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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이슈] 암호화폐 겨울 부른 ‘루나 사태’의 전말 

리먼 브러더스 날려버린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복사판 

완급 조절에 실패하며 ‘죽음의 소용돌이’ 빠져들어
스테이블코인 가치는 안정적이란 헛된 믿음 깨져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USD (UST)의 폭락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약세장이 지속했던 지난 5월 18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루나 차트가 띄워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권도형(31·테라폼랩스 대표)이 성공한 암호화폐 사업가로 언론에 도배되고 있을 바로 그때. 안타깝게도 2022년 3월 즈음에 그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테라-루나 동반 폭락) 초입에 발을 디뎠다. 언론은 권도형의 ‘100억 달러 비트코인 매입’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가 100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매입하려는 이유가 테라의 가격 방어 때문이라는 것은 간과했다.

테라는 스테이블코인이다. 달러(USD)에 연동된 테라를 UST라 부른다. 원화(KRW)와 유로(EUR)에 연동된 것을 각각 KRT와 EUT 등으로 부르는 게 이 동네의 관행이다. 1 UST는 1달러에 연동되어 있다. 전문적인 용어로 1 UST가 1달러에 페깅(pegging, 코인의 가격을 법정화폐와 연동하는 것)되어 있다. 둘의 가치가 같다는 의미이다.

원래 1 UST의 가격이 1달러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전통금융에서 쓰이는 공개시장조작(open market operation)이다. UST가 넘치면 1 UST가 1달러보다 싸다. 이때 넘치는 UST를 회수하여 1달러로 만들어야 한다. 시장에서 UST를 회수하고 대신 루나를 발행하면 된다. 1 UST가 1달러보다 비싼 것은 시장에 UST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 시장에 UST를 공급하고 대신 루나를 회수하여 가격을 내린다. 이게 공개시장조작이고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거나 매각하면서 통화량을 조절할 때 쓴다. 공개시장조작은 이론상 완벽하고 이미 검증된 방법이다.

문제는 루나와 테라의 가격이 동반하락하게 될 때이다. 이때 죽음의 소용돌이 현상이 발생한다. 공개시장조작이 잘 작동하려면 루나 가격이 상승하거나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루나의 가격이 내려가더니 심지어 루나의 시가총액이 테라의 시가총액에 역전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테라의 가격 방어가 불가능해졌고 가치가 폭락했다. 권도형이 비트코인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은 루나로 테라의 가격을 방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추락하기 시작할 때 언론은 그의 비트코인 다량 보유자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그가 폰지 사기범일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다.

달러를 담보로 만들어진 USDT(테더)와 USDC가 시가총액 기준으로 스테이블코인 중 1위와 2위, 담보 없는 UST(테라)가 3위를 차지했었다. USDT와 USDC는 암호화폐 전체를 망라해도 3등과 4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 중에서는 바이낸스USD가 8위, 다이(DAI)가 14위에 올라 있다. 한때 암호화폐 세계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고 시가총액이 무려 58조 원에 달했던 테라와 루나가 폭삭 망했으니 세상의 이목이 권도형에게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촉망받는 총아에서 갑자기 문제아로 전락했다. 그는 수사 대상이 되었고 잠적해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코인 또 발행?


▎지난해 10월 ‘야후파이낸스’에 출연해 테라-루나에 대해 설명 중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모습. / 사진:유튜브 야후파이낸스 캡처
2022년 4월 5일, 루나는 119달러를 돌파했으나 지금은 0.001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장에 6조 개가 넘는 루나가 풀렸다. 루나가 지천이었다. 여기서 그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죽어가는 루나와 테라를 사석으로 삼아 ‘루나 2’를 출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전의 루나는 ‘루나 클래식’이라 부르고, 새 루나는 그냥 루나라 부르니 혼란스러워 여기서는 새 루나를 루나 2로 부르기로 하자.

루나 2는 총 10억 개가 발행될 예정이고 시장에 2억 개 정도가 풀렸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사과 한마디 없이 염치 불구하고 코인을 또 발행하는 게 맞느냐는 비난이 넘쳤다. 루나 2는 코인마켓캡 기준으로 거래소에서 17.8달러에 거래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루나 2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인 달러를 담보로 하는 테더(Tether)가 효시이고, 암호화폐를 담보로 하는 DAI가 있다. 즉, 법정화폐 담보형과 암호화폐 담보형 두 종류가 있었다. ‘패한 장수는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실패한 권도형을 향해 각종 매체에서는 적대적이며 공격적 언사를 쏟아냈다. “그에게는 애초부터 기술이 없었다”는 식이다.

테라-루나가 10위 안에 드는 코인의 반열에 올랐는데 맹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풍성한 테라의 생태계를 돌아보면 그가 이루려고 했던 꿈이 허황된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생태계의 유동성 풀인 앵커프로토콜에서 심각한 문제가 터진 것이다.

