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커버스토리] 물가상승 6% 시대, 짠내 나는 ‘지출 다이어트’ 백태 

“월급 빼고 다 올랐다”… 허리띠 졸라매, 자영업자들 “장사 접어야 하나” 한숨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물가 인상 장기화에 청년들 “점심 굶으며 대출이자 갚는다” 우울
요식업계 ‘초비상’… 식용유 등 식자재 작년 대비 30~40% 올라


▎2030세대 직장인들은 폭등하는 식대에 가성비 좋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런치플레이션’에 맞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선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자조 섞인 말이 예사롭게 나온다. 점심 한끼 먹으려면 1만원은 기본이다. 서울 시내 식당에서 7000원짜리 메뉴는 찾기 어려워졌다. 너도나도 ‘런치플레이션’(점심 식사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에 신음하며 치솟는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 글로벌 유가 상승과 곡물가 상승에 따른 식자재 인상은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직장인들은 허리띠라도 졸라맬 수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IMF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했다. 4월 4.8%, 5월 5.4%에 이어 6%대 상승률을 기록하며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기름값과 외식 물가 영향이 컸다. 석유류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39.6% 올랐는데, 이를 포함한 공업제품 가격이 전체 물가상승률 6% 중 3.24%를 끌어올렸다. 식비 상승폭도 컸다. 외식 가격은 전년 대비 8% 올라 1992년 10월(8.8%)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크게 상승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외식을 포함하는 개인서비스 가격이 전체 상승률에 1.78% 기여했다. 6% 상승률에서 총 5%가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 가격에서 오른 셈이다.

실제 개인 차량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은 기름값이 올랐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승주(30)씨는 업무 특성상 이동 시 자가용을 이용한다. 이씨는 “14년산 기아 K-3 모델을 타고 다니는데, 한 달에 2~3번 정도 주유할 때마다 9만원(2100원 기준)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기름값으로 한달 평균 22만5000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며 “과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교통비를 10만원 더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세원(32)씨는 요즘 교통비를 아끼려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출근한다. 지출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기름값이라도 아끼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엔 차량에 8만원어치를 넣으면 그래도 기름통이 70~80%는 채워졌는데, 지금은 60%도 안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날씨가 더워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면 그야말로 ‘기름 먹는 하마’가 된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요즘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치솟는 기름값에 차 세워두고 대중교통으로


▎오강석(32)씨는 2022년 6월 식대에서만 작년 동기 대비 30만원에 이르는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는 청년들의 경제관념에 경종을 울렸다. 중장년에 비해 지갑이 얇은 이들은 갖가지 ‘짠내 나는’ 방법으로 지출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일하는 고양시민 성두현(29)씨는 요즘 출근할 때마다 도시락을 준비한다. 안 그래도 값비싼 연남동 식당에 런치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식당 가는 게 부담되기 때문이다. 성씨를 비롯한 직장동료들은 요즘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한다. 성씨는 “얼마 전까지 회사에서 주는 점심값이 7000원이었다”며 “최근에 사장이 점심 식대를 1만원까지 올려줬지만 지금 물가 오르는 것을 보면 직원들끼리 식당에 가서 점심을 사 먹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오강석(32)씨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식습관을 바꿔 생활비를 절감하고 있다. 혼자 사는 오씨는 주로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밀키트를 조리해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직접 조리해서 먹거나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조금씩 나눠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줄였다. 한 번 만나게 되면 음식점에서 아무리 적게 시켜도 1인당 5만원씩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기준 오씨의 쿠팡 이용 금액은 54만810원(18회 이용)이었는데, 올해 6월 이용액은 33만8630원(12회)으로 줄었다. 그는 꼭 필요한 식료품·생필품을 제외하고는 배달음식 등을 최소화해 60%까지 식대를 줄였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금액도 작년엔 월 22만5440원이었는데, 올해는 6만3120원으로 줄였다. 한 달 식대로 60만~7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는 오씨는 “식자재 마트에서 식재료 몇 가지만 바구니에 담아도 10만원을 훌쩍 넘기니 장 보러 가기 겁난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을 괴롭히는 건 치솟은 점심식사 가격뿐만이 아니다. 금리 인상도 가계를 옥죄는 부담이다.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채모(42)씨는 2021년 9월 주택을 구입하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만 1억72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변동금리가 적용된 신용대출이 금리 인상에 따라 3.61%에서 4.25%로 0.64%p 오르면서 부담이 커졌다. 결국 채씨는 지난 3월 신용대출분을 일괄 상환했다. 그래도 아직 고정금리 대출금은 남았다. 채씨는 “이자를 감당하느라 예금은 포기했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점심을 굶으면서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에 거주하는 정모(31)씨도 금융권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매입한 ‘영끌러’다. 정씨는 시중 은행에서 7%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았는데 현재 매달 나가는 이자만 37만원이다. 그는 6월 한 달간은 장을 아예 보지 않았다. 대신 남양주에 거주하는 부모님에게 식재료와 과일 등을 받아왔다. 정씨는 “식사 준비를 할 때 3인 식단에서 4인으로 늘리는 것은 비용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1인 가구는 조리량은 적은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는 다 들어가야 하니 가성비 면에서 떨어지더라”라며 “월급이 많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나가는 돈을 줄여야 하지 않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2030세대들, 너도나도 짠내 나는 ‘지출 다이어트’


