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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초대석] 정치 원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정국 진단 

“윤석열, 아직 정치하겠다는 결심 서지 않은 듯… 김동연은 여(與)도 야(野)도 아닌 중도의 가치 추구” 

서울시장 유력 후보 모두 10년 전 인물, 한국 정치 심각한 지체현상
“文, 민주주의 원리 안 지키면서 협치와 통합 강조하는 건 이율배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2월 1일 서울 서소문로 중앙빌딩 9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월간중앙과의 차담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4월 총선 전후로 몇몇 언론의 인터뷰에 응한 이후 일체 인터뷰 요청을 사양하고 있다. “나라 형편이 단편적인 논평 수준의 얘기로는 안될 것 같아서”라는 게 주된 이유다.

그런 윤 전 장관이 월간중앙과 테이블을 마주한 건 2월 첫날 오후. 장소는 서울 서소문로 중앙빌딩 회의실이었다. 정식 인터뷰가 아닌 격의 없는 차담(茶啖)이었다. 윤 전 장관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빈소 가는 길에 차나 한잔할까 해서 들렀다”고 말했다. 1월 31일 별세한 이 전 수석과 윤 전 장관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에서 정무수석과 공보수석 등으로 고락을 함께했던 오랜 벗이다.

돌아보면 한국 정치사에서 윤 전 장관만큼 여야를 넘나들며 이데올로그(ideologues) 역할을 한 정치인은 많지 않다. 그는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장을 맡은 데 이어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또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2016년 국민의당 창당 때는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윤 전 장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차담은 1시간 남짓 이어졌다. 대화 내내 윤 전 장관은 나라 걱정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현재 여야 모두 미래의 한국을 짊어질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갈했다. 다음은 윤 전 장관과의 주요 차담 내용.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 원전 문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민의힘이) 너무 성급하게 이슈를 키운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국민에게는 북풍이라는 선입견이 박혀 있으니까 단계적으로 이슈를 확대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전 장관은 자신이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장을 맡고 있던 2000년 4월을 떠올렸다. 4·13 총선 3일 전이던 그해 4월 10일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6·15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전격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패닉에 빠졌다. 이회창 총재는 급히 윤여준 단장을 당사로 불렀다. 침통한 표정의 이 총재는 “총선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며 고개를 떨궜다. 이때 윤 단장은 “제 생각은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거에 확실하게 이용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너무 나갔습니다. 제가 박지원 장관이라면 ‘남북한 민족 화해를 위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정도까지만 발표했을 겁니다. 민족적 문제를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써먹었다고 역공하면 먹힐 수 있습니다.”

반신반의하던 이 총재는 윤 단장을 힐끗 쳐다보더니 “당신 뜻대로 해보라”고 했다. 윤 단장은 이 총재에게 말했던 논리대로 정부여당에 역공을 펼쳤고,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정부 기대만큼 파괴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제1당을 차지했고,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에 만족해야 했다.

“국민의힘, 대통령감 만들 인재 길러내지 못해”

다시 윤 전 장관의 말이다. “국민의힘이 한두 단계만 더 밟아서, 그러니까 구체적인 근거를 대가면서 (공세를) 펼쳤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구체적 물증도 없이 이 문제를 건드리니까 여당이 대번에 북풍이라고 맞받아치잖아요? 뭐든 도가 지나치면 안 되는 겁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총선 이후 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의힘을 평가하신다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변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존재하잖아요? 그러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당을 이끌어갈 만한 재목이다 싶은 사람은 과감하게 영입해서 의정 경험을 쌓게 하고, 나중에 대통령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국민의힘에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훌륭한 인재 한 명 발굴하고 공천해서 당선시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실제로 해보니까 대단히 많은 시간과 정력이 들어가더라고요. 2000년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장을 맡아서 공천 작업을 했는데, 원희룡 제주지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당시 영입한 사람들입니다. 이회창 총재가 저를 부르시더니 ‘원희룡·오세훈 두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당시 새천년민주당 총재)도 자신들 쪽으로 영입하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두 사람을 우리 당으로 영입하라. 실패하면 내 앞에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논리로 설득해야 두 사람이 이 총재와 정치하겠다고 마음을 먹을까’ 고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을 다 영입했어요. 정당은 공천 때마다 그런 고민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 이후에 보면 그런 관점이나 노력 없이 그냥 데려다 공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재 영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건 여야 모두 마찬가지인가요?

