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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日 정부의 ‘도쿄올림픽 구하기’는 성공할까 

올림픽 끝내 취소될 경우 스가 정부 함께 소멸할지도 

코로나19 확산에 모리 조직위원장 사퇴로 엎친 데 덮친 격
무산 시 4조5000억 엔(48조원) 손실… 연기는 사실상 불가


▎1월 4일 일본 도쿄의 한 시민이 도쿄올림픽 D-200을 알리는 대형 스크린 옆을 지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강행을 외치지만, 시선은 대체로 싸늘하다. / 사진:연합뉴스
'우는 얼굴에 벌침(泣きっ面に蜂)’이란 일본 속담이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첩첩산중(疊疊山中)’과 일맥상통하는, 그러잖아도 아파서 울고 있는데 벌이 다가와 얼굴을 쏘고 가는 참담한 상황을 뜻하는 말. 오는 7월 23일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심정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올림픽 개막을 5개월여 앞두고 예상치 못한 악재가 닥쳤다. 2014년 올림픽 유치부터 전 과정을 이끌어왔던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2월 12일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2월 3일 열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임시 평의원회에서 여성 이사 증원 문제를 언급하면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하다” 등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은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게 화근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올림픽 개최를 어렵게 하는 ‘물리적’ 제약 조건이었다면, 모리 위원장의 사임은 올림픽 정신 훼손과 일본에 대한 신뢰 저하라는 ‘심리적’ 장애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모리 위원장 사임 후 그동안 올림픽을 지지해왔던 소수의 사람도 “이렇게 하면서까지 과연 올림픽을 해야 하는가”를 묻기 시작한 모양새다. 거기에 2월 13일에는 성화 릴레이가 시작되는 후쿠시마에서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을 떠올리게 하는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연속으로 벌침 공격을 받는 도쿄올림픽, 과연 예정대로 열릴 수 있을까.

연기는 없다! 고(Go)냐 스톱(Stop)이냐


▎망언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2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가 2020년 7월 개막 예정이던 올림픽을 1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전 세계를 덮친 미지의 감염병 앞에서 다들 당황하고 있었지만, 설마 1년 후엔 상황이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아예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연기된 이번 도쿄올림픽에 “인류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증거”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코로나19는 2차·3차 대유행으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에서 23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에서도 3차 대유행이 시작돼 1월 8일부터는 수도권을 비롯한 12개 지역에 순차적으로 긴급사태가 선포됐다. 올림픽이 이번에도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졌고, 지난 1월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는 쪽으로 내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못 먹어도 고’를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올해 가을이나 내년으로 연기하자는 방안이 나왔지만, 몇 달 미룬다고 전 세계 코로나19 상황이 극적으로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없다.

1년 연기는 더 어렵다. 내년에는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고, 9월에는 중국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예정돼 있다. 11월에는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마당에 여름 올림픽 일정을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번 올림픽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부의 명운을 건 승부의 장이기 때문이다. 스가 총리는 지난해 9월 지병을 이유로 사임한 아베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올랐다. 당시 아베 총리의 남은 임기는 1년이었고 올해 9월에는 다시 집권당인 자민당 내 선거를 거쳐 새 총재가 선출된다.

스가 총리는 집권 초부터 코로나19를 수습하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차기 총재 선거에 출마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뒀다. 그럴 경우 자민당 내 합의로 경쟁자 없이 연임할 수 있어 총리 임기를 3년 더 보장받는다. 올림픽이 예정대로 치러질 경우 올림픽 직전이나 끝나자마자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을 치러 자신의 권력기반을 단단히 할 수 있다.

현재 스가 총리는 집권 4개월 만에 지지율이 60%대에서 30%대까지 떨어지며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여론에 끌려가는 ‘뒷북 대응’을 보여준 것이 인기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다. 여기서 일본이 수년간 준비해온 올림픽마저 취소될 경우, 스가 총리는 올림픽과 동반 소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종식을 맞이하지 못한 채 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일본 정부는 올림픽에 부여한 의미를 “고난을 이겨낸 증거”에서 “고난 속에서 치러지는 국제적 행사의 ‘롤 모델’” 쪽으로 수정한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지난 1월 올림픽 개최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올림픽의) 연기·취소는 없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올림픽을 치름으로써, 이후 세계 규모 이벤트의 롤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키워드는 ‘올림픽 간소화’다. 조직위도 “올림픽의 규모를 어떻게 줄이는가가 지금의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제 이벤트의 새로운 롤 모델 될까


▎지난해 3월 도쿄올림픽 1년 연기가 발표된 직후 이를 대서특필한 일본 신문들. / 사진:연합뉴스
‘간소화된 올림픽’을 가능케 할 방법으로 일본 정부는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무관중 경기’ 또는 관중을 일본 내 거주자로 한정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모두 “무관중 개최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달라졌다.

