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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스페셜 | 윤석열 정부 경제 성장과 복지 정책의 선봉장들(1)] 산업은행 부산 이전 총대 멘 강석훈 회장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정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 설계한 ‘위스콘신 4인방’ 중 유일하게 尹 정부에서 중용돼
원희룡·최상목과 함께 ‘서울대 82학번’ 선두주자, 산업은행 노조와의 갈등은 난제


▎강석훈(왼쪽) 산업은행 회장이 한덕수(오른쪽 두 번째) 국무총리 등과 함께 벤처 스타트업 규제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강 회장을 산업은행으로 보낸 건 윤석열 정부의 경제 철학을 짐작케 하는 단서다. / 사진:연합뉴스
강석훈(59) KDB산업은행 회장은 1964년 경북 봉화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 회장이 2020년 8월까지 운영한 블로그 ‘서초 경제박사 강석훈’에는 “세 살 때 아버지가 돈 벌러 서울로 떠났다. 열 살이 돼서야 아버지가 식구들을 서울(강북구 우이동)로 불렀다”는 회고가 등장한다. 이후 그의 인생 항로는 전형적인 ‘강북 우파’ 흙수저의 성공담 범주에 들어간다.


강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이다. 이혜훈 전 의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이용우 민주당 의원, 김한정 민주당 의원 등이 그의 동기다. 동시대에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이들의 이념적 지향성은 천차만별이었다. 그의 대학 동기는 “당시 유행한 스터디 모임에서 (강)석훈이는 늘 주도적이었다. 학자가 된 다음에도 현실 참여적 성향을 감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강 회장은 자유주의 성향을 표출했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며 ‘부실기업 구조개혁’을 주장했다. 기업 법인세 인상과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상향에 비판적 견해를 취했다. 그래서 강 회장과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관여한 김상조 전 정책실장은 경제 이념적으로 가장 대극에 선 인물로 꼽힌다.

강석훈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중서부의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립대인 위스콘신대는 상대적으로 학비와 물가가 저렴하고, 전통적으로 경제학과의 명성이 높다. 그 덕분에 경제학 전공자들이나 경제 관료들은 이곳을 유학지로 선호했다.

‘위스콘신 4인방’의 엇갈린 행보

박근혜 정부에서 위세를 떨친 ‘위스콘신 4인방’이 탄생한 배경이다. 위스콘신 4인방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그리고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일컫는다. 이들은 나란히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최경환은 경북 경산·청도, 유승민은 대구 동을, 강석훈은 강남 서초을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안종범도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계량경제학 전문가인 강석훈은 대우경제연구소금융팀장 출신이다. 대우경제연구소는 1984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 경제 연구소로, 이한구 전 의원이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연구소 수장을 역임했다. 이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대우경제연구소도 해체됐다. 이 전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비례대표)이 됐고, 강석훈은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로 옮겼다.

위스콘신 4인방 중 가장 먼저 ‘친박’이 된 최경환이 강석훈 당시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를 박근혜 캠프로 끌어들였다. 강석훈과 안종범은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귀국해 대우경제연구소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2012년 12월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캠프는 ‘경제 민주화’에 방점을 찍은 김종인 계열과 ‘경제 활성화’를 중시하는 이한구 계열의 노선 대립에 직면했다. 경제민주화의 주창자인 김종인 당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강석훈과 안종범을 위원에서 빼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갈등은 격화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한구의 방향성을 채택했고, 강석훈은 대선 승리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박근혜 정부 경제 정책의 골격을 설계했다.

