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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사태와 한반도] ‘중동 거리두기’ 미국의 노림수와 중국의 대응 

인도가 태도 바꾸면 중국, 미국 견제 위협에 노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및 ‘쿼드’ 집중에 중국 노심초사
한국 지정학적 전략 가치 높아져, 국익 증대할 기회로 삼아야


▎미국이 아프간에서 전격 철수함에 따라 그 후폭풍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10월 중국의 국경 경비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에 위치한 ‘와칸 회랑’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접경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2021년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전 세계로 타전된 외신의 미군 철수 장면은 끔찍했다.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던 카불 비행장의 무질서한 상황, 이륙하던 미군 수송기에 매달려서라도 탈출을 간절히 원했던 이들의 절규, 끝내 비행기에서 두 명이 떨어지는 장면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세계로 전파됐다.

반나절 사이 일어난 카불의 혼란은 1974년 당시 미군의 사이공 탈출 악몽을 다시 소환했다. 그리고 세계는 그때와 유사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미군 철수로 생겨난 권력 공백은 누구의 몫인가. 강대국들에는 어떠한 전략적 의미가 있을까. 미국의 전략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미국은 1947년 ‘트루먼 독트린’ 발표와 함께 이른바 ‘세계 경찰’ 역할을 자청했다. 그러나 이후 치른 전쟁의 결과는 ‘불명예스러운 퇴진’의 연속이었다. 일방적인 미군의 승리로 종결된 1990년의 걸프전과 2003년의 이라크전쟁은 예외였다. 그러나 1950년의 6·25전쟁, 1960년대의 베트남전쟁과 2002년의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 전쟁사에서 미국에 오명을 남겼다. 미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미국의 자존심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반인륜적인 선택을 해서라도 이 같은 결과는 피해야만 했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시 미국은 두 개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동맹군과 함께했기 때문에 승리의 부담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선에서는 거의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도 전쟁은 순조로웠다. 미국은 호주에서부터 인도차이나반도·말레이반도·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일본 오키나와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래서 일본 본토 점령도 무난해 보였다.

그러나 일본 본토에는 약 400만 병력이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일본 본토가 함락돼도 종전이 아니었다. 중국 대륙에서 일본과의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에는 일본군 100만 명 이상이 주둔하고 있었다. 유럽 전쟁은 1945년 5월에 끝났지만, 태평양전쟁은 최소한 1년 이상 더 치러야 한다는 것이 당시 미군 측의 계산이었다. 전쟁 피로감에 지친 미국은 태평양전쟁의 조속한 종전을 원했다. 그래서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얻을 것 없는 장기전은 무의미하다”는 미국의 신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20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전쟁의 종전을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UPI 연합뉴스
6·25전쟁에서도 중국의 참전으로 원자폭탄 투하가 건의됐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참상을 목도한 미국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베트남에서 약 15년 이상,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외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국이 전쟁을 서둘러 마무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철저한 전략적 계산에서 단행됐는가. 정녕 미국은 더 큰 전략적 이익을 위해 이들 국가와 국민을 희생시켰는가. 그렇다면 미국은 더 큰 무엇을 얻었는가. 미국이 철수하면서 그렸던 새로운 ‘장기판’은 무엇이었나. 철수한 지역에 권력 공백을 창출한 미국은 순수히 떠났는가, 아니면 덫을 놓았는가, 함정을 파놨는가.

