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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인터뷰] 선거법 굴레 벗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위민(爲民)론’ 

“즉흥적이라고? 난 치밀한 실용주의자!” 

■ 보수 진영 비난과 여권의 견제 동시에 받으며 차기 대권 후보로 자리매김
■ “기본소득은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자본주의자들도 주장”
■ “탄소세, 로봇세, 국토보유세 등 증세 통해 소득재분배 재원 마련해야”
■ “지금은 계층 이동이 거의 봉쇄된 사회… 사법시험은 부활해야”

2020년 한국 정치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을 꼽으라면 이재명(56) 경기도지사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2016년 겨울 탄핵 정국에서 ‘변방 장수’를 자처하며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해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숱한 논란과 논쟁이 그를 쫓아다녔다. 논란은 대부분 단편적 비평에 그치고 말았다. 철학을 엿보려면 파편적 이슈를 거슬러 본류를 파고들어야 한다. 월간중앙이 그의 위민론을 조명하려는 이유다. 그는 시류에 편승하는 이슈메이커인가, 혹은 예지적 철학을 가진 의제 설정자인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 2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명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늘 예리했다. 사안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고, 틀리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말은 선제적이고 행동은 정공(正攻)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기(銳氣)는 극과 극의 평가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사이다’와 ‘독재자형’이란 상반된 평가에 이 지사 본인은 그리 개의치 않는 듯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란 믿음이 확고해서다.

그의 믿음이 통했을까. 7월 16일 대법원은 이 지사의 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사건을 전무 무죄 판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받아 자칫 지사직을 상실할 수 있었던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2022년 대권가도를 향하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애물 하나가 걷힌 셈이다. 진보 진영 대선 잠룡 중 2위를 달리는 그에게 쏠리는 지지층의 기대와 관심도 점점 커질 것이다. 이 지사는 판결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제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라는 여러분의 명령”이라며 “공정한 세상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했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정치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던 7월 2일 오후 경기도지사 관사에서 진행했다. 표정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찾을 수 없었다. 시종일관 여유로우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튀는 공’처럼 돌발적이란 세평은 사실 피상적 인상에 가깝다. 그가 내놓는 말과 정책은 즉흥적이지 않았다. “유 기자가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설명하겠다”면서 시작한 인터뷰는 본래 예정했던 한 시간을 넘겨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오해와 왜곡 사라지니 도정 지지율 높아져


▎2019년 11월 이재명 경기지사가 계곡 불법 영업 근절을 위해 현장점검을 벌이고 있다. / 사진:경기도
요즘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그거 바람 한번 불면 사라진다. 예전에 한 번 겪어봐서 거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지지율에 휘둘리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미래 진로는 아직 결정 안 했나?

“정치인의 진로는 국민이 정하는 거다.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걸맞은 역할을 국민이 정해준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선거는 강물 같아서 떠 있는 배가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게 아니다. 국민이 맡겨주신 건 경기도지사 역할이다.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 뒤에는 국민이 또 결정하실 거다. 다만 내가 할 일은 도지사로서 성과를 내서 도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거다. 삶이 개선돼야 저 사람 더 시켜야겠다, 생각하시지 않겠나. 일부러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노력하진 않을 거다.”

도정 만족도가 취임 때보다 꽤 높아졌다.

“취임 당시 도정 만족도는 왜곡된 면이 있었다. 선거 과정과 끝난 후 정상이 아니었잖은가. 소위 기득권 세력의 총공세로 제가 거의 ‘걸레’가 됐었다. 60% 가까이 지지를 받아 취임하고서 아무 일도 안 했는데 한 달 뒤 도정 만족도가 29% 나왔다. 나쁜 사람으로 이미지가 덧씌워진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해와 왜곡이 많이 줄었고, 2년 되면서 성과들이 실제로 드러나니 지금은 70%를 넘어 전국 2위가 됐다. 2년 만에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호응해주셨다. 지금 지지도에 높은 기대가 반영돼 있다고 보고 기대에 맞게 하려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 일 때문에 정치적 이미지에 꽤 타격이 컸을 듯하다. 대법원에 간 재판의 핵심이기도 하고.

