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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여의도 정치 문법 깨뜨린 이재명의 경쟁력 분석 

업그레이드한 이재명, 정책 선명성 돋보여 

‘흙수저’ 출신 치열함으로 보수, 중도, 진보에서 폭넓은 지지 받아
“강점인 집요함 길어지면 사람을 ‘질리게’ 하는 역효과 경계해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새해 들어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 11월 27일 경기도청 확대간부회의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 사진:경기도
20대 대통령 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일은 내년 3월 9일이다. 재집권을 노리는 민주당은 이미 유력 후보군을 형성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지율 30% 안팎으로 앞서가는 가운데 이낙연 당대표가 이 지사를 추격하고 있다. 당내 예비경선이 시작되는 3월(예비후보 등록)부터 4월 7일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초반 기세는 이재명의 차지다. 야권 후보군을 모두 포함해도 월등히 앞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대표,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오차범위를 넘나드는 3자 경합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오차범위 벽을 깨고 선두에 올랐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SBS 의뢰로 지난 2월 6~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28.6%로 선두를 지켰다. 이 대표와 윤 총장은 각각 13.7%, 13.5%로 거리가 벌어졌다.

지난 2월 초에는 대세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30%대 지지율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세계일보]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32.5%를 얻었다. 2위 윤 총장(17.5%)과 15% 차이다. 이 대표는 13%에 그쳤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지사가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지역별로도 대구·경북을 제외하고 전국 1위다. 이 대표의 연고 지역이자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에서도 47.8%로 이 대표(25.6%)를 월등히 앞섰다.

1월 초에 나온 여러 신년 여론조사 결과들은 이재명 대세론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 지사는 10개 언론사가 각 여론조사업체에 의뢰해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서 YTN-리얼미터(1월 3일), 뉴시스-리얼미터(1월 1일)를 제외하고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변방 장수’에서 4년 만에 유력한 차기 후보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월 28일 오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혼자 참배하는 모습이 한 시민에게 포착돼 화제가 됐다. / 사진:연합뉴스
아직 대선까지 남은 기간이 많아 지금의 독주를 절대적으로 보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 지사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 지사는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지난해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경기도민과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민심을 천심, 즉 순리라고 그는 믿는다. 독보적인 지지율 1위는 그가 대선에 출마할 수밖에 없는 당위를 내세울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명분이다.

대선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7년 대선에서 성남시장이던 그는 ‘변방 장수’를 자처했다. 이제는 변방이 아닌 중앙 정치무대의 조명을 한꺼번에 받고 있다. 변방 장수에서 4년 만에 유력한 차기 국가 지도자 후보로 부상한 것은 괄목할 성과다.

4년의 담금질을 거친 이 지사는 더 노련해졌다. 청량감을 주는 실행력에 정책 방향을 주도하는 기획력이 더해졌다. 이 지사의 측근들은 그를 ‘노련해진 에이스’라고 평한다. “예전에는 강속구를 잘 던지지만 구종이 단순했다. 이제는 폭이 큰 변화구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완급 조절과 정교함이 더해져 에이스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한 측근의 말이다.

또 다른 측근은 “이 지사는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는 “정책을 개발하는 그룹은 이 지사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철학을 정책으로 다듬는 역할을 할 뿐, 지금 흥행한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이 지사에게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오랜 고민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재발견되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평가다.

이 지사가 다른 잠룡들과 차별화되는 독보적 경쟁력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이 지사의 ‘치열함’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그가 살아온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 대신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진학과 사법시험 합격에 이르기까지 인생 경로가 입지전적이다. 그의 성공담은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됐다. 어려움을 겪어봤으니 서민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다. 그가 내세우는 구호인 ‘공정’과 ‘대동세상’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난 철학이 녹아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 지사의 인생 스토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엘리트’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게 그의 가장 큰 매력 요소”라고 말했다.

정책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그의 치열함과 집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선별론에 맞서 고집스럽게 보편론을 주장하는 모습이나, 포퓰리즘이란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기본소득을 시대적 의제로 끌어올린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력이 그렇다. ‘사이다 정치인’이란 별칭이나 “딴 건 몰라도 일 하나는 시원하게 한다”는 세간의 평에는 그가 보수, 중도, 진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는 이유가 함축돼 있다. 이 지사 스스로도 “나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자”라고 자평한다.

