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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7)] 한국적 미감(美感)의 대가, 화가 김덕용 

나무를 화폭 삼아 불멸의 생명을 예찬하다 

종이 대신 나무·자개에 그림 그리며 독보적 화풍 구축
경기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12월 31일까지 특별기획전


▎김덕용 화가는 종이가 아니라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화법으로 주목받는다. 그는 고택과 고가구를 해체한 목재의 묵은 색감과 결을 이용해 특유의 한국적 미감을 살려낸다. / 사진:조정화
"따뜻한 이야기를 평생 그리고 있다.” 화가 김덕용(61)의 말이다. 망설임 없이 툭 튀어나온 말처럼 그의 그림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따스하고, 고향의 봄 햇살처럼 아늑하다. 경기 광주시 영은미술관에서 12월 31일까지 김덕용의 [차경(借景)과 자경(自景)사이_스물네 개의 빛바람]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평소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고 응원해주던 처제의 죽음을 애도하고, 나아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생명의 순환을 깊이 있게 나누려는 위로의 전시다.

김덕용은 중학교 1학년 때 미술반에 들어갔다. 호기심에 나간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학창 시절 전통 기와지붕과 판잣집을 즐겨 그리며 일찌감치 남다른 ‘한국적 미감’을 발휘했다.

그는 서울대 회화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남농의 손자 허진과 설치미술가 서도호 등 쟁쟁한 작가들이 동기다. 첫 개인전은 대학원 졸업 학기에 관훈갤러리에서 열었다. 조각도로 인물과 글자를 새긴 나무를 한지로 뜬 탁본을 전시했다. 나무에 그린 작품을 전시 못 한 아쉬움은 졸업 후 ‘나무’ 자체가 등장한 계기가 된다. 기존의 한지 대신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김덕용은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 ‘나무가 곧 종이다’라고 썼을 만큼 절실했다고 회상한다.

김덕용 그림의 주된 물성은 나무와 자개다. 고택과 고가구를 해체한 목재에 배어 있는 묵은 색감과 나뭇결을 이용해 특유의 한국적 미감을 살려낸다. 그뿐인가. 자개를 사용한 어머니의 눈부신 한복은 김덕용 그림의 백미다.

김덕용의 작품 세계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모색기다. 대학원 시절부터 1999년까지 한국성을 찾는 시기로, 전통가구의 고재를 처음 사용했다. 2단계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로, 인물 중심의 한국적 미감을 드러낸 시기다. 물론 2005년에 처음 선보인 달항아리 작품도 유명하다. ‘한국의 미’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에서 나온 소재가 달항아리였다. 어머니의 ‘자운영’ 작품에서 연계된 작업은 확장성과 더불어 변화를 거듭한다. 이 시기에 10년간 근무한 계원예고를 나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8년에는 박경리 유고시집 삽화 작업에 참여했다.

3단계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바다’를 통한 ‘귀소’와 ‘차경’ 외에도 상징적이고 보다 입체적인 한국성을 표현한 시기다. 4단계는 2017년부터 시작된 ‘생명의 순환’ 이야기로, 작업 초기부터 등장한 나무를 태운 재를 재료로 삼았다. 소멸은 죽음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세계로의 시작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내용에 따른 물성의 변화로 추상성이 적극적으로 가미된 시기다. 5단계는 2023년 발표 예정으로 그리는 ‘우주 산수’이며 아직 미완성이다. 우리 전통 산수를 배경으로 ‘귀’, ‘무위자연’ 등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을 담으려고 다각도로 구상 중이다.

이처럼 모든 작품이 관통하는 지점은 바로 ‘한국성’이다. 이것이 김덕용의 작품을 주시한 까닭이다. 영은미술관에 전시 중인 그림을 감상하고, 퇴촌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화가의 긴 여정을 들었다.

