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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어느 철학자의 ‘나’를 찾아 떠난 여행 

영원을 꿈꾸는 자, 빛나는 별이 되리니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노장철학의 대가 최진석의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자전 에세이
소멸하는 물질이 아닌 영원을 추구하는 삶을 향한 발자취 담아


태어난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1년 후, 100년 후, 영겁의 세월을 견디는 존재라 해도 끝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을 살고 사라지는 별똥별의 삶이 수십억 년 한자리에서 빛을 뿜는 태양의 삶보다 하찮을 수 없다. 소멸은 끝과 동의어가 아니다. 소멸한 물질은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새 삶을 이어간다. 철학자 최진석이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60년 만에 마주한, 이미 흙이 되어 본래 형체는 뭉개져버린 자신의 분신, 태(胎)를 찾아 절을 올린 데에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경외가 우러나서였을 것이다. 최진석의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는 그렇게 생명의 본질을 간파한다.

이 시대 대중적인 철학자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에세이가 나왔다. 노장철학에 천착하게 한 인생의 사건들과 사람을 통해 일대기를 정리했다. 2020년 회갑 날 자신이 태어난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장병도를 찾아가 자기 태가 묻힌 곳에서 절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새로운 육십갑자를 향해 떠나는 여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진석의 철학적 사유는 별똥별이 내뿜은 작은 빛으로부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고향 집 마당에 누워서 본 별똥별에서 생명과 죽음, 영원에 대한 탐구욕이 솟았다. 모든 게 사라진다는 죽음의 공포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까지 괴롭혔지만, 그만큼 그의 사유는 치열하게 심연을 향했다. 별똥별처럼 짧은 인생보다 저 멀리서 빛나는 별처럼 불멸의 삶을 찾는 데 몰두했다. 눈에 보이는 ‘교수’라는 어엿한 직책을 정년 7년이나 남겨두고 미련 없이 내던질 수 있었던 건 별똥별이 준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전적 에세이라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입신양명 스토리의 구태의연함은 찾을 수 없다. ‘성공한 꼰대’가 후학들에게 전하는 일장훈계와도 거리가 멀다. 담백한 남도 사투리를 곁들인 추억의 단편들을 통해 소년 최진석이 사유의 경계를 어떻게 확장해나갔는지 관조하는 맛이 살아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노장철학의 근본 이치와 해설을 따라가면 허무주의로만 알던 노장사상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찰나에 연연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꿈꾸되, 인생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득도의 경지이자 도통(道通)의 세계로 귀의하는 길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빛나는 별이 되어 영원한 우주적 존재로 거듭난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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