친문계 한 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가 여의도의 정치 문법을 파괴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여의도 정치 대신 변방장수(성남시장)를 자처했을 때 이미 여의도에서 통용되는 정치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 보니 당내 주류를 이어주는 연줄도 별로 없다. 그의 주변에는 정치인들이 출신 학교나 학생운동 계파를 매개로 형성하는 ‘라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출신 학교나 지역은 그의 인재 영입 고려 기준이 아니라고 측근들은 입 모아 말한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그만의 최대 강점이다. 그의 정책은 특정 계층이나 지역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중산층까지 수혜 대상에 포함하는 정책의 보편성을 중심에 둔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론이나 기본소득, 기본주택(장기공공임대주택) 등 그가 선점한 정책 의제들은 대개 가진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실용주의 철학을 바탕에 두고 있어서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이 지사를 가장 껄끄러운 여권 잠룡으로 보는 이유도 이런 특징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평했다. “지역적으로는 안동 출신이라는 영남 확장성이 민주당 후보 중 가장 뛰어나다. 이념에선 포퓰리즘 논쟁은 있을지 몰라도 좌파로 보기에 애매한 면이 있다. 국민이 원하는 이슈를 발굴하고 의제화하는 감각이 탁월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민주당 후보 중 유일하게 영남에서 야권 후보를 위협하는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고, 이념 성향으로는 중도를 넘어 일부 보수진영에서도 이 지사를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

자신의 SNS와 경기도정을 통해 정책 이슈에 관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과 달리 정치 행보는 잠행에 가깝다. 지난 1월 28일 이 지사는 광주광역시 망월동의 국립5·18묘지를 혼자 방문했다. 다음 날에는 오월어머니집에서 5·18 유가족을 만났다. 모든 일정은 비공개로 치러져 의전이나 사전보도 없이 간소하게 진행됐다. 미리 알린 공식 일정은 29일에 광주시청에서 열린 ‘인공지능 헬스케어 플랫폼 구축사업’ 협약식뿐이었다. 다른 정치인들이 대규모 이벤트 형태로 광주 5·18 묘역을 방문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광주 광산을)은 “이 지사의 이런 모습에서 광주시민들이 더 큰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호남 지지자 규합 분위기, 과거 노사모와 비슷”


▎지난해 11월 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경기도 주최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이재명 경기지사 (앞줄 왼쪽에서 셋째)와 여야 의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오종택 기자
호남에서 이 지사 지지자들의 세력화도 구체화하고 있다. 1월 26일 이 지사 지지모임인 ‘희망사다리 포럼’이 광주에서 출범했다. 여기에 ‘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광주본부 등 지금까지 지지자 모임이 4~5개 결성됐거나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전북에서도 최근 ‘기본소득국민운동전북본부’를 시작으로 이 지사 지지자들이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민 의원은 호남지역에서 이 지사 지지자들이 규합하는 분위기를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되던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민 의원은 “홍보와 조직 전략은 큰 선거일수록 안 통한다”고 단언했다. “광주시민이 바라는 시대정신과 이 지사의 가치관이 맞아떨어지니 호응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자발적 시민참여운동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는 게 민 의원의 분석이다.

호남의 민심 흐름도 이 지사로 향하고 있다. 1월 말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광주·전남에서 지지율 47.8%를 기록했다. 이 대표는 22.2%에 그쳐 처음으로 지지율이 역전됐다. 2월 중순 입소스 조사에선 30%로 이 대표(36.5%)에게 뒤처졌지만, 광주 민심이 이 지사에게 기울기 시작했다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 민주화 이후 시대정신을 견인해온 광주의 상징성 때문에 그렇다.

민 의원은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가치와 지향점을 발신하는 시대정신의 모태”라며 “광주 민심을 단순히 지리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80년대에나 가능했던 구분법”이라고 했다.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선거 때가 되면 정치 지도자들이 광주의 민심을 얻으려고 왜 그렇게 노력해왔는지를 돌아보면 광주가 한국 정치에서 갖는 상징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광주 민심이 부산 출신의 노무현을 시대정신으로 선택하면서 바람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민 의원은 호남지역의 이재명 지지세 확장 현상을 “광주 시민과 이 지사가 표방하는 가치와 노선의 싱크로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과제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는 사람, 본선 경쟁력 있는 후보라는 기대를 이 지사에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물론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단서를 전제로 하고서다.