“행정이란 공익에 부합한다면 법률이 금지하지 않는 건 다할 수 있다고 본다. 자기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본인이 치료를 거부하면 강제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이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질환자들은 자기를 정신병자로 규정한 사람에게 보복하니까. 그게 불편하니 정신과 의사도, 공무원도 다 피한다. 그런데 저는 본인과 모두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의 원망이 싫다고 안 하면 안 된다. 행정을 적극적으로 한 것 때문에 문제가 됐지만, 법은 국민적 합의다.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가 아니라, 공동체 모두를 위한 우리의 약속이다.”

‘법대로 한다’는 생각에 가장 충실했던 것 중 계곡 불법 영업 근절이 떠오른다.

“계곡의 불법 영업은 개국 이래 한 번도 손대지 못한 일이다. 저항이 꽤 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법을 지키는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주민들도 공감하더라. 90% 이상 자진 철거했다.”

재난지원금 지역화폐로 주니 매출 50% 늘어


이 지사가 촉발한 기본소득 논쟁은 경기도를 떠나 우리 사회 전체의 어젠다가 됐다.

“광역단체장은 행정가인 동시에 정치인이다. 행정가는 있는 걸 잘 집행하면 되지만, 정치가는 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길, 새로운 희망이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게 정치가의 역할이다. 기본소득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미래 의제로 생각해왔다. 여기에는 노동의 의미, 국가 재정의 올바른 집행,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지속적 성장 등 여러 고민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기본소득을 주요 의제로 올려두고 깊이 고민하게 된 것에 나름 기여한 데 보람을 느낀다.”

기본소득에 관한 고민에 시대정신을 담고 싶었나?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원칙과 질서가 잘 지켜지는 공정함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대동 세상이다.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손잡고 존중하며 같이 잘사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경기도가 시행했던 청년기본소득과 재난기본소득(긴급재난지원금을 경기도는 ‘기본소득’으로 명명한다)의 경제 활력 효과가 인상적이다.

“일시적이어서 재난이란 형용사가 붙었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틀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정부보다 한 달 빨리 지급했는데 그사이 재난소득을 사용한 업소가 그렇지 않은 업소에 비해 50% 정도 매출이 높았다. 한 달 만에 지급한 금액의 몇 배의 승수효과(정부 지출을 늘릴 경우 지출한 금액보다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가 나타난 거다.”

현금 살포식 지원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비판도 여전한데.

“전에는 재정지출을 다 현금으로,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에게 했다. 기업 지원이나 일자리 지원 같은 식으로 말이다. 또 과거의 현금 지원은 소비로 연결되지 않았다. 미래가 불안하니까 아껴서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 3개월 안에 사용할 수 있는 소멸성 지역화폐로 줬으니 100%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영업자의 매출이 늘어나니 생산이 늘고, 물건 대는 회사도 매출이 늘고, 이 정도면 경제적 효과도 증명된 것 아닌가.”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는 재정의 규모와 운용 방식이 다르다. 지자체의 성과를 국가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까?

“우선 한 군데 해보고 효율이 증명되면 전국으로 넓히는 거다. 결과가 안 좋으면 바로 포기하면 된다. 비용을 적게 들여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게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다. 일례로 지역화폐 정책은 제가 성남시장 할 때 시작해 중앙정부 정책으로 퍼졌다. 처음에는 비난을 받았지만, 경제적 효과가 확실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경제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정책이 다 잘되는 건 아니지만, 중앙정부가 과거와 다르게 개방적이고 수용 속도가 빠르다는 걸 실감했다.”

경제학자들 중에는 기본소득에 부정적 시각이 꽤 많다. 노동의욕을 떨어뜨린다든지, 생산성을 악화시켜서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줄 거라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금은 2~3%의 소수를 골라 최저생계비란 이름으로 지원금을 준다. 이러면 낙인효과가 생긴다. 내가 불쌍한 사람이란 걸 증명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거다. 지원 대상이 되면 절대 일을 안 한다. 수입이 생기면 탈락하니까. 반대로 전원에게 52만원을 주고 97%한테 그 돈을 돌려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좀 복잡하긴 하지만, 지원금을 타려고 일을 안 할 필요가 없어진다.”