위스콘신 4인방은 이후 분열의 길을 걷는다. 유승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 정책 등에서 다른 색깔을 발하려다가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낙마하는 등 고초를 겪는다. 결국 ‘배신의 정치’라는 프레임에 갇히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친박 세력의 일방적 공천에 반발한 김무성 당시 당대표의 ‘옥새 파동’ 여파로 새누리당은 유승민의 지역구에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기사회생한 유승민은 무소속 신분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며 강석훈과 유승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이들의 관계를 잘 아는 국민의힘 인사는 “위스콘신이라는 대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점만 같을 뿐, 이들을 4인방으로 묶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석훈이 서초을 공천에서 탈락하자 2016년 5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불렀다. 당시 경제부총리는 유일호,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안종범이었다. 유일호의 전임자는 최경환, 강석훈의 전임자는 안종범이었다. 강석훈보다 시기적으로 먼저 청와대에서 중책을 맡았던 최경환과 안종범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반면 국정농단 태풍을 피해 간 강석훈 회장은 2022년 3월 보수 진영이 정권을 탈환하자 주류로 다시 진입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구성된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것이다. 검사 시절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최경환 전 부총리, 안종범 전 수석을 처벌했지만 강석훈은 악연을 피했다. 오히려 집권 후 윤 대통령은 그에게 산업은행 회장을 맡기며 신임을 표시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전성시대’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6년 5월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그로부터 6년 후,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그는 산업은행 회장으로 내정됐다. / 사진:연합뉴스
강 회장이 산업은행 수장에 취임하며 윤 정부에서 ‘서울대 경제학과’의 위상은 한층 드높아졌다. 강 회장 외에도 이창용 한국은행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의 입지가 상승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지만, 2022년까지 자리를 지켰던 윤종원 IBK기업은행장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중에서도 강 회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유일호 전 의원이 빠지지 않는다. 강 회장의 서울대 경제학과 7년 선배인 유 전 의원은 강 회장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했을 때, 경제부총리로서 호흡을 맞췄다.

특히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전업한 강 회장이 19대 총선을 준비하며 선거사무소를 여는 날, 유 전 의원이 찾아올 정도로 믿음이 깊다. 김영삼 정부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신인 정치인 강석훈의 후원회장을 맡아줬다. 이날 개소식에는 영화배우 박중훈도 찾아왔다. 강 회장과 박중훈은 이종사촌 관계다. 또 5선 의원 출신인 정병국 청년정치학교 교장은 그의 서라벌고 5년 선배다.

2012년 총선에서 강 회장은 사실상 ‘보수당 공천=당선’인 서울 서초을에서 전략 공천을 받아 무려 60.12% 지지율로 당선됐다. 친박 실세로 인정받으며 초선 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기획재정위원회 간사까지 맡았다.

그러나 2016년 총선에서는 예상을 깨고 공천권을 따내지 못했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측근이자 서초구청장 출신인 박성중에게 경선에서 패한 것이다.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옮긴 강 회장은 2017년 5월까지 약 1년 동안 직책을 수행했다. 그러다 2020년 총선에 재도전했지만, 경선 결과 50 대 50 동률이라는 희귀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재경선이 펼쳐졌고, 0.4%p 차이로 강석훈(49.8%)은 박성중(50.2%)에게 미래통합당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강 회장의 권토중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인연을 통해 이뤄졌다. 강 회장이 처음에 도왔던 대선 후보는 원희룡 전 제주지사였다. 두 사람은 ‘서울대 82학번’이라는 학맥으로 연결된다. 윤석열 당시 후보도 직접 강 회장의 도움을 청했지만, 간곡하게 고사하며 오랜 교분을 이어온 원 후보 캠프에 몸담았다. 하지만 경선에서 윤 후보가 승리하자 원 전 지사는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 강 회장도 자연스럽게 윤 후보를 도왔다.

대선 승리 후 인수위에서 강 회장은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과 더불어 윤 대통령의 경제 참모로 떠올랐다. 강 회장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서울대 법학), 원희룡 장관(서울대 법학)과 더불어 ‘윤 정부의 서울대 82학번 트로이카’로 불렸다. 취임 후윤 대통령은 경제수석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추경호, 금융위 부위원장 김소영, 산업은행장 강석훈 등 캠프에서 그를 도왔던 경제 전문가들의 보직을 정했다. 강 회장은 인수위 정책특보를 거쳐 2022년 6월 7일 산업은행 회장으로 내정됐다.