완급 조절에 실패한 권도형의 오판


▎법무법인 LKB(엘케이비) 앤파트너스 변호사들이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검찰 민원실로 향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현권, 김종복, 신재연 변호사. / 사진:연합뉴스
누구나 앵커에 테라를 맡기면 연리 20%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은행에 예금을 하면 3.5% 금리가 우대금리인 작금의 현실에서 20% 이자라니. 은행에서 5% 이자로 대출을 받아 앵커의 유동성 풀에 예치하면 20% 이자를 받으니 그래도 15% 이익이 생긴다. 높은 이자를 준 것은 짧은 기간에 많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함이었다. 권도형의 예상대로 유동성 풀에 코인이 넘쳤다. 테라-루나는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목표를 달성했으면 다음에는 완급 조절에 나섰어야 했다. 이율을 낮추거나 이자의 한도를 정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그는 그걸 못했다. 앵커라는 유동성 풀에 쌓인 테라로 대출이 시작되었다. 대출 이자는 11%에서 16% 사이였다. 대출 이자가 예치 이자보다 낮으니 역마진 사업이 된 것이다. 시작부터 적자였다. 물론 쿠팡도 시작부터 적자였고, 스타트업 대부분이 그렇다. 적자로 시작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끝까지 적자인 게 문제인 거다. 테라 유동성 풀에 쌓여 시장에서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테라의 가격이 상승하므로, 부족한 테라를 공급하려면 루나를 더 찍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루나 가격이 떨어진다. 앵커의 높은 예치 이자에 대한 우려가 넘치자 이자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이때가 빠져나와야 할 적기라고 여겼다.

그들이 일거에 시장에서 테라를 팔아 치우니 UST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소위 말하는 디페깅(depegging) 사태가 벌어졌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디페깅은 가끔 발생한다. 그런데 그게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다. 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투매의 도미노가 트리거됐다. 루나로는 가격 방어가 어려운 상황이 되자 권도형은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언론이 권도형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던 시점이 이때쯤이었다.

테라가 무담보형이라 망할 거란 주장이 있다. HBD와 하이브가 테라와 루나랑 비슷하다. 스테이블코인인 HBD가 잘 작동하는 것을 보면 무담보형이라고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2017년 나온 베이시스(Basis)가 무담보형의 원조였다. 네이더 알 나지 등이 주축이 되어 1억 달러 이상 투자를 받았으나 금융당국의 규제 때문에 2018년 이 프로젝트를 접었다. 베이시스 캐시(Basis Cash)는 베이시스 모델을 본떠 만들었다. 코인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념적으로 주식(share)과 채권(bond)을 이용한다는 게 기본 골격이다. 베이시스 캐시의 창업자 가운데 하나가 권도형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나 베이시스 캐시도 가격이 추락해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아무튼 권도형이 비트코인을 사들인다는 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이것 역시 시장에 나쁜 시그널을 주었다. 루나가 폭락하기 시작하자 그사이 사둔 비트코인으로 가격 방어에 나섰으나 폭풍우 앞에 우산으로 맞선 셈이었다. 그 많던 권도형의 비트코인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값비싼 교훈, 금융당국 대책 있나?

권도형은 난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는 역량을 갖추었고, 추종자들이 있었으며, 적절한 때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크게 성공시켰고,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권도형은 “내 발명품이 모두에게 고통을 주었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그의 처절한 실패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먼저, 투자는 위험하다는 점이다. 투자로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투자에 앞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리는 결정(informed decision)이 투자자 보호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막상 투자에 필요한 정보는 시중에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루나 가격이 폭락할 때 모든 사람이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공매도로 큰 이익을 남긴 이들도 있다. 가격이 폭락하기 전에 10만 명이었던 루나 홀더의 수가 폭락 후 10일 사이에 18만 명이나 늘었다. 이들은 소액으로 대량의 루나를 주우러 시장에 들어갔다. 루나 클래식 시장에서 소액으로 많은 코인을 사 나중에 크게 남길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반토막 날 수 있다. 폭락한 루나는 심심풀이 삼아 즐기기 좋은 상품이었던 것이다.

가장 값진 교훈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안정된 코인이란 헛된 믿음이 깨진 것일 게다. 무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변동 폭이 작아서 그렇지 일반 코인과 다를 게 없었다. 권도형의 실험은 우리에게 금융상품은 어느 것 하나 결코 안전한 게 없다는 소중한 지식을 선사했다. 그 실험 결과는 많은 사람의 눈물을 양념 삼아 얻어진 것이다. 그의 실험은 금융산업의 강건함을 알아보기 위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그 테스트를 통해 정부든, 투자자든, 학자든 알고 보니 별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었다.

루나 사태는 리먼 브러더스를 날려버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복사판이었다.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이 전체 금융자산의 10%만 넘었더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들이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 공조를 위한 노력을 하기는커녕 개별 국가들의 대책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1988년 만들어진 바젤 I 협약 이후 2004년에는 바젤 II,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2010 바젤 III 협약이 맺어졌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앞으로 대형사고가 빈발할 수 있기에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권도형은 우리에게 값비싼 예방주사를 맞힌 셈이다. 권도형이 초래한 사태는 심각했고 그래서 유감이다. 그렇지만 그의 실험은 소중했다. 그런데 당국자들은 이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루나 2의 성패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권도형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계속 진행형이다.

- 김형중 고려대 암호화폐연구소장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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