대표직 사퇴 앞둔 이낙연 하락세, 4·7 보선이 승부처


▎1월 21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해 신공항부지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송봉근 기자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은 10%대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낸 뒤부터 줄곧 하락세다. 국민 통합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게 도리어 역풍을 맞은 셈이 됐다. 수도권의 민주당 의원은 “중도를 끌어안으려는 확장 전략은 실패하고, 지지자들이 등 돌릴 빌미만 제공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인사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 대표가 사면론을 성급하게 꺼낸 배경은 당초 예상을 벗어난 상황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당초 그는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삼아 친문 지지자를 끌어모으면 대선 레이스 1차 관문인 당내 경선에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사의 지지율 상승에 속도가 붙었고, 2017년 지방선거에서 보여줬던 친문 진영의 이 지사에 대한 거부감이 희석되면서 차별화가 필요했다. 포용성을 보여주려던 사면론은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악수(惡手)였다.

이 대표의 돌파구는 4월 7일에 치러질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있다. 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여론의 반전을 꾀할 수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한 직후 이 대표 지지율은 40%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보궐선거에서 야권에 패배할 경우 대선 후보의 운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가까운 예로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의 전례가 있다.

최근 이 대표가 부산·경남(PK) 지역에 남다른 공을 들이는 것은 그런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치권은 분석한다. 4·7 보궐선거뿐만 아니라 영남지역 확장을 위한 포석이 깔렸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1월 29일 부산에 내려가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1월 21일 부산을 방문한 데 이어 9일 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지난해 11월 4일에도 대구와 부산을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설 연휴 직전인 2월 9일에는 자신이 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K뉴딜위원회와 부산·경남 지역 국회의원, ‘부산갈매기 의원단’의 ‘동남권 신경제엔진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동남권 신경제엔진 3대 프로젝트(신공항, 신항만, 철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표를 보좌하는 주요 당직에는 PK 출신 의원들이 포진했다. 수석대변인에 경남 창녕 출신인 최인호 의원이, 당대표 정무실장에 부산 출신 김영배 의원, 당 정책위 의장은 부산 출신 한정애 의원(환경부 장관으로 입각)이 대표적이다. 부산지역 현역 3인방 중 한 명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일찌감치 이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전국 17개 시·도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정의평화포럼’과 지지자 모임인 ‘NY플랫폼’을 통해 지역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4·7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규정에 따라 대선에 출마하려면 1년 전인 3월 9일 전에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 대표직 사퇴 후에는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과 개인적 대권 행보를 위해서도 보궐선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중책이 그에게 놓인 과제다.

이 지사의 약진으로 친문은 여러 갈래로 분화하고 있다. 당초 친문이 후보로 점찍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유시민,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후보 가능성에서 멀어져 대안 인물을 찾지 못한 상태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민형배 의원은 일찌감치 이 지사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태년 원내대표와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도 물밑에서 이 지사를 지원하고 있다.