▎경기 안양에서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김순옥(63)씨는 요즘 고민이 깊다. 식자재 가격부터 전기·가스·수도 요금 등 안 오른 것이 없지만 마음대로 음식값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사진:이승훈 기자
직장인들은 ‘안 쓰고 안 먹으며’ 졸라맬 허리띠라도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정말 곡소리 나는 상황이다. 농·축·수산물 등 원재료와 전기·가스·수도료 등 안 오르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음식값을 인상했는데, 그 때문에 손님들 발길이 즐어들면서 매출까지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에서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김순옥(63)씨가 그렇다. 김씨는 요즘 장사를 접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고기 반찬과 생선류를 포함한 6찬에 국까지 직접 끓여 5500원을 받다가 3월부터 6500원으로 올려 받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앞에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김씨의 가게에서 사용하는 원·부자재 가격은 작년에 비해 평균 30~40%가량 올랐다. 식용유 18L 한 캔을 지난해 2만2500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6만5000원을 줘야 한다. 김씨가 수원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떼오는 적상추(4kg)는 2만3000원 하던 것이 7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배추 3포기를 1만2000원이면 샀는데, 지금은 1만5000원이다. 닭다리살(브라질산)은 kg당 2500원에서 6400원(156%)으로, 볶음용 돼지고기(캐나다·미국산)는 3400원에서 5740원(68%)으로 올랐다. 김씨는 “브라질산 닭고깃값이 오르는 걸 보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가격에 이렇게 파동이 크게 오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의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올해 채소 작황이 좋지 않아 발주처 직원이 ‘사장님 채솟값 큰일 났다’고 말하더라”며 “이번 주는 사다 놓은 것이 있어서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다음 주에 사다 놓을 채솟값이 진짜 고비”라고 말했다.

경기권에서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는 황모(39)씨는 최근 오랫동안 식당에서 함께 일해 온 이모님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2020년부터 적자가 누적돼 더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돈가스집이라서 튀김기름 등 식자재비가 차지하는 고정지출이 다른 식당보다 곱절은 더 크기 때문에 황씨는 결국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황씨는 “벌써 3년째 식당 운영이 어렵다. 코로나19 때부터 줄어든 매출이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는 “사장인 내가 직접 서빙 등 노동을 하면 그만큼 빠진 인건비가 가게 매출에 더해지니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매출이 안정적일 것 같은 편의점 사업주들도 물가인상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가맹점주 김모(47)씨는 “본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격변동 지침이 내려온다”며 “보통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격표를 바꿨다면 이제는 시시각각 오르는 물가에 수시로 가격 변동표가 내려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고 했다. 김씨는 “상품마다 많게는 몇백원까지 오른 품목도 있다”며 “식료품뿐만 아니라 가격탄력성이 떨어지는 공산품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는 황모씨(39)는 “손님이 없다 보니 이렇게 점심 시간에 홀에서 튀김옷을 입힌다”며 한탄했다. 사진은 다음날 치 돈가스 튀김옷을 입히는 황씨의 모습. / 사진:이승훈 기자
자영업자들 “장사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물가가 이처럼 ‘살인적으로’ 오르고 있는 가운데 통계청은 올해 내내 지금의 고물가 상황이 계속되면서 6%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금 추세라면 연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4.7%인데 이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물가가 전월 대비 0.6~0.7%p 오르는 건 정말 빠른 상승 속도”라고 말했다.

정부도 물가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은 정부출범 이후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5월 30일)’, ‘당면 민생 물가안정 대책(6월 19일)’ 등 연일 민생·물가 안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물가안정책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적인 문제인 만큼 애시당초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세금감면 정책 역시 소비자의 부담을 일시 덜어줄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물가 상승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근심은 늘어가고만 있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202208호 (2022.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