미국이 이들 전쟁에서 철수한 공식적인 이유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더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이든도 철수를 결정한 전 대통령의 이유를 재인용했다. 이들은 자기 자식들, 또 손자들을 반인륜적인 전쟁에 더는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절박한 심정으로 자국민과 세계를 설득하려 했다. 이런 호소에 동정하지 않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이들에게 전장에 남아 있는 현지인들의 생명과 미래는 뒷전이었다. 남겨진 이들에게 가혹한 삶이 따를 것이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애당초 참전한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들 나라와 국민을 인권, 자유와 민주주의를 침략하는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명분에도 적군에 전쟁의 ‘승리’를 안김으로써 남겨진 나라 국민의 희생은 자명해졌다. 실제 미군의 아프간 철수 이후 세계는 아프간 국민의 고초를 거의 실시간으로 묵도하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이유는 역시 간단했다. 더 이상의 소모전을 트럼프 대통령은 원하지 않았다. 미국이 얻을 게 없는 장기전은 낭비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트럼프의 결단에는 그의 경제적 소신이 결정적이었다. 그에게 외교·국방·동맹, 미국의 가치 수호는 무의미했다. 오직 가시적인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만이 유의미했다.

그가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미국의 외교는 철저한 손익 계산에 따라 진행됐다. 그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이 외국에 투입되면서 미국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들을 혐오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 미국이 해결하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외교 현안들을 조속히 마무리하려 했다. 기대할 이익이 없는 수치와 모멸감, 자존심과 명예는 트럼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를 위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대선 유세 기간에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북한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의사도 서슴없이 표현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트럼프는 자기 외교 구상을 즉각 실천했다. 2017년에 취임한 그가 만난 첫 해외 인사는 중국의 시진핑이었다. 중국은 트럼프가 ‘전략적 경쟁자’로 이미 점 찍어놨었다. 이런 그의 인식이 이듬해 백악관이 발간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그리고 그는 그해 6월에 북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 이듬해에도 김정은을 다시 만났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신념은 오래되었다. 그는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던 1999년부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자와 만나면 쉽게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왜 만나지 않느냐”며 공개적으로 미 대통령을 질타했다.

‘와칸 회랑’ 통해 신장에 탈레반 영향력 침투할까


▎2020년 8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서부의 허톈시 재래시장 입구 보안검사대 뒤의 대형 전광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동정 뉴스가 상영되고 있다. / 사진:AP 연합뉴스
트럼프의 외교 장부에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의 종결도 포함됐다. 그리고 이를 2019년부터 신속히 추진했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방에서 일어난 일]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해 9월 탈레반 지도자들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해서 협상하려 했다가 참모들의 만류에 취소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2020년 2월 29일 탈레반과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계획을 확정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으나, 바이든 신임 대통령도 전임자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계획을 계승했다. 단, 올해 5월에 철수하기로 한 계획을 8월로 연기했다. 철수 일이 다가오자 아프가니스탄의 가니 대통령이 먼저 탈출해 아랍에미리트로 망명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제 살길을 찾아 떠나는 상황에서 정부군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급이 점차 중단되자 여유롭게만 느껴지던 미군 철수 일정도 촉박해졌다. 한 달 계획이 주별로, 주별로 생각했던 것이 일별 계획으로 단축됐다. 미군의 철수 작전이 졸속으로 이뤄진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이 전쟁에서 철수하면서 전쟁 지역에 권력 공백을 방치하고 떠난 곳은 인도차이나뿐이었다. 한반도는 전쟁 이후 분단 상태로 남으면서 거의 전쟁 이전으로 원상복구(?)가 됐다. 태평양전쟁과 두 차례 이라크전은 모두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아프간전쟁은 미군의 철수로 이 일대에 권력 공백이 생겨났다. 이 공백을 앞으로 중국이 채울 공산이 크다는 게 국제정치학계의 전반적인 예측이다.

그 이유로는 아프간이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데다 인도와의 전략적 경쟁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은 극단 이슬람주의 기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중국 신장 위구르족의 분리운동을 지원하는 세력 중 하나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과 신장을 이어주는 92㎞의 ‘와칸 회랑(回廊)’을 통해 탈레반의 영향력이 침투할 수 있다.

