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신세돈의 돈이 보이는 경제(9)] 달러당 150엔의 엔저 공습에 대비하라 

추락하는 엔화, 기업들 수출 타격 불가피 

내년 이후 대(對)일본 수입 물량 크게 늘어날 전망
일본 제품 저렴해지면서 국내시장 장악할 가능성 높아


▎엔화 가치 하락(엔저)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서 엔·달러 환율이 10월 20일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당 150엔에 매우 근접했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말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가까이 전 세계 경제가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 고통을 동시에 겪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그에 더해 새로운 태풍을 마주하고 있다. 즉,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하는 혼란에 빠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원화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연초만 해도 달러당 1100원에 불과하던 환율이 10월 중에는 1430원대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상승률로 보면 연초 대비 30% 가까운 상승이다. 원화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제품의 국내가격이 오른다. 원유는 물론, 콩, 밀, 옥수수, 면화 등 수입해야 하는 생활 필수 물자의 가격이 그만큼 오를 수밖에 없고 국민의 지불 부담도 커진다. 그러나 원화 환율이 오르면 우리나라 수출에 유리할 수도 있다. 국내수출업자들이 달러표시 수출가격을 좀 내려도 원화 환율이 올라서 타격을 안 받게 되므로 수출가격을 인하할 수 있다. 수출업자가 내리지 않고 싶어도 수입업자들이 내려달라는 압력을 넣게 되므로 자의 반 타의 반 수출가격은 내려가는 게 사실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환율이 10% 상승하면 수출가격은 대체로 5~7%p 정도 내려간다. 수출가격이 하락하면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수출금액도 늘어나게 되니 수출업자는 수출가격을 좀 깎아줘도 불리할 게 없다.

문제는 수출시장에서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나라, 특히 일본과 중국의 환율도 같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엔화의 경우 2021년 말 대비 10월 말 환율 상승률은 28.2%에 달해 한국의 상승률 20.3%보다 약 8%p 더 높다. 일본 엔화 환율이 더 높다는 것은 일본의 수출업자들이 우리 수출기업보다 수출 가격을 더 많이 인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제품들이 국제시장에서 더 저렴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 부품, 정유제품, 석유화학제품, 공산품 등 우리와 경쟁하는 모든 수출품목에서 일본 수출업자가 우리 수출업자보다 더 유리해진다.

엔화 환율 상승, 우리나라 수출에 타격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수출업자들의 수출가격 표시 관행이다. 일본 수출업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엔화 환율 급변동에 따른 수출대금의 변동위험을 줄이기 위해 수출가격을 달러로 표시하지 않고 엔화로 바꿔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율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일정한 엔화표시 수출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짰던 것이다. 이런 전략을 쓰는 경우 달러당 엔화 환율이 오르면 즉각적으로 일본 제품의 달러표시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 수출업자가 수출제품의 가격을 1000엔으로 표시한다고 가정하자. 엔화 환율이 100엔이면 수입업자는 개당 10달러로 사게 된다. 그런데 엔화 환율이 달러당 125엔으로 오르는 즉시 수입업자는 8달러만 내면 일본 물건을 수입할 수 있게 된다. 환율과 수출가격이 자동으로 연계된 셈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수출은 대부분이 달러로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원화 환율이 상승하더라도 수출업자가 수출가격을 ‘즉시 그리고 반드시’ 내려줘야 할 이유는 없다. 이 경우 먼저 수입업자가 수출가격을 낮춰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수출업자가 요청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수출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통상적인 상관행이다. 결국,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가격 하락 속도가 일본은 거의 자동적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좀 느리고 더디게 나타난다.

지난 30년간의 통계를 보면 일본 엔화의 환율 상승, 즉 엔화 약세는 한 번도 예외 없이 우리나라의 경제위기와 연결돼 있었다. 앞선 표에서 보듯 1995년부터 1997년 4월까지 일본 엔화 환율은 89엔에서 127엔으로 무려 42.7%나 뛰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수출증가율은 1998년 -12.0%로 추락했고 경제성장률도 -5.1%로 떨어졌다. 일본 엔화 환율의 상승이 우리나라 IMF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9년 12월과 2002년 2월 사이에도 일본 엔화는 102엔에서 134엔으로 31.4% 상승했는데 그 결과 2001년 수출증가율은 -1.4%로 낮아졌고 그해 경제성장률도 4.9%로 저조했다. 2004년 11월과 2007년 6월까지 엔화는 103엔에서 123엔으로 19.4% 상승했는데 그 기간 우리나라 수출증가율은 -5.1%, 경제성장률은 4.3%로 낮았다. 2012년 12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엔화는 77엔에서 124엔으로 61% 상승했으며 이 기간에도 우리나라 수출은 -9.3%로 감소했고 경제성장률도 2.8%로 매우 저조했다.