먹고살 만큼 돈을 주면 일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진 않을까?

“먹고살 만큼 돈을 주자는 게 아니다. 이건 기본소득을 폄훼하려고 만든 가설이다. 이상적으로 한 사람당 월 일이백만원씩 주면 그런 걱정을 할지 모르겠다. 우리 최대 목표는 월 50만원 정도다. 연간 50만원, 100만원 이렇게 시작해서 연간 600만원까지 가는 데 잘 준비해도 20년은 걸릴 거다. 그리고 돈을 많이 받으면 일을 안 할 거라는 가설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돈 많아도 열심히 일하지 않나.”

후세들에게 ‘슬픈 노동’ 물려주지 말아야


▎2017년 2월 11일 당시 15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촛불을 이어받고 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 시대에 노동의욕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노동의 질이 바뀔 거라고 예견했다. 생존하기 위해 일하는 ‘슬픈 노동’이 줄어들고, 자기실현을 위한 ‘행복한 노동’이 늘어날 거라는 상상이다.

“문화예술인 부부에게 한 달에 100만원이 지원되면 어떨까. 전국을 다니며 일주일에 서너 번씩 길거리 공연 하고 그림도 그리며 행복하게 살자, 그런 꿈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산성은 낮지만 자아실현을 위한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날 거다. 인간이 왜 고통스럽고 슬픈 노동을 해야 하나? 기술이 발전했고 생산력이 올라갔으면 모두가 행복한 노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미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는 최소한 그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기본소득이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의 대안이 될 거라고 보나?

“자본가에게 비싸도 사람을 쓰라고 하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생산역량이 커지고 시장이 글로벌로 통합되면서 이익은 무한대로 늘어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이익은 늘지만 생산비용이 거의 안 들어가니 다 재투자되지 않는다. 결국 초과이익으로 쌓이게 되는데, 이건 자본주의의 선순환에 역행한다. 시장이 자꾸 축소되고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깨지면 자본주의가 망가진다. 방법은 기본소득으로 균형을 맞추는 거다. 이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의 주장이 아니다. 놀랍게도 가장 뛰어난 자본주의자들의 생각이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와 같은 사람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다.”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오를 것 아닌가.

“돈을 화폐로 찍어서 주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화폐를 찍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재화를 재분배하는 거다. 누군가의 초과이윤을 세금으로 걷어서 지급하는 거다. 2차 분배가 확대됐다고 해서 물가가 오른다는 주장은 전혀 논리적 근거가 없다. 정상적으로 소비해서 정상적으로 생산물의 가치가 올라가면 그건 정상적인 경제의 흐름이다.”

우리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나?

“재정이 악화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증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복지 지출은 OECD 평균 대비 절반 수준이다(GDP 대비 22%, 한국은 11%). 지금도 부족한 수준이니 복지 지출을 재정비해서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도 현실성 없다. 결국 새로운 재원이 필요하다. 이게 진실이고, 정직한 거다.”

증세 없이 기본소득 불가능, 솔직해져야


▎이재명 경기지사는 탄핵 정국을 거치며 민주당의 주요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2017년 3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호남권선출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착한 세금’은 없다는 게 정설 아닌가. 누군가 재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공동체의 선의를 내세워 저항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부자들 개인의 양심이나 선의에 기초해서 증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비난하면 안 된다. 선의라는 감성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 내가 낸 세금보다 내게 돌아오는 혜택이 훨씬 많다고 믿는 사람이 압도적 다수가 되도록 설계하면 된다. 가난한 사람을 선별로 돕기 위해 세금을 늘리자는 건 절대로 다수의 동의를 못 얻는다. 우리는 세금을 덜 내고 복지를 안 받는 나라다. 북유럽은 고부담 고복지 국가이고, 우리는 최소한 중부담 중복지 국가로 가야 한다. 즉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대신 복지도 늘어야 한다. 지금까지 세금이 엉뚱한 데 쓰였으니 믿음을 주지 못했지만, 반드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확신을 심어주면 된다.”