서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전략 관점에서 보면 인도는 중국의 진출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인도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은 인도와 갈등이 있는 파키스탄과 우호적이다. 그리고 파키스탄과 중국은 인도를 견제해야 하는 일치된 이익을 공유한다. 따라서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향력을 증강하고, 미국이 남긴 권력 공백을 채워야 하는 유혹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미국이 모르고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에 넘기면서 철수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전략적으로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중국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 국제정치학계의 중론이다.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에 넘기면서 이들이 중국 신장 위구르족의 분리주의를 고양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을 기대하는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신장 위구르족의 분리주의가 기승을 부려서 미국이 획득할 수 있는 전략이익을 설명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물론 신장 위구르족과 중국 당국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면 그 파급효과는 크다. 중국 사회에 불안을 조장함으로써 중국의 관심을 서부로 분산시킬 수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은 중국 동남부에서 펼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QUAD)’ 등과 같은 대중국 견제 전략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만든 권력 공백이 미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장기판을 설명하는 데 역부족이다. 아프가니스탄 지역만 놓고 보기 때문이다. 현실은 미국의 노림수가 아프가니스탄의 주변 지역인 서남아시아에 있지 않다. 대신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에 집중할 것


▎2021년 3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왼쪽부터)이 백악관에서 쿼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화면 왼쪽부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 사진:AFP 연합뉴스
과거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철수하면서 인도차이나반도에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 당시 중국과 소련 간의 갈등이 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이에 불안을 느낀 중국이 소련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 관계, 즉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게 했다. 중국과의 데탕트로 중국의 힘을 빌려 미국은 북베트남과 베트남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을 1972년 파리에서 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북베트남은 중·소 갈등을 이용해 중국 대신 소련에 의존하게 됐다.

결국 미국이 떠난 자리는 소련으로 채워졌다. 그 결과 중국은 몽골에 이어 베트남에 진군한 소련의 위협에 놓이게 됐다. 두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감당해내야만 했다. 베트남을 떠난 미국은 소련과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냉전 시대의 데탕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를 주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소련을 동시에 방문한 첫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힘의 경쟁은 소련과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중국은 이제 동남 지역(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이에 대응해야 하는 동시 아프가니스탄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미국이 떠난 자리를 인도가 대신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인도의 소극적인 태도가 전환되길 희망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도는 중국을 의식해 이 전략에 군사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유보적이었다.

그러나 인도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중국이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합심할 경우를 대비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인도가 태도를 바꾸면 중국은 또다시 아프가니스탄 지역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견제 위협에 노출될 듯하다.

물론 미·중 관계 정상화로 미국도 전략적 손실을 감내해야만 했다. 미국은 대만과의 단교 및 동맹 포기, 대만에서의 미군 철수 등 높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대만에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엄중 경고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미국이 중국 때문에 포기해야 할 전략자산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은 미국이 베트남전쟁과 소련의 팽창주의 등으로 수세에 몰렸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이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의 레버리지(지렛대)로 이용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미국의 손익계산은 달랐다. 베트남과 대만을 상실하는 대신 소련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더 큰 대어를 낚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전략적 구상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또다시 재현될 것이다. 인도라는 대어를 낚기 위한 포석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또다시 두 개 지역에서 안보 위협에 노출될 것이다.

중국이 탈레반 적극 지원 못하는 진짜 이유


미국의 ‘새로운 장기판’은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기반으로 할 것이다. 인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탈레반과 신장 위구르족을 통해 중국의 불안을 조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을 앞세운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를 통해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은 인도와 일본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명분으로 더 많은 군사적·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이들의 무기와 군비 구매를 부추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군의 지역 내 전략적 유연성 확보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인도에 군사기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미군기지의 분담 비용을 더 많이 전가하려 할 것이다. 일본은 그 대가로 일본 자위대의 활동 영역과 지리적 범위의 확대를 위해 미·일 방위 가이드라인의 수정을 2015년에 이어 또다시 요구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에서 일본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새로이 짜이는 ‘장기판’에서 중국은 탈레반 정권의 포석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이 중국 신장 접경 지역의 안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이미 탈레반 정권에 3100만 달러(약 360억원)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지원했던 금액에 비할 수 없는 적은 금액이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탈레반이 신장 위구르족의 분리주의에 대한 지원을 단절하겠다는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7월에 이어 9월에 아프가니스탄 인접국 1차 외교부 장관회의에서 탈레반에 이런 전제조건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중국은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 탈레반을 도우려니 신장 지역의 안보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미국이 2020년 11월 7일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 ETIM)을 테러집단 명단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ETIM은 신장 위구르족 출신 청년들이 1990년에 신장을 ‘동투르키스탄’으로 분리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이자 ‘분리주의’ 운동 단체다. 이들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해제됐다는 의미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함께 이 단체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해왔다.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신장·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 중국의 접경지역이다.