정세균 총리도 차기 꿈꾸지만 지지율 미미해


▎정세균 국무총리가 1월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대표는 당대표가 된 뒤 친문 인사들을 주요 당직에 앉히며 스킨십을 강화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입각한 권칠승 전 수석사무부총장도 이 대표와 친문을 잇는 가교로 꼽힌다. 이 대표와 이 지사에 비하면 약세지만, 정세균 총리도 친문 제3 후보로 거론된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인물 중에는 친문과 겹치는 이들이 여럿 있다. 최재성 정무수석, 강기정 전 정무수석,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정 총리의 지지율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설 연휴를 앞둔 2월 초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총리 지지율은 최저 1%대에서 4%를 넘지 못했다. 정 총리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은 아직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는다. 정 총리가 주축이 된 ‘광화문포럼’은 지난해부터 매달 조찬모임을 가지며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광화문포럼 회원으로 등록한 현역 의원은 50여 명에 이른다. 다만 이들은 연구모임 수준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2011년에 출범한 정 총리의 싱크탱크인 ‘국민시대’는 대표적인 외곽 지원 조직이다. 전국 17개 시·도에 지부를 갖추고 있어서 언제든 활동이 가능하다. 3월에는 ‘우정광주포럼’이 출범할 예정이다. 우정광주포럼은 호남 민심을 공략할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정 총리의 승부수는 지역 공략이 아니라 성공적인 국정 성과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로나19 방역은 그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다. 그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서 코로나19 방역을 총지휘하고 있다. 방역의 성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 정 총리 또한 그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장 해외 백신 도입 문제가 시급하다. 정 총리는 1분기부터 접종이 시작될 거라고 밝혀왔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둘러싼 논쟁도 정 총리에겐 부담이다. 1월에 전 경기도민에게 10만원씩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이 지사가 밝히면서 촉발된 대상자 선별 논쟁에 대해 정 총리는 “단세포적 논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이 지사를 직격한 데 이어 “지금 상황에선 차등 지원이 옳고 피해를 많이 본 쪽부터 지원하는 게 옳다”고 반론을 펼쳤다.

정 총리는 대선 행보에 대해선 아직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그는 새해 첫날 SBS 라디오 [이철희의 정치쇼]에 출연해 “총리의 책무가 너무 막중한 상황에서 한눈을 팔면 안 되는 입장”이라며 “지금은 대선주자라기보다는 총리”라고 했다. 4·7 재보선 전까지 백신 도입 등 방역 대책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후일을 도모할 여건이 마련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지사와 이 대표 두 사람이 서로 밀고 끌며 대선 후보군 선두를 유지하는 현재 상황은 민주당으로서 나쁠 게 없다. 그러나 민주당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다. 이 대표의 대중성이 퇴색할 경우 이 지사의 개인기에 의존한 지지율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이 지사가 경선에서 탈락해 본선에 이르지 못할 경우 이 지사 개인을 넘어 민주당의 본선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다양한 후보를 발굴해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당 안팎에서 말한다. 1년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나올 수 있는 ‘이재명 피로감’을 희석할 다크호스를 발굴해 경선 흥행과 리스크 관리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사를 지지한다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지사의 강점인 집요함이 길어지면 사람을 ‘질리게’ 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한계 보여

친노·친문 진영에서 나오기 시작한 ‘제3 후보론’은 이런 고민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친문 인사인 홍영표 의원은 지난해 말 “상황이 변하면 제3, 제4의 후보가 등장해 판을 키우는 것도 좋다”며 제3 후보론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원조 친노 인사인 유인태 전 의원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3 후보 가능성에 대해 “몇 사람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유 의원은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후보군이 등판할 경우 “대선판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3 후보론의 주인공은 ‘86그룹’이다. ‘86그룹’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80년대 군사독재와 87년 민주화의 경험을 공유하는 ‘86세 대’보다 좁은 개념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에서 친문을 구성하는 핵심 세력이고, 주류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유 전 의원이 언급한 ‘586세대 제3 후보’는 86그룹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표적 인물로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지사의 확장세가 계속된다면 결국 86그룹을 필두로 한 친문 진영도 이 지사 중심의 대선 체제에 흡수될 수밖에 없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586의 개념을 넓히면 이 지사도 범주에 포함돼 상징적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이후 성남지역에서 풀뿌리 시민운동에 주력해왔다. 그래서 이 지사를 지지하는 민주당 내 인사들은 86세대의 대표성을 가진 첫 대선 후보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지사 스스로도 86그룹이나 친문과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친문의 분화나 제3 후보론이 이 지사를 위협하거나 민주당의 분열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 내 시각이다. 86세대의 대권 도전은 이제 시작됐고, 아직 50대에 불과한 그들이 적어도 그다음 대선까지 주류 잠룡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기획통 원외 인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 지사의 공통점은 두 번의 도전 과정에서 정치적 역량이 숙성됐다는 점이다. 민주당으로선 이번 대선에서 86세대뿐만 아니라 그다음 세대까지 대표할 잠재력 있는 후보들을 발굴해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게 장기 집권 전략 측면으로도 이롭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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