“마찬가지지만, 상대적 우열은 있겠죠. 대통령이 있는 여당은 그나마 좀 덜한데, 야당 입장에서는 (인재 영입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지금 국민의힘이 저렇게 궁지에 몰린 거 아닌가 싶어요.”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의 독선적 태도로 인해 반(反) 김종인 정서가 확산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렇게 보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당이 너무 막무가내 아닌가요? 언제까지나 야당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대응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 입장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당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이 남을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발언만 해서는 안 되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저렇게 막무가내로 국정을 이끌어가는데 점잖은 말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힘에 몸담아서 그런지 애정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애정이 있는 만큼 비판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릅니다. 자신을 비판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늘 조심스럽죠. 그렇지만 그게 두려워서 제가 할 말을 안 하거나 말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제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말을 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죠(웃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정국의 큰 이슈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하는 부분은 이번에 보궐선거에 뛰고 있는 유력 후보 모두 10년 전 (보궐선거에) 등장했던 정치인이라는 점이에요.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국내외적으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는데, 어떻게 10년 전 인물들이 다시 등장했을까요? 이건 한국 정치의 심각한 지체현상을 말해줍니다.”

“안철수는 대선 승산 없다고 보고 차선 택한 듯”


▎2019년 5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야권 ‘잠룡’이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로 선회했습니다. 이 결정을 어떻게 보시나요?

“본인이 대선에만 나가겠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 데요.”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안 대표에게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물으면 손사래를 쳤습니다. 왜 생각을 바꿨다고 보시나요?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어서 말씀드리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큰 선거는 정당의 하부조직 없이는 이기기 힘들어요. (개인적인) 지지도가 높더라도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오는 건 정당의 하부조직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아주 작은 규모의 정당입니다. 안 대표가 대선에 나간다 하더라도 승산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도 고려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지역 조직 없이 어떻게 대선 같은 큰 선거를 치르겠어요? 그런 이유에서라도 (안 대표가) 차기 대선 도전은 어려울 것으로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침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고, 서울시장은 차기 대권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국민이 평가해주니까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으로는 충분하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공직자입니다. 현직 공무원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렇게 높은 지지도를 기록한 적이 있었던가요?

“없었죠.”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실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따지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의 높은 지지도를) 만든 거 아닌가요? 속된 말로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몇 달 동안 주먹다짐한 거예요. 그런데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먼 산 바라보듯 아무 말도 안 하고 (이 문제를) 끌고 왔던 거잖아요? 국민은 (여당이) 부당하게,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윤 총장을) 몰아내려 한다는 인상을 받은 거죠. 반면 윤 총장은 견디기 어려운 위압적인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과잉 반응 없이 법과 제도에 의존해서 뚫고 나가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국민은 좋게 보고 있는 거죠.”

윤 전 장관은 윤 총장과는 파평윤씨 종친이다. 윤 전 장관은 윤 총장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윤 전 장관은 “윤 총장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윤 총장의 지지도 상승세가 최근 들어 한풀 꺾인 모습입니다.

“이슈의 중심에서 비켜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몇 달 동안은 그 이슈(윤 총장과 추 전 장관의 갈등)밖에 없었잖아요? 모든 국민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고요. 그런데 이제는 (추 전 장관이) 물러나고 문 대통령이 태도를 분명히 했으니까 더는 이슈가 아닌 거죠.”

윤 총장은 야권 인사일까요? 여권 인사일까요?

“글쎄요.”