어떻게 확신을 줄 수 있나?

“그게 기본소득이다. 증세하되, 다른 데 쓰지 못하게끔 목적세로 정하는 거다. 대신 현금이 아니라 일정 기간 안에 사용해야 하는 지역화폐로.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보고 서서히 지급 주기와 금액을 높여가면서 정책에 대한 믿음을 주면 된다. 내는 것보다 받는 게 적은 사람도 설득할 수 있다. 현재의 저부담 저복지 상태로 계속 가면 경제가 죽는다. 자본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기술이 달리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이유가 수요 부족이다. 격차 때문에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공급 바퀴는 커지는데 소비 바퀴는 작아지니 작은 바퀴만큼밖에 못 굴러간다. 소비 바퀴를 키워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실을 가장 많이 누리는 건 고자산가, 고소득자들이다. 세금 부담의 상당 부분이 경제성장의 이익으로 보전된다는 걸 설명하면 된다. 정부가 하기 부담스럽다면 우리 경기도가 먼저 해보겠다.”

새로운 재원을 마련할 아이디어가 있나?

“예를 들면 토지보유세를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1인당 5만원쯤 줄 만큼 걷어서 해보고, 괜찮으면 10만원, 20만원 이렇게 늘려가는 거다. 그에 맞춰 증세해야 설득력을 갖는다. 탄소세 같은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거다. 환경을 훼손하면서 누군가는 돈을 버는데 피해는 온 국민이 본다. 탄소 배출하는 만큼 세금을 내서 사회적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거다. 이건 반발할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온갖 데이터를 이용해 떼돈을 벌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데이터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약간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것에 대한 ‘로봇세’와 같은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거다. 하여튼 가장 좋은 건 불로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불로소득에 관한 대안으로 이어졌다. 이 지사는 최근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논란이 있기 전부터 국토보유세 신설을 주장해왔다. 공공재인 국토가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국토보유세는 너무 급진적인 주장 아닌가.

“우리나라의 보유세(0.16%)는 세계 유수 국가들의 4분의 1수준이다. 외국에선 땅을 사서 수십 년 지나면 본전이 날아간다. 우리는 부담이 없으니 아무짝에 쓸모없는 강원도 바위산도 사둔다. 투기를 하는 거다. 불로소득을 공익적으로 환수해서 모두에게 나눠주자는 게 국토보유세의 취지다.”

부동산을 투자의 수단으로 볼 수는 없다는 건가?

“뭔가 노동을 하고 기여해서 만들어진 소득과 이익을 누리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기회를 노려서 타인이 만든 성과물을 취하는 게 실력처럼 인정받는 사회가 돼버렸다. 건물주가 되어서 노후를 편하게 보내겠다고 꿈꾸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부동산은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는 재화의 일부여야 한다. 토지공개념의 정신은 헌법에도 나와 있다. 소유권은 존중하되, 필요에 의해 제한하고 투자 수단이 되는 걸 제어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 답은 있는데 용기와 결단 부족


▎청년 변호사 시절의 이재명 경기지사. 그는 소년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성남지역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오래 굳어진 인식을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인류 역사에서 투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모두가 믿으니까 가능한 거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어지는 순간에는 그런 일이 안 생긴다. 튤립 투기 사건의 경우를 보자. 내가 산 가격보다 누군가 더 비싼 가격으로 사줄 거라고 믿으니까 튤립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더 비싸게 사줄 것이고, 앞으로도 가격이 오를 거라는 믿음을 깨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숱하게 나왔어도 ‘부동산 불패’ 믿음은 여전히 공고하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통제할 마음이 있을까? 라는 점에 의심을 가지면 백약이 무효다. 지금 상황이 그렇게 됐다.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화폐를 지급하니 ‘깡(불법 현금화)’이 생겼다. 지금도 인터넷에 지역화폐 깡을 한다는 글이 올라오는데 경기도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 걸리면 끝장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팀을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 한 사람 잡아서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영업권 박탈한다고 했더니 경기도 것은 업자들이 안 산다.”