소통 능력 시험받는 ‘尹의 대리인’


▎2022년 12월 강석훈(왼쪽) 산업은행 회장은 추경호(오른쪽)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산업경쟁력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선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한 투자 유치 방안이 논의됐다. / 사진:연합뉴스
산업은행은 주요 기업들에 자금을 융통해주고, 산업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기관이다. 최대주주는 정부다. “구조개혁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라는 강석훈 회장의 학문적 지론과 맥락이 닿는다. 실제 2022년 9월 26일 산업은행은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통매각’을 발표했다. 21년 만에 찾은 대우조선해양의 매수자는 한화그룹이었다.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55.68% 지분 가운데 49.3%를 한화는 2조원에 사들이며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한화는 2008년에도 대우조선해양을 사려고 했다. 당시는 조선업 경기가 좋을 때라 6조3002억원을 불렀지만, 최종적으로 계약이 무산됐다. 14년이 지나서 6조3002억원이 2조원까지 낮아지며 ‘헐값매각’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강 회장은 “지금 같은 경영 환경으로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했다”며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할 수 있는 민간 대기업을 찾았다”고 강행 배경을 밝혔다.

산업은행 직원들 사이에서 강 회장에 대한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놓고 강 회장과 평직원·노조 사이에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의 골이 깊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애당초 기대도 안 했지만, 이렇게 바이패스(bypass) 수준으로 대통령실의 지시를 전달할 줄은 몰랐다”는 말도 나온다. 내부에서는 “회장에게 힘이 있다는 느낌을 못 받으니까 직원들도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증언도 들린다.

내정 이후 강 회장은 산업은행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무려 15일 동안 출근을 저지당했다. 시간이 흘러도 강 회장에 대한 평직원들의 반감이 줄어들지 않는 배경에는 윤희성 수출입은행장과의 비교도 작용한다. 비슷한 시기에 취임했지만 윤 행장은 내부 승진 케이스에 해당한다. 또 부산 이전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총대를 메는 강 회장에 비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코드 일치


▎부산 이전 반대 시위에 참여한 산업은행 행원들. 강석훈 회장은 이 사안을 속도전으로 끝내려 한다. / 사진:연합뉴스
취임 100일을 지나며 강 회장은 최대현 수석부행장이 관할하는 부산 이전 준비 TF팀을 구성하는 등, 속도전을 불사했지만 TF팀에 차출된 직원 중 상당수가 연가를 신청하는 등 반발을 겪어야 했다. 산업은행 내에서는 “능력 있는 순서대로 직장을 떠나고 있다. 부산 이전이 본격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내 게시판에도 반발 글이 올라왔다. 익명을 요청한 직원은 “산업은행은 엘리트 자부심으로 뭉친 직장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실명으로 운영되는 사내 게시판에 이판사판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산업은행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원래 강 회장은 대학교수와 정치인 시절부터 ‘소통에 강하다’는 호평을 들었다. 일례로 박근혜 인수위 시절 ‘그동안 취재 요청에 상세하게 대응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로 취재 기자단에게 사비를 털어 귤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강 회장은 산업은행에서도 소통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직원들이 보이콧하고 있다. 산업은행 본연의 업무인 비즈니스를 비롯한 모든 이슈가 ‘부산 이전’으로 흡수된 탓이다.

강석훈 회장이 믿는 최측근 그룹으로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정찬우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재홍 두나무 대외협력실장 등이 꼽힌다.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인 김 장관은 강 회장의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다. 2012년 총선 때 함께 당선됐으며 강 회장이 박근혜 정부 경제수석으로 일할 때, 김 장관은 고용복지수석이었다. 둘은 윤석열 캠프에서도 경제 정책을 같이 만들었다. 전남대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한 정 전 이사장은 강 회장의 서울대 경제학과 82학번 동기이자 친구다. 김 실장은 강 회장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보좌관으로 활동했으며, 강 회장이 청와대 경제수석이 된 이후에는 그를 돕는 행정관으로 일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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