문 대통령은 1월 18일 신년회견에서 윤 총장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저의 평가는 한마디로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밝혔습니다.이에 김 비대위원장은 ‘윤 총장은 우리 사람이 아니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인데, 야당 일각에서 ‘우리 당에 와서 대선후보가 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사실 우습잖아요? 나중에 (윤 총장이 야당 대선후보를)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다 싶어서 (김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윤석열, 정치한다면 범여권 후보로는 어려울 것”


▎1997년 8월 개각을 통해 당시 윤여준 청와대 공보수석(앞줄 오른쪽 둘째)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다.
윤 총장을 아시는지요? 그가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개인적으로 윤 총장과는 일면식도 없어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윤 총장이 정치를 한다면 범여 후보로 나갈까요? 현 정권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냐는 문제를 떠나서,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갈 세력으로 보기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요?”

오는 7월 윤 총장은 임기를 마칩니다. 선출직에 도전할 거로 보시나요?

“사람을 알아야 어떤 판단을 할지 짐작할 수 있는데, 윤 총장을 만난 적이 없어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윤 총장과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건너서 들어보면 윤 총장 본인도 확실하게 결심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경우에도 정치를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라는 거죠. 윤 총장 스스로도 결심이 서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대선이 1년여 남았습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지도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반면 야권에서는 마땅한 후보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당이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면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정당 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봐요. 최근 몇 차례 대선을 봐도 정당이 중심 역할을 못했습니다. 정당이 국민 신뢰를 잃어 지탄의 대상이 되다 보니 정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 참신해 보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당이) 참신한 인재를 영입했는데, 들어온 사람은 정당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에요. 정당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고 애정도 없는 거죠. 그러니까 입당한 뒤로는 정당 중심이 아닌 캠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 거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선거를 치르다 보니 정당 중심이 아닌 대선후보를 추종하는 식으로 선거가 흘러간 거죠. 여야 똑같아요. 지금 여당이 야당일 때나, 야당이 여당일 때나 한국 정치에 달라진 점이 뭐가 있습니까? 여당이 집권하든, 야당이 집권하든 한국 정치가 지체현상에 빠져 있는데, 이런 상태로 어떻게 미래를 짊어지겠다고 국민에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재명의 순발력과 실행력, 되레 단점 될 수도


▎2016년 1월 당시 국민의당 윤여준(왼쪽)·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회의 도중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여야 모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낸 거로 알려졌는데요.

“작년에 여러 사람과 얘기하는 자리에서 딱 한 번 (김 전 부총리를)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부총리 재임 시기의 행보를 좋게 봤어요. 제가 경제 전문성은 없으니 정책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처리해나가는 태도를 보니 청와대를 무조건 추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청와대와 공개적으로 갈등 관계를 만들지도 않더라고요. 자기주장을 얘기하되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관료로서 참 현명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김 전 부총리는 범여일까요? 범야일까요?

“양쪽에서 모두 러브콜을 받는 사람이라면 여도 야도 아니겠네요(웃음). 흔히 그런 위치를 중도라고 말하는데, 중도라는 게 실체가 있는 개념은 아니죠. 저는 중도란, 보수적 성향을 가졌든 진보적 성향을 가졌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라고 봅니다. 내가 믿는 가치를 절대 선이라고 해석하면 상대는 절대 악이 돼버려요. 그러면 상대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죠. 반면 내가 믿는 가치는 이렇지만, 상대의 가치도 좋은 부분은 받아들인다고 하면 싸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수상(재임 1997~2007년)이 말한 ‘제3의 길’이 그런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왼손과 오른손이 싸우고 있어요. 김 전 부총리는 자기가 믿는 가치가 절대 선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점에서는 김 전 부총리가 보수냐, 진보냐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 정치가 유독 보수·진보를 따지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선명해서 부딪히는 게 아니고, 순전히 패거리를 짓기 위한 수단으로 쓰기 때문이죠. 진실하게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싸우지 않습니다.”

최근 이낙연 대표의 지지도 하락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대표를 조금 아는 정도일 뿐이에요. 그분은 점잖은 데다 인품도 좋아서 평소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무총리 재임 동안 국회 본회의에서 말을 참 잘했잖아요? 그런데 원래 국무총리라는 자리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모범답안을 말해야 하는 자리예요. (이 대표가) 어휘 구사력이 뛰어나다 보니 늘 모범답안을 잘 말했죠. 그러나 한 정당의 대표는 모범답안만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 대표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해요. 당내 친문 세력이 대세를 쥐고 있으니, 그 세력과 관계가 좋아야만 대선후보가 될 수 있잖아요. 그 세력과 관계를 원만하게 끌어가려면 자기 생각이 따로 있더라도 늘 그쪽 생각에 맞춰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압박감을 느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주견(主見)이 없어 보일 수 있죠. 본인도 어느 정도 각오했음직한 일일 테죠.”