강제적인 규제가 일순간 효과를 볼 순 있지만, 근본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근본 대책도 단순하다.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줄이면 된다. 집을 짓는 거로는 공급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아무리 지어도 집을 투기 수단으로 쓰는 이들이 사 모으기 때문이다. 임대사업자들에게 매점매석을 허용하고 세금까지 깎아줬더니 어떻게 됐나. 오히려 주거용이 아닌 집을 갖고 있으면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게 맞는 거지, 이게 뭐 하는 건가. 정책이 거꾸로 갔다.”

(인터뷰 이후인 7월 10일 정부는 다주택자의 절세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온 주택 임대사업 등록제도를 개편하면서 아파트에 대한 등록임대사업을 사실상 폐지했다. 다만 빌라와 다세대주택 등에 대한 임대사업은 여전히 가능해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있다.)

수요는 어떻게 줄일 건가?

“집을 굳이 안 사도 멀쩡한 32평짜리 임대 아파트가 있으면 거기서 편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이런 수요를 겨냥해 중산층용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거다. 집으로 투기할 매력이 사라지면 굳이 집을 사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을 것 아닌가. 그럼 공공임대가 경쟁력이 생긴다.”

공산주의 사회 만들려고 하느냐는 비난 들어봤을 거다.

“집값을 규제하려고 하니 반발이 생기는 거다. 강남 집값이 올라서 50억원이 되든 100억원이 되든 난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돈 많은 사람끼리 비싸게 사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나. 그렇게 가격으로 거래하게 합의했으니 대신 선량한 다수는 합리적 가격으로 자기가 원하는 집에 살 수 있게 해주자는 거다.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서민이 반발하나? 소수의 가진 사람들이 할 거다. 그 저항을 이겨낼 결단력이 필요하다. 정책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고 지혜의 문제도 아니다. 답은 다 있는데 용기와 결단이 없을 뿐이다.”

억강부약으로 대동세상 만드는 정치가 되고 싶어


▎이재명 경기지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정치가로서 자신의 소명이라고 강조한다.
이 지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많다.

“제가 모험적이고 즉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아주 치밀하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검토해서 1, 2, 3안, 예비안까지 만든다. 막 저지르는 것 같아도 지금까지 하나도 문제가 된 정책은 없었다. 지나고 나니 결국 올바른 방향이었다. 온 동네가 다 저놈 망하기만 기다리는데, 제가 실패할 위험한 정책을 하겠나?”

이 지사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한편으로는 행정의 지나친 개입으로 비치기도 한다.

“‘경찰국가’로 가자는 거냐고 우려하는 목소리 있는 것 안다. 그럴듯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실질적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다. 부당한 억압이나 제도에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합의한 것, 법을 지키자는 거다. 합의가 안 지켜지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자유로운 게 아니라 힘센 사람이 지배하는 방임사회일 뿐이다. 규칙을 어기는 소수를 방임하면 더 큰 불평등을 부른다. 정치가 해야 할 수단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이고, 지향해야 할 목표는 대동세상이다. 이게 내 행정철학의 진정성이다.”

요즘 나오는 사회적 문제들을 보면 계급의식이 단지 소수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동자끼리의 갈등만 봐도 그렇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얘기가 영어로는 번역이 안 된다던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 국민 대중이 그렇진 않다고 본다. 부자에 대한 혐오, 강자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경멸 같은 것들은 불공정한 방법으로 그런 부를 가졌기 때문에 생기는 거다. 충실히 노력해서 그런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까지 혐오할 정도로 대중의 평균적 의식이 불합리하진 않다고 본다. 코로나 사태 때 보여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 얼마나 높았나. 한 예로 제가 살아남았잖은가.”