호기심에 나간 미술대회 입상하며 화가 꿈 키워


▎김덕용 화가가 가장 아끼는 사진은 학창 시절 지역 주민과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단상에 올라 미술 부문 교육감상을 받는 장면이다. “어릴 때 큰 상을 자주 받은 것이 화가의 길로 들어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그는 떠올린다. / 사진:김덕용
영은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차경(借景)과 자경(自景)사이- 스물네 개의 빛바람]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도 우주에서 또 다른 어떤 모습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작가가 느끼는 물성에서 같이 느꼈으면 한다. 처제가 국어 교사였다. 작가노트를 쓰면 감수를 해주곤 했는데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평소 늘 응원해주고 내 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처제에게 그림이 위로가 되었으면 하던 시기에 그렸다. 작가의 삶을 여행길처럼 걸어오면서 나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힘든 시기에 있는 많은 사람과 위로를 나눴으면 하는 전시다.”

나무를 태우고, 그 재로 그림을 그린다. 어떤 의미인가?

“‘재’로 그린 것은 4~5년 정도 됐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쓰다 남은 나무를 태우다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림 재료로 사용하던 나무는 버려지고, 태워지고, 결국 ‘재’가 되는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우리 삶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한 줌의 재가 된다 해도 형체만 바뀔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자연(우주)으로 가서 또다시 순환하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박경리 유고집 삽화 그려 세간의 이목 집중


▎김덕용 화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운영’(2020)은 목재 위에 자개를 이용한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단아하고 인자한 어머니의 향수를 자극한다. / 사진:김덕용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나 한지 대신 고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채색의 어려움이나 나무의 뒤틀림, 벌어짐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그림의 바탕 재료로 나무를 가장 먼저 사용했다. 초기에는 시도한 사람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장비가 없어 변두리 목공소에 가서 종일 부탁해 겨우 만들기도 하고, 목공 장인을 찾아가 목공 기술을 배웠다. 지금도 원목을 쓸 때 끼워 넣는 방식으로 틀 안에서 움직이게 원목을 짜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색칠은 검증된 분채나 석채를 사용하거나 발색과 그림의 표현에 따라 아크릴 등 다양한 물감을 쓴다. 고재 위의 채색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의 방법을 찾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연구할 생각이다.”

자개를 사용한 그림도 많다.


▎김덕용 화가의 최신작 ‘관해음’(2022)은 나무와 전복, 소라 껍데기를 재료로 삼은 작품이다. ‘그들의 고향(근원)으로 돌려보내자’는 의미를 담았다 / 사진:김덕용
“자개는 2001년에 처음 사용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입던 반짝거리는 한복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개는 강과 바다, 채취한 곳에 따라 색이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여러 나라 자개를 구해 표현에 맞게 잘라 사용한다. 30대에는 주로 인물 작업이 많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나 자신뿐 아니라 사용하는 재료들(전복, 소라, 나무)도 ‘그들의 고향(근원)으로 돌려보내자’는 데서 바다의 ‘관해음’을 하게 됐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한복을 입은 어머니에서부터 관능적인 누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누드 작업은 관능보다 물성으로 봤다. 나무의 결에서 피부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무 자체의 물성이 주는 ‘결’ 때문에 대상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와 별개로 작업 초기에 인물 작업을 많이 했다. 군부독재로 힘든 시기 버스에서 스쳤던 첫사랑 같은 소녀, 늘 곁에서 응원해주는 아내, 힘들 때마다 함께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렸다. 힘든 시기에 근원적인 고향 같은 따뜻한 대상을 찾았던 것인데, 결국 가장 한국적인 얼굴을 찾아가는 것과 결부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공화랑(2001년), 이화익갤러리(2002년~), 학고재(2004년)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다수 열었다. 그뿐 아니라 아트마이애미, 아트아부다비, 아트센트럴 등 주요 국제아트페어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나, 작가에게 큰 힘이 된 좋은 기억이 있다면?