둘째, 8월 30일 미국 민주수호재단(The Foundation for the Defense of Democracies)의 보고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의 안보수석이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으로 귀환했기 때문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ISI(이라크이슬람국가) 강경파 약 2000명이 활동하고 있어 이들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자연스럽게 증가됐다.

셋째, 탈레반과 중국의 신뢰 문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7월 톈진에서 개최한 탈레반 고위 인사와의 회담에서 탈레반의 포용적인 정부 설립을 기대하면서 ETIM과의 관계 단절을 촉구했다. ETIM 역시 지하드 단체이기 때문에 이들과 ‘형제’ 격인 탈레반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경제 이익을 위한 ETIM과의 관계 단절은 자칫 지역 내에서 이들과의 내전을 야기할 수 있고, 탈레반의 정당성 상실을 의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신장 ‘난민’ 2000명의 처리 문제다. 중국이 경제 지원 대가로 이들의 송환을 탈레반에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27일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탄압 정책을 ‘대학살(genocide)’로 정의한 만큼 이들의 송환은 중국의 인권문제 가중을 의미할 것이다.

국익·주권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지 제시해야


▎지난 7월 중국 톈진에서 회동한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과 바라다르 탈레반 부지도자. / 사진:중국 외교부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왕이 부장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8월 17일에 통화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정국의 안정과 연착륙을 위한 미국의 협조를 촉구했다. 미국의 협력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중국의 셈법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가령, 파키스탄이 탈레반·중국과 연대해 인도를 압박할 구상을 개진할 경우, 인도의 대응 방향을 심각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가 독자적인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인도-태평양’ 전략에 더욱 의존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일본 등을 대동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탈레반-중국-파키스탄 연대의 대항마로 내세울 수 있다.

외교는 생물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외교 또한 변해야 한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처한 위치를 시급히 파악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우리의 지리적 위치는 불변하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에서 파생되는 지정학적 전략 가치는 가변적이다. 특히 국제 정세에 따라 지정학적 가치는 변한다. 미군 철수로 이어진 권력 공백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는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냉전 시기에 상한가를 치던 전략적 가치가 탈냉전 시기가 시작되면서 하락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를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열린 미·중 전략 경쟁 시기로 우리의 전략적 가치에 반등이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이를 중심으로 배수의 진을 치면서 중국의 최후 방어선이라고 알려진 제1도련선(島鏈線,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중국의 해상 방어선) 중심부에 우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른 동맹국이나 우방국은 모두 역외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 중국의 최후 방어지역 내의 중심부에 위치한 우리나라와 한·미 동맹 및 주한미군 기지는 최고의 전략적 군사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우리의 지정학적 전략 가치는 우리 국익 증대를 위한 전략적 기회다. 시대적 조류의 변화에 우리의 외교 전략 사고의 기본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선택의 압박과 강요를 받는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지정학적 전략 가치가 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로 우리 외교가 임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들에게 우리의 국익과 주권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국익, 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정체성을 주도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서다.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와 같은 다자협력체에서 우리의 적극적인 역할을 위해서는 충족시켜야 할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이는 참여국과의 양자 관계를 우선적으로 개선·발전시키는 것이다. 양자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다자협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에서 ‘독 안에 든 쥐’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 외교는 이런 불행한 상황을 모면해야 하는 분기점에 이미 와 있다.

-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jwc@khu.ac.kr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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