먼저 IOC가 입장을 바꿨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1월 23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도쿄올림픽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오는 7월 23일 개막식을 기대하고 있다”며 “안전한 올림픽 개최가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염 대처를 위해 필요한 수단을 적절한 시기에 결정하겠다”며 “그것은 관중과도 관련이 있다. 몇 명인지, 관중을 입장시킬 수 있는지”라고 말했다.

이어 1월 28일 모리 전 위원장이“(무관중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그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시뮬레이션을 할 수가 없다”며 무관중 개최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스가 총리도 2월 2일 올림픽 관객 수용 여부와 관련해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표명해 무관중 개최가 향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일본 연구진의 추산에 따르면 무관중으로 올림픽을 치를 경우 약 2조4000억 엔(약 25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올림픽을 완전히 취소하면 약 4조5000억 엔(약 48조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무관중으로 손실을 20조원 넘게 줄이면서, “어려움 속에서 올림픽을 치러냈다”는 의미 부여도 할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계산이다.

관중과 관련한 또 하나의 대안은 일본 거주자에게만 올림픽을 관람하게 하는 방안이다. 1월 28일 일본 [닛칸스포츠]는 복수의 올림픽 관계자를 인용해 이 같은 방안이 조직위 내에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럴 경우 이미 해외에서 판매된 티켓 100만여 장에 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대신 외국에서 입국한 관람객으로 인한 바이러스 확산 등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코로나19하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향한 둘째 구상은 ‘코로나 클린 존’이다. 말 그대로 선수들이 오가는 경기장과 선수촌의 방역을 철저히 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겠단 것이다. IOC와 조직위는 참가 선수단이 지켜야 할 규범을 담은 플레이북을 만들어 2월 3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선수들은 입국 전 본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고, 입국 직후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최소 4일에 한 번은 검사해야 한다. 먹을 때와 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정된 숙소 외의 이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허된다.

경기 중인 경우를 제외하면 개인 간 거리 2m를 유지해야 하고, 선수끼리의 포옹·하이파이브·악수 등 신체 접촉도 금지된다. 올림픽이 가져올 사회 분위기 제고나 경기 부양 등의 부수효과를 포기하고, ‘스포츠 제전’으로서의 올림픽만 감당하겠단 의미다.

올림픽 전 종목이 예정대로 치러질 경우 참가 선수는 모두 1만1000여 명이다. IOC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지난겨울 동안 열린 전 세계 7000건 이상의 스포츠 경기에서 총 17만5000건의 코로나19 검사가 실시됐는데 양성률은 0.18%였다. 이 수치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도쿄올림픽 참가 선수 중 양성 판정을 받는 사람은 20명 이내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조직위의 기대다.

마지막 카드는 백신이다. 이미 전 세계 50여 개국 이상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일본도 2월 17일 첫 접종을 시작했다. IOC와 조직위는 올림픽 참가자의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을 강요하진 않지만, 올림픽 출전 선수단이 되도록 자국에서 백신을 맞고 일본으로 출발하도록 백신 접종을 장려하고 지원해달라고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협력을 요청했다.

이미 헝가리 등 일부 국가에서 올림픽 참가 선수들에게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계획대로 7월까지 전 국민 90% 백신 접종을 완료할 경우, 대규모 미국 선수단 역시 백신을 접종한 상태로 참가할 수 있다.

주최국인 일본도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올림픽 선수 및 관계자에게 우선 접종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무관중’, ‘철통 방역’, ‘백신’이라는 3중 방어막을 무기로 ‘위드(with) 코로나하의 작은 올림픽’을 치르는 것이 현재 일본 정부의 유일한 선택지다.

위원장 사임으로 악화하는 국제 여론


▎도쿄올림픽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경우 올림픽을 목표로 매진해온 국가대표 선수들의 상실감이 커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세계 평화의 문에 걸려 있는 오륜기. / 사진:연합뉴스
“전부 날아갔다.” 지난 2월 12일, 모리 위원장이 사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조직위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직위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위원장의 사임은 청천벽력. 당초 2월 7일까지였던 일본 긴급 사태 기간이 한 달 연장되면서, 중요한 올림픽 일정은 모두 3월 초로 미뤄진 상황이었다.

