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도쿄 리포트] 한·일관계 복원 관심 없는 스가 정권의 급소 

文정부, 일본과 통하려면 미국부터 찾아가라 

스가 취임 후 코로나19 방역 등 내정 문제에 천착, 한·중·일 정상회담도 불참
강제징용 처리 놓고 한국에 대한 불신 깔려, 바이든 시대 맞아 외교전략 재편


▎2019년 4월 1일 일본은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했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요시히데는 2020년 아베 신조를 계승해 레이와 시대의 총리가 됐다. / 사진:AP연합뉴스
12월의 어느 날, 도쿄 나가타쵸의 국회의사당 옆에 있는 중의원 제1의원회관 12층 12호실의 아베 신조 사무실을 옛 친구가 찾아왔다. 마스크를 쓴 아베 전 총리는 반갑게 손님을 맞으며 입을 열자마자, 먼저 이렇게 운을 뗐다. “그나저나 바이든이 승리해서 스가 짱한테 정말 다행이야. 만일 트럼프가 재선됐다면 큰일 날 뻔했어. 왜냐하면 스가 짱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일 정상회담을 해도, 회담의 반은 트럼프 대통령이 늘어놓는 나와의 추억담을 듣는 데 시간을 쓰게 될 테니 말이야.” 7년 8개월이나 총리와 관방장관으로 콤비를 이뤄온 덕분에 아베 전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잘 알고 있다. 스가 짱은 아베 전 총리가 스가 총리를 부르는 애칭이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스가의 도움으로 출마했을 때부터 이렇게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밀월관계는 유명했다. 트럼프는 많을 때는 1주일에 세 번씩 아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세계적으로 미움받을 일이 더 많았던 트럼프에게, 아베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세상에 단 두 명뿐인 친구였을지 모른다. 그 덕분에 아베 외교는 윤택해졌다. 다른 나라와의 정상회담이나 다자회의장에서 아베 총리는 외국 정상들에게 수많은 청탁성 요청을 들었다. 예를 들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할 때, 꼭 우리나라의 ○○문제를 전해주세요”라는 식이다. 외교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요청을 받을 때 “좋습니다. 그 대신 귀국은 일본의 ○○안건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주세요”라는 식으로 상대국에 부탁할 수 있었다. 미·일 정상 간의 밀월이 ‘트럼프 하청 외교’라 할 만한 특이한 외교를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베 총리는 없고, 트럼프 대통령도 곧 백악관을 떠난다.

日 외교에 드리운 아베의 영향력


▎2020년 9월 21일 스가 요시히데(오른쪽) 신임 총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가 옛 친구에게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자. “스가 짱은 총리가 된 뒤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여러 가지 보고와 상담을 해. 특히 외교에 대해서는 지금도 내 조언을 듣고 싶은 것 같아.” 아베의 오랜 친구는 이 말을 듣고 나에게 소감을 전했다. “아베 씨는 직접 말하지 않지만 스가 총리가 내정에만 관심을 쏟고 외교에는 관심이 없다고 쓴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스가 정부가 당면한 정책은 코로나19 방역대책, 관청의 도장 축소 문제, 휴대전화 가격 인하, 불임 치료의 보험 적용 등 모두 내정 문제가 아닌가. 아베 1차 정권(2006~2007년)은 자유와 번영의 호(일본부터 유럽에 이르는 자유민주 진영의 연계를 목표로 한 외교정책), 2차 아베 정권(2012~2020년)은 지구본 외교(일본의 아군을 늘려가는 외교정책)로 스케일이 큰 외교를 선호했다. 그런 자신의 정권과 비교하면 스가 정권은 스케일이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가 총리는 외교에 관심이 없다.” 스가 정권이 출범한지 3개월이 지났지만, 이 말이 나가타쵸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스가 정권의 한국 외교에 대해 내가 떠올리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베 2차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3년의 일이다. 오바마 정권에 정통한 저명한 미국인 정치학자가 방일했다. 그의 부인과 나는 오랜 지인이었기에 나는 이들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정통 가이세키 요리를 대접했다. 당시 나의 관심은 ‘아베 신임 총리를 오바마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음, 글쎄…”라고 얼버무렸다. 그는 일본 술을 잔뜩 마셨고 취기가 돈 탓에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마침내 그는 술김에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버락 오바마라고 하는 사람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내성적인 사람으로, 애초 해외에 대해서 흥미가 없다. 아마 오바마의 뇌리에는 내정이 90%이고, 외교는 10% 정도 아닐까 생각한다.”

