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책갈피] 보수주의가 머금은 21세기 지구촌 해법 

극단적 자본주의 흐름에 보수주의가 반기 드는 시점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사회는 인류의 공유 유산, 인간의 요구에 한계 설정해야”

[하룻밤에 읽는 보수의 역사]에서 다루는 현대 보수주의는 계몽주의시대의 산물이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에서부터 프랑스혁명(1789년)을 전후로 한 18세기에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사상 체계인 셈이다.

이 책은 현대 보수주의 철학과 사상이 태동하고 성장해서 만개하는 과정을 시대별로 고찰한다. 사회 이념에 대한 정론적 분석은 정치(精緻)하며, 자유(진보)주의와의 대치·공존 과정에 대한 고찰은 드라마틱하고 리얼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보수주의에 주목해야할 이유는 지구촌 공통의 과제를 푸는 원리적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 부의 양극화, 환경오염 등은 인류의 미래를 무겁게 짓누른다. 저자에 따르면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이런 문제 해결에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보수주의는 공동체의 존속에 철학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대의 차이와 경쟁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조직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보수주의 이론은 구축돼왔다. 경쟁과 효율의 원리가 공동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경우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게 보수주의 이론의 함의다.

그렇게 읽혀질 수 있는 사례들을 보자.

미국 헌법 이론의 정초(定礎)를 놓은 토머스 제퍼슨은 개인 뿐 아니라 세대(世代)에도 주어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헌법이라도 미래 세대들에 무작정 강요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대표적 보수주의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위해 자신들의 요구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버크에게 사회는 ‘살아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지 않은’ 대상이다. 버크에게 사회란 ‘죽은 사람, 살아 있는 사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결사체인 것이다.

저자의 방점도 이 지점에 찍힌다. “사회는 우리가 공유하는 유산이다. 우리는 그 사회를 위해 우리의 요구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선택과 집중’, ‘경제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가 인류의 행복과 생존을 위협한다면 그런 시대의 흐름에 현대 보수주의가 반기를 들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 로즈 스크러턴(Roger Scruton)은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언론인이다. 1944년 태어나 2020년 영면한 그는 1968년 프랑스의 사회변혁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보수주의 철학에 눈을 떴다. 역자인 이재학은 중앙일보 국제부장 등으로 활동하다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창간을 주도하고, 뉴스위크한국판 발행인을 역임했다. [보수의 정신]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보수의 뿌리] 등을 번역했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302호 (2023.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