“반응이 좋을수록 기억은 오래간다. 2001년 공화랑 전시의 반응이 좋았다.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하나의 계기가 됐다. 2003년부터 아트페어에 나갔다. 개념조차 생소한 시절이라 관심들이 없었는데 내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 많아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2년 될 무렵, 예술가의 길이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였다. 개인전을 보고 홍콩 크리스티 한국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국내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 마치 국가대표처럼 선정되어 결과도 좋았다.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첫 사례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박경리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유고시집에 인물화뿐 아니라 특유의 정감 어린 그림들이 삽화로 수록되었다.

“박경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출판사를 통해 의뢰가 왔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혼신을 다해 박경리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구상했는데 이때 책 형식의 그림이 처음 나왔다. 선생님 생전에 뵙진 못했지만, 삽화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1주기 추모전에 오신 박완서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젊은 친구가 대단한 길을 가고 있네. 한국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렸으면 좋겠네. 내가 믿을게’라는 덕담을 해줬던 게 지금도 가슴 뭉클하다.”

“인간과 우주 연결하는 자연 그리고파”


▎나무에 자개를 이용한 2022년 작 ‘차경’ / 사진:김덕용
‘한국화’라는 명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양화’란 명칭 대신 1980년도에 ‘한국화’라고 처음 불리기 시작했다. 홍익대의 송수남 선생님을 중심으로 수묵화 운동의 붐이 일어나고 점차 몇몇 대학교에서 동양화과를 한국화과로 명칭을 바꿨다. 서울대는 산정 서세옥 선생님을 중심으로 동양예술철학의 정신성에 기반을 두었기에 동양화과란 기존 명칭을 유지했다. 우리 그림에 대한 정체성 논의가 많았다. 다만 수묵화가 마치 한국화인 것처럼 인식된 상태에서 좀 더 논의되지 않아 아쉽다. ‘한국화’란 명칭보다 ‘한국회화’라고 좀 더 폭넓게 정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위스 한국대사관, 아부다비 관광문화청, 에미리트 전략연구조사센터 등 해외에도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한국적 소재에 대한 국제적인 반응은 어떤가?

“이런 그림은 본 적 없다는 반응이다. 대부분 지역적 관심보다 오로지 그림 자체에 관심이 많다. 한국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다시금 놀라워한다. 인물과 바다 작품, 그리고 밤하늘의 동심원까지도 독창적인 작가라고 생각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아직 미발표작인 신작 ‘산수’에 대한 반응도 자못 궁금하다.”

한국미술 시장의 세계화를 위해 화가로서 가장 주요한 쟁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제대로 된 ‘한국의 미’를 잡아가야 한다. 표피적이고 그럴듯한 한국성이 아니라 처절하게 우리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를 먼저 알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를 알고 세계로 나갈 수도 있다. 최근 시대에 부합하는 작품이 많다. 우리의 자생적인 미술에 대해 고민하고, 국제적인 흐름도 추가로 연구한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지역 주민과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타 학교 단상에 올라가 미술 부문에서 교육감상을 받는 사진이다. 미술대회를 늘 나갔고 상도 많이 받았는데 찍은 사진이 모두 사라져 유일하게 남은 한 장이 더욱 의미가 깊다. 중학교 2학년 때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미술실기대회에 나가 중등부 최고상을 받았다. MBC 방송국과 인터뷰에서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길래 대뜸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고 했다. 어릴 때 큰 상을 자주 받은 것이 화가의 길로 들어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래서 상을 받는 이 장면은 울컥할 정도로 특별하게 다가온다.”

향후 작업 방향이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내년 봄에는 이화익갤러리와 홍콩에서 개인전이 있고, 하반기에는 포스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계속 구상 중인데 ‘산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쓰다 남은 재료를 태우고 재를 만들어 우주를 그렸듯이, 신작 산수의 배경이 되는 기암괴석은 옛날 우리 동양화에서 이상적인 산수화의 느낌을 가져왔다. 앞쪽에는 양평이나 양수리 등 실제 풍경을 담으려 한다. 현실에서 이상을 찾아가고 결국 우주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앞으로도 자연을 소재로 그 안에서 인간과 우주의 세계를 연결하는 자연을 그리고자 한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212호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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