외교라고 해도 EU, 중국, 러시아, 중동이 있다. 일본이 아무리 아시아 동맹국이라 해도 미국의 외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하로부터 “일본의 총리가 교체됐습니다”라는 보고를 받고 “아, 그런가?”로 끝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놀랐지만, 곧 수긍이 갔다. 일본인들은 항상 일본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섬나라의 나쁜 버릇이 있지만, 미국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가 총리가 한국 방문을 꺼리는 속사정

아마 현재 스가의 심경은 2013년의 오바마 대통령과 같을 것이다. 내정 90%, 외교가 10%. 그 외교 중에서도 동맹국인 미국이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일본인 납치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이 각각 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 25% 정도를 다른 국가들이 차지한다. 그렇다면 내정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5% 정도가 아닐까.

즉 한국은 스가 총리의 관심 범위 밖이라는 것이다. 스가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공감을 느꼈다면 12월 서울에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에 ‘가지 않겠다’는 등의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주변 사정을 총리 관저 관계자에게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 오키나와 문제를 제외하곤 거의 외교 문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단 한 번 유일하게 외교문제에 관여한 것이 2015년 12월의 한·일 위안부 합의였다. 그 합의는 겉으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외무상이 방한해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도쿄 총리 관저와 서울 청와대의 핫라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하면 스가 관방장관, 야치 쇼타로 내각 안보국장과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서 문제를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이를 사실상 폐기했을 뿐만 아니라 이병기씨를 체포해 형무소에 가뒀다. 이 건만으로 스가 총리의 내심에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신감이 상당히 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징용공(徵用工, 강제 징용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가 한·일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총리 관저 관계자의 말이다. “12월 9일 일본제철의 한국 자산 매각(현금화) 명령 절차의 심문서 공시 전달 효력 시작을 스가 총리에게 보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법원은 피해자 배상을 위한 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스가 총리가 두려워한 것은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하는 동안, 일본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을 당한다면 스가 내각은 한 방에 무너진다. 유도에서 말하는 ‘한판패’다. 게다가 외무성은 스가 총리에게 ‘가능성은 낮지만, 제로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고 진언했다. 신중하기로 잘 알려진 스가 총리가 그런 지뢰가 묻힌 곳에 어떻게 자기 발로 찾아가겠나?”

외무성 관계자에게도 한·일 관계에 대해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은 대동소이했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12월 들어 스가 총리는 도미타 고지 주한대사를 차기 주미대사로 충원할 결심을 굳혔다. 도미타 대사가 과거 주미공사와 북미국장을 지냈으며 바이든 정권의 핵심과 줄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게 외무성 내 전언이다. 세계에서 가장 (일본에) 가혹한 주한 대사를 지낸 데 대한 논공행상이라는 것이다. 도미타 대사는 주한대사로 부임할 때 두 번이나 고사했지만 결국 세 번째에 마지못해 승낙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주한대사는 이제 일본 외무성에서 가장 인기 없는 자리가 됐다. 도미타 주한대사의 주미대사 발령에는 ‘반일 정권의 최전선에서 잘 버텨줬다’는 감사의 뜻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증언에서 짐작하듯 스가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바로 개선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스가 정권이 한·일 관계에 팔을 걷어붙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강력한 촉구를 받았을 때일 것이다. 한국 측이 조기에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워싱턴을 경유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일본의 ‘바이든 인맥’ 만들기

돌이켜보면 2013년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오바마 정권이 개입하면서 서로 악수를 나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은 12월 현재 코로나 3차 대유행을 맞고 있으며, 스가 정권은 방역 대책으로 분주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냈다. 기본적으로 바이든 외교는 오바마 외교를 계승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일본 외무성은 보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미국 대통령 선거 전부터 세 명의 중요 인물을 겨냥해 파이프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① 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국무장관 내정자

1962년 4월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 소년기에 파리로 이주해 하버드대학을 졸업. 컬럼비아대에서 법학박사 취득. 1994년부터 클린턴 정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멤버. 2002년부터 상원 외교위원회 스태프 디렉터. 2009~2013년 오바마 대통령 부보좌관 및 바이든 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 역임. 2014~2017년 국무부 부장관.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는 CNN 외교 분석가 등을 역임.