기업은 경영 효율성과 비용절감 필요


▎무역적자가 7개월째 이어져 IMF 이후 25년 만에 최장 기간을 기록하고 있다.
2022년 144엔으로 치솟은 엔화 환율은 향후 우리나라 수출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많은 전문가는 일본 엔화 환율이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와 달리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엔화 환율이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나라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엔화 환율의 변화는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 수출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런 시차구조를 무시하고 그 해의 엔화 환율과 수출실적을 비교해보면 마치 엔화가 우리나라 수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년 정도의 시차를 감안하고 들여다보면 엔화 환율과 수출, 그리고 경제성장률 사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년 이후 우리나라의 대(對) 일본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 엔화 환율이 150엔에 가까워지면서 일본산품의 수출가격은 현저히 낮아져 국내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대 일본 수입품목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품목은 기계 및 운송장비(약 230억 달러)와 화학 관련 제품(약 113억 달러)인데 이런 품목의 수입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재료별 제조제품(약 91억 달러)과 기타제조제품(약 63억 달러)의 대일본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음료 및 담배나 광물성 연료의 대일본 수입도 늘어날 것이다. 결국 거의 모든 공산품의 경우 일본 제품이 저렴해지면서 국내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엔화 환율 상승의 파급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엔화 환율이 상승하면 우리나라 제품의 대일본 수출도 어려워진다. 대일본 수출 1, 2위 품목인 재료별제조제품(75.3억 달러)이나 기계운송장비(73.9억 달러)는 물론 음료 및 담배, 기타제조제품 등 거의 모든 수출품목에서 대일본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해 약 300억 달러를 수출하던 대일본 수출이 100억 달러 가까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대일본 수출이 줄어들면서 국내 제조업체의 업황이나 고용 사정도 나빠질 것으로 관측된다.

독자 기술로 대(對)일본 수입의존도 낮춰야


▎엔화 환율이 상승하면 우리나라 제품의 대일본 수출도 어려워진다. 사진은 일본 도쿄도 소재 시부야역 앞 교차로를 건너는 시민들 모습. / 사진:연합뉴스
엔화 환율이 달러당 150엔으로 상승하면 대일본 수입은 크게 늘면서 동시에 대일본 수출은 크게 줄어들어 대일 무역적자를 대폭 확대시키고 경제성장률도 떨어뜨릴 것으로 판단된다. 그 과정에서 국내 중소제조업체의 경영여건은 악화하고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낼 우려가 커진다. 이런 대일 역조 현상을 시정하기 위해 원화 환율이 엔화 환율만큼 상승해주는 것도 한 방편이기는 하지만, 국내물가 상황을 고려하면 채택하기 곤란한 해법이다. 단기적인 대책은 환율로 발생하는 일본의 가격경쟁력을 상쇄할 만한 세제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내부적으로 경영효율성과 비용절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공동구매 및 수입부가가치세 경감 등의 방법을 통해 중소기업의 원자재비용 부담을 줄여주고 엔화 환율 상승으로 타격을 받는 중소기업 제품에 대해서는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해 일시적으로 국내기업을 보호해 줄 필요도 있다. 또 차액 관세를 부과해 일본에서 수입되는 제품의 급격한 가격하락을 상쇄시키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단기적 대책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장비 등 기술경쟁력을 따라잡지 못해 일본에서 수입해오던 품목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능력을 높여야 한다. 당연히 연구 및 기술개발 투자를 도와주고 인력을 배양하는 정책들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비단 소재·부품·장비뿐만 아니라 각각 연간 16억 달러와 39억 달러 적자를 발생하는 재료별 제조제품이나 기타 제조제품에서도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중장기적 지원 대책을 꾸준히 실현하려면 중소벤처기업부의 기능과 역할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예산을 크게 확충해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영세한 중소기업의 규모 확대를 위해 자발적인 인수합병, 즉 M&A를 제도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본금 5000만원인 유관 중소기업 여러 곳이 인수합병으로 자본금을 늘리는 경우, 제도적으로 금융이나 세제상 지원을 제공해 규모를 키우면서 동시에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또 중소기업 경영인들이나 2세 중소기업 후계자의 해외연수 기회를 넓혀주고 중소기업의 중장기 자금공급을 지원할 수 있는 제2의 기업은행 설립도 추진해야 한다.

※ 신세돈 - 미국 UCLA에서 경제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 조사부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89년부터 숙명여대에서 33년째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세종대왕의 통치 업적을 분석한 [외천본민]을 저술했으며, 중국 고대역사서 [자치통감]을 깊이 연구하고 있다.

202212호 (2022.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