다. 다만 자기 나름대로 행동철학이 있는 분인 듯하다. 물론 정치적 계산도 하리라고 본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인물이니 안 할 이유도 없다. 그렇더라도 (최근 1년 새) 여권의 입장은 너무 대비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때까지만 해도 윤 총장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조국 사태’ 등의 과정에서 여권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이다. 보수 정당에서 윤 총장을 지지하는 건 정치적 관점일 테고, 국민적 관점에서는 검찰이 소명을 다한다고 대체로 평가했다. 국민이 바라는 사법 정의를 실천하려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그래서 여권의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시도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자가당착이요 이율배반이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 앞에 엄정하게 임해 달라’는 대통령의 특명에도 위배되는 행위 아닌가.”

집권세력의 독주는 야권의 지리멸렬과 관계가 깊다. 보수 진영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는가?

“우리나라 보수는 진짜 머리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몇 가지 고정관념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진보는 시민사회와 같이 움직여왔다. 정당 이론으로 볼 때 정당은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보수는 그렇지 못했다. 돌아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참으로 안타까웠다. 고정 지지층 30%를 가지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었기에 시대 변화를 잘 읽고 대처했다면 잘해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시대 변화를 전혀 읽지 못했다. 과거의 모델에만 의존했고, 톱다운 방식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가려 했다. 김기춘씨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한 게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보수 진영은 재건될 수 있을까?

“보수가 살아나려면 몇몇 명망가에 의존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는 헛된 꿈부터 거둬야 한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방식의 혁신은 실패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보수정당은 위기가 오면 외부에서 명망가 영입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세우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몇 차례 성공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통념에 의해 통제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고도로 분화돼 있기 때문이다. 진보는 자기 나름의 확신과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밀고 가고 있다. 진보는 중앙 권력을 강화해서 그 힘으로 돈을 풀고 남북관계와 외교 문제도 풀려 한다. 코로나19 시대인 만큼 앞으로 더 그럴 것이라 본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는 국민 대중이 공유하는 평균적 상식을 보수 정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 지금처럼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면 민주당의 아류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위험 사회다. 그중에서도 가정이 가장 위험하다. 사회 질서의 근간은 가정과 가족이니 가정과 가족을 건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수 정당 안에 담아야 한다. 진보를 모방하는 듯한 방식의 개혁은 성공 못한다. 진보가 너무 자기 확신에 빠져 국민의 평균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잘 살펴야 한다. 진보를 따라 하려 할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보수는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명망가에 의존하는 방식의 보수 재건은 실패”


▎2001년 5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상진 정책기획위원장(오른쪽 둘째)을 비롯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47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했다.
범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후보 첫째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현재의 보수는 위대한 지도자가 깃발 들고 나타나서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 그럴 만한 사람도 없다. ‘진보가 너무 튀는 것 아냐’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한 것 아냐’ ‘대중은 안중에 없는 것 아냐’ 이런 생각이 보수 또는 중도 진영에 많다. 차기 보수 진영 대선후보의 필수조건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종래의 보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중도까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국민적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다양한 집단을 묶을 수 있는 리더십이다. 그 리더십이라는 건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소통 능력이다. 자기 확신이나 고집불통이 아닌 소통의 리더십이 보수에 절실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정책과 관련해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는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은 난파한 셈이다. 그렇지만 그분의 혜안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분이 줄기차게 말씀하신 게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면 남남화합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남남 균열을 북한, 또 미국이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김 전 대통령은 주장했다. 그런데 오늘을 보면 안타깝게도 정반대로 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과거에서 배운 게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북한을 너무 신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과도한 신뢰를 넘어 끌려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에 따른 손익계산을 잘 따져봐야 한다.”

코로나19가 초래한 국가중심주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오른쪽 다섯째)과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 넷째) 및 의원들이 6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당을 규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이 5월 27일 공개한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회 위기 시 정부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0점, 반대로 ‘시민 의견 존중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10점으로 놓고, 진보·보수 성향 응답자의 평균 지수를 파악한 결과 진보는 3.87, 보수는 5.12였다. 2010년 같은 기관의 같은 조사 때 보수는 평균 5.22, 진보는 6.22로 10년 만에 양측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나?

“진보 집단의 결핍 요소라 할 수 있는 자기 긍정의 요소를 코로나19가 채워준 결과라 할 수 있다. 진보는 ‘우리가 옳고, 보수는 비전이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우월감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내세울 만한 결과가 없었기에 내적 갈증이나 결핍이 심했다.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정부가 궁지에 몰렸는데, 나중에 K방역에 성공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진보 진영이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결핍됐던 요소들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충족되면서 진보 진영이 국가중심주의자들로 변모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거야말로 진짜 탈바꿈이다. 사실은 진보의 굉장한 모순이기도 하다.”

계층·세대·진영·남녀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일까?

“갈등이라는 건 유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진단된 원인을 어떻게 교정하느냐에 있다. 교정이라는 건 일방적인 게 아니라 합의에 따른 풀이여야 한다. 일방적으로 풀려다 보면 새로운 갈등이 빚어진다. 최근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을 해소하려는 사회적 대화 노력이 선행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결론은 서로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코로나19가 미칠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일까?

“이 정부가 K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 사실이다. 솔직히 이 정부의 성과 측면에서 가장 평가받는 게 K방역 아닌가? 그러니 여기에서 실패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K방역으로 갈 건가? K방역은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나르시시즘이다. 방역을 완벽하게 하려면 사회를 권위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걸로 갈 건지, 아니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할 건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금의 K방역 성공 모델로 가더라도 효과는 한시적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시민 협력을 얻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만일 서구에 없는 이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코로나19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로 평가받을 것이다. 지금처럼 권위주의적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그 효과는 단명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정치인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자기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하더라. 특히 진영 밖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더 귀담아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배려하고 남의 의견을 듣는 사람이지만,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거의 1인 독주 시대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하면 안 된다. 그게 이른바 패권주의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길 바란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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