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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포엠] 초록의 서사 

 

김지헌

▎도봉산 등산로 옆 바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작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 사진:박종근 비주얼에디터
벚나무 한 생을 다 써버리는 동안
범람하던 이념의 한 시대도 갔다
혁명처럼 화르르 쏟아지던 꽃 무덤만 덩그러니 남았다

붉은 산철쭉 숨 가쁘게 진격해오던
그 해 오월의 서슬에
살점 떨어져 나가도록 처절했던 한 시대도 물러갔다

인적 드문 산길 바윗돌로 구르다
어느 별빛 쏟아지던 봄 밤
자드락 길 사뿐히 밟고 오시는 이
온통 초록 옷 갈아입고 마중 오는 이여

우리들 푸른 서사는 이제부터다

먼 시간 달려오느라 모나고 생채기 난 바윗돌 하나,
그 위에 살포시 말씀 하나 얹는다

※ 김지헌 - 1956년 충남 강경 출생. 수도여자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회중시계]와 [배롱나무 사원], [심장을 가졌다] 등이 있으며, ‘미네르바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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