배신감 느낄 때가 없었나?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1억 개의 눈과 1억 개의 귀, 5000만 개의 입을 가진 집단지성체란 믿음은 변함없다. 난 정치적 후광도, 조직도 없다. 학연, 혈연, 지연 아무것도 없지만, 국민 다수가 저를 인정해준다. 국민에게 도움 되고 혜택 된다면 제가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이유가 있다. 결국은 집단지성의 힘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이 각자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오히려 편을 가르고 혐오를 조장하는 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대중을 속여서 편을 가르고 진영을 만들어 선동하면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결국엔 성공 못한다. 그래서 정책을 좌파, 우파 따지면서 하는 게 무의미하다. 좌우는 국민이 정한 게 아니고, 일꾼들끼리 편을 가른 것뿐이다. 그래서 난 ‘파’가 없다. 최근에 기본소득을 주장하니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받고 있다. 오히려 우파 진영보다 왼쪽에서 더 심하게 공격을 받는다. 이 상황이 역설적으로 내가 좌우 진영 싸움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걸 방증한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필요하고 효율성이 높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남쪽이든 북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렇다면 이 지사는 자신을 어떤 노선으로 규정하나.

“난 실용주의자다. 좌우 안 가리고 국민에게 필요한 걸 한다. 앞으로 정치는 좌우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유용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만들어 성과를 내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민이 그렇게 평가해주셔야 정치인들이 편을 가르지 않고 정책으로 경쟁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강조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에 기회의 평등이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지사가 만약 2020년의 소년공이라면, 검정고시와 독학을 통해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입지전적인 성공의 과정을 재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평균적인 삶의 질은 개선됐는지 모르지만, 기회의 측면에서 훨씬 더 나빠진 사회인 건 맞는 것 같다. 계층 이동이 거의 봉쇄된 사회다. 계층 이동이 가능하면 현실이 어려워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좌절하게 된다. 지금이 그렇다. 누군가는 우리보다 못 사는 제3세계 국가와 비교하면 우린 행복한 거라고 하는데 꼰대적인 발상이다. 기회의 평등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도 사법시험은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실현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계층 이동 봉쇄된 사회는 희망 없어

앞으로 정치가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을 텐데 비전은 무엇인가.

“한 달밖에 안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저는 언제나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 자신을 위해 자리를 노린 적은 없었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니 주어졌을 뿐이다. 추상적인 바람은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거다. 어려서부터 불공정에 대한 피해를 너무 많이 겪었다. 저는 그 불공정한 사회를 탈출했는데, 내 가족과 동료, 주변 사람들 중에는 탈출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다들 정말 어렵게 살았고… .(이 지사의 큰형은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다 추락사고로 다리를 절단했다. 누나는 요양보호사, 둘째 형은 청소회사 직원이었다. 동생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 된 뒤에도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장 청소부였다. 이 지사도 성남 공단에서 꼬마 노동자로 일하며 프레스에 팔이 끼여 장애를 입었다. 그는 독학해 검정고시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누구나 행복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사법시험 합격한 뒤에는 판·검사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독재정권 아래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고, 돈 빌려서 개업하고 시민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성남시장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더니 도민들께서 여기까지 데려다줬다. 이 모든 과정을 제가 기획한다고 가능했겠나? 그냥 죽어라 열심히 하다 보니 그 판에 불려 나가고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주어진 일 최선을 다하면 또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는다.”

대법원 선고 결과에 따라 정치적 명운이 갈릴 텐데 초조하지 않나?

“요즘은 별로 급하지 않다. 결국 하늘이 정하는 대로 간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아닌가. 최선을 다하는 건 내 몫이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먹고 산다.”

이 지사는 과거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공무원들에게 ‘불독’, ‘싸움닭’으로 불렸다. 시정에 관해 시시콜콜 의견을 내고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성남시장에 이어 경기도지사가 된 지금 그를 공무원들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이 지사는 “공무원들이 저와 열심히 호흡을 맞춰 일한다. 제가 일을 엄청나게 많이 시키는데도 성실하게 잘한다”고 추켜세웠다.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한 성남시 공무원의 전화번호와 메모를 보여줬다.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08. 10. 마이크 빼앗았다며 보조경기장 행사에서 인상 쓴 여성 공무원. 악질’. 그는 변호사 시절 한 공청회장에서 자신을 냉대했던 공무원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적었다. 그 공무원은 그가 시장이 된 뒤 오히려 중용됐다. “개인적으로야 밉지만, 자기 일에 충실했던 것뿐이니 출중한 능력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잖은가”라는 이 지사의 말은 실용주의자란 자평이 허언이 아님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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