②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1976년 11월 버몬드주 벌링턴에서 미네소타대 교수의 아들로 출생. 예일대 국제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석사학위, 예일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2009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부주석 보좌관으로 장관과 함께 112개국 순방.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의 수석외교정책 고문을 역임.

③ 애브릴 헤인스(Avril Haines) 차기 국가정보국 장관

1969년 8월 뉴욕에서 뉴욕시립대 교수의 딸로 출생. 고교 졸업 후 도쿄의 코도칸(일본 유도의 총본산지)에서 1년간 유학하며 유도와 가라테를 연마. 시카고대학 물리학부 졸업. 2001년에 조지타운대학에서 법학박사 취득. 2003년부터 국무부 법률고문, 2007년부터 상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 고문, 2008년부터 국무부 법률고문, 2010년부터 백악관 고문, 2013년부터 CIA(미 중앙정보국) 부장관, 트럼프 행정부 때 컬럼비아대학 선임연구원 역임.

일본 외무성의 간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일본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결코 친중파는 아니다. 이들이 바이든 외교의 핵심을 담당하는 한, 미국은 결코 친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2021년 1월 20일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베이징 외교 관계자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마디로 지난 4년간 미국의 아마추어 정권이 이제는 프로 정권으로 바뀐다는 인상이다. 즉 중국에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권 이상으로 힘겨운 협상 상대가 될 것으로 각오하고 있다.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일 때 시진핑(당시 부주석)과 서로 왕래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된 지금은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바이든 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중국 외교관은 바이든 정권에서 중국 포위망이 어느 때보다 촘촘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두 개의 키워드’를 들었다. “첫째, ‘동맹 중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일방주의였기 때문에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파리협정(지구기후변화협정), 이란 핵 합의 등 국제협정에서 속속 이탈했다. 이는 자유무역과 국제협정을 중시하는 중국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높였다. 또 EU와의 균열도 심화시켰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기능은 저하됐다. 중국이 진행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육상 루트도 해상 루트도 모두 유럽이 골인 지점이기 때문에, 트럼프 시대 미국과 유럽의 분단은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바이든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미국과 유럽의 재결속이 도모되면서 중국 포위망은 강해질 것이다. 둘째 키워드는 ‘인권’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인권 문제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는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홍콩 등에 관해 중국을 비판할 것이다. 이 부분도 크게 경계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다만 이번 대통령은 78세 노인으로 늙은 패권국 미국을 상징하는 것 같다. 21세기 지구상에서 미국식 자본주의가 이길지, 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가 이길지는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이 부분은 흥미로운 지적이므로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런 농담을 들려줬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데드히트를 벌이는 와중에 중국과학원의 천재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발명했다. 미국 정세에 정이 없는 시진핑 주석은 즉각 과학자를 불러 명령했다. ‘승리하는 쪽이 트럼프인지, 바이든인지 바로 보고 와라!’ 며칠 뒤 그 과학자가 중난하이(고위 간부들의 주거지)에 보고하러 왔다. ‘시 주석, 사실 타임머신 바늘을 한 달 뒤가 아니라 10년 뒤로 맞춰버렸어요. 그랬더니 태평양 건너편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주의 나라가 생겨났더군요!’”

여기서 중국 외교 관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21세기 인류에게 사회주의 시스템은 자본주의 시스템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20세기 말 소련이 붕괴한 시점에 동서 냉전은 자본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는 21세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발전했다. 다섯 가지 순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첫째, 1992년 덩샤오핑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경제 분야만 시장화시키는 독특한 시스템을 채택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둘째,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글로벌리즘의 물결을 타고 무역을 신장했다. 셋째,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 때 5개년 계획을 착실히 실행하며 장기 정권의 강점을 보였다. 넷째, 2010년대의 시진핑 정권은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 14억 명의 빅데이터를 자유롭게 취할 수 있는 강점을 발휘했다. 다섯째,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스피드와 강제력’으로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반면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은 코로나 감염자가 1300만 명, 사망자가 25만 명을 넘고 있다. 대선은 미국 전역에서 대 혼란으로 얼룩졌고, 자본주의의 원점인 민주 선거의 결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로 두 번의 대선에서 크게 선전한 버니 샌더스는 미국을 사회주의국으로 바꾸는 듯한 지론을 폈다.