반면 이재명 지사는 선두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뚜렷한 장점을 가진 분임에는 틀림없어 보여요. 순발력이 뛰어나고, 말에 구체성이 있어요. 막연하지 않다는 뜻이죠. 또 자기논리가 있고 실행력이 뛰어나죠. 행정은 그게 중요해요. 그런데 자칫하면 큰 장점이 큰 단점이 될 수도 있죠. 많은 사람이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하거든요. 민주주의가 그런 거잖아요. 시간과 정력의 낭비인 것처럼 보이지만, 컨센서스(공동체 구성원의 의견에 대한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야 나중에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에요. 이 전 대통령이 ‘이건 내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니만큼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집행했어요. 저는 (이 전 대통령의) 의도가 나빴다고 보지는 않아요. 다만 절차가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거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라도 절차를 생략하다 보니 끊임없이 갈등이 생겨났고 결국 국가적인 낭비를 불러온 겁니다. ‘이 지사의 경우 실행력이 뛰어나다는 뚜렷한 장점이 도리어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제 주변에서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고요. 앞으로 이 지사의 과제는 그런 국민의 우려와 불안을 어떻게 씻어내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국정 책임진 세력의 무능은 그 자체가 ‘죄악’

최근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장관을 만났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홍 의원과는 인연이 있어요. 최근에 ‘저녁이나 한번 하시죠’라고 하길래 밥을 같이 먹었는데, 특별한 얘기는 안 했습니다. 그냥 옛날 얘기하면서 웃고 그랬어요. 원래 홍 의원이 재담(才談)을 잘하잖아요? 그런데 홍 의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저런 길을 말하기에 제가 이런 조언을 했어요. ‘2008년 원내대표로 선출되고 나서 한 첫 번째 국회 본회의 연설 내용을 떠올려보라’고 했습니다. ‘다시 읽어보면 그 말을 잘 지켰는지 아닌지 판단이 설 것 아니냐’는 말만 해줬어요.”

홍준표 의원은 2008년 7월 14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18대 국회가 42일 만에 늑장 개원한 일을 사과한 홍 원내대표는 “시민사회 협력위원회 설치를 추진해 합리적 진보를 포함한 다양한 시민사회와 대화하도록 하겠다.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가겠다”며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오는 5월이면 문재인 정권 출범 만 4년이 됩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문명사적 전환기가 도래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있습니다.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온다는 말을 다들 입버릇처럼 하는데, 그 뉴노멀이 뭔지는 아무도 예측을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뉴노멀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는 숙제를 안고 있죠. 국가를 이끌어갈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쨌든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요즘 여야가 싸우는 수준을 보면 입에 담기 딱할 정도로 저질이에요. 특히 국정을 책임지는 세력의 무능은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 문 대통령은 늘 협치와 통합을 말하는데,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면 그 과정이 곧 협치와 통합이 됩니다. 다양한 의견이 국회에서 합쳐지니까 통합이고, 여야가 협력하니까 협치 아닌가요? 마치 의회 민주주의의 원리가 따로 있고, 협치와 통합의 가치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민주주의 원리를 지키지 않으면서 왜 협치와 통합을 강조하는 거죠? 이율배반이에요.”

차담이 마무리될 무렵 윤 전 장관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오는 5월이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남게 됩니다. 1년은 마무리 기간이에요. 그때쯤 되면 정권에 대한 평가가 여기저기서 나오지 않겠어요? 다른 분들이 나라를 위해 말씀해주신다면 저까지 굳이 나설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다른 분들이 말씀을 안 하신다면 저처럼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나라 형편 돌아가는 걸 보니 단편적인 논평 수준의 얘기로는 안 될 것 같아요.”

- 글 최경호·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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