일단 3월 10~12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IOC 총회는 도쿄올림픽을 ‘고(go)’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사다. 올해 초부터 진행하려다 코로나19로 미룬 테스트 경기도 3월부터 시작될 예정이고 그러려면 관계자 입국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3월 25일부터는 후쿠시마(福島)에서 성화 봉송이 시작된다. 무관중 여부에 대해서도 1~2개월 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처럼 밀린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결정권을 가진 위원장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된 것이다.

시작은 2월 3일이었다. 이날 오후 열린 JOC 임시 평의원회에서는 여성 이사 비율을 40% 이상으로 올리는 사안이 논의 중이었다. 모리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최근 여성 이사 비율이 늘어난 일본럭비협회를 언급하며 “(여성이 많아지니) 회의할 때 종전보다 배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은 경쟁의식이 강해 누군가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면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발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여성 이사를 늘릴 경우 발언 시간을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회의가 좀처럼 끝나지 않아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까지 했다. 현재 JOC 이사는 총 25명인데 이 중 여성은 5명으로 20%에 머물고 있다.

사실 일본에서 나이 든 남성 정치인이 여성 폄하 발언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대체로는 초반에 비난을 받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올림픽조직위 위원장이란 직함이 일본 ‘국내용’이 아닌, 세계인이 참가하는 올림픽을 주관하는 ‘글로벌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 파악이 안 됐던 84세 모리 위원장은 다음 날연 사죄 기자회견에서 ‘꼰대의 정석’을 보여주며 일을 더 키웠다.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을 꾸짖기에 이른 것이다. 사퇴를 요구하는 질문에는 “나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헌신적으로 열심히 7년간 도와왔다. 방해된다면, 내가 대형 쓰레기인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러면 쓸어내버리면 되지 않나”라고 거꾸로 화를 냈다.

일본 언론은 물론 미국·영국 등의 외신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모리 위원장에게 ‘일본의 수치(日本の恥)’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사히신문]은 ‘모리 위원장의 사임을 요구한다’는 제목으로 낸 사설에서 “이런 뒤틀린 생각을 가진 사람 아래서 개최되는 올림픽이란 대체 무엇인가. 거금을 들여 세계에 수치를 알리는 것뿐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성화 봉송 시작하는 후쿠시마에 강진 발생


스가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의 맹우(盟友)들이 “퇴임할 사안까지는 아니다”며 모리를 감쌌지만, 일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모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약 15만 명이 참가했고, 올림픽 자원봉사자 1000여 명이 사퇴를 선언했다. 당장 성화를 들고 달려야 하는 봉송 주자들까지 “부끄럽다”며 성화를 들지 않겠다고 나서자 모리 위원장은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었다.

모리 사임으로 위원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그러잖아도 널리 퍼진 올림픽 회의론은 일본 내에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이야기가 돼버린 것 같은 분위기다. 조직위는 인선 작업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실기하고야 마는 일본 정부 조직의 특성상 언제 후임이 선출될지 예측할 수 없다. 모리의 사임 발표가 있던 날, 발표회장 앞에서는 ‘올림픽 취소’ 피켓을 든 시위대가 모여들기도 했다.

여론은 이미 더 나빠질 곳도 없다. 지난 1월 23~24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1%가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다시 연기해야 한다’고 했고, 35%는 ‘취소해야 한다’고 답해 전체의 86%가 올여름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2월 13일 밤 일본 후쿠시마현을 덮친 강진도 올림픽에 대한 희망을 꺾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리히터 규모 7.3인 이번 지진은 10년 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 지역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도쿄올림픽에 ‘동일본대지진 부흥 올림픽’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했었다. 성화 릴레이를 후쿠시마에서 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첫 경기인 소프트볼 일본 대 호주전과 6개 나라가 출전하는 올림픽 야구 경기도 후쿠시마현 아즈마 경기장에서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지진 이후 여진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예고가 나오고, 폐로 과정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소량이라고는 하지만 ‘사용 후 연료’ 수조에 담긴 방사성 물이 넘친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시마의 안전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쯤 되면 일본 정계의 ‘망언 제조기’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예언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해 3월 일본 국회에서 “올림픽은 40년마다 문제가 생겨왔다”며 도쿄올림픽을 “저주받은 올림픽”이라고 말해 절친인 아베 당시 총리까지 당황하게 만든 바 있다. 1940년 삿포로(札幌) 겨울올림픽이 전쟁으로 취소됐고, 1980년 모스크바 대회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서방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반쪽짜리로 치러진 것을 예로 들면서 한 말이었다.

7월에 예정대로 올림픽의 막이 오른다면, 가장 험한 난관을 뚫고 열린 올림픽으로 인류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저주를 풀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 이영희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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