즉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미·중 신냉전은 이제 막 개시된 상태라는 게 중국의 각오다.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애독서인 마오쩌둥 주석의 [지구전론]을 공산당 간부의 필독서로 지정했다. 20세기 전반 중·일전쟁을 지구전으로 승리했다고 선전하고 있듯이, 21세기 전반 미국과의 신냉전도 지구전으로 승리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권력공백 파고드는 중국


▎2012년 2월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LA에서 만났다. 이제 바이든은 대통령 신분으로 시진핑과 마주한다.
2020년 11월 3일 미국 대선부터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신임 대통령 취임까지 2개월 반 동안 미국 외교는 사실상 스톱에 가까운 상태다. 그 사이 중국은 아시아에 외교 공세를 펼치려 한다. 먼저 손을 댄 곳은 홍콩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1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입법회(홍콩의회) 의원들이 홍콩 독립을 주장하거나 외세의 홍콩 개입을 요청하고 국가 안전에 위해를 가하거나 홍콩기본법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즉각 의원 자격을 상실한다고 결의했다’면서 이에 발맞춰 홍콩특별행정부의 캐리 람 장관은 민주파 의원 4명이 자격을 상실했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국은 2020년 6월 홍콩 국가안전유지법을 규정한데 이어 또 한 걸음 일국일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다음 날인 12일, 15명의 민주파 의원들이 입법회에 항의 사직서를 냈다. 이에 따라 원래 의석수 70석의 홍콩 입법회는 결원 등을 빼면 건제파(친중파) 41명, 민주파 불과 2명이 됐다.

중국은 경제에서도 공세에 나섰다. 11월 15일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조인식이 온라인 형식으로 개최됐다. 한국, 일본, 중국,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여기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더한 15개국의 광역 자유무역권이다. 역내 인구 23억 명으로 EU나 USMCA(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큰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 시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조인식 닷새 뒤 이번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가하겠다”고 밝혀 일본과 미국 등을 깜짝 놀라게 했다. TPP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지역 12개국에 의한 자유무역협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의사로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에서 2018년 3월 체결됐다. 그 빈자리를 중국이 차지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시 주석은 온라인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스가 총리 등의 면전에서 이를 발표했다. 중국이 TPP 가입을 희망하면 바이든 정권도 복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이 같은 TPP의 골조에 들어가면 경제·무역 면에서 ‘미·중 디커플링’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은 그 다음 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일본과 한국에 파견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조금이라도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자는 계산이다.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가장 경계감을 갖는 쪽이, 대만의 차이잉원 정권이다. 대만의 여당·민진당 관계자에게 바이든 신정권에 대해서 물었는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차이잉원 정권과 트럼프 행정부는 1979년 중화민국(대만)이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 이래 가장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왔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더 재임한다면 그 임기 중에 차이잉원 총통과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미·대만 정상회담을 열거나, 미·대만 간 재수교 혹은 대만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까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대만과 미국 민주당과의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민주와 인권을 중시하는 이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통적인 이념 외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새로운 대미 관계를 구축해나가겠다.” 트럼프 쇼크를 겪고 있는 또 다른 곳은 북한일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 세 차례나 면담한 것을 자랑하며 대선 직전 트럼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는 위문전보까지 보냈다. 그런 만큼 트럼프의 패배에 실망하지 않았을까.

北, 또 무시전략에 걸려들까


▎2020년 11월 15일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화상회의로 진행된 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모니터에 나타난 스가 요시히데(서 있는 이) 일본 총리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은 2021년 1월 제8차 조선노동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아마도 2기 트럼프 정권 출범을 예측하고, 이 시기에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의 공동성명 정신으로 돌아가 미국과의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사람은 TV 토론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악당이라고 지칭한 바이든이었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였다. 간단히 말하면 무시전략이다. 국제 제재 속에서 고립된 북한으로선 미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도 곤란하지만, 무시당하는 것은 더욱 곤란할 것이다. 바이든 신정부가 동아시아에 새 시대를 가져올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는 오리무중의 2021년을 맞이하게